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엽을 근거 없이 옹호할 생각은 별로 없지만,
현재 밝혀진 사실과 모종의 상충되는 부분이 있어 간단히 글을 남긴다.
백선엽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그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는 측에서도 팩트는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다.
일반적으로 백선엽은 해방 이전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특설대에 배속되어 독립군 잡으러 다닌 친일파 출신이라는 것이 그를 비난하는 쪽의 주장 골자인데-.
뭐 일단 다 맞다고 치더라도 그의 프로필은 이런 사실과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백선엽은 앞에서도 썼지만,
1941년 12월 30일 만주국 봉천군관학교를 졸업 (2년제)
견습군관을 거쳐 만주군 소위로 임관
1943년 2월 간도특설대로 전근되어 근무
이렇게 되어 있다.
쉽게 말해 간도특설대가 독립군 잡으러 다니던 부대이니 백선엽도 독립군 잡으러 다녔다는 주장인데,
문제는 그가 간도특설대로 전근된 1943년 2월에 만주에 독립군이 남아 있었냐는 문제가 있다.
1930년대 후반과 40년대 초반에 만주일대에는 "동북항일연군"이 가장 큰 항일세력이었고, 일반적으로 이 시대 만주 독립군이라 하면 이 동북항일연군 내의 조선인 운동가를 가리키며 김일성부대도 그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이 동북항일연군 휘하 부대들은 1940년대 들어 일본군의 토벌에 의해 1942년까지는 만주 일대에서 모두 자취를 감추고 남아 있는 세력은 소련으로 넘어간 상태였다 (김일성이 소련으로 도피한 시기도 이 시대이다).
따라서 백선엽이 간도특설대에 배속된 1943년 2월에는 이미 만주일대에 "독립군"이 사실상 궤멸한 상태였다는 말이다.
백선엽이 과연 만주에서 "독립군과 조우"를 할수 있었을까?
현재까지 밝혀진 당시의 기록들을 보면 백선엽이 간도특설대 소속으로 있던 당시 "만주독립군"을 만났을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고 본다.
백선엽의 친일행적을 지적하는 쪽에서도 그가 간도특설대에 배속된 후 만주독립군 누구와 조우했고 어느 부대와 싸웠다는 것인지 분명하게 기록하지 못하는 경우를 보는데, 필자의 생각으로 바로 이 문제 때문이다.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쓰지 못하는 것이다.
백선엽이 해방전 독립운동에 대해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아갔던 것과 그가 배속된 간도특설대가 원래 독립군과 싸우던 조직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데, 이것이 곧 정황상 백선엽이 만주 독립군 잡으러 다녔다는 말과 완전한 동의어는 아니라는 말이다.
*** Editor's Note ***
저에 대한 본인 증언도 중요한데, 아래 조선일보 생전 인터뷰에 아래와 같은 구절이 발견된다.
백선엽 "軍 간부들 정신 바짝 차려야"
6·25전쟁 발발 69주년 인터뷰
유용원 군사전문기자
입력 2019.06.24. 01:30
백 장군은 최근 친여 성향 인사들이 장악한 단체 등에서 '백선엽이 일제시대 항일 독립군 토벌에 나섰던 간도특설대에 복무했다'고 주장하는 것과 관련해 "독립군과 전투 행위를 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했다. 백 장군은 "내가 간도특설대로 발령받아 부임해 간 1943년 초 간도 지역은 항일 독립군도, 김일성 부대도 1930년대 일본군의 대대적인 토벌 작전에 밀려 모두 다른 지역으로 옮겨 가고 없을 때였다"고 했다. 간도특설대는 폭파, 소부대 행동, 잠입 등을 주 임무로 했던 일본군 특수부대였다.
백 장군은 1993년 일본어판 자서전에서 간도특설대 근무 시절 조선인 항일 독립군과의 전투가 있었던 것처럼 기술한 데 대해선 "1930년대 간도특설대 초기의 피할 수 없었던 동족 간의 전투와 희생 사례에 대해 같은 조선인으로서의 가슴 아픈 소회를 밝혔던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 Editor's Notes ***
석연치 아니한 근거에 기초한 그의 친일파 규정은 결국 윤석열 정부 들어 그의 현충원 안장 기록에 오른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문구를 국가보훈부가 2023년 7월 24일 오늘 공식 삭제하는 일로 발전한다. 물론 그에 대해 광복회 등의 반발이 없지는 않다.
***
아무리 생각해도 분통이 터져 나도 하나 붙인다.
백선엽 박정희는 친일파고 나발이고 먹고 살아야 했다. 그 시절 먹고 살고자 부림한 일이 훗날 친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저 몸부림을 존중해야 한다. 왜?
내 아버지가 저들과 꼭 동년배라, 그 몸부림이 없었던들 오늘의 내가 있겠으며, 그 몸부림이 없었으면,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겠는가? 그들의 행동거지에 지탄을 받을 여지는 있을지언정, 나는 몸서리치는 선친의 고난한 삶을 봤기에 지금의 우리가 한가롭게 책상머리에 앉아 그들을 재단한단 말인가?
당신들은 당신들 몫이 따로 있다. 나는 그 몫을 존중하고 싶다.
왜?
아버지가 불쌍해 죽겠다. 그 지난한 삶을 떠올리면 억장이 무너진다. 그런 억장 무너지는 삶을 선친 같은 이는 담배 장사하며 연명했고 저들은 군인 되어 타개하고자 했을 뿐이다.
왜 그들의 선택을 우리가 비난한단 말인가? (2023.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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