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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만든 짜가가 초래하는 문제들 이 모습 보고선 예가 불국사로 알고 가시는 분이 의외로 많다. 진짜 불국사를 마주하고선 예도 똑같은 다보탑 석가탑 있네 하는 분도 있다면 믿기는가? 너무 그럴듯하게 만들어도 문제다. 저 모조품 역사도 제대로 정리해야 하는데 경주박물관에서 제대로 정리한 자료가 있는지 모르겠다. 저 분들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 직접 자손이다. 그 와중에 등장한 것이며 하도 잘만들어서 진짜가 없어지더라도 저 짜가만 살아남으면 진짜를 복원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2024. 7. 19.
신라통일 이후 북벌은 혼합농경 북상의 역사 앞에서 우리나라 잡곡과 도작은 기원을 달리하여 요서에서 남만주를 거쳐 들어온 잡곡과 산동반도에서 바다를 건너 들어온 도작이 만나서 도작과 잡곡이 어우러진 혼합농경이 성립된 곳은 아마도 평양과 황해도 일대 서북지역일 것이라 하였다. 이 혼합농경이 더욱 남하하여 이루어진 판도가 세형동검문화와 얼추 맞아 떨어지지 않을까 한다. 따지고 보면 대략 고려의 천리장성 정도가 바로 혼합농경의 북방경계였을 것이라 보는데, 윤관정벌과 공민왕의 북벌, 세종대의 북벌 등은 모두 바로 이러한 혼합농경의 북벌과 궤를 같이 하지 않을까. 따지고 보면 윤관북벌 이후 우리나라 함경도 지역의 식민은 농업 기술 혁신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 아래 지도를 보면 알수 있다. 삼국시대-고분시대 도작이 도달할 수 있는 위도는 북위 40도.. 2024. 7. 19.
[보스니아 내전] (7) 나는 엄마의 자식이다 내 삶은 어머니에게 해를 끼친 사람의 이름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나에게는 내가 전혀 본 적도 없는 악마의 낙인이 새겨졌고, 이제는 그가 누구인지도 알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지만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 당해야 했습니다. 나는 치욕의 짐을 짊어지고 살았지만, 아직도 내 출생이 왜 그렇게 수치스러운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거울 앞에서 자신들을 비춰볼 용기조차 없는 세상 사람들이 지운 짐을 짊어지고 살아야만 했습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누군가의 악마 같은 행위로 인해 나는 ‘누군가의 새끼’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만 했습니다. 나는 악마의 자식이 아니라 어머니의 자식입니다. 나는 증오의 자식이 아니라 어머니와 양아버지,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자식입니다. 나는 부끄러움의 자식이 아니라.. 2024. 7. 19.
공민왕과 세종대의 북벌 주황색 부분이 공민왕이 수복한 지역이며 나머지 지역이 세종대에 완료한 북방영토 사민지역이다. 이 시기가 14세기 후반-15세기 중반에 걸친 시기인데 이 짧은 기간 동안 엄청난 영토가 한국사에 추가되었다. 저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혼합농경이 시도되지 않았다면 이 북벌은 실패했을 것이다.  *** previous article ***  2천년 지중해 해저를 지킨 스핑크스 2024. 7. 19.
2천년 지중해 해저를 지킨 스핑크스 지중해로 침몰한 나일삼각주 인근 고대 이집트 도시 헤라클레이온Heracleion은 여러 번 다뤘다.이 장면도 개중 하나라 저 스핑크스 조각 Sphinx statue 은 저 상태로 1999년 발견됐다.한때 고대 도시 헤라클레이온을 증언한 분이렸다. ​저 분은 신이시라 물속에 들어가서 2천 년을 계셔도 익사를 모른다.들어갈 때 그 모습 그대로 계시다가 나오시어 지금은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해양박물관 Maritime Museum을 정좌해 계신다. *** related articles *** 바다로 침몰한 나일강 어구 고대도시 헤라클레이온에서 찾은 고대 선박 바다에서 건져올린 토니스-헤라클레이온 Thonis-Heracleion 2024. 7. 19.
무신정권과 원 간섭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흔히 윤관 북벌과 공민왕-세종의 북벌은 엄청난 차이가 있을 것 같지만 자잘한 전략을 빼고 크게 보면 결국 농민의 식민을 바탕으로 항구적인 점령 전략을 구사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고 본다. 그런데-. 왜 윤관북벌은 실패하고 공민왕-세종이 북벌은 성공하였는가. 필자는 이 두 북벌의 사이기에 농업기술의 혁신이 있었을 것이라 본다. 구체적으로는 무신정권과 원간섭기. 이 시기에 뭔가 농업기술 관련하여 혁신이 있었다고 본다는 뜻이다. 윤관 때는 실패한 북방 지역의 농사가 공민왕 이후에는 안정적으로 가능할 정도로 성장하게 되었으리라 본다는 뜻이다. 요는 농민이 현지에 착근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국 승패를 갈랐으리라 보는데 이 사이기에 무슨 일인가 농업기술 측면에서 혁신적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2024. 7. 19.
[보스니아 내전] (6) 우리집 정원의 보석함 탱크와 장갑차, 트럭이 우리 마을을 처음 지나갔을 때를 기억합니다. 아직 어렸던 우리는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습니다. 나중에 아버지로부터 그들이 크닌에서 니슈까지 처음 진격하는 세르비아군 부대 중 일부였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호송대는 종종 우리 마을을 지나갔고, 군인들은 때로 손을 흔들며 사탕을 던져주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그들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후에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두려움이 퍼져 나갔습니다. 호송대가 나타나면 어린 우리는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고, 십 대들은 그들을 향해 돌을 던져 분란을 일으키곤 했습니다. 어느 날 돌 세례를 받은 호송대가 멈춰 섰고, 소총을 든 남자들이 쫓아왔습니다. 그들은 범인이 우리 집에서 나왔다고 생각하고 우리 집 정원으로 들이닥쳤습니다... 2024. 7. 19.
[보스니아 내전] (5) 전쟁이 키운 바지 전쟁이 막 시작되었을 무렵 어머니와 나 그리고 내 형제들은 조부모님과 함께 살기 위해 투즐라로 이사했습니다.우리는 1994년까지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그 당시 나는 예닐곱 살이었고, 몸이 너무 빨리 자라 전쟁 전에 입던 옷이 갑자기 모두 작아졌습니다. 그러자 이웃의 세카 아주머니가 담요 쪼가리를 바지에 덧대어 길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지금 그 바지를 보면, 그 어려운 시기에 세카 아주머니가 급하게 만든 담요로 내 바지를 멋지게 만들어 주려고 노력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세카 아주머니, 감사합니다. 다미르, 1987년생 *** previous article *** [보스니아 내전] (4) 사과 드실래요? 2024. 7. 19.
[동부 터키 여행] (19) 콤마게네 왕국 여성들을 위한 무덤 카라쿠시 고분군 Karakuş Tumulus Karakuş Tumulus · Karşıyaka, 4025. Sk. No:17, 02402 Bağözü/Kâhta/Adıyaman, 튀르키예★★★★★ · 관광 명소www.google.com     카라쿠시 고분군 Karakuş Tumulus 저 카라쿠시는 Karakush라 로마나이즈하기도 하는 곳으로, 기원전 30~20년 콤마게네 Commagene 왕조 미트리다테스Mithridates 2세 명령에 따라 만든 이시아스 왕비와 안티오키아Antiochis 공주, 그리고 아카Aka 1세를 위한 무덤hierothesion이다.간단히 말해 무덤과 침전寢殿이 세트하는 장송 공간이다. 저들이 누구이며 어떤 관계인지는 아래 소개하는 비문에 보인다.오늘날 튀르키예 아디야만Adiyaman 주 카흐타Kâhta 구역 추쿠르타.. 2024. 7. 19.
[동부 터키 여행] (18) 세베루스 다리 Severan Bridge, 로마의 동방 진출 교두보 위치는 아래 Cendere Bridge · 02400 Burmapınar Köyü/Kahta/Kâhta/Adıyaman, 튀르키예★★★★★ · 다리www.google.com 첸데레 다리 Cendere Bridge[센데레 브리지라고도 읽어도 틀리다 할 수는 없다.] 라고도 한다. 서기 3세기 초, 셉티미우스 세베루스(Septimius Severus)가 파르티아를 패퇴하고 나서 메소포타미아가 로마 제국에 편입된 후 이 다리가 건설되었다. 이런 새로운 영토 편입으로 기존 상류 유프라테스 방어선이 쓸모없게 되었고 그 결과 지역이 재편성되었다. 서기 203~204년 파르티아와의 일전을 준비하고자 고대 도시 사모사타Samosata(오늘날 삼사트Samsat)에 주둔한 로마 제16군단 플라비아 피르마Flavia Fir.. 2024. 7. 19.
일본의 다빈치 홍아미 고에쓰 흔히 홍아미 고에츠[本阿弥光悦,1558~1637]는 만능 예술인으로서 자신이 예술인이라는 강렬한 자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의 다빈치"라 불린다. 이 사람 작품을 보면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범상찮다는 것을 느낀다.  *** previou article ***  홍아미 고에쓰本阿弥光悦와 일본미 2024. 7. 18.
[보스니아 내전] (4) 사과 드실래요? 전쟁 중에는 물자가 늘 부족했습니다. 전쟁이 끝날 무렵 나는 이 사과를 받았습니다.나는 너무 신이 난 나머지 사과를 이로 베어 물려고 했습니다.그런데 사과는 밀랍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그 아래에는 연필 깎기가 달려 있었습니다.사과에는 아직도 내 이빨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전쟁 당시의 어린 날을 기억하게 만드는 흔적입니다.릴리안, 1984년생*** previous article ***[보스니아 내전] (3) 포토샵으로 그려넣은 아빠 2024. 7. 18.
공부한다고 더 좋아 보이지도 않을 세한도 추사 김정희 세한도歲寒圖를 보고 감동했다는 분이 많다. 그런데-. 필자는 감동한 적이 없다. 무엇보다 도대체 이 그림을 세계사 어느 구석에 어떻게 갖다 끼워야 하는지 솔직히 필자 수준에서는 가늠하기 힘들다. 혹자는 알면 보이는 건데 너가 무식해서 그렇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말이다. 냉정하게 한 번 이야기 해 보자. 세한도-. 잘 그린 그림인가? 아니다. 그러면 그 정신이 문제가 될 텐데. 세한도에 깃든 정신-. 어떤 면에서 대단하다는 것인가. 고난에도 굴하지 않는 선비정신? 글쎄다. 난 잘 모르겠다. 필자가 드는 생각은솔직히 나는 세한도 좋은지 모르겠더라 하는 것 하나와, 더 공부한다고 더 안다고 좋아질 것 같지도 않다는 것이다. 그냥 무식한 자의 넋두리라고 생각해 주길. .. 2024. 7. 18.
수레 발통 단 인도 힌두사원 요새 한국사회 일각에서 유행하는 이른바 이동식 주택 원조쯤이라 할까? 하긴 이 방식은 본래 유목민 게르나 텐트가 원조라 해야 할 것이로대, 희한하게도 인도에서 저와 같은 건축물이 있다. 카르나타카Karnataka 지역 함피Hampi라는 데 있는 고대 돌전차 Stone Chariot 라는 유산이라 그 정교함으로 유명하다. 이 돌 전차는 함피 북동쪽에 위치한 비탈라 사원 Vittala Temple 복합단지에 있다. 이 놀라운 전차는 비자야나가라Vijayanagara 시대 가장 매혹적인 조각 업적으로 통한다. 이런 돌 전차가 인도에는 세 군대 있다. 다른 두 전차는 코나르크Konark (오디사Odissa)와 마하발리푸람Mahabalipuram (타밀 나두Tamil Nadu)에 있다. 칼리나 라타 Kallina.. 2024. 7. 18.
예루살렘 로마 요새에서 발견된 아드리아누스 청동상 아드리아누스 황제의 동상.로마 서기 117-138년청동과 납높이 89, 너비 75cm이스라엘박물관, 예루살렘이 예루살렘 흉상은 고대로부터 살아남은 가장 훌륭한 청동 초상화 중 하나다.이러한 유형의 청동조각으로 보존된 것은 소수에 불과하며, 남아 있는 조각상 대부분은 대리석이 재료다.청동 혹은 황금과 같은 금속제품은 후대에 녹여서 재활용한 까닭에 살아남은 것이 드물다.이 청동상은 로마 제6 군단 Sixth Roman Legion(레조 6 페라타 Legio VI Ferrata) 분견대detachment가 사용하던 텔 샬렘Tel Shalem(이스라엘)에서 발견됐다.이 조각 파편은 캠프 중앙에서 발견되었는데, 아마도 프린키피아Principia(본부 텐트)에서 발견되었을 것이다.이 놀라운 동상은 황제를 숭배하는 .. 2024. 7. 18.
홍아미 고에쓰本阿弥光悦와 일본미 홍아미 고에츠[本阿弥光悦,1558~1637. 현행 외래어 표기법으로는 홍아미 고에쓰다]는 에도시대 초기에 활동한 "예술가"다. "예술가"라고 쓴 것은 본인이 "예술" 비스무리한 것을 한다고 자각하고 활동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아마도 일본미술사에서 최초의 인물 아닐까. 홍아미 고에츠는 일본에서의 명성에 비해 한국에는 잘 안 알려져 있다. 따지고 보면 소위 말하는 "일본미"에 대한 강렬한 자각은 이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림 도자기 일본도 만들기 공예 등 손을 안 댄 부분이 없다. 2024. 7. 18.
로마 제국의 절도사 시대, 그 화려한 서막 러셀 크로가 열연한 2000년 헐리웃 액션 블록버스터 《글래디에이터Gladiator》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랑 그 후계자 콤모두스Commodus 황제 시대 로마를 배경으로 삼는 정치 드라마거니와 내 기억에 철학가 성향이 짙기는 하지만 깡패 독재자임은 어쩔 수 없는 황제 아우렐리우스가 이제는 나 죽으면 독재정은 고만하고(지는 실컷 해놓고선) 카이사르 이전 공화정으로 돌아가라며 그것을 실현할 적임자로 자기 심복 막시무스를 지목한다. 하지만 권력은 오로지 내것이라며 이런 아버지를 용납할 수 없던 아들 콤모두스가 결국은 진중에서 아버지까지 암살하고 권력을 불법 탈취하고는 각종 포악한 짓을 일삼다가 글라디에이터로 전락한 러셀 크로한테 원형극장에 검투 경기에 나섰다가 개박살 나고 죽임을 .. 2024. 7. 18.
아킬레스가 노는 스키로스 섬 풍경과 로만글라스 1991년 독일 쾰른에서 발견된 이른바 로만글라스 잔이다. 스키로스Skyros 섬에서 생활하는 아킬레우스Achilles를 묘사한다는데 어떤 점에서 저 그림이 그런가? 이 생생한 색상은 연세가 1천700살이시렸다. 구체로는 서기 3세기 상반기 유물이라 한다. 스키로스와 아킬레우스 이야기란 간단히 요약하면 트로이 전쟁에 출전하면 자기 아들은 죽고 말리라는 어머니 예언에 따라 아킬레스가 스키로스라는 섬 리코메데스 왕 궁정으로 가서 여장을 하고는 그곳에서 탱자탱자 생활하게 되었다 하거니와, 저 그림 어떤 면에서 그런 면모를 느낄 만한지 나는 모르겠지만, 암튼 그렇다니 때론 믿어줘야지 않겠는가? 저 잔은 쾰른에 소재하는 리하르트 바그너 거리 Richard Wagner Straße를 발굴하면서 나온 ash cask.. 2024. 7. 18.
응징 협박으로서는 위험유산과 세계유산 삭제, 효용성이 있는가? 유네스코는 2009년 세계유산위 회의를 통해 압도적인 표결로 독일 드레스덴 엘베 계곡을 세계유산목록 World Heritage List에서 자랑스레 삭제했다. 나는 저를 삭제한 심리는 잘 모른다. 다만 내가 한결같이 엿본 심리가 있다. 이 심리는 문화재에 혹닉해서 문화재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간주하는 사람들한테 노골로 나타나는 현상인데 그 꼬소함이다. 이 꼬소함이야말로 보복심리의 원천이다. 간단히 말해 너희들 까불면 가만 안둔다! 딱 이거다. 그에 대해 유네스코가 할 수 있는 카드는 실상 별게 없다. 현재로 보면 두 가지 정도로 파악되는데 하나가 세계유산 삭제, 이는 없던 일로 하는 것이며, 그리하여 엘베 계곡은 2004년 세계유산 등재 이후 5년만에 그 목록에서 내려왔다. 내가 볼 때는 세계유산과.. 2024. 7. 18.
[스톤헨지 패러독스] (3) 죽쑤어 개도 못준 터널 계획안 너무나도 유명하지만, 스톤헨지는 골머리가 있다. 바로 이 인근을 지나는 도로 문제가 그렇다. 저 도로 이름이 A303라 해서 스톤헨지 남쪽을 지난다. 가장 가까운 지점 도로와 스톤헨지 거리는 불과 165m. 더구나 이 도로 놀랍게도 왕복 2차선, 편도 1차선이라, 적지 않은 병목현상이 빚어지곤 한다. 브리튼 섬 남쪽을 동서쪽으로 가르는 중요한 도로지만, 이는 오래된 도로가 겪는 숙명이다. 저 도로 이미 19세기에 자리를 잡았으니, 그때 무슨 차가 있겠는가? 수렛길이다. 그것이 지금의 자동차 도로로 발전했지만 도로 개선은 따르지 않았다. 더구나 아무리 영국사람들이라 해서 저 스톤헨지 휙 지나치기도 어려워, 도로에서 저 광경 바라보는 사람 적지 않아서 병목현상은 더 가중할 수밖에 더 있겠는가? 또 저기라 해.. 2024. 7. 18.
만년 전 신석기시대 괴베클리 Göbekli 신전 돌기둥에 새긴 문양들 튀르키예 괴베클리 테페 Göbekli Tepe 라는 세계 역사 미스터리한 유적에서 드러난 석주와 그에 새긴 문양이다. 이렇게 T자 모양으로 생긴 저런 돌이 등장한 시점은 놀랍게도 1만1천600년 전이다. 중동 저쪽이 아무리 금속기 등장이 빠르다 해도 저때는 이제 겨우 구석기를 벗어난 신석기시대다. 그런 시대에 저 큰 돌을 저리 다듬었고, 더구나 그 표면에 저리도 정교한 문양을 새겼으니 혹 모르겠다. 다이아몬드라도 어디에서 구해서 그걸로 때려 박고 긁어내고 쪼아내고 해서 저리 했는지는. 문양을 보면 아래쪽에는 큰고니 비스무리한 큰 새와 같은 날짐승을, 그 위에는 주로 길짐승을 표현하고자 했음이 분명하다. 어째 뱀도 보이는 듯하다. 괴베클리 유적이 어떤 데인지는 우리가 상세히 정리한 적 있으니 다음 참조 클.. 2024.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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