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야 청승 맞은 홀로여행을 선호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친구들이랑 어울리는 여행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나이들어가면서는, 특히 아무래도 여러 모로 생소랑 씨름해야 하는 해외여행은 되도록이면 친구랑 함께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은 점점 더 굳어진다.
친구, 말 참 좋지만, 때론 거추장스럽기도 하고, 이 거추장스럼이 원수관계로 발전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말동무는 있어야 한다.
홀로감행에 나선 이번 여행에서도 내내 함께할 친구가 있었더래면 좋았겠다는 생각은 한다.
애초 퇴직을 암시하면서, 연말에는 유럽 쪽 행차를 할 것이라 하면서, 나는 이 여행에 김충배를 동반하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까발린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 자신이 재계약 파동을 둘러싼 여러 곤혹을 토로했으므로, 이젠 비밀이 아니니 상기하자면, 김충배는 애초 3+2년 계약조건으로 LH를 떠나 국립고궁박물관 전시홍보과장으로 전직했지만, 저 플러스 2년을 둘러싼 논란 끝에 결국 재계약을 아니하는 것으로 결론났으니, 저 과정에서 그가 얼마나 큰 심적 고통을 겪었는지 모른다.
그걸 지켜보면서, 저 자리를 추천한 사람은 얼마나 더 안타까웠겠는가?
그에다가 마침 나까지 덩달아 퇴직 문제에 휘말렸으니, 여러 번 이야기했듯이 어차피 내년 상반기에는 끝내기로 한 그 시점이 여러 회사 사정이 안 좋게 휘말리면서 퇴직 시점이 당겨지는 바람에 공교롭게도 한달 터울로 같이 퇴직하고서는 같은 백수가 되고 말았다.
내가 조금은 이른 퇴직을 결심한 이유는 훗날 말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회사 사정과는 별개하는 환멸이 있었다. 그 환멸이 더는 회사 생활을 지속할 이유를 상실케 했거니와, 그 시점이 공교롭게 충배 퇴직이랑 맞물려 돌아가고 말았다.
우스갯소리로 나는 자발백수요, 충배는 강요백수라 하지만, 이게 좀 차이가 커서, 준비된 사람은 급하지는 않다.
나름 좀 여유가 있는 측면도 있고, 또 퇴직을 염두에 두고 미리 준비한 것도 있고, 그것이 우여곡절은 없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반타작 혹은 성공작이라 할 만한 성과를 냈으므로 편하게 지금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반면 충배는 그러지를 못해 준비한 퇴직이 아니었기에 여러 모로 마음이 심란하기 짝이 없었고, 그렇기에 조직생활에 준하는 그것을 벌충하기 위해 동분서주해야 했다.
간단히 말해 나에 견주어 충배는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같이 떠날 수는 도저히 없어 너는 돈 벌어라 응아는 놀다 오겠다 빠이빠이 하고는 떠났다.
이게 지금도 못내 미안하기 짝이 없다.
혼자서 낑낑 대며 돌아다니며 이런 좋은 데는 충배도 같이 보면 좋았겠다는 생각은 내내 했다. 그래서 더 미안했다.
강요된 백수는 아마 어제도 한 탕을 뛴 모양이라, 앵벌이한다고 여념이 없다.
그게 다 좋은 날을 위한 시금이라 생각해줬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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