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삼국지13

삼국지三國志와 배송지裴松之, 위략魏略의 착시錯視 삼국지 이전의 사서는 사기와 한서일텐데, 사기와 한서에는 조선전만 있을 뿐 동이전은 없다. 중원의 지리적 인식이 한반도 북부에 머물러 있었던 탓일 것이다. 그 다음 후한서가 있지만 주지하는바와 같이 후한서는 성립연대가 늦어 한서의 다음 타순은 삼국지이다. 삼국지는 진수가 저술했는데 그의 생몰연대는 233년 ~ 297년이다. 대략 삼국시대에서 서진 시대에 걸친 인물로서 삼국지도 그의 생애 후반 어느 시점에 저술되었을 것이다. 이 삼국지에서 최초의 동이전이 입전된다. 중국사의 지리적 인식이 한반도 북부를 넘어 한반도 남부와 일본열도까지 전개되는 순간이라 할수 있다. 삼국지 동이전에는 한반도 관련 기사가 많이 나오는데 이 진수의 삼국지에 주를 붙여 놓은것이 배송지이다. 삼국지 원문에 붙여 놓은 배송지의 주를 .. 2022. 6. 23.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이 본 말과 소 두 번째 삼국지 위지 동이전 이야기는 말과 소 이야기다. 한반도 남부지역과 일본[倭]에 대해서는 말에 관해 이렇게 적혀 있다. 마한: 不知乘牛馬, 牛馬盡於送死 (말과 소 "타는 법을 모른다" 소와 말은 모두 제사지내는 데 써버린다.) 진한: 乘駕牛馬 (말과소를 "타거나" "수레를 끌게 한다") 왜: 其地無牛馬虎豹羊鵲 (그 땅에는 소와 말, 호랑이와 표범, 양과 까치가 없다). 이 세 지역은 말과 소에 대해 각각 다르게 적혔다. 우선 마한 지역에는 말은 있지만 타지 않는다. 말과 소는 모두 제사용으로 쓴다. 진한은 말을 타거나 수레를 끌게 한다. 왜는 말과 소가 없다. 내가 아는 한 이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기술된 상황은 3세기 경 한반도 남부와 왜의 상황을 정확히 묘사한다고 본다. 이러한 상황이 바뀌게 .. 2022. 4. 26.
정확하기 짝이 없는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 (1) 일본의 고전 "헤이케모노가타리=平家物語"를 읽다보면, 일본의 전통 활에 대해 나온다. 잘 알다시피 일본의 활은 목궁이다. 한국의 대륙계 활과는 모양이 많이 다르다. 이 활을 들고 고려시대 여몽연합군과 맞서 싸우기도 했던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의 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兵用矛·楯·木弓. 木弓短下長上 "목궁은 아래가 짧고 위가 길다 (木弓短下長上)".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언뜻 이해가 안가는 이 구절은 헤이케모노가타리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헤이케모노가타리는 12세기 말 다이라씨와 미나모토씨 사이의 전쟁을 그린 서사문학으로 이 안에는 당시 일본무사들의 활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일본활은 그 길이가 너무 길어 위 조각상에서 보듯이 가운데를 잡는 것이 아니라 아래쪽에 더 .. 2022. 4. 25.
《삼국지三國志》 한전韓傳과 《후한서後漢書》 한전韓傳 두 사서 한전韓傳에 대한 압도적 이해는 A다. 다시 말해 범엽范曄(398~ 445)이 《후한서後漢書》 한전韓傳을 지으면서 그 前 시대에 나온 진수陳壽(233~297)의 《삼국지三國志》 한전을 축약하고, 나아가 그러면서 《후한서後漢書》인 까닭에 후한 이후 삼국시대 이래 관련 기록은 삭제했다고 주장한다. 그런 까닭에 《후한서後漢書》 한전은 단순 축약 발췌본이라 해서 거의 주목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상은 딴판이라 내가 아무리 따져봐도 B다. 시건방지기가 김태식 열배는 더한 범엽에겐 진수는 안중에도 없었다. 자존심 강한 범엽은 시종 타도 반고를 외쳤으며, 그를 제끼고 사마천과 어깨를 겨루고자 했다. 진수 삼국지는 역사서 자체로도 그렇고, 문장으로 봐도 어린애 장난 같다. 하도 날림으로 써서 같은 삼국지 내에서 .. 2020. 10. 17.
於是天下遂三分矣..삼국 분립 《후한서後漢書》 효헌제기孝獻帝紀 다음 구절..... 明年,劉備稱帝于蜀,孫權亦自王於吳,於是天下遂三分矣。 이듬해에 유비가 촉에서 제帝라고 칭하고 손권 역시 오에서 스스로 왕王이라 칭하니 이로써 천하는 마침내 세 갈래가 되었다. 이로써 위魏 촉蜀 오吳가 쟁패하는 삼국三國시대가 펼쳐진다. 조조가 죽자 그 작위 위왕魏王을 세습한 그 장자 조비曹丕가 허울뿐인 후한 황제 헌제獻帝한테서 양위하는 형태로 천자에 올라 魏 왕조를 개창하니 이때가 서기 220년이라, 그 이듬해 4월 성도에 거점을 둔 유비劉備 역시 국호를 한漢이라 하고 칭제稱帝하며, 남쪽 손권孫權까지 자칭 왕이라 하니 이로써 천하 삼분 시대가 개막한다. 이 문자...너무나 간결하고, 너무나 함축적이다. 그래서 나는 이 구절을 천하의 명문이라 꼽는다. 2020. 5. 15.
조조고릉(曹操高陵) Cao Cao Mausoleum 안양고릉(安阳高陵) 혹은 위고릉(魏高陵) 혹은 서고혈2호묘(西高穴2号墓)라고 하며, 동한(东汉) 말년(末年) 위왕(魏王) 조조(曹操·Cao Cao·155~220 CE)의 능묘다. 고릉(高陵)이란, 위 무제 조조가 죽어 묻힌 무덤을 말한다. 曹操陵墓 소재지는 지난 2천년간 미궁이었다가 2009年 12月 27日 하남성문물국(河南省文物局)이 안양시(安阳市) 안양현(安阳县) 안풍향(安丰乡) 서고혈촌(西高穴村) 일대라고 확정 공포하고, 그에 따라 중국국가문물국(中國国家文物局)을 통해 조조묘임이 굳어졌다. 2010年 2月 4日, 조조 고릉은 하남성 제5차 비준 문물보호단위(文物保护单位)가 되었다. 후한 왕조 권력을 장악한 曹操는 후한 제14대이자 마지막 황제인 헌제(獻帝) 유협(劉協)한테서 건안(建安) 21년(21.. 2018. 3. 28.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