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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일기] 갓 백수된 윤용현 박사에게 고한다 국립대전과학관 윤용현 박사가 지난 연말로 백수가 되었으니, 엄밀히 따지면 공로연수라, 그 공식시효는 내년 1월 1일자로 발생하겠지만, 똥끼나밑끼나 이제 백수 맞다. 그래서 하는 양태 보아 하니 이런저런 백수 선배들 조언을 듣고는 연구실이라는 것도 낸 모양이라 어디 오피스텔이나 원룸을 미리 구한 모양이라, 삼식이는 죽음이라는 교훈에 철저하고자 백수 되자마자 냅다 아침마다 그쪽으로 튀기 시작한 모양이라, 이건 잘했다고 말해둔다. 그러면서 오늘 아침에는 아래와 같은 사진을 올리면서 아침 식단을 바꿨네 마네 하는데 이건 진정한 백수가 아니라 가짜 백수다. 왜 그런가 윤 박사한테 일러준다. 첫째 백수는 혼차서 저리 잘 차려 먹어서는 안 된다. 백수는 굶어서 돈을 아껴야 한다. 하루 한끼 혹은 두끼로 대체하되, 후.. 2024. 1. 5.
요시노가리가 아닌 두오모를 보라 발굴보고서는 고찰 편이 있어 이것이 뒤에서 말하는 논문과 어느 정도 접점을 이루기는 하나 절대 존재 근간이 기술 description이라, 어디를 팠더니 어느 구역에서 뭐가 나왔고 그것들이 배치 양상은 어떠하는지를 종합하는 데 있으니, 그에다가 그 계통을 기술하며, 요새는 자연과학 분석 결과를 곁들여 수록하는 것이다. 이것이 보고서다. 반면 고고학 논문이란 저런 기술 너머에 대한 탐구이며 해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데 한국고고학이 양산하는 논문이란 것들을 볼짝시면, 물론 그렇지 아니한 것으로 분류한 만한 경우가 아주 없지는 아니해서 근간이 보고서랑 차이가 없어 기술이 태반을 넘는다. 이것이 어찌 논문이리오? 거개 논문이라 해서 싸질러 놓는 것들을 보면서 나는 이것이 거질 발굴보고서 하나를, 혹은 그 복.. 2024. 1. 5.
금사金絲, 개돼지와 고고학도의 갈림길 금사金絲라 금실이란 뜻이다. 사진은 부여 능산리 고분군 출토품이다. 기능은 현재까지는 오리무중이다. 까닭은 모조리 도굴된 상태에서 저리 남은 것만 건지기 때문이다. 맥락을 모른다. 저 금실이 어떤 상태로 어딘가에 착장된 것인지를 안다면야 기능 접근의 단서를 마련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선 그것이 불가하다. 나는 내심 짚이는 게 있다. 나는 몇 군데 다른 데서도 출토 사례를 보이는 저 금사를 두고 의문을 품는 고고학도를 아직 만나지 못했다. 저들은 언제나 다른 사안 다른 유물에서도 그렇듯이 왜? 를 묻지 않는다. 저들이 관심 있는 오직 한 가지는 그것을 출토한 사례 이것뿐이다. 그 사례 지리하게 표 만들기 딱 그것이다. 문제는 저런 양태가 비단 금사에만 그치지 아니한다는 점에 심각성이 있다. 다 이 모양이다.. 2024. 1. 5.
약밥이 뜸들인 밥이 나오기 전 밥의 원형 약밥은 아직도 레시피가 밥을 쪄낸 다음 잣 밤 대추를 섞어서 한 번 더 쪄내는 것으로 되어 있다. 물론 그 중간 단계에 기름 단 것 등을 섞는다. 그러니까 약밥은 달다. 약밥은 필자가 보기엔 쇠솥이 나와서 밥짓는 작업의 혁명-. 뜸들이기가 나오기 전에 밥을 쪄 먹던 시대의 레시피가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물론 그 시대에는 단 것은 섞지 않았을 것이다. 곡식만 쪄내어 먹었을 수도 있고, 지금 약밥처럼 잣 밤 대추 등을 넣어 한번 더 쪄내어 잡곡밥처럼 먹었을 수도 있겠다. 달지 않고 끈적하지 않은 약밥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필자가 보기엔 그것이야 말로 솥으로 쌀을 끓인 다음 뜸들이기가 나오기 이전, 한국인들이 먹던 밥의 원형이 아니겠나. 2024. 1. 5.
찐밥 대신 뜸들인 밥이 주류가 되는 시기 집집마다 쇠솥이 걸리는 시기다. 쇠솥이 부엌에 걸리는 시기 이전에는 우리도 전부 찐밥을 먹었을 것이다. 쇠솥이 언제 우리 부엌에 걸터 앉게 되는지 이걸 확실히 알아야 한다. 어쩌다 쇠솥이 하나 나오는 게 아니고, 집집마다 어쨌건 쇠솥이 걸리는 시기를 말하는 거다. 쇠솥이 걸리지 않으면 뜸들인 밥은 없다. 누룽지도 없고, 숭늉도 없다. 쇠솥이 걸리지 않는 시대에는 우리도 전부 약밥 만들 듯 곡식을 쪄 먹었다는 말이다. 곡식을 쪄 먹었다는게 떡을 만들어 먹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에서 말하는 고와이이, 강반을 만들어 먹었다는 말이다. 일본은 한국의 도작문명이 흘러 들어갔기 때문에 이런 일본 측 연구결과는 절대로 무시할 수 없다. 2024. 1. 5.
김유신의 조카 반굴盤屈과 도삭산의 복숭아 김유신의 동생은 김흠순金欽純이다. 그의 아들 중에 급찬 반굴盤屈이 있다. 황산벌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반굴의 아들이 역시 보덕국 반란 진압에 나섰다가 전사한 김령윤金令胤이다. 령윤...꽃다운 혹은 아름다운 아들 혹은 후손이라는 뜻이다. 아비 반굴盤屈은 이름이 특이하지 아니한가? 한데 아무도 그 의미를 묻지 않았다. 내가 저 반굴이 하도 특이해서 족보를 추적했다. 놀랍게도 산해경山海經이었다. 현존 산해본에는 없다. 산해본을 인용한 다른 전적, 예컨대 왕충이던가? 그 일문逸文에서 등장한다. 추리면 이렇다. 동해東海에 도삭산度朔山이라는 산이 있다. 이 산에는 평원이 있는데, 그 전체를 뒤덮을 만큼 거대한 복숭아나무가 있다. 동북쪽으로 뻗은 가지들은 서로 뒤얽혀 마치 문의 형상과 같았으며, 이곳을 통해 많.. 2024. 1. 5.
일본 헤이안시대 귀족의 식사 일본 헤이안 시대 귀족이 먹던 밥은 찐밥, 즉 강반이었다. 뜸들인 밥이 아니다. 오른쪽에 높게 쌓아 올린 밥이 바로 코아이이, 강반이다. 밥 느낌은 딱 우리 약밥 정도 된다. 약밥은 밥알을 단 것으로 서로 붙여 놓은 거라 그렇지 밥알 자체는 찐밥이라 입안에서 따로 논다. 헤이안시대까지도 일본 귀족들은 강반을 먹었다. 왜 우리가 찐밥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우리 역사에서 찐밥에서 뜸들인 밥으로 넘어가는 시기가 언제인지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2024. 1. 5.
문화사 생활사가 각광받던 시절 연구를 돌아보면 대략 20년 전쯤이라 생각한다. 그때 문화사 생활사 붐이 있었다. 다들 기존 역사학 문화학으로는 안 된다며 들고 나온 새로운 돌파구가 생활사 문화사였으니, 저 흐름과 궤를 같이해서 나온 것이 고문서 붐이었고, 기타 그 부류에 속하기는 할 텐데 일기 연구가 붐이 일었다. 음식사라는 영역이 별도 학문 분파가 되는양 들고나선 시기도 딱 저 무렵이라, 하긴 음식이 생활문화사 핵심이니 어찌 따로 놀 수 있겠는가? 그래서 문화생활사라 해서 한역연인가? 이쪽 학술단체에서 생활사 시리즈인지 뭔지도 냈다고 기억하는데 문제는 생활문화사라 해 놓고 내놓은 그 질이었다. 그 내용을 볼짝시면 온통 삼국시대에는 우리 조상들이 뭘 자셨니 뭘 입었니 하는 얘기 밖에 없었으니, 간단히 말해 나열 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 이 꼴.. 2024. 1. 4.
거문고 안고서 떠나는 두루미를 본 현중화 제주 명필 소암 현중화(1907-1997) 선생이 칠순을 넘긴 80년대 이후의 어느 날, 거하게 약주를 하셨다. 이 어른은 약주-주로 꼬냑을 즐겨 자셨다고-를 어지간히 하셔도 흐트러지는 법이 없이 글씨를 쓰셨는데, 그날도 흥이 일었는지 지필묵을 찾으셨나보다. 그런데 하필 갈아놓은 먹이 좀 묽었던지, 첫획이 퍽 두껍고 연하게 나왔다. 다행히 글씨가 마구 번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붓이 오래 종이에 머무르면 먹물이 퍼지게 마련인 법. 소암 선생은 제법 빠르게 '포금간학거抱琴看鶴去' 다섯 글자를 예서로 종이 위에 옮겨놓았다. 종이가 살짝 비틀어졌는지 글자가 왼쪽으로 주루룩 올라가서 두루미 '학'자가 가장 높아졌다. 종이를 뚫고 학이 날아갈까 걱정하셨을까. 살짝 위치를 낮추어 갈 '거'자를 휙휙 긋고, 그 여세를.. 2024. 1. 4.
노토반도 지진에 따른 문화재 피해 기록적인 사상자를 낸 지난 1월 1일 이시카와현石川県 노토반도지진能登半島地震에 문화재 역시 피해를 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문부과학성에 의하면, 이번 지진에 도야마현富山県이나 니가카현新潟県 소재 국보 등의 문화재에 피해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도야마현의 경우 다카오카시佐渡市 등지에 있는 문화재 15건이 피해를 보았고, 니가타현에서는 사도시佐渡市 등지의 5건이 영향을 받았다. 강제노역 논란 중인 사도광산 역시 낙석 등의 피해가 있기는 하지만 심각할 정도는 아닌 것으로 일단은 알려졌다. 다카오카시 소재 국보 서룡사瑞龍寺에서는 법등灯篭 2개가 붕괴되고 벽체에서는 균열이 발생했으며, 같은 국보인 승흥사勝興寺에서는 본당本堂 내진内陣의 기둥 2개에서 금박 균열이 일어났다. 사도시에서는 중요문화재인 묘선사妙宣寺 오중.. 2024. 1. 4.
부질없는 벨라루스 루카셴코 면책특권 루카셴코, 퇴임 대통령에 면책권·부동산 제공 법안에 서명 송고시간 2024-01-04 20:13 https://www.yna.co.kr/view/AKR20240104151400080?section=international/all 루카셴코, 퇴임 대통령에 면책권·부동산 제공 법안에 서명 | 연합뉴스 (모스크바=연합뉴스) 최인영 특파원 =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퇴임하는 대통령에게 면책권을 부여하고 평생 거주할 부동산을 제공하는... www.yna.co.kr 이딴 거지 같은 법률을 서명한 걸 보면 무엇보다 자신의 죄악을 자신이 잘 알고 있다는 뜻 아니겠는가? 그러니 저런 정치 보복을 금지하면서, 나아가 자기 권리는 그대로 현직 상태로 지키고자 하는 법률에 자신이 서명하지 않았겠는가? 그 골자를.. 2024. 1. 4.
20년 전 기생충 검사용 토양채취 저땐 날씬했었네. 일을 정리한다고 옛날 사진을 뒤지다 보면 저때 벌써 저 생각을 했었나 싶은 사진을 만날 때가 있다. 이 사진은 한 20년 전 것인데 발굴 현장에서 기생충 샘플링이라고 붙어 있는거 보면, 이때 이미 토양에서 기생충 분석은 머리속에 있었던 거 같다. 따지고 보면 지금 정리 작업은 20년만에 그 결론을 보고 있는 셈이다. 2024. 1. 4.
20년전 현장을 누볐던 애차 요즘 책 쓴다고 과거 사진을 찾다보니 그 시절 타고 다니던 애차-코란도가 보여 한 컷. 좋은 차였다. 저런 현장 못가는 데가 없었음. 저 때는 발굴 현장 가보면 저렇게 광대한 땅에 건물이 들어설 계획이라 홀랑 나무를 다 쳐놔서 현장 들어가도 차를 바로 내리지 않고 몰고가야 했던 곳이 꽤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저 코란도를 나중에 더 이상 타지 않게 된 것과 현장을 뛰며 작업하던 시기는 거의 비슷하게 막을 내렸다. 2024. 1. 4.
숭례문 복구비용 수백억원도 청구 안한 문화재청이 비름빡 낙서에 1억 청구? 문화재청 하는 일이 가관이라 경복궁 비름빡 낙서 지우는 데 들어간 비용이라며 1억원을 낙서범들한테 청구한다는데. 근데 왜 숭례문 방화범한테는 땡전 한 푼 청구 안한 거임? 더구나 그 복구 비용에 수백 억원이 들어갔는데 그 비용 청구했어? 그 방화범 강화도 할배 숭례문 직전에는 창덕궁인가 어느 건물 불질렀자니? 근데 복구 비용 청구 안했자나? 머 수백억원짜린 안 하고 고작 일억원짜리는 청구한다고? 에라이 국가행정이 일관성이 있어얄 게 아닌가? 장난치니? 행정이 나이롱 뽕이야? 말 같은 소릴해라. *** 이와 관련해 이번 조치가 지난 2020년 '문화재보호법'을 개정해 관련 규정을 마련한 이후 첫 사례라 주장한댄다. 어디서? 신성한 문화재청에서. 문화재청에 따르면 총 8일간 낙서 제거 작업에 투입된 인원과 .. 2024. 1. 4.
스프레이 제거 실험에 들어가며 (1) 대상 물색 경복궁 비름빡 스프레이 사건과 관련해 그 제거 실험을 시작한다. 위선 스프려이를 쳐가를 비름빡 혹은 돌을 골라야 한다. 문제의 경복궁 비름빡은 대부분 현대의 짜가 화강암이다. 일부 석회암 계열 시멘트가 있다. 표면은 우둘투둘. 집 주변에 비슷한 암질을 찾아나선다. 딱 맞는 화강암이 있다. 문제는 모텔이라 주저된다. 공원을 조사해야 겠다. 시멘트는 석회가 아니지만 우리집 먹시네 집 비름빡을 골랐다. 양쪽에 다 쳐바르고 제거 실험을 할 것이다. 문젠 마누라나 장모님. 내가 살아남을지 모르겠다. 낼은 스프레이를 사러간다. 하루 지나서 제거 실험을 할 것이다. 2024. 1. 4.
쪄서 만든 현미수수밥 쪄서 만든 현미수수밥이다. 쌀반 수수반이다. 현미는 가장 껍질을 덜 벗긴 걸 썼다. 시식의 결론: 쪄서 만들어서 그런지 거칠다. 이걸 뜸들여서 취사도 해 보았는데 거의 다른 잡곡밥과 차이를 못 느꼈는데 쪄서 현미와 수수 반반 밥을 만들면 아주 아주 거칠다. 소화시키는 데 힘들었다. 다음 차례는 쪄서 만든 깡수수밥이다. 2024. 1. 4.
[독설고고학] 껍데기 너머를 보라 아침에 호로고루를 이야기했지만 거기 처음 간 때부터 나는 성벽 너머가 언제나 걸렸다. 물론 저 성곽이 한창 운용되던 천오백년 전 지표가 지금과는 많이 달랐겠지만 저 넓은 땅을 가만 두지 않았으리라는 의구심이 언제나 증폭했다. 더구나 그 성벽 너머 땅은 현무암 지대고 홍수 피해가 거의 없을 만한 데였으니 저 땅에서 콩이나 조 수수 농사를 지어 살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성곽? 뭐 대단하게 생각하나 실제 전쟁 몇 번이나 치렀을 거 같은가? 징발된 병사들 일년 내내 탱자탱자했다. 그러다 제대했다. 그런 친구들이 그렇담 평양에서 꼬박꼬박 보내주는 월급 타가며 생활했겠는가? 그럴 돈도 없었다. 거지였다. 그렇담 어찌 생활했는가? 지들이 농사 직접 짓거나 농민들 감독해서 그에서 나는 소출 일부 띵가묵고 살았다... 2024. 1. 4.
돌궐시대 칸 얼굴 묘사 장신구 카자흐서 발굴 https://www.trthaber.com/haber/kultur-sanat/turk-tarihinde-ilk-kez-bir-gokturk-kaganinin-yuzunun-oldugu-bir-toka-bulundu-820921.html?fbclid=IwAR2yqopkZdvykY5mPleLQoFtiFBYG7De1LwiOCXXlOPmYoWYKFCSnpYC_68 Türk tarihinde ilk kez bir Göktürk kağanının yüzünün olduğu bir toka bulundu Kazakistan'da Batı Göktürk dönemine ait bir külliye ve yeni eserler tespit edildi. Bu eşyalar arasında ise tarihte ilk .. 2024. 1. 4.
서울공예박물관 만년사물 이 전시는 수정이가 하도 요란스레 소개하는 바람에 내가 더 보탤 건 없다. 다녀간단 흔적 겸해서 작가별 출품작을 디립다 소개한다. 하나하나 감상하기엔 여력도 전문성도 없어 미안하다. 2024. 1. 4.
전쟁통에도 군인들이 쪽도 못쓴 조선왕조 지극히 당연하지만 전란의 시대는 군인이 활개를 치기 마련이고 평화의 시대는 군인은 쥐 죽은 듯 지내기 마련이다. 오직 예외가 조선왕조이거니와, 이 놈의 왕조는 어찌된 셈인지 임란 병란 양란에 전 국토가 초토화했으면서도 무인이 활개를 칠 수 없는 구조였다. 나는 이를 비정상적인 사회로 본다. (2016. 1. 2) *** 그렇다고 내가 군인정치를 추앙하는양 개설레발을 치지는 말아줬음 한다. 전쟁통엔 당연히 군입 입김이 쎄기 마련이고 그게 정상이다. 한데 유독 조선왕조가 예외라 고려도 한때 저랬다가 나라가 거덜났다. 2024. 1. 4.
비름빡 스프레이 제거, 이 방식이 맞는지 검증해야 한다 https://www.yna.co.kr/view/AKR20240104015100005?section=culture/all '낙서 테러' 경복궁 담장 80% 복구…"전체 복구 비용 청구할 것"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지난해 12월 스프레이 낙서로 훼손된 경복궁 담장을 복구하는 데 쓴 물품 비용이 2천만원 이상인 것으로 파악됐... www.yna.co.kr 이거 아마 문화재청 하는 양태 보면 또 무슨 거창한 보고서라 해서 나올지는 모르겠다만 첫째 무슨 방식을 어찌 동원해 제거했으며 둘째 그 방식이 맞는지 이 두 가지를 검증해야 한다. 저 스프레이 낙서를 한 지점은 화강암이 대부분이고 일부 회칠이 있다. 저 스프레이 시중에서 흔히 구하는 그 스프레이일 텐데 화강암에 뿌린 저걸 저렇게 요.. 2024.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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