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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요새 그 전형 An Ancient Roman fort 이것이 그 전형이라 이를 카스트룸 castrum 이라 했으니 (복수형은 카스트라 castra) 이라 했으니 대략 평면 정방형으로 벽을 만들고 네 귀퉁이엔 망루를 세웠으며 그 밖으로는 해자를 파서 방어력을 강화하고자 했다. 이는 그 실례라 독일 바바리아 Bavaria 소재 Theilenhofen 근처 Iciniacum 요새 평면도로 19세기 (1879–1895)에 발굴되었다. 앞 모형에선 목책을 둘렀고 실제 그렇기도 했겠지만 벽돌로 쌓기도 했다. 저런 생채는 우리 개념으로는 보루 라 하는 편이 좋겠다. 2024. 6. 6.
아들 호루스한테 젖을 물린 이시스 이시스 Isis 여신이 그의 갓난 신성한 아들 호루스 Horus 에게 젖을 먹이는 장면을 형상화한 애뮬릿 amulet 금으로 만들었고, 후기 또는 프톨레마이오스 시대 Ptolemaic Period (기원전 7세기에서 기원전 1세기 사이)로 추정한다. 높이 2.3cm에 불과한 이 유물(N 4486)은 현재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Photo (edited for size) © Musée du Louvre / Christian Décamps 2024. 6. 6.
마리화나 잔뜩 안고 가신 2천500년 전 중앙아시아 백인 남자 투르판(중국 신장 지역) 인근 고비 사막 Gobi Desert (타클라마칸 아닌가?) 한가운데 양해고분 洋海古墓群 Yanghai 소재 무덤에서 발견된 코카사스 백인 미라 Caucasian mummies 중 한 분이다. 이 분 무덤이 놀라운 점은 무게가 1kg에 달하며 여전히 푸른색을 딴 마리화나 뭉치가 발견됐다는 사실이다. 골초셨나? 이 발견은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으며 "대마초 cannabis 가 정신 활동 목적으로 사용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기간을 연장"하거나 아마도 점을 보는 목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중요하다. 이 남성은 굴레 bridles, 냄비 pots, 활쏘기 장비 archery equipment , 공후 箜篌 kongou harp 등 희귀하고 가치가.. 2024. 6. 6.
등자 없이도 말 위에서 총만 잘 쏜 인디언들 조나라 무령왕과 기병, 그리고 등자 앞에서 썼지만 등자가 있어야 말위에서 활을 쏜다던가 말위에서 상대를 공격하는 동작은 등자가 나와야 가능했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당장 19세기 후반 미군 기병대와 치열하게 공방전을 벌이던 아메리카 인디언들도 말을 타고 백인들 쪽에서 흘러나온 라이플을 들고 싸움을 했는데 위 그림에서 보듯이 이들은 등자가 없이도 마상에서 총을 역동작으로도 쏘고 있었다는 말이다. 등자가 없으면 저 동작이 훨씬 쉽게 가능했겠지만 저 동작이 등자가 있어야 가능했던 건 아니다. 전국시대 조 무령왕의 기병이나, 한나라 때 곽거병 위청 등의 기병도 모두 등자가 없던 시대의 기병들이다. 등자가 혁신적인 건 옳겠지만 기병전의 양상 자체를 바꾼 것일지는 고민이 필요하다 하겠다. 2024. 6. 6.
[독설고고학] 동맥경화, 돌파구가 없다 왜 이런가?나와바리 철옹성주의 때문이다.무엇을 이리 이름하는가?고고학은 나만 해야 한다는 그 주의 아리 똘똘 뭉쳐 외부 침략으로부터 어케든 자기 밥그릇을 챙기고자 하는 똥고집을 이른다.이 똘똘주의가 예컨대 공무원 학예직 자격시험에도 작동해 각종 전공이라는 이름으로 특정한 대학 학과를 나오지 않으면 아예 지원자격조차 주지 않는 일로 발전한다.이것이 고도하는 전문성 때문인가? 천만에 내가 보는 한 전연 반대라 누구나 할 만한 일이다.그런 고고학, 더욱 정확히는 유독 한국과 일본고고학이 제자리 걸음 하다 못해 뒷걸음만 치는가?뭐 지들이야 나름 진보 발전한다 주장할지 모르나 한심하기 짝이 없어 볼 만한 연구라고는 코딱지도 없이 맨 양식타령 제조기술타령 국제교류타령이라남은 건 오직 덮어놓고 발굴밖에 없으니 그나마.. 2024. 6. 6.
조나라 무령왕과 기병, 그리고 등자 조나라 무령왕이라는 이가 있다. 전국시대 조나라의 군주로 호복胡服하고 기병을 육성하여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는 인물이다. 재위기간은 기원전 340-기원전 295년으로, 기원전 4세기대 인물에 해당한다. 우리 역사로는 조선후의 시대가 될 것이며조선후는 조 무령왕과 거의 비슷한 동시기를 살고 있었을 것이다. 흔히 기사騎射는 등자의 발명과 관련이 있다고들 이야기 한다. 그런데 등자는 선비족과 관련이 있어 기원전 4세기 때까지 올라갈 수 없으니, 조나라 무령왕의 호복기사胡服騎射란 말에 등자를 달아 놓고 말타고 활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며 조나라 군대는 무령왕의 변법 후에도 아마 등자 없이 말타고 활을 쏘았을 것이다. 가끔 보면 조나라 무령왕의 胡服騎射를 묘사한 중국 쪽 그림에 등자가 있는 말을 타고.. 2024. 6. 6.
[202405 항저우(杭州)풍경] (3) 남송 덕수궁유적지 박물관[南宋德壽宮遺址博物館] by 장남원남송대 도읍이었던 임안臨安은 지금의 항저우에 속하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Lin'an, Hangzhou - WikipediaDistrict in Zhejiang, People's Republic of China Lin'an District (simplified Chinese: 临安区; traditional Chinese: 臨安區; pinyin: Lín'ān Qū) is one of ten urban districts of the prefecture-level city of Hangzhou, the capital of Zhejiang Province,en.wikipedia.org과거 항저우를 방문할 때마다 남송대 어가御街나 궁궐터 발굴 현장을 조각조각 보곤 했다.2022년 그 중 덕수궁으로 추.. 2024. 6. 6.
한국 농업의 시작은 일본 중국과 어떻게 다른가 한국 농업의 시작은 일본 중국과 어떻게 다를까. 중국은 문명의 중심지로 농경과 가축의 도입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빨랐고, 심지어 어떤 작물과 가축은 중국 내에서 처음 재배와 사육이 시작되기까지 했다. 따라서 문명 중심지적 관점에서 중국의 농업문명사를 바라보는 게 옳다. 반면 일본의 경우는 조몽시대에 뭐 원시적 농경이 있었네 어쩌고 하지만 제대로 된 농경은 야요이시대와 함께 시작되었기 때문에 잡곡과 도작이 한꺼번에 거의 비슷한 시기에 다른 농경문화의 유산과 함께 일시에 열도로 한꺼번에 밀려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한국은 중국처럼 문명 중심지도 아니고, 일본처럼 완성된 형태의 농경이 밀려든 지역도 아니다. 여기는 농경의 구성요소, 잡곡, 도작, 그리고 심지어는 각 종 가축들까지도 하나씩 하나씩 따로 전.. 2024. 6. 6.
고인돌 보호장치 문제는 어찌 대처했을까? 강화 부근리 고인돌이다. 그냥 기념물인지 무덤인지는 모른다. 저 내부는 아무나 들락한다. 저게 무덤이라면? 도대체 저 상태로는 보호막이 전연 없다. 이 문제를 저걸 만든 사람들은 어찌 해결했을까? 그냥 새끼줄 쳐서 들어오지마! 했을까? 혹 흙을 덮어씌운 건 아닌가? 봉분이 다 날아가고 저것만 꼴랑 남았을 가능성은 없는가? 저 보호막 장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단 하나 분명한 점은 저와 같은 상태로는 전연 내부를 보호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2024. 6. 6.
아일랜드 고인돌 개황 아일랜드 거석기념물 폴나브론 고인돌 Poulnabrone dolmen 앞서 잠깐 사례 하나로 소개했지만, 우리네 고인돌과 아주 흡사한 그런 dolmen이 아일랜드 곳곳에는 현재 파악된 것이 170기 정도라 한다. 유의할 점은 저와 같은 고인돌이 아일랜드 문화권으로 묶음을 할 만한 데는 다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인근 브리튼 섬 곳곳에도 보인다. 그 개략하는 분포현황은 아래 구글어스로 위선 참조하고 ireland dolmenExplore ireland dolmen in Google Earth.earth.google.com 이에서 보이는 고인돌은 특히 명소로 꼽히는 곳만 솎은 데라 아래 지도를 보면 그 분포하는 양상이 아일랜드 전역임을 본다. 이 아일랜드 고고학이 쓰는 용어로 우리가 참조해야 할 법한 것이 매.. 2024. 6. 6.
바이킹 심장부 스웨덴을 관통한 알라 1200년 전 어떤 바이킹 여성 무덤에서 발견한 반지다. 스톡홀름에서 서쪽으로 25 km 떨어진 비르카 Birka 에 묻힌 이 여성 반지에는 '알라를 위하여' 혹은 '알라께'에 해당하는 글자를 새겨놨다. 도대체 어찌하여 알라가 바이킹 사회까지 침투했을까? 바이킹과 아바스 칼리프 Abbasid Caliphate 사이에 모종하는 접촉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저 반지가 흘러흘러 바이킹 심장부로 침투했을 것이다. 분홍색 보라색 돌이 특징인 이 은반지는 1872-1895년 발굴조사에서 나왔다. 바이킹 시대 비르카는 무역센터가 있었다. 저 바이킹 심장부에서는 심지어 부처님도 출현했다. 부처님이 수호한 바이킹선 2024. 6. 6.
왕비의 계곡과 네페르타리 무덤 고대 이집트 매장 패턴을 파라오 중심으로 보면 합장묘는 아니어서 왕과 왕비는 따로 묻혔고 묘지도 따로 있었던 듯하다. 이것이 왕가를 벗어나서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룩소르에 파라오 공동묘지를 왕들의 계곡이라 하듯이 왕비의 계곡이 따로 있었으니 이 퀸즈 계곡 Valley of Queens 은 룩소르 나일강 서안에 위치한다. 이곳은 신왕국 파라오 많은 부인과 자녀들 무덤이 있다(기원전 1550-1070). 계곡에는 70개가 넘는 무덤이 알려졌지만 람세스 2세 부인인 네페르타리 Nefertari 왕비 무덤을 포함해 일부만 일반에 공개된다. 2024. 6. 6.
조몬시대 : 팥을 최초로 재배했다는 일본 최근 일본의 보고를 보면, 다른 작물은 몰라도 팥은 세계 최초로 일본이 재배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조몽시대부터 재배했다는 것으로 몇 가지 증거를 들었는데 지금은 가물가물하니 구체적으로 적지 않겠다.  조몬시대라면 농사 같지도 농사를 짓던 시대인데, 이 시기에도 팥을 세계 최초로 재배했다니, 그럼 한반도는 놀고 있었을까? 한국 역시 잡곡 전반에 대해 한국이 원산지일 가능성을 하나 하나 다 짚어 봐야 한다.  예를 들어 콩 (대두). 이건 한반도 (혹은 남만주)가 원산지일 가능성이 정말 높아 보이는데, 아직까지 추측만 난무할 뿐 한 번도 제대로 된 연구가 보고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사실 이런 연구도 모두 해외의 경우를 보면, 고고과학에서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고고과학 전공자들의 열악한 .. 2024. 6. 6.
잠깐 탐조에 미쳤던 시절 몇 년 되지 않았지만 아승끼 전세겁 같은 시절 그때는 탐조랍시며 아주 잠시간 나로선 외유라 할 수밖에 없는 탐조探鳥 시대가 있었다. 사진이 부업이라 할 만치 그에 혹닉하기는 했지만 내가 특별히 새가 좋아 그리한 것도 아니며 이 분야 업계를 우리 공장에서 개척한 유형재 선배 말씀처럼 새 사진은 첫째 장비 둘째 인내 라 하거니와 둘 중 어느 하나도 구비하지 못한 내가 그리 나설 수밖에 없던 고역도 있으니 당시 나는 한류기획단장(나중에 K컬처기획단으로 변경)으로 어케 하면 k상품을 고민하던 찰나 탐조 역시 그 대상이 될 수 있겠다 싶어 손을 대기 시작한 데 지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짬나는 대로 쉬는 날이면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탐조랍시며 잠시 부산을 떨어본 데 지나지 않는다. 내가 쉬 저쪽을 단념한 이유도 애초.. 2024. 6. 5.
포도주를 담아 마신 몽고병 이런 길쭉이 병이 이른바 몽고간섭기 고려시대 문화층에서 더러 보이는데, 그것이 유래한 데가 몽고 원나라 제국이라 해서 우리는 흔히 몽고병 이라 부른다. 푸른 유약을 잔뜩 바르고 보라색 장식이 튀는 이 병은 이전 송나라 시대 준樽을 계승했지만 이렇게 길고 좁은 모양은 몽고족 유습이라 봐야 한다. 이와 비슷한 갈색 유약 병이 내몽골 무덤 (1312년)에서 출토되었는데, 포도주를 담는 데 사용했다는 네 글자가 확인된다.앞 사진은 13~14세기 몽고병으로 Hebei Cultural Relics Conservation Center 소장이다. 이 분이 바로 포도주 운운한 글자를 새긴 병으로 내몽골자치구 우란차부乌兰察布에서 발견된 1312년 원나라 시대 무덤 출토품이다. 2024. 6. 5.
아래 절강성 도작 보고에 대해 근간 Science에 출간된 절강성 도작 논문을 대략 읽어보았다. 저자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파악한 건지는 백프로 자신할 수 없지만 간단히 적어둔다. 1. 도작이 남중국에서 일어난 것은 확실하다. 고고학적으로도 그렇고 최근 유전학적 연구도 예외없이 남중국 지역을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남중국 어딘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이 논문에서는 절강성 유적에서 10만년 전부터 1만년 전까지를 대상으로 phytolith 분석을 통해 아래와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2. 절강성은 이미 10만년 전부터 야생벼가 있었다. 이는 상당한 이른 시기에 이미 양자강 유역까지 적응한 야생벼가 이 지역까지 북상해 있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야생벼가 없다면, 그곳은 도작의 기원지가 아니다. 이것은 벼만 그런 것이 .. 2024. 6. 5.
불가리아 땅 바바리안 트라키아가 남긴 황금문화 이 파나규리슈테 Panagyurishte 보물은 유럽 대륙에서 발견된 트라키아 Thracia 보물 중 가장 정교한 것으로 평가된다.센타우르 centaur 모양 손잡이가 있고, 와인을 따르는 입구는 네그로 Negro 머리를 상징한다. 헤라클레스가 뱀과 싸우는 장면을 장식했다.1949년 12월 8일 불가리아 파나규리슈테 마을 인근에서 우연히 발견됐다.이 의식용 용기 세트는 트라키아 통치자 집에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암포라 라이톤 amphora rhyton, 암컷 머리 모양 리톤 컵 3개, 전면에 동물 머리가 묘사된 리톤 3개, 피알레 1개 등 9개 그릇으로 구성된다. 총 무게는 6.164kg이며 기원전 4세기 말에서 3세기 초에 만들었다.가장 흥미로운 그릇 중 하나는 의심할 여지 없이 무게가 1695... 2024. 6. 5.
위섬 실드 Witham Shield, 멧돼지를 앞세운 켈트족 방패 영국 링컨셔 Lincolnshire 위섬 강 River Witham에서 1826년 발견된 이 방패는 기원전 4세기로 제작 연대를 추정한다.발견으로부터 거의 40년이 지난 1863년 도면(바로 앞 사진)을 보면 양식화한 멧돼지 그림이 당시에도 분명했지만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멧돼지 그림은 육안에서의 거의 사라졌다.대신 그 상세 사진을 보면 그 흔적이 희미하게 남았음을 본다(아래 사진).   이 멧돼지 도안은 켈트 부족 상징인 모커스 Moccus 신을 의미하거나 단순히 그 주인의 강인한 체력을 상징했을 수 있다는 해석이 있었다.돼지 신 모커스는 머큐리 Mercury 신의 갈리아적인 측면을 지녔을 것으로 생각되며, 링고네  족 the Lingones 사이에서는 멧돼지 사냥꾼들의 보호자였을.. 2024. 6. 5.
거대 남근을 수평자로 만든 힘! 남사스럽기는 하다만 결국 발기불능에 대한 배신 저항이라는 키워드가 흐른다. 발기불능은 곧 생산 불가라 그 역설에서 발기의 진정한 권능이 읽히니 무엇인가? 생산이지 무슨 개뼉다귀가 있겠는가? 이런 즉자성으로 텍스트나 도상은 접근해야 한다. 심오한 도상은 이내 버림받기 마련이다. 저 발기한 모습이 두더러진 도상은 이집트 신전 같은 데서 흔히 만난다. 저가 지도로나 지증왕도 아닐진댄 현실 남성으로 저런 우람함을 구피한 이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결국 신격이요 욕망의 투영이다. 저이를 민 Min(이집트 mnw) 이라 하는데 남신이라 관장하는 나와바리는 빤해서 생산, 곧 농업이나 질편한 파티 말고 뭐가 더 있겠는가? 저 양반 원초하는 형태는 고대 이집트에서는 왕조 이전 시대 predynastic period (기.. 2024. 6. 5.
아일랜드 거석기념물 폴나브론 고인돌 Poulnabrone dolmen 폴나브론 고인돌 Poulnabrone dolmen 은 아일랜드 클레어 카운티 부렌 Burren에 위치한 대형 거석 기념물로 단일 묘실 포털 무덤 single-chamber portal tomb 이다.이 지역에서 가장 황량하고 가장 높은 지점 중 하나에 위치한 이 기념물은 무거운 수평 덮개돌 capstone 을 지지하는 세 개 세움돌 standing portal stones로 구성된다. 기원전 4200년에서 기원전 2900년 사이로 추정되는 초기 신석기 시대 유산으로 추정한다.  최대 규모는 아니지만 아일랜드에서 확인한 172기 고인돌 dolmens 중에서 가장 유명하다.약 3억 5천만년 전 석회암 카르스트 지형에 들어섰니다.고인돌은 의식을 위한 장소, 영토 표시 또는 집단 매장지로 장소를 선택한 신석기 .. 2024. 6. 5.
흑사병의 공포가 낳은 마스크, 그리고 몽둥이 선페스트  bubonic plague, 즉 흑사병 Black Death 은 14세기에 최초로 발견되었으며 유럽 전체에 영향을 미쳐 유럽인 60%가 사망하고 총 8천만 명 중 5천만 명이 사망한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전염병이다. 전염병을 막기 위해 이 질병에 감염된 사람들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의사인 흑사병 의사 plague doctor 가 탄생했다이 의사들은 마을에 고용되어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막론하고 모든 사회 계층의 시민들을 돌보았다. 의사가 충분하지 않으면 감염자를 돕기 위해 다른 직업의 사람들을 고용했다. 이 작업의 위험을 감안할 때 작업을 수행할 준비가 된 사람을 찾기가 매우 어려웠고, 그들 중 많은 사람이 사망하고 다른 사람들은 도망갔다. 그들은 아픈 사람을 돌보고, 시체를 처리하고, .. 2024.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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