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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54

《직설 무령왕릉》 출간에 즈음하던 감회 나는 무령왕릉을 건지고 싶었다. 무엇보다 발굴당사자들만이 발굴의 '진실'을 독점하는 시스템에서 건지고 싶었다. 무령왕릉의 독법이 어찌 모름지기 '회고'를 통해야만 하리오? (2016. 4. 23) *** 해직기간인 저때 나는 난생 처음 주어진 장기휴가 첫 과업으로 무령왕릉 레토릭을 분석한 책 《직설 무령왕릉》을 내는 일로 무료를 달래며 마침내 책 표지도안까지 나온 저날 저리 적었다. 저 장대한 꿈이 얼마나 달성되었는지는 나는 모른다. 내깐에야 이런 책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다 우쭐댔지만 그야 독자의 몫 아니겠는가? 그러고 보니 계약기간이 끝나는 듯 하다. 어찌할지는 좀 두고 봐야겠다. 2021. 4. 23.
보쿠와 열라리나 바까야로데싯따 1971년 7월, 발견 개봉 당시 무령왕릉 대강 유물배치 양상이다. 대강이라 하는 까닭은 정확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하도 개판으로 발굴해서다. 다만 한 가지만큼은 적어도 위치관계 배치양상은 확실한데 무덤길 입구 진묘수랑 그 바로 앞쪽 묘권墓券 두 장 배치관계도다. 묘권 두 장은 무덤 안쪽에 있는 사람 기준으로 텍스트 방향을 설정했다. 다시 말해 저 문건은 무덤 주인공인 무령왕릉 부부가 화자話者이자 발신자다. 이 점 잊어서는 안된다. 이 무령왕령은 정확히는 부부능이다. 왕이 먼저 죽어 묻혔고 왕비는 나중에 죽어 추가됐다. 이것이 왕이 죽었을 때 묘권 배치 양상이다. 역시 묘권은 철저히 왕 중심이다. 왜 두 사람은 머리를 남쪽에 두었고 부부 위치는 바뀌었는가. 이것이 나로선 체증이었다. 이걸 해결한.. 2021. 3. 26.
무령왕은 방구대장 뿡뿡 덧붙여 무령왕은 안젤리나 졸리다. 저 엉덩이 봐라! 고로 결론한다. 백제 무령왕은 방구대장 뿡뿡 안젤리나 졸리다! 새복에 일나서인가? 졸리다. 2021. 3. 25.
동탁은잔銅托銀盞에서 묻는 고고미술사의 본령 무엇이 고고미술사인가? 무령왕릉 출토 이 동탁은잔銅托銀盞을 보고 그림 그리고 그 계통과 연원과 문양을 분석하는 게 고고미술사인가? 유감스럽게도 한국고고미술사 지난 백년이 그러했다. 남들한테 다 물어봐라. 뭐가 궁금하냐고. 백명이 다 무엇에 쓰는 물건이고를 묻는다. 고고미술사가 이게 아닌가? 맨 껍데기 타령 일삼으며 주조법이 어떻니 하는 따위가 고고미술사인가? 그건 개돼지도 시키면 삼년이면 하는 디스크립티브에 지나지 않는다. 잘 만든 거 누가 몰라? 아름다운 거 누가 몰라? 아름다움을 윽박지르지 말지어다. (2016. 3. 22) *** 동탁은잔銅托銀盞이란 받침대는 구리로 만들고, 그 받침이 받침하는 몸통인 잔은 은으로 제조한 그릇을 말한다. 이 동탁은잔은 그에 새긴 문양이 세밀하며, 덧붙여 그 제조기법이.. 2021. 3. 23.
그땐 다 그렇게 발굴? 김원룡만 그랬다 무령왕릉이 발견되고 발굴된지 올해가 딱 오십주년이라 서서히 이에 즈음한 펌프질이 시작한다. 그에 맞추어 언론 역시 다양한 관련 기사를 포장 제공하기 시작한다. 무령왕릉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대목이 사상 유례없는 졸속발굴이라는 점이니 이에 대한 지적이 관련 언론보도에서도 빠지지 않거니와, 그러면서 매양 그를 나름 옹호하는 말이 그땐 우리 고고학 수준이 다 그래서 라는 말이다. 거짓말이다. 그때 한국고고학이 지금과 비교해서 형편없을지는 몰라도 그때도 어느 누구도 저리 발굴하지 않았다. 오직 김원룡만 그리 발굴하고 그걸 발굴이라 불렀을 뿐이다. 요새 기준으로 김원룡은 무허가 고고학도였다. 실제 발굴경험도 거의 없고 조사원 자격기준으로 보면 조사보조원이었다. 간단히 말해 고고학을 몰랐다. 그때 한국고고학이 그.. 2021. 2. 25.
대중고고학 문을 연 무령왕릉 고고학과 문화재를 관광과 착목한 경주관광개발계획 전주곡은 무령왕릉 발견 발굴이었다. 무령왕릉 발굴은 대히트였다. 하지만 놓친 게 있었다. 대중매체, 특히나 발굴과정을 생생히 담은 영상을 촬영하지 못했다. 이 점이 두고두고 정권에는 한이 됐다. 무령왕릉 발굴단장 김원룡이 당시 문화부 장관 윤주영한테 불려가서 쿠사리 찐밥을 먹었다. 테레비 왜 안 불렀느냐? 이걸 이해해야만 이듬해 닻을 올린 경주관광개발계획을 이해한다. 무령왕릉 실패를 거울삼아 천마총 황남대총 발굴은 티비가 동원됐다. 그 발굴소식은 대한뉘우스를 타고 전국으로 전파됐다. 오늘 신라문화동인회 내 발표 중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2015. 10. 11) *** 이런 반성은 무령왕릉 발굴 직후 박정희 정부가 의욕으로 추진한 경주관광개발계획과 그 일.. 2020.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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