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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루는 똥구멍 숫자도 중요하다 시루 똥꾸멍 숫자 변화로도 사상 변화를 감지한다. 어느 시대까지는 똥꾸멍 숫자에 법칙성이 없어 지 맘대로 뚫는다. 그러다가 어느 시기 이후엔 정합성이 있다. 음양오행설은 시루 똥꾸멍에서 탄생했다. (2016. 2. 3) *** 시루 똥구멍 숫자에 어느 시기부터 정합성이 생기는 거 아는가? 내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 고고학도들은 앞으로 살펴 보기 바란다. 어느 시기에 시루 똥구멍에 혁명이 일어난다.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시루는 똥구멍이 중요하니 박물관 종사자들은 유념해서 전시해 주었으면 한다. 서울대박물관만 해도 십년 전엔 저리 전시했다가 권오씨 집권기에 와서 똥구멍을 감춰 버렸다. 권오가 닭대가리 계수호에 정신이 팔려 k컬처 선두주자인 시루를 등한히 한 까닭이다. 2024. 2. 4.
사무라이 블루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1870년 당시 호적조사에 의하면 일본 전체 인구의 3.6% 정도가 사족, 다시 말해 좀 폼잡을 수 있는 사무라이 계급이고, 2.7% 정도가 졸족卒族, 다시 말해 아시가루 같은 최하급 무사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시가루까지 포함해서도 전 인구의 6프로 조금 넘는 정도만이 사족이나 졸족이 되고 나머지는 거의 모두 농민이었던 셈이다. 당신이 일본에 가서 만나는 사람 100명 중 94명은 농민의 후손이고, 그 중 6명이 사족, 그리고 그 여섯 명 중에 또 절반인 3명은 아시가루이니 엄밀히 이야기 하면 사족이라 부르기도 뭣한 계급이었던 셈이다. 근대 일본에서 사무라이 정신 어쩌고하는 것은 그러니까 웃기는 이야기인 것이다. 일본도 "농민정신"이 맞다. 그러니 일본 축구대표팀을 "사무라.. 2024. 2. 4.
바닥부터 재상으로 수직 상승한 왕자지王字之 이름 듣고는 대뜸 대물열전 등판 인물 아닌가 하겠지만, 또 그 후속타를 기대한 사람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아니다. 고려 중기 때 인물이다. 그는 이미 궁예 정권 시절 경사經史에 통달했다 해서 출사해 원외랑員外郞을 거쳐 동궁기실東宮記室까지 이르렀지만 궁예가 포악하게 변하자 머리 깎고 중이 되었다가 훗날 세상이 격변하고 왕건이 쿠데타로 고려를 건국하자 다시 나와 국가 기밀을 관장하게 된 박유朴儒라는 사람 현손이다. 박씨 집안 직계 후손임에도 왕씨 성을 쓴 까닭은 이미 저 박유가 하도 고려 왕조가 자리 잡는 데 공이 크다 해서 그 할아버지 박유한테 아예 왕실 성인 왕씨를 하사해 왕유王儒로 창씨개명한 데 따른다. 고려사 왕유 열전에 부기된 왕자지王字之 열전에 의하면 그는 자字가 원장元長이고, 어릴 적 이름은 소중紹.. 2024. 2. 3.
부여 능산리고분군 조사 기록화사업 보고서 아래는 충남 부여군 2017년 7월 19일자 보도자료다. 해직 당시인 저 무렵 나는 저 전 5권짜리 단행본 시리즈 중 부여 능산리 고분·사지: 지난 100년의 일기 라는 항목 집필자로 참여했다. 아래 보도자료에서 말하는 △ 5권-능산리고분군과 능산리사지 조사·정비에 관한 취재기록 및 에피소드 가 그것이다. 나 역시 하도 저 자료를 구하기 힘들어 내 기억 환기 차원에서 전재해 둔다. **************** 「부여 능산리고분군 조사 기록화사업 보고서」발간 작성일 2017-07-19 10:27:40 부여군은 사적 제14호 부여 능산리고분군 관련기록을 종합 정리한 「부여 능산리고분군 조사 기록화사업 보고서」를 발간했다. 부여 능산리고분군은 백제 사비기를 대표하는 왕릉군으로 1915년 이래 여러 차례 조사.. 2024. 2. 3.
[해외답사모집] 세계문명탐방 그리스 안녕하세요. 작년에 이집트 탐방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2024년에는 그리스를 향해 떠나려 합니다. 일정은 4월 18일부터 28일까지 확정입니다. 서양문명사를 이해하는데 있어 그리스로마신화와 성경은 필수죠. 그 두 가지 키워드를 가장 핵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곳. 바로 그리스입니다. 최고의 코스를 준비했습니다. 제가 답사를 준비하다가 갑자기 이직을 하는 바람에 다소 늦었지만 그 사이 근동지방 답사 전문 여행사에서 착실히 모든 준비를 진행하고 있더군요. 저와 같이 그리스문명 탐방에 나설분은 아래 연락처로 메세지 주시기 바랍니다. 딱 10자리 남았습니다. *** 내 친구 춘배 호소문이다. 2024. 2. 3.
동양사에서 귀족제사회의 개념 동양사에서 귀족제사회란 한국사 안에서 귀납적으로 도출된 개념이 아니다. 정확히는 중국사, 그리고 일본사에서 도출된 개념이다. 중국사의 경우 귀족제 사회란 결국 과거제에 기반한 사대부-관료제 사회의 성립 이전, 구체적으로는 당대 이전 사회를 말한다. 당대에 과거제가 작동하기 시작하여 비로소 귀족제사회에서 탈피하여 송대가 되면 사대부 사회가 개화되는 것이다. 일본사에서는 귀족제란 다름 아닌 헤이안시대다. 귀족들이 모든 정치 군사적 권력을 독점하고 번영하다가 무가=사무라이들한테 타도되어 중세가 열린다. 고려시대를 귀족제 사회라고 보는 것은 이 시대를 중국사의 당대 이전, 일본사의 헤이안시대와 같다고 보는 시각이다. 그런데 고려시대에 어떻게 과거제가 식년제로 꼬박 꼬박 시행되고 급제자가 한두 명도 아니고 34명.. 2024. 2. 3.
고려시대 귀족제 설에 대해: 과거제의 관점에서 고려시대는 "귀족제"라고 보는 관점이 아직도 있다. 필자는 이에 대해 여러 번 이 블로그에서 이의를 제기한 바 있는데, 귀족제라고 보는 근거가 매우 박약하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귀족제로 보는 근거 중 가장 강력한 것이 아마도 음서제라고 생각하는데, 음서제가 어느 정도로 성행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고려사회에서 과거제에 의해 출사한 인물들이 어느정도로 정계를 장악하고 있었는가 이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본다. 고려시대는 조선시대처럼 식년제 과거로 34명의 급제자를 전 시대에 걸쳐 (무신집정시대의 일부시기를 제외하고) 꼬박 꼬박 배출하고 있었고, 과거제란 귀족제와 절대로 병립할 수 없다. 귀족제라는 것을 인정하려면, 필자 생각에는 이렇다. 과거제를 일체 무시한 출사자들이 정계의 정상부를 차지하고, 그 .. 2024. 2. 3.
[五九自述] 나는 책을 구걸하는 거지였다 보도자료를 전문 서비스하는 업체 여산통신이 언제 생겼는지 모르겠다. 이 회사의 등장과 그 역사가 바로 문화부 기자, 특히 그 중에서도 학술을 담당하는 내 인생에 일대 변모를 가져오게 된다. 무슨 말인가? 이 여산통신을 통해 나는 더 이상 신간新刊을 구걸하는 시대를 청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산통신이 제공하는 서비스 중에 바로 각 출판사의 신간 홍보 업무가 있다. 다시 말해, 새로운 책을 낸 출판사가 그것을 언론사를 통해 홍보하려 할 적에 여산통신 이전에는 일일이 출판사에서 주소를 써서 그것을 해당 언론사와 해당 기자에게 우편물로 발송했지만, 여산통신의 등장과 더불어 이것이 단일창구로 정리된 것이다. 아니, 그보다는 여산통신이 정착함에 따라 여산통신 자체에서 발언력을 높여 신간 배포처를 나름 독자적으로.. 2024. 2. 3.
뜯어먹다 남은 고려사 목종 이전 실록, 황주량의 고군분투 고려는 왕건 이래 사관을 두었으며, 각 왕대별로 실록을 편찬했다. 즉, 새로운 왕이 즉위하면 곧바로 전대 왕 실록 찬수에 착수해 왕대별 실록을 찬진해 나갔다. 하지만 고려사나 고려사절요를 통독하다 보면, 왕건 이래 제7대 목종穆宗(재위 997~1009)까지 기록은 빈한하기 짝이 없어 뜯어먹다 버린 다랑어 같다. 이리 된 까닭은 제2차 고려거란전쟁에 개경이 함락당하면서 궁궐이 불타버리고 전대 실록 역시 모조리 소실된 까닭이라, 그런 흔적이 너무나 뚜렷해서 목종 이전과 목종 이후 고려사는 질과 양 모두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전기가 빈약하기 짝이 없다. 목종시대까지 실록을 흔히 7대실록이라 이름하니, 고유명사가 아니라 그 전 시대 통사를 통칭하는 것이다. 실록을 편찬하려면 그를 위한 임시기구라 출범하는데,.. 2024. 2. 3.
열받은 김방경 1277년 모함을 받아 국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때 그를 모함한 이들과 대질신문을 하였는데, 상대가 거짓말을 늘어놓자... 김방경은 성품이 과묵하였는데 또 분노하게 되니 말할 수 없는 정도에 달한 듯하였다. - 김방경 열전 중에서 2024. 2. 3.
최충과 경쟁한 사설학원들, 모조리 재상이 재단이사장 한민족 특징 중 하나는 사돈이 땅을 사면 내 배가 아프다는 증상이라, 최충이 연 사립학교가 성공하자, 그 꼴을 딴 사람들이 보고둘 리 만무했다. 더구나 쪽집게 강사로 소문나서 떼돈까지 벌어가는 명문입시학원이라는데 그것을 어찌 눈뜨고 차마 볼 수 있겠는가? 각자 찌라시 만들어 돌리며 학생 유치에 혈안이었으니 그때라고 허위과장광고가 왜 없었겠는가? 그 찌라시엔 이런 구절이 빠지지 않았다. 과거 합격 백퍼 보장 앞서 소개한 고려사 권74 지志 권 제28 선거選擧2 학교學校 사학私學 편에는 최충과 경쟁한 다른 사립학원들이 소개되어 있다. 또 (최충 말고도) 유신儒臣으로서 도徒를 세운 이가 11명이었다. 고 하면서 그 명단을 나열하기를 1. 홍문공도弘文公徒 by 시중侍中 정배걸鄭倍傑, 일명 웅천도熊川徒. 이름으로.. 2024. 2. 3.
강남의 귤 강북의 탱자 양자강에서 한반도로 바로 쌀농사가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로 양자강에서 한반도를 거치지 않고 쌀농사가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 강남의 귤, 강북의 탱자라는 속담이 있다. 강남의 쌀농사가 한반도나 일본으로 바로 이식될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엔 힘든다. 강남의 쌀농사가 한반도나 일본으로 바로 이식되면 쭉정이가 많이 생길 것이 틀림없다. 평균기온과 일조량 때문이다. 복잡하게 떠들 것 없고. 한 번만 농사 지어보면 안다. 2024. 2. 3.
청동기시대 논농사를 재현해 봐야 한다 청동기시대 논농사를 딱 한 해만 해 보면 거기서 무슨 연구가 더 나와야 하는지 감이 올 것이다. 청동기시대 벼 종자는 지금보다 훨씬 아열대에 더 적응하고 이 땅에는 충분히 적응 못한 종자였을 것이다. 지금 우리땅에서 키우는 모든 벼 종자는 한국의 기후환경에서 오랜 세월 지내며 적응한 종자라는 뜻이다. 청동기시대 벼종자는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옛날 박통시대에 통일벼라고 있었다. 통일벼 단점 중에 항상 "냉해"가 있었다. 냉해라는게 뭔가? 추위에 약하다는 소리다. 왜 그랬을까? 통일벼라는 게 인디카와 자포니카 교배종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원래 여기서 키우던 벼들 보다 추위에 약한 것이다. 그것이 냉해다. 청동기시대 벼 농사 재현은 지금 고고학발굴로 어느 정도 알게 된 논자리에 남방의 볍씨, 예를 들어.. 2024. 2. 3.
다 알던 거라면 이 세상에 할 연구란 없다 어차피 다 알던 거라면 이 세상에 할 연구란 없다. 다 알던 거고 당연한 건데 뭐하러 연구를 하겠나. 지금 전 세계적으로 수십만 편 논문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 중에 99퍼센트 논문은 당연한 논문이다. 일제시대 인류학논문. 조선인들을 비하하러 썼다고 하지만 이 시대 논문은 제대로 분석된 적이 한 번도 없다. 막연히 그럴 것이라 생각하고 이야기하거나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들 하지만 당연히 그럴 것이라는 것이 어디있겠는가. 필자가 이 작업을 진행하고 어떤 결과가 나와도 이에 대해 다 알던 건데 뭐하러 하느냐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하나하나 바닥부터 훑어 다 알던 이야기를 확실히 이야기하는 것하고 다 안다고 이야기하지만 바닥으로 내려가 물어보면 모르는 게 천지인 것은 엄연히 다른 것 아니겠나. 2024. 2. 3.
예의염치禮義廉恥란? 본능에 대한 타박이며 분출에 대한 억압이요 나체에 대한 가식이다. (2016. 2. 3) *** 예의염치는 요컨대 억압이다. 무엇이에 대한 억압인가? 바로 저들에 대한 윽박이다. 억압없이 어찌 예의염치가 성립하겠는가? 2024. 2. 3.
쌍기가 일으키고 최섬이 붙인 혁명, 사설학원 난립시대를 낳다 중국 귀화인 쌍기 건의로 고려 광종 시대에 과거제가 개막할 때만 해도, 그것을 승인 추진한 광종과 그 실무를 밀어부친 쌍기조차도 이후 고려사회가 어찌 변할지 몰랐다. 그만큼 이 조치는 단군조선 이래 볼 수 없던 혁명이었다. 이른바 호족이라 일컬은 권문세가 자신들과 그 음덕으로 출사한 그 후손들이 관료들이 지배하던 사회가 급속도로 행정고시로 무장한 관료제 사회로 변화해갔기 때문이다. 이런 성공 신화 이면에는 그것이 배출한 사람들이 한결같이 영웅으로 추앙되기 시작한 시대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다. 그랬다. 구국영웅 서희는 비록 아버지 음덕이 크긴 했겠지만, 그는 황금방 출신으로 일찍 출사해 고속승진을 거듭하다 제1차 고려거란전쟁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성과를 냈고 강감찬은 비록 출사는 늦은 편인 것으로 보.. 2024. 2. 3.
단맛과 매운맛의 중독성 (1) 한국음식은 일본인들이 볼 때 미치도록 맵다. 일본음식은 한국인들이 볼 때 너무 달다. 두 나라 음식은 이처럼 달라 보이지만 원래 그랬을까.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단맛과 매운맛을 인류가 원하는 대로 낼수 있게 된 때가 얼마 안 된다는 것이다. 사탕수수에서 나온 설탕이 전 세계 무역으로 대량공급되기 전에는 단맛이란 정말 만들기 힘든 맛이었다. 반면 매운맛도 마찬가지다. 고추가 보편화하기 전에는 매운맛은 내기 힘든 맛이었을 것이다. 한국과 일본음식을 정의하는 두 가지 맛은 이처럼 최근에야 인류의 식단에 쉽게 오르게 된 것이라는 뜻이다. 필자는 한국과 일본의 음식은 임진왜란 이전까지만 해도 거의 별차이가 없었을 것이라 본다. 우선 양국에서 나는 식재료가 비슷하고 두 나라는 청동기시대 - 야요이시대 이래 같은.. 2024. 2. 3.
일제시대 인류학논문 일제시대 인류학 논문이 설왕설래가 많다. 이 시대에 쓰여진 논문일체는 몽땅 조선인의 열등함을 밝히기 위한 논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럴 수도 있겠고 그런 논문도 분명히 있을 텐데. 전부는 아닐 수도 있고. 필자도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 그럴 거라는 생각에 몇 가지 기초적 논문만 회자될 뿐. 필자가 나이 60 전후하여 새롭게 보겠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일제시대의 인류학 논문-. 모두 해제를 한번 달아볼까 생각 중이다. 젊은 친구들이 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안하고 놔둘 수도 없는. 딱 60넘는 연구자가 해야 할 만한 일이리라 본다. 2024. 2. 3.
구정毬庭, 고려시대의 축구장 고려사나 고려사절요를 읽다 보면 저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 저 문제의 심각성을 어떤 역사학도도 지적한 일을 못 봤다. 저 구정이란 구毬하는 마당, 혹은 구장[庭]이라는 뜻으로 이 경우 毬란 바로 격국擊鞠 혹은 타구打毬 혹은 격구擊毬라 일컫는 스포츠로 폴로 경기를 말한다. 말타고 막대기로 공을 쳐서 골을 넣는 경기라, 이 스포츠가 고려시대에는 특히 성행한 것으로 보아, 신라시대에는 그랬다는 기록이 없어서 그렇지, 동시대 당나라에서는 현종 이륭기가 광팬으로 이 스포츠를 직접 혹닉한 것으로 보아 신라에도 도래해 성행했음에 틀림없다. 물론 구정毬庭이 꼭 격구 폴로만을 말하는 것인가 하는 데는 의문 혹은 반론이 없지는 아니해서 축구蹴毬 또한 약칭해서 구毬라 하니, 이 경우 축국은 현대 스포츠 축구의 그것과 매우.. 2024. 2. 3.
구황작물이란 무엇인가 한국사에서 구황작물이란 무엇인가. 한국에만 국한해서 말하자면, 쌀농사를 짓고자 했는데 딱 봐서 망할 것 같으면 급히 심어 아사를 면하고자 하는 작물이다. 그래서 구황작물은, 1. 재배 기간이 짧고 2. 쌀농사가 안 될 만한 악조건의 기후에서 척박한 땅에서도 자란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재배기간이 짧고, 쌀농사가 안 될 만한 악조건의 기후에서 될 만한 작물이라면, 이건 한반도에서 농사를 가장 먼저 시작했을 당시 재배되던 작물과 동일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감자, 고구마 등 나중에 들어온 작물을 제외하면 구황작물은 조, 피, 수수를 항상 예로 든다. 이들 작물은 쌀농사 이전에 이미 재배되던 밭작물들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쌀농사 시대의 "구황작물"이란 실제로는 쌀농사보다 먼저 들어와 밭에 재배되던.. 2024. 2. 2.
과거제가 사설 학원시대를 열다 앞서 나는 쌍기에 의한 광종 9년(958) 과거제 도입을 이야기하면서 그 첫 시험에서 진사進士 갑과甲科에 급제한 최섬崔暹이라는 사람 또한 한국사 최초로 과거를 통해 등단한 인물임을 대서특필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이 최섬이라는 인물이 급제 이후 딱 한 번 사서에 모습을 드러내니, 고려사 권93 열전列傳 권 제6 제신諸臣 김심언金審言이라는 사람 열전이라, 관련 대목 기술은 다음과 같다. 金審言, 靜州靈光縣人, 初從常侍崔暹學. 暹坐寐夢, 審言頂上出火, 氣屬于天心, 異之, 妻以女. 김심언金審言은 정주靜州 영광현靈光縣 사람으로, 처음에 상시常侍 최섬崔暹에게서 배웠다. 최섬이 앉아 졸다 꿈을 꾸었는데, 김심언 정수리 위에서 불이 나오다가 그 기운이 하늘 한 가운데로 붙으니, 이를 이상하게 여겨 〈자기〉 딸을 그에.. 2024.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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