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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철의 잡동산이雜同散異

행단杏壇 : 살구나무를 뽑은 은행나무

by 한량 taeshik.kim 2020. 9. 26.

김태식 선생이 실시간 방송에서 과장해서 이야기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참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대로 쓰려면 일 주일쯤은 자료를 정리해야 할 듯합니다. 조선에서 행단의 행이라는 나무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만 간단히 보겠습니다.


겸재 정선의 행단..은행나무다.



《성종실록》 11년 경자 10월 14일에 성종은 12폭 그림을 내어 보이며 시를 잘 짓는 문신들에게 1편씩 지어 올리게 하였는데, 이때 어세겸(魚世謙, 1430~1500)은 제10폭 《증점(曾點)이 비파를 타는 그림[曾點鼓瑟圖]》을 시로 읊기를,

“제자들이 공자님을 조용히 모시는데, 행단의 봄빛이 꽃가지에 스몄어라.[弟從容侍坐遲, 杏壇春色透花枝。]”

라고 하였다. 시 내용으로 보아 행단의 행이 살구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혼란이 발생하게 되는데, 바로 성균관 뜰에 은행을 심고 행단의 뜻을 살렸다고 한 것이다.

《국조보감(國朝寶鑑))》 권20 〈중종조(中宗朝) 14년 기묘)〉에 “윤탁(尹倬, 1472~1534)을 동지성균관사로 삼았다. 윤탁은 처음에 주계군(朱溪君)으로부터 배웠으며, 연산 갑자년에 유배되었다. 상이 즉위한 이후에 직강으로부터 대사성에까지 이르러 오랫동안 교육하는 직임을 전담하였으니, 송인수(宋麟壽)와 이황(李滉)이 모두 그가 가르친 사람이다. 일찍이 성균관 뜰에 문행(文杏 : 은행) 두 그루를 마주 보게 심어 놓고서 배우는 자들을 경계하기를, ‘뿌리가 깊으면 가지와 잎이 반드시 무성하게 된다.’ 하였다.”

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문행이라고 하였으니 분명 은행이고, 지금 성균관의 그 은행나무라고 한다. 윤탁이 어째서 은행을 택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행(杏)의 의미를 살린 뜻이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렇게 행단의 행이 살구나무에 은행나무까지 추가되자 많은 이들이 혼란하기 시작했던 듯하다.

이수광(李睟光, 1563~1628)은 《지봉유설(芝峯類說)》 권6 〈경서부(經書部)2 제자(諸子)〉에서,
“공자께서 행단 위에 앉으셨으니 《사문유취(事文類聚)》를 살펴보면 홍행(紅杏)이라고 하였으니 반드시 근거한 바가 있을 것이다. 강희맹(姜希孟, 1424~1483)의 시에 “단 위의 살구꽃은 붉게 피어 반은 떨어지고[壇上杏花紅半落]”라고 하였으니 (홍행은) 이것이다. 어떤 이는 은행이라고 의심하는데 잘못이다. [孔子坐杏壇之上。按事文類聚以爲紅杏。必有所據。姜希孟詩。壇上杏花紅半落是也。或者疑爲銀杏非也。]

라고 하여 행을 은행으로 본 것은 잘못이라고 하였다.

임란 이후에도 행단의 행이 살구나무라는 생각에는 큰 변화가 없었던 듯하다.

계곡 장유(張維, 1587~1638)는 《계곡집(谿谷集) 권2에 수록된 〈(삼화찬(三畫贊)〉에서, 《행단금슬(杏壇琴瑟)》 그림을 시로 읊기를,

봄바람 불고 해맑은 날씨, 살구꽃 뜰에 가득한데, 제자는 줄 퉁기고, 선생은 가만히 듣고 있나니[條風淑景 杏花滿庭 弟子拊絃 先生默聽]“

라고 하였으니, 행단의 행(杏)은 뜰에 꽃을 가득 피운 살구나무였다.

그러나 이후 미수 허목(許穆, 1595~1682)은 《기언(奇言)》 권24 〈전원거(田園居) 석록초목지(石鹿草木誌)〉에서

“운은행(雲銀杏) : 백과(白果)라고도 하고, 또 압각(鴨脚)이라고도 하는데, 잎 모양이 오리발을 닮았기 때문이다. 공자(孔子)의 묘단(墓壇)에 이 나무가 있으므로 그곳을 행단(杏壇)이라 한다. 오래 사는 나무다. [雲銀杏。一曰白果。又曰鴨脚。葉類之也。魯夫子壇。有此樹。謂之杏壇。壽木。]”

라고 하여 행단의 행을 은행나무라고 못을 박았다.

이후 성호 이익, 다산 정약용 등은 모두 허목의 주장을 그대로 따랐다. 지방의 향교와 서원 역시 성균관을 답습하여 은행나무를 심게 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보면 일부 군현의 향교에 살구나무를 심었다고 볼 시문들이 실려 있으니, 행단에 꽃이 붉었다는 구절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 이규경(李圭景, 1788~1856)의 《오주연문장전산고》 〈행단변증설(杏壇辨證說)〉에 고스란히 반영되었으니,

“{행단의} 행(杏)은 살구[桃杏]의 행이 아니라 이는 바로 문행(文杏 : 은행)의 행이다. 민간에서 부르는 이름은 은행(銀杏), 압각수(鴨脚樹)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문묘 뒤와 명륜당(明倫堂) 앞뜰에 빙 둘러 문행을 심고 마찬가지로 행단이라고 부른다. [杏非桃杏之杏。乃是文杏之杏。俗名銀杏、鴨脚樹也。我東聖廟後明倫堂前庭。環植文杏。亦稱杏壇云爾。]”

이때에는 은행나무가 살구나무를 완전히 뽑아내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첨부 사진은 겸재 정선의 행단고슬(杏壇鼓瑟 : 누가봐도 겸재는 은행나무를 그렸습니다. 중국의 그림은 살구나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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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연건거사 2020.09.27 12:56

    우리나라 예송이나 가례하고 비슷한 구조인듯.

    그 누구도 본적이 없으니 문헌만 상고하여 복원하는...

    子曰夏禮 吾能言之 杞不足徵也 殷禮 吾能言之 宋不足徵也 文獻不足故也 足則吾能徵之矣
    답글

  • 연건거사 2020.09.27 13:01

    중국에서 와서 예의 문제를 이야기해도 조선 유학자들이 귓등으로도 안들었던거 보면,

    아마 중국에서 곡부를 직접 다녀온사람이 그거 살구나무라고 해도 조선유학자들은 안들었을 가능성 백프로입니다.

    조선에서 볼때 그게 살구나무인지 은행나무인지 중국은 어찌 아나?

    라고 하며 오직 문헌에 의지하여 옛것을 복원할 뿐이라 갈파했을터이니..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