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무령왕릉55 무령왕릉 베개와 주목朱木 목재조직학이 문화재 혹은 고고학 분야에서도 요긴한 역할을 하기 시작했으니, 무령왕릉에서는 무엇보다 금송金松과 주목朱木이 중요하다. 금송과 관련해 무령왕과 그 왕비 목관을 이 나무로 짰음이 판명되었으니, 무엇보다 이 금송은 한반도에는 자생하지 않는 품종이라는 점에서 그것이 드러난 사실은 굉장한 의미를 지닌 사건이었다. 주목은 크게 주목받지는 아니했지만, 무령왕과 왕비 베개받침대가 있으니, 목재조직학은 저 제작에 쓰인 목재가 주목임을 밝혀낸 것이다. 이 주목은 요새는 조경수로 널리 발견되거니와, 자연상태에서는 한반도에서 고산지대에 군락을 이루며 자생한다. 내가 졸저 《직설 무령왕릉》(메디치미디어, 2016)을 준비하면서, 저 얘기를 다루며 하나 고민이 있었으니, 그런대로 폼나는 주목 사진이 나로서는 없었다는.. 2019. 9. 22. 해직이 준 축복 《직설 무령왕릉》 애초 2001년 완성한 무령왕릉 발굴기 출판사 교정본이다. 가제는 《송산리의 밤》이었다. 하지만 어찌된 셈인지, 내가 차일피일 밍기적 대다가 해를 넘겨 이듬해 출간하고자 했지만, 사산死産하고 말았다. 당시 나는 《풍납토성》(김영사, 2000)을 내고, 곧이어 《화랑세기 또 하나의 신라》(김영사, 2001)를 출간한 직후였다. 서른 중반, 참으로 혈기방장하던 시절이었다. 원고 자판기에 가까워 내가 생각한 주제는 쑥쑥 원고를 떡가래 뽑듯 폭포수처럼 쏟아낸 시절이다. 언제건 맘만 먹으면 내겠지 한 그 초고, 오랫동안 사장한 상태로 방치한 그 초고를 2015년 11월 무렵에 다시 꺼내들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교정지가 그때까지 내 서재 한쪽 귀퉁이에 쳐박혀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을 찾아내서는 먼지를 털어.. 2019. 8. 21. 무령왕릉에 관련된 인물들 1. 윤주영...당시 문화공보부 장관이었다. 무령왕릉 발굴이 30주년을 맞은 2001년, 나는 그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무령왕릉 발굴 당시 주무 장관이셨는데, 혹 당신이 무령왕릉 발굴을 지시하셨냐 라는 등등을 물었다고 기억한다. 예상대로 그는 이 발굴과 관련한 의미심장한 증언은 하지 못했다.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당시 그는 조선일보 무슨 고문인가로 있었다. 1928년생, 만 91세인 그는 요즘도 모임 같은 데 간혹 모습을 드러낸다고 한다. 2. 김원룡...당시 국립박물관장이었다. 느닷없는 발굴책임자로 낙점되어 한국고고학, 아니 세계 고고학 사상 유례없는 오점을 남겼다. 이하 생략 3. 안승주...무령왕릉 발굴 당시 당장 무령왕릉을 발굴해야 한다고 주창한 공주 지역 역사학계 주축 중 한 명이다. 나중인.. 2019. 6. 9. 죽을 때까지 한국어판은 안내고 냉큼 일본어판 《무령왕릉》을 낸 한국고고학도 한국 고고학자가 자신이 관여한 한국 고고학 발굴성과를 일본어판으로 냈다 해서 그걸로 그가 비난받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발굴책임자로써, 더구나 그 보고서 집필을 총괄한 자로써, 한국어판은 죽을 때까지 내지도 않으면서, 냉큼 일본어판 단행본을 발간한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 책 발간은 소화 54년은 1979년이다. 출판사는 근등출판사近藤出版社다. 더구나 이 사람은 《조선고적도보》 증보판도 집필했다. 《조선고적도보》 가 뭔가? 조선총독부가 기획하고 결과한 사업이다. 제국주의 일본이 망하고서 한참이나 지난 시기에, 그 증보판을 더구나 한국 고고학도가 집필했다는 것이 어디 제정신인가? 그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 대일본제국 신민이었다. 누구인가? 삼불三佛이라는 호를 쓴 김원룡金元龍이란 사람이다. 자신은 .. 2019. 5. 21. 그땐 다 그랬다 vs. 김원룡만 그랬다 세계 고고학상 유례없는 졸속발굴의 대표본 무령왕릉 발굴조사를 옹호하거나 혹은 동정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이리 말한다. 그때는 다 그랬다. 그게 우리의 수준이었다. 고 말이다. 이 유례없는 도발굴 총감독 김원룡은 내 머리가 돌았다느니 환장했다 하면서 그나마 이 졸속발굴이 곧이어 전개된 경주 발굴에서는 교훈으로 작동했다고 자위한 바 있다. 앞 사진은 황남대총 남분 발굴 현장이다. 아마 1974년 무렵일 것이요 무령왕릉 도굴로부터는 불과 3년이 지난 뒤다. 그때는 다 그러했는가? 그게 우리 수준이었는가? 얼토당토 않은 소리다. 김원룡만 그러했고 김원룡만 그런 수준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삼불은 고고학도, 발굴도 모르는 까막눈이었다. 김원룡의 수준을 일반화할 수는 없다. 봐라..동시기에 일어난 발굴인데 천마총.. 2019. 5. 19. Relics from Tomb of King Muryeong In 1971, the tomb of King Muryong of the Baekje Kingdom was discovered and excavated at Gongju, Chungcheongnam-do Province. From this tomb, a great number of artifacts were unearthed. The excavation revealed that the tomb was buried with King Mureung, the 25th king of Baekje along with his queen. The two coffins in the picture are of kings and queens, respectively. On the way to the tomb from ou.. 2019. 5. 2. 이전 1 ··· 4 5 6 7 8 9 10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