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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고생한다는 징징거림이 고고학을 3D로 몰아세운 주범이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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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고 있는 춘배. 이런 장면이 고고학의 낭만이라 선전되어 팔렸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런 장면들은 부메랑이 되어 고고학을 3D 업종으로 만들고 말았다. 참고로 춘배는 트롤 안 잡은지 30년이 더 된 전직 고고학도다.

 
나는 기자생활 대부분을 문화부에서 보냈다. 문화부 기자, 참 있어 보인다. 고상해 보이고, 책도 많이 읽는 듯하고 영화도 보고 공연도 보고 전시도 보고, 때로는 베토벤 교향곡도 듣고, 또 때로는 큰스님과 노닥이며 법문도 들으니 이 얼마나 멋진 직업인가?

무슨 얘기 나올지는 뻔하게 할 터이고, 그래 그런 시절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실제 저리 보내는 문화부 동료 기자가 없지는 않았던 듯하지만, 설혹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해도 다 아승끼 전세 겁에 있었던 일이요, 요새?

다들 뒤져 난다. 똥오줌 못가릴 정도로 바쁘다. 

더구나 요새는 국경이 무너지는 바람에 일하는 시간에 대종도 없어, 특히 대중문화 담당하는 친구들은 수시로 외국에서 날아드는 소식에도 촉각을 세워야 하니, 제대로 잠 못 잔다. 

내가 문화부장 되고 나서 한동안 한 일이 문화부가 3D 부서라는 선전이었다. 얼마나 고생하는지를 주로 문화부장 업무를 들이대며 선전했다.

기자 쪽수 대비 기사 건수도 갖다 들이대면서, 기존 이런 일로 갖은 티는 다 내는 정치부나 사회부 보라면서, 니들 기자 한 명이 요만큼 쓰지만 우리 문화부 기자들은 밤잠 안 자며 이렇게 많은 기사를 써제낀다. 

이런 식으로 틈날 때마다 동네방네 선전하고 다녔다. 그 작업이 어느 정도 유효한 것도 있어, 꼭 내가 그래서 그랬던 것은 아니겠지만, 진짜로 문화부가 고생하는 부서라는 인식이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한데 문제가 생겼다. 내가 문화부 갈 때는 꼭 물먹는 듯한 기분이 있었지만, 시대는 변해서 문화부는 그런 대로 인기 부서로 급부상해서 인사철마다 전입을 신청하는 기자가 많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곤 했다. 

내 작업이 너무 유효한 때문인지, 아니면 부장이 개떡 같다 소문 나서인지는(생각보다 부장으로서 김태식은 그런 대로 평이 괜찮았다...라고 후배들이 많이 이야기한다) 지원자가 없는 것이었다.

왜 지원 안 하냐 물으니 고생한담서요? 하는 게 아닌가?

그때서야 내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면서 더는 문화부가 3D 부서라는 말 입밖에도 안 꺼냈다. 

마찬가지다. 고고학이 대표적인 3D 업종으로 인식된지는 오래라, 실제 그네가 그렇게 육체적 고통을 감내하는지와는 별개로 고고학이 고생하는 3D 직종이라는 인식은 다름 아닌 고고학도 본인들이 심었다. 

맨날맨날 고생한다 힘들다는 징징거림, 이 징징거림은 이내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힘들다는데 누가 그 일을 한다 선뜻 나서겠는가?

고고학의 낭만? 그런 책이 서너 종이 나와 있는데, 그걸 읽어보면 꼭 빠지지 않는 장면이 고된 발굴작업 막간에 아무데서나 뒹글고 자거나 조는 장면이라, 그걸로 고고학 스스로는 우리가 이렇게 숭고한 일을 이렇게 고생해서 한다,

그렇지만 그에는 낭만이 있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것이 쌓여 돌아온 것은 고고학 회피였다. 

그러니 고생한다는 징징거림 그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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