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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설고고학] 술 쳐먹는 거 수치다 기자사회가 한때 그랬다. 웬 술을 그리 쳐먹고 그리 억지로 쳐먹였는지 온통 술판이었던 시절이 있다. 이 놈들 전날밤 퍼질러 쳐먹고 출근해서는 종일 자빠자다 또 낮술 쳐마시곤 들어와서 또 자빠자고 그게 기자정신이라 떠들어댔다. 주말이면 골프채 잡고 접대 골프 치느라 바빴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연구자라는 놈들이 언제 술 쳐먹을 시간이 있단 말이며 언제 필드 나갈 시간이 있단 말인가? 틈만 나면 쳐마셔대니 오십 넘으면 다 나자빠져서 볼 만한 글이라곤 한 편도 없고 고작 하는 일이라고는 십년전 이십년전 쓴 박사 논문 긁적거려 단행본이라 던지고 기조강연이나 하고 자빠졌거나 종합토론 사회나 하면서 대가인양 뻐겨대거나 관공서 불러주는 데 가서는 돈 받고 이 유적은 중요하니 사적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어용 글밖에 못.. 2024. 1. 8.
애들 장난같은 역사책 우리나라 학생들 가르치는 역사책은 애들 만화영화 같은 스토리다. 선과 악이 너무 구분이 뚜렷하고 그리고 그 선과 악이라는 것도 유치하기 짝이 없다. 어떻게 인간을 단 하나의 선과 악이라는 기준으로 재단해서 나머지는 죄다 보지도 않고 좋은 놈 나쁜 놈을 결정해서 서술할 수가 있겠는가. 살아보니 사람이란 것이 선과 악이 뒤범벅이 되어 누가 나쁜놈 좋은 놈인지 구분도 어렵더라. 세상살이가 그럴진대 한국사 오천년을 하나의 주제를 잡아 선과 악으로 나누고 악으로 포함된 쪽은 하나도 볼 필요 없이 죄다 나쁜 놈들이라니 그런 역사책이 그게 만화책이지 역사책인가. 유치하지 않은 역사책을 좀 봤으면 한다. 애들 가르치는 고등학교 역사책이라고 해서 유치해야 한다는 법은 어디도 없다. 아니, 요즘 애니메이션만 해도 선악이 .. 2024. 1. 8.
[백수일기] 곱창을 타고 스며든 폭설 예보 며칠만인지 집 밖을 나섰다. 기온이 뚝 떨어졌다. 약속은 근 일주일만에 첨으로 잡은 듯하다. 나간 김에 몰아서 세 건을 내리 잡았다. 대미는 곱창이었다. 경복궁역 인근 단골 곱창집. 사장님이 첨엔 몰라본다. 빵모자를 나중에 벗었더니 그제야 알아보시고선 서비스가 많아진다. 진즉에 벗을 걸. 낼름내름 줏어먹고는 밥을 볶았다. 곱창은 오늘도 진리요 내일도 진리리라. 인근 음악다방으로 옮긴다. 넌 위스키 난 진토닉. 오늘 따라 사장님 감성이 딱 내 감성이다. 계속 낼 서울 일대 폭설 예보가 날아든다. 저번 폭설은 용산을 담았으므로 내일은 궁을 담으려 한다. *** 늙어서 안 사실...술은 입으로, 사랑은 눈으로 늙어서 안 사실...술은 입으로, 사랑은 눈으로WILLIAM BUTLER YEATS가 1916년에 낸.. 2024. 1. 8.
이규보는 언제 이름을 바꿨을까 이규보(李奎報, 1168~1241)라는 인물을 몇 년째 파고들었다. 그런데 무심코 넘겼지만 생각보다 중요할 것 같은 사실 하나를 빠뜨려서, 여기 정리해두고자 한다. 바로 ‘이규보李奎報’라는 그의 이름에 관해서이다. 그의 원래 이름은 ‘이인저李仁氐’였다. 이십팔수二十八宿의 세 번째 ‘저성氐星’에서 글자를 딴 것 같다. 그렇게 22년을 살다가 1189년(명종 19) 이십팔수의 열다섯 번째 ‘규성奎星’에서 글자를 따 ‘규보奎報’로 이름을 바꾼다. 그런데 그가 이름을 바꾼 시점을 두고 『동국이상국집』과 『고려사』 의 기록이 엇갈린다. 기유년(1189) 사마시(司馬試, 국자감시)에 나아가려고 했을 때, 꿈에 어떤 촌백성인 듯한 노인들이 모두 검은 베옷을 입고 마루 위에 모여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옆 사람이 .. 2024. 1. 8.
1971년 6월 2일 송산리 고분군 배수로공사 허가 무령왕릉 발견의 신호탄 송산리 고분군 배수로 공사 허가 1971년 6월 2일 오후 2시, 문화재관리국 회의실에 문화재위원회 제1분과 제7차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 참석자는 문화재위원으로 조명기 손보기 최희순 정인국 임창순 이기백 김원용 김유선이었다. 문화재관리국에서는 전문위원 1명, 정재훈 백동호 김상봉 장경호 사무관, 김선배, 정기영이 참석했다. 사회는 조명기, 간사는 장인기, 서기는 김재겸이었다. 보고사항으로 '문화재 보수 설계검토'가 있었고, 그 두 번째 안건으로 '공주 공산성 고분군 보수공사'가 상정되었다. 그 결정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심의 결정: 원안대로 가결함 2) 보수내용 : (1) 5.6호분 봉토 해체 강회 다짐 (2) 5,6호분 배면 암거 (3) 6호분 석축 개축 (4) 6호분 .. 2024. 1. 8.
[선화공주의 비밀을 파헤친다] (2) 미륵사발 혁명의 불꽃 2009년 1월 14일,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보수·정비하는 과정에서 그 심주心柱 상면上面 중앙에서 사리공舍利孔을 개봉한 결과 이 석탑을 처음 조성하면서 그 내력을 써서 적은 금제金製 봉영 사리기奉迎舍利記를 포함한 사리장엄 일괄품을 발견했다. 이 봉영사리기는 글자 그대로 석가모니 진신사리탑眞身舍利塔으로 석탑을 세우면서, 석가모니 부처님 사리를 맞아들여 석탑에 봉안한 내력을 기록한 문서다. 가로 15.5㎝, 세로 10.5㎝ 크기인 납작한 방형 금판 앞뒤에다가 글자를 음각하되, 글자는 붉은 칠을 했다. 이를 판독한 결과 미륵사는 백제왕후가 재물을 희사해 가람을 창건하고는 기해년에 사리를 봉안하면서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면서 세운 사찰이라는 내용이 드러났다. 이를 통해 미륵사는 창건 목적과 발.. 2024. 1. 8.
[독설고고학] 황금 너머 황금을 본 사람들 천마총 출토 신라 금관이다. 그래 이런 것들을 근거로 삼아 신라가 황금의 제국이었네 하는 말이 있다. 황금에 혹닉한 문화권이 비단 신라 뿐이겠는가? 물론 이것도 역사를 통괄하면 예외는 없지 아니해서 부족에 따라 황금을 쳐다도 안 본 문화권이 있기는 하다. 저 황금을 두고 우리네 고고학은 무엇을 어찌 다뤘던가? 저 금관만 해도 첫째 그 양태에 미쳐서 그 모양새를 죽죽 그리고는 出자형입네 하는 헛소리들 한참 지껄였고, 그 다음으로 그 전파 양상 혹은 기원이라는 측면에서 저 머나먼 중앙아시아를 여행하면서 지도 한 장 죽죽 그려놓고는 실크로드입네 하는 개사기를 쳤다. 뭐 암튼 이딴 이야기들로 날을 새웠으니, 반세기 넘도록 이 짓을 했다. 비단 황금이 저것 뿐이랴? 많다. 저 많은 황금을 보면서 내가 보는 한 다.. 2024. 1. 8.
남들 하는 거지 같은 주제에 나까지 뛰어들어야겠는가? 논문 쓸 거리가 없다는 말 나는 믿지도 않고, 그럴 수도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고 나는 본다. 왜 논문 쓸 거리가 없는가? 공부를 안하고 생각을 안하기 때문이지 무슨 딴 이유가 있겠는가? 논문거리? 왜 없어? 천지빼까리다. 각 잡으면 하루 열 편을 쓰는 것이 논문이다. 왜 없는가? 늘린 게 논문 거린데? 엉뚱한 데 뛰어들어 뻘짓하니 쓸 게 없는 것이요 내가 의문하지 아니하니 쓸 거리가 없을 뿐이다. 그러니 매양 신자료 출현만 목 빼고 기다릴 뿐이요, 그러니 남이 A라고 주장한 것을 B라고 결론만 살짝 바꾸어 그것을 논문이라 긁적이는 작태가 될 뿐이다. 생각이 없고 공부를 하지 않으니 매양 굴리는 주제라고는 형식분류밖에 더 있으며 제조기술 타령이요 축조기술 타령밖에 더 있겠는가? 이딴 게 무슨 글이란 .. 2024. 1. 8.
“음모로 인국隣國을 난亂한 자”, 김유신을 혹평하는 단재 신채호 김춘추가 한창 복수운동에 분주하는 판에, 그 보좌인 一 명물이 있으니 곧 김유신이다. 당시에 연개소문을 고구려의 대표인물이라 하고, 부여 성충을 백제의 대표인물이라 하면, 김유신은 곧 신라의 대표인물이라 할 것이다. 고구려 백제가 망한 뒤에 신라 사가들이 彼 양국 인물의 전기적 자료를 말살하고 오직 김유신만을 가송歌訟하였으므로, 삼국사기 열전에 김유신 一人의 전기가 을지문덕 이하 수십 개 인의 전기보다도 그 매수가 훨씬 많고, 부여성충 같은 이는 그 열전에도 참여도 못하였다(이상 460쪽). 그러면 김유신전이 익미溢美한 말이 많음을 가히 추지推知할 것이다. 이제 그 사리에 合한 자를 추리면 대개 下와 같다.... 그러나 유신이 가야의 김씨인 까닭에 비상한 반연攀緣이 없으면 중용되지(이상 461쪽) 못할 .. 2024. 1. 8.
만주를 상실케 한 김유신을 원망하노라 신라사를 읽으매 김유신을 원망하노라 당병을 끌어들여 구려를 멸하고 압강을 경계로 삼고 동쪽은 신라에 속하게 하고 서쪽은 당에 속하게 했으며 만주가 다시금 우리가 지니지 못했으니 소위 통일삼한이란 그 공이 크기는 하지만 그 수치는 어찌 말하랴 讀新羅史, 歎金庾信 , 引唐兵滅句麗, 以鴨江爲界, 印屬羅, 以西屬唐, 滿洲不復爲我有, 所謂統一三韓, 其功雖大, 其耻可言耶。 심산 김창숙金昌淑(1879~1962)은 이렇게 김유신을 한탄하며 비판했다. 그의 글을 모은 심산유고心山遺稿에 보이는 한 구절이다. 소위 이 민족주의 계열 역사학도 지금 보면 웃기는 게, 발해가 고구려를 정통으로 계승했다면서 신라를 이리 공격해댄다는 점이다. 저 논리에 의하면 한반도 북부와 만주 일대는 주인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한민족 무대인 까닭.. 2024. 1. 8.
사대주의 병균을 퍼뜨린 김춘추 그러나 “신라가 국소민약하니 무엇으로 백제의 앙殃을 갚으랴. 오직 외원外援을 빌 뿐이다” 김춘추가 기둥 친 끝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고구려로 들어갔다(458쪽)... 그래서 김춘추가 바다를 건너 당에 들어가, 당 태종을 보고 신라의 위급한 정형을 진숧고. 힘 닿는 데까지 한限하여 모든 비사후례卑辭厚禮(459)를 가져 원병을 구할 새, 당조唐朝 군신의 뜻을 맞추기 위하여 자 법민·인문 등을 당에 유질留質하며, 본국의 의관을 버리고 당의 의관을 쓰며, 진흥왕 이래로 自記한 본국의 제왕년호를 버리고 당의 년호를 쓰며, 또 당태종이 편찬한 진서晉書와 그 산증刪增한 사기史記·한서漢書·삼국지三國志 등 - 그 중의 조선에 모멸한 말이 많은 문자를 가져다가 그대로 본국에 유전하여, 사대주의의 병균을 전파하기 시작하니라.. 2024. 1. 8.
튀김이 된 붕어빵 나는 몰캉몰캉 붕어빵이 좋지만 어찌하여 요새 매번 마눌님이 내어놓는 붕어빵은 첫째 붕어가 잘아 새끼 종류이며 둘째 너무 튀겨 아삭아삭 씹힌다. 속내도 보니 팥 종류가 아니라 무슨 양식빵에 들어가는 크림 종류라 그래도 사정이야 어떻건 붕어빵이야마로 시절 별미 아니겠는가? 2024. 1. 7.
괜히 청개구리겠는가? 오늘 유양잡조를 읽다가, 청개구리 이야기를 발견했다. 여기서는 혼자渾子(멍청이)나 흔자佷子(개망나니)같은 실제 사람으로 나오지만 이야기로야 청개구리가 훨씬 정감 간다. 그래서 그런지, 혼자, 흔자는 무덤 만들난 뒤 그 다음 어찌했는지가 없지만 청개구리는 떠내려 갈까 걱정해 늘 '개굴개굴' 운다는 거 아닌가? 곤명지昆明池 안에 무덤이 있는데, 민간에서는 '혼자渾子'라고 부른다. 전해지기를, 옛날 이곳에 사는 백성 중에 ‘혼자’라는 아들을 둔 자가 있었다. 혼자가 늘 아버지의 말을 어겨, 동쪽으로 가라 하면 서쪽으로 가고, 물을 가져오라 하면 불을 가져오는 식이었다. 병들어 곧 죽게 된 아버지는 구릉 언덕에 묻히고 싶어서 혼자에게 일부러 속였다. "내가 죽거든 반드시 물속에 묻거라!" 아버지가 죽자 혼자는 .. 2024. 1. 7.
[독설고고학] 술 쳐먹고 골프 치는 대가大家 없다 나는 술을 마시는 일과 쳐먹는 두 가지로 구분한다. 어떤 기준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터이니, 내가 볼 땐 이건 비단 고고학도한테만 유별난 현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예외는 아니니 싸잡아서 비판한다. 술 쳐마시고 무슨 공부를 하고 논문을 쓴단 말인가? 술 쳐마시느라 하루가 가고, 다시 그 다음날은 숙취 깬다고 하루 종일 술 냄새 펄펄 풍기며 비실비실하니, 이것도 나이에 따른 차이가 적지 아니해서 쉰이 넘어가면 하루 쳐마시면 이틀 사흘이 여파가 간다. 그렇게 보내는 놈이 무슨 공부를 하며 무슨 논문을 쓴단 말인가? 술은 공부랑은 상극이다. 반주를 위한 마시기 정도야 모르겠지만, 쳐먹는 일로 그것이 학문 교유라 생각하는 놈이 천지라는 데 심각성이 있지 않겠는가? 술 쳐먹으면서 얻어 듣는 이야기가 도움이 된다.. 2024. 1. 7.
창씨하는 백제인 이른바 창씨개명 때문에 일제시대 한국인들은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사실 이 창씨는 일본이 기원이 아니라 한국이 기원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필자는 본다. 이유는 이렇다. 우선 백제인들의 경우 부여씨에서 갈려 나온 성들 (대개는 두 글자 성이다)이 꽤 있다는 건 잘 알려져 있다. 종래 별개의 성으로 생각한 흑치씨라던가, 동성씨, 고이씨 등 많은 성들은 부여씨에서 갈려나왔다고 보는 주장이 유력한 것으로 안다. 다음으로 아래 일본서기 기록을 보면, (흠명기) 백제 부여창이 고구려인에게 나노리 할 때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우리 들판에 손님이 있다’고 하였는데 어찌 맞이하는 예를 행하지 않는가. 우리와 더불어 예로써 문답할 만한 사람의 이름과 나이, 관위를 미리 알고자 한다”고 하였다. 餘昌이 “姓은.. 2024. 1. 7.
[독설고고학] 술로 맺은 덤앤더머 한일고고학 나 역시 일본 지인이 많은 편이기는 하다만 지역적 인접성에서도 일본이 중요함을 인정한다.하지만 고고학에 국한하면 일본에서 배울 건 눈꼽만큼도 없다.그 방법론 그 수준 어디 하나 참고할 만 한 데는 없다.오직 발굴기술이 있을 뿐이었는데 이건 일찌감치 때려잡았으니 이것도 이젠 패대기쳐야 한다.이쪽 분야 사람들 거개 일본어가 능통한 편이라 이런저런 대화가 가능한데 일본어 특성이 한국사람들이 상대로 습득하기 쉬운 점은 고려하고라도 일본어 공부할 시간에 영어 공부해라.한국고고학이 말하는 국제는 언제나 일본이라 일본이 빠지면 앙코 빠진 찐빵 보듯 하지만 일본에서 배울 건 눈꼽만큼도 없다.왜?우리 덤이요 저들은 더머니깐 말이다.언제까지 정종 대포 나누며 그걸 국제교유라 사기 칠 수는 없다.더 넓은 세상으로 가라.고작.. 2024. 1. 7.
말이 통해야 하는 나노리 대체로 일본에서는 나노리의 소멸을 근대적 전술의 발전과 함께 보는 듯하다. 쉽게 말해서 철포=조총의 등장과 철포대의 전술상 나노리고 뭐고 없다. 오다 노부나가가 다케다 군을 전멸시켰을 때 전통적인 전술을 구사하고자 한 다케다군을 오다군은 나노리고 나발이고 없이 철포대의 일제사격으로 묵사발을 내 놓았는데 대체로 이와 같은 근대적 전술의 채택과 나노리의 소멸을 밀접하게 보는 것 아닌가 싶다. 하지만 한반도에선 그 훨씬 이전에 이미 나노리는 사라진 것 같은데 가장 큰 이유는 삼국통일 이후 한반도의 전쟁은 외침에 대한 전투가 주류로 전투의 맞상대가 아예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이었다는 데 가장 큰 이유가 있다고 본다.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로 여몽 연합군이 쳐들어갔을 때 앞에 나와 나노리를 하고자 했는데 고려-몽골.. 2024. 1. 7.
거란-송을 갖고 노는 고려와 서하 거란 요나라 역사 통사로 원나라에서 관찬한 요사遼史는 전체 108권이라, 개중 열전은 권63부터라, 딱 절반이 열전이다. 그 열전 마지막이자 요사 전체의 마지막인 권108 열전 제46은 거란어에 대한 해설인 국어해國語解이고, 그 바로 앞이 이국외기二國外記라, 이는 여타 사서에서는 외국열전을 세운 데 견준 것과 대비하는데, 요사가 말하는 이국二國이란 바로 고려高麗와 서하西夏라, 이는 그만큼 거란 역사에서 두 나라가 차지하는 비중이 막강한 까닭이다. 이 두 왕조가 거란을 다룬 양상을 보면 아주 비슷해서 당시 동아시아 국제정세를 실로 절묘하게 갖고 놀았다는 표현이 딱 적당하다. 이 이국열전에는 고려의 경우 그런 양상이 잘 드러나지 않고 주로 두 왕조 사이에 있는 전쟁과 평화 시대 이야기를 추렸지만, 이는 고려.. 2024. 1. 7.
[독설고고학] 투고 자격도 주지 않는 해외 저널들 [독설고고학] 형식분류 제작기법 축조기술은 투고 자체를 원천봉쇄해야 한다   [독설고고학] 형식분류 제작기법 축조기술은 투고 자체를 원천봉쇄해야 한다그렇다면 한국고고학은 당장 어찌해야 하는가? 저거다. 형식분류 제작기법 축조기술 타령 일삼는 그 어떤 논문도 투고 자체를 원천 금지하며 그런 논문이 들어와도 자동으로 퇴짜를 놓아야 한historylibrary.net  망조가 든 한국고고학 구출을 위해서는 저와 같이 해야 한다고 나는 적었거니와, 이게 장난처럼 보이겠지만 천만에. 실제 외국 저명 저널에서는 저런 일이 아주 빈발한다.  클리쉐한 논문은 아예 투고도 못하게 하는 규정이 수시로 발동되고 있다.  실제 외국 어느 저명한 고고공예 관련 관련 저널 중에서 저와 같은 통제를 실시하는 데를 봤다.   왜 그.. 2024. 1. 7.
장례식 조문객과 사찰 낙성 축하객 (1) 빈소와 조문객 고관대작을 지내거나 다른 분야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사람의 죽음에 이르러 항용 보이는 표현 중 하나가 임금이 부의를 후하게 해서 장례를 치르게 했다는 말이거니와, 이런 점들이 왜 고고학도들한테는 심각하게 보이지 않는지 나로서는 신통방통할 뿐이다. 조선시대는 기본이 이른바 박장薄藏이라, 일부러 값나가는 물건을 무덤에 넣는 일을 피한 전통이 오래되는 바람에 이걸 잊어버렸는지 모르지만, 나아가 시대별 문화권별로 넒나듦이 있지만, 근간은 후장厚藏이라, 값나가는 물건을 될수록 많이 넣음으로써 부와 권력을 과시하곤 했으니 해당 무덤에 들어가는 껴묻거리 상당수가 이른바 부의賻儀였다는 사실을 하시라도 잊으면 안 된다. 이 부의를 가능케 하는 절대 근거가 빈殯이라, 빈은 간단히 말하자면 조문을 받는 기간이다. 동아시아.. 2024. 1. 7.
백제와 고려군의 전투: 입표立標란 무엇인가 전술한 일본서기 흠명기欽明紀를 보면 백제 부여창과 고구려 군 전투장면이 나오는데 다시 써보면 아래와 같다. 때마침 날이 밝자 목에 경개頸鎧를 입은 자 1騎, 징을 꼽은 자鐃자는 자세하지 않다 2騎, 표범 꼬리를 끼운 자 2騎 모두 합해 5騎가 말고삐를 나란히 하고 와서 묻기를 “어린아이들이 ‘우리 들판에 손님이 있다’고 하였는데 어찌 맞이하는 예를 행하지 않는가. 우리와 더불어 예로써 문답할 만한 사람의 이름과 나이, 관위를 미리 알고자 한다”고 하였다. 餘昌이 “姓은 (高麗 왕실과) 同姓이고 관위는 杆率이며 나이는 29세이다”라고 대답하였다. 百濟 편에서 반문하니 또한 앞의 법식대로 대답하였다. 드디어 표를 세우고 싸우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마지막 줄, "표를 세우고"라는 말. 무슨 뜻일까? 원문에는 .. 2024.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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