요나라 태평성대를 열었다는 제6대 황제 성종聖宗(재위 982~1031)한테는 50년에 달하는 집권 기간 내내 황후는 오직 한 명이었으니, 인덕황후仁德皇后 소씨蕭氏가 그라, 어릴 적 이름은 보살가菩薩哥였다.
시어머니로 바로 앞선 황제 경종景宗의 비 예지황후睿智皇后 동생인 소외인蕭隗因의 딸이다. 시어머니한테는 며느리이기도 하지만, 조카딸이었다.
한데 역사에서는 성종의 황후를 두 명이라 한다. 재위 기간 내내 황후가 쫓겨난 적도 없고, 남편이 죽을 때도 황후였는데, 어찌하여 둘이 되는가? 바로 이에서 피비린내나는 황실 암투를 조우한다.
보통 이런 황실 쟁투는 후사를 두고 발생하는데, 특히 정부인한테서 아들이 없고, 후궁한테서 태어난 아들이 보위를 이었을 때 일어나니, 성종의 경우가 딱 이랬다.
요사遼史 권63 열전 제1 후비后後妃에 이르기를
(인덕황후는) 아들 둘을 낳았지만 모두 일찍 죽었다. 개태開泰 5년(1016)에 궁인宮人(후궁)인 누근耨斤이 (성종 다음 황제인) 흥종興宗을 낳으니, (인덕황후가) 거두어 아들로 삼아 길렀다. 황제(성종)이 크게 병이 들자 누근耨斤이 황후에게 욕설을 퍼붓기를 “늙은이의 총애에도 끝남이 있겠는가? [老物寵亦有既耶]”라 하자, 좌우에서 (인덕) 황후를 부축해 나갔다.
괄호에 친 老物寵亦有既耶 라는 부분을 어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혹 한문에 밝으신 분들은 교정해 주기 바란다. 전후 맥락으로 보면, 이제 네 시대는 끝났다 이런 의미겠다.
바로 이 순간이 성종의 죽음과 더불어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의미한다. 권력교체가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인덕황후는 남편이 죽었으니, 이내 황태후로 격상되어야 했지만, 그에게 비극은 다음 보위를 이은 황자가 자기가 낳은 아들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며, 또 더 유감스럽게도 그의 생모가 살아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성종이 아주 똑똑했더라면, 자신의 사후 펼쳐질 피비린내나는 황실 암투를 미연에 예방하기 위해서는 흥종興宗(1031~1055)의 생모 누근은 사사해야 했다. 하지만 인정에 이끌려서인지 그러지 못하고 죽는 바람에 요 황실은 걷잡을 수 없는 내란으로 번지고 말았다.
더 큰 문제는 새로운 황제의 생모는 야심가였고, 무엇보다 모략가였다는 점에 있었다.
아들이 황제가 되자, 이때다 싶어 그 인연을 고리로 권력 전복을 시도했으니, 그런 그를 아무도 제어할 수 없었다. 이제 생모의 시대가 펼쳐진 것이다.
그가 낳은 아들 거란 제7대 황제 흥종興宗은 본명이 지골只骨이며 중국식 이름은 종진宗眞이다. 성종의 맏아들이라 해서 보위를 이은 것이다.
그의 생모가 저리 나오게 된 배경은 1031년 성종이 사망했을 때 그의 아들 야율지골耶律只骨, 곧 야율종진耶律宗眞은 1016년 생이라 겨우 16살에 지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이때는 어려서는 친정親政을 할 수 없다. 엄마가 대리청정 섭정을 해야 한다.
당연히 그 대리청정 수렴청정은 정식 황후인 인덕황후가 해야 했다. 한데,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후궁인 누진이 냅다 그 자리는 내 것이라고 저리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그것도 이미 죽음을 앞둔 성종을 앞에다 두고 말이다.
이것이 대역무도임을 말할 나위가 없지만, 누근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는 점을 빼어 놓을 수는 없다. 이때 기회를 놓치면 자기 목숨조차 위태로워지니 말이다.
그래서 실제 섭정은 누구한테로 갔던가? 인덕황후가 아니라 후궁인 누군한테로 갔다. 이는 누근으로서는 스스로 쟁취해서 얻은 자리였다.
문제는 그렇게 해서 권력이 이동만 했으면 괜찮은데, 누근이 본부인을 향해 마침내 칼을 빼어들었다는 데 있다. 같은 남자를 공유한 여자들이 평화를 유지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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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의 치맛바람] (2) 북송을 직접 정벌한 경종비 소작蕭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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