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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복원하는 연희전문 교장 윤치호 이 사진은 연희전문 교장 시절 윤치호라 해서 소개되곤 하는데 아마 원본 필름은 상실했을 것으로 보며 그걸 직접 현상한 것도 없는 걸로 알거니와 연대박물관에도 저 비슷한 사진을 걸어놓은 것으로 기억하니 짜증 나서 참을 수가 없어 ai 도움을 빌리니 이렇다. 왜곡 논란이 없지는 않겠지만 관상술을 하는 것도 아니니 사용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며 다만 원본 자체가 워낙 흔들렸으니 그런 까닭에 이를 본래였을 흑백으로 전환하니 아래라 조금 후가공이 있음 더 좋겠지만 저 거지 같은 사진에서 이런 모습을 추출한다. 우리가 혁명의 시대를 살고 있음은 틀림없다. 2024. 2. 16.
춘원 눈빛이 살아있네 감옥에 간 춘원 이광수 에모리 유학시절의 윤치호와 늙어 수염 덮수룩한 윤치호 할배 월남 이상재 감옥에서 웃는 우남 이승만 거지 같은 저화질시대 ai 도움 받아 청산한다. 2024. 2. 16.
구글어스를 변형한 평양 안학궁 구글어스로 탐방한 평양 안학궁 터를 앞서 보았거니와, 이건 같은 구글어스 지도에 일부러 강렬한 포토샵 기능을 주어 왜곡이라 할 정도로 처리해 봤다. 이게 장점이 있는데, 윤곽을 뚜렷이 더 분명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발굴조사 결과 드러난 성과를 토대로 초석들을 노출하고, 그 초석 자리에 현대 돌들을 깔아놨을 텐데, 그 건물배치는 이 이상 나올 것도 없다. 구글 이용하면 수치 측량도 가능한 시대다. *** previous article *** 구글어스로 탐구한 고구려 안학궁구글어스로 평양을 탐방한다. 툭하면 하는 북한 여행인데 묘미가 있다. 이 구글어스도 유료인가 전환하면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것으로 안다. 요새 계속 이 대성산 남쪽 기슭 안학궁을 탐방historylibrary.net 2024. 2. 16.
왕검성王險城과 王公设险以守其国 최근 고조선 왕검성(왕험성) 어원에 관련하여 중국 쪽에서는 이런 주장도 나온다. 王险城,是古朝鲜的都城,“王险”之名出自《易经》“王公设险以守其国”。 公元前108年,卫满朝鲜脱中华以自立受到西汉的征讨,王险城陷落,古朝鲜灭亡。 왕검성王险城은 고조선古朝鲜 도성都城으로 “왕험王险”이라는 말은 《易经》의 구절 곧, “왕공王公은 험난함을 쌓아 그 도읍을 지킨다”에서 왔다. 기원전 108년, 위만조선卫满朝鲜이 탈 중화해서 자립하여 서한西汉의 정토征讨에 이르러 왕험성이 함락됨으로써 고조선은 멸망했다. 왕검성은 다름 아닌 역경 이 구절을 따서 지었다는 이야기다. 왕검성에 대해서는 고조선의 군주의 명칭이 왕검이었다는 주장이 있고, 또 한국말 임금의 음사라는 주장도 있어 기왕의 통설과 부딛히는 이야기지만 흥미로운 부분이 있어 여기 .. 2024. 2. 16.
관찰은 자연과학의 기법만은 아니다 근대과학의 특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관찰에 입각한 경험론 만큼 위대한 로직은 없다. 현상에 대한 주의깊은 관찰 편견을 배제한 경험에 입각한 입론이야 말로 현대과학의 기초이다. 한국의 지적 풍토는 최소한 조선후기 이후에는 이러한 관찰에 입각한 지적 사유의 전통이 거의 없다. 우리는 흔히 주자학의 묵수를 이야기 하지만 이 주자학의 묵수라는 것이 결국 전술한 보고들에 대한 맹종이라는 점에서 현재 한국학계가 앓고 있는 중병과 사실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이런 면에서 이 블로그 김단장께서 주장하는 바, 기보고를 무시하고 1차 사료와 현상을 직시해야 한다는 말은 상당히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 필자가 아는 한 우리나라 사상계는 해외 사유에 대한 맹종, 입으로는 자주를 주장하지만 박래품 이데올로기에 대한 추종의.. 2024. 2. 16.
구글어스로 탐구한 고구려 안학궁 구글어스로 평양을 탐방한다. 툭하면 하는 북한 여행인데 묘미가 있다. 이 구글어스도 유료인가 전환하면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것으로 안다. 요새 계속 이 대성산 남쪽 기슭 안학궁을 탐방한다. 2024. 2. 16.
90년대 한국의 사상계 80-90년대 사상계는 필자도 거친 시대로 한마디로 쓰레기통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당시 한국 사상계는 한국사회의 현상에 대한 냉철한 관찰을 바탕으로 이론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그럴 듯한 학설, 특히 전 세계 좌파 학설을 무더기로 도입해 잡탕밥을 만들어 그걸 한국사회에 억지로 끼워 맞추고자 했다는 게 옳다. 이때문에 주장과 달리 한국사회가 망하지 않고 선진국으로 올라가도 반성도 없이 그냥 딴 구라를 부담없이 풀 수 있는 것이다. 왜? 어차피 내 이론도 아니고 남의 이론 가져다가 한국에 구라 풀어본 것이므로. 필자는 2020년 현재 인문학의 위기, 사회과학의 위기 운운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80-90년대의 그 엉망진창이었던, 어거지와 무분별한 외래 이론의 억지 해석이 난무한 시대를 돌이켜 .. 2024. 2. 16.
월북 언어천재 김수경, 그는 국어학자가 아니라 언어학자였다 北 언어학 설계한 '천재'…분단 시대를 살아간 지식인, 김수경 송고시간 2024-02-16 07:01 '남북 통틀어 20세기 최고 언어학자' 조명한 신간 '북으로 간…' 이산가족 등 한반도사 압축적으로 담겨…일본인 학자의 연구 결실 https://www.yna.co.kr/view/AKR20240215148700005?section=culture/scholarship 北 언어학 설계한 '천재'…분단 시대를 살아간 지식인, 김수경 | 연합뉴스(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일한다는 뜻을 가진 한자 '勞'는 단어의 가운데에서는 '로'로 표기하지만, 맨 앞에 올 때는 '노'로 읽는다....www.yna.co.kr 일본인 조선학도 이타가키 류타板垣龍太가 일본에서 3년 전에 낸 단행본이 국내에 근자 번역되어 소개.. 2024. 2. 16.
이승만-박정희 정권의 정책적 연속성 이승만-박정희 정권은 전후 도합 30년 정도의 세월인데 이 기간 동안 한국정부의 정책적 연속성은 눈부신 바 있다. 우리는 흔히 이승만 정권은 개판 오분전 자유당 시절로 간주하고 박정희 정권 때부터 산업화의 시대로 보는데, 진실은 그게 아니라 이승만-박정희 정권은 정책적 연속성이 매우 강한 시대로 하나로 통틀어 봐야 한다. 박정희의 산업화 드라이브는 이승만의 교육정책으로 막대한 숫자의 대학생을 양산하지 못하면 발도 못 떼었을 것이 틀림없다. 이승만은 자기가 길러낸 대학생에 의해 타도되었다는 것이 진실이다. 문맹자가 70프로를 넘나드는 나라에서 10여년 만에 대학생을 무지막지 어거지로 키워낸 최종 결과가 이승만 정권의 타도였다는 말이다.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은 전자를 후자가 부정하면서 성립된 것이 아니.. 2024. 2. 16.
불나국弗奈國 vs. 불내후不耐侯 고려사 본기와 고려사절요를 보면 현종顯宗 11년(1020) 6월 19일 기해己亥에 이르기를 불나국 추장 사가문沙訶門이 여진의 노울달奴鬱達來을 보내서 토산물을 바쳤다. 己亥 弗奈國酋長沙訶門遣女眞奴鬱達來, 獻土物. 라 했거니와, 이 불나국弗奈國이 다른 데 보이지 아니해서 그 정체를 추정하기 매우 곤란하거니와, 나는 이 대목을 볼 때마다 왜 자꾸만 이보다 800년을 거슬러 올라간 시점에 보이는 불내不耐가 어른어른하는지 모르겠다. 삼국지三國志 권 제30 위서魏書 30 동이전東夷傳 예濊에 이르기를 (위나라) 정시正始 6년(AD 245, 고구려 동천왕東川王 19)에 낙랑태수樂浪太守 유무劉茂와 대방태수帶方太守 궁준弓遵이 [단단대單單大]령領 동쪽 예濊가 구려句麗(고구려)에 복속하자, 군대를 일으켜 정벌하니 불내후不耐侯.. 2024. 2. 16.
외채 때문에 나라 망한다고 했던 자들 소위 80-90년대 논객 중에 외채 때문에 나라 곧 망한다고, 자립적 경제를 해야 한다고 설친 자들들은 지금 다 쓰던 붓 꺾어라. 되도 않논 소리로 민심이나 선동하고 다닌 인간들이 어떻게 자기가 한 소리가 몽땅 구라로 판명이 났는데도 안면 몰수하고 그냥 교수질을 해 먹고 있냐. 그래. 한국은 식민지반봉건사회냐 아니면,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사회냐? 이거 이야기 하던 놈들 다 어디로 갔냐? 당신들 아니라도 인문학 사회과학하면 잘 할 애들 젊은 애들 사이에 널렸으니까 이제 왠만큼 구라 좀 푼 것 같으면 족한 줄 알고 마무리들 해라. 솔직히 다 구라 아니냐? 하나도 맞는 게 없었잖아. #외채망국론 2024. 2. 16.
팩트부터 몽땅 다시 봐야 하는 한국근현대사 어차피 필자는 사학전공자도 아니고 본격적인 인문학자로 나설 생각도 없다. 그러니까 전공자도 아니니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말 하면서 살련다. 짧은 인생에서 제대로 된 정신 활동을 해 봐야 몇 살까지나 하겠나. 잘해야 75세, 80세 아닐까. 그러면 필자도 길어봐야 20년, 짧으면 15년 그나마 제정신에서 이야기 하다 저 세상으로 가게 되는 셈이다. 굳이 하고 싶은 말을 그냥 맘에 담아둘 필요가 없는 나이가 된 것 아닌가 한다. 각설하고, 한국사 특히 근현대사는 팩트부터 다시 봐야 한다. 특히 해방전후사-. 가정부터 잘못되어 있고 팩트도 어거지투성이다. 한국근현대사를 지금 포맷대로 따라가면 한국이 도대체 왜 20세기 이전에 지지리도 못살다가 느닷없이 잘 살게 되었는지 전혀 설명할 수가 없다. 한국인이 .. 2024. 2. 16.
신동훈: 고고기생충학-화장실 고고학 관련 논문 총 서지 목록 https://shindonghoon.tistory.com/37 신동훈: 고고기생충학-화장실 고고학 관련 논문 총 서지목록 필자의 연구실에서 출판된, 2024년 2월 현재까지 출판된 고고기생충학 관련 논문의 서지를 모두 싣는다. 한국과 일본학계에서 소위 말하는 "화장실고고학" 논문도 모두 포함이다. 구글링으로 쉽 shindonghoon.tistory.com 필자의 고고기생충학-화장실 고고학 관련 논문 총 서지 목록을 위에 링크로 올려둔다. 앞으로 단행본 한 권 정도가 추가 될 것 같은데 대략 연구가 거의 종결되었다고 보시면 될 듯하다. 필자로서는 고고기생충학-화장실 고고학에 대해서는 학계에 더 할 말이 없다. 위에 링크된 서지의 논문을 참고하시면 감사드리겠다. 2024. 2. 15.
이강인 논란에서 생각해야 할 국대 축구 뭐 상명불복 이런 차원의 문제라기보다 팀웍을 깨는 행동이 있다면 처음부터 오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에 부르는 쪽에서도 공공에 대한 봉사를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알고 가는 풍토도 좀 자제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국대에서 뛰는 것은 큰 명예이겠지만 선수 개인에게는 희생이라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옛날보다는 덜해졌지만 우리 사회는 공공에 대한 봉사를 조선시대 군역처럼 무보수 복역을 사키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풍토가 있어서 그 풍토 그대로 지금까지 이어진 것은 휴전선 너머 이북으로, 탈북자들의 이구동성 중 하나가 남한에 와서 제일 좋았던 것이 매일 일하면 어쨌건 보수가 있었단 거라. 국대도 선수들에게 저보수 봉사를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번에 그 어린 친.. 2024. 2. 15.
AI로 증폭한 13년 전 저화질 이란 답사 사진 13년 전 오늘 페이스북에 사진을 탑재할 때는 사진 원본이 아무리 고해상도라 해도 페북 스스로가 화상도를 저급하게 만들어 탑재했다. 내 기억에 저 두 장은 장당 5메가 이상짜리였다고 기억하지만 지금 다운로드해서 살피니 각각 100kb 남짓한 해상도라 인쇄물에는 도저히 사용할 수 없다. AI 증폭기술을 썼더니 각각 1메가 정도로 증폭된다. 그런대로 써먹기엔 크게 아쉽지는 않다.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이럴 줄 알았더래면 망실하고 말았을 사진이나 잔뜩 올려둘 걸 그랬다는 후회가 밀려든다. 저 사진들은 2008년 2월 페르시아문화탐방 때 찍은 것들로 당시 이란답사는 배기동 선생 인솔로 노땅 중에선 김병모 조유전 윤열수 선생이 가셨고 훗날 문화재청장이 되는 나선화 선생도 동행했으며 아랫것들로는 이한용 김충.. 2024. 2. 15.
당 고종-무측천 합장 서안 건릉 당 고종 이치랑 그의 마누라 무측천을 합장한 서안 건릉이다. 이 부부 참으로 요란시럽게 살았다. (2016. 2. 15)***이전에 갔던 것을 정리했을 것이다.하도 싸돌아댕겼더니 언제 어디를 갔는지도 다 아리송송하다. 2024. 2. 15.
교치僑置 하나로 모든 걸 퉁쳐 버린 낙랑 대방의 문제 이 문제, 곧 낙랑 대방이 어디메쯤 있었느냐 하는 논란은 언제나 나로서는 체증과 같아 좀체로 해결 기미를 찾지 못한다. 이 논란이 이른바 재야와 강단사학을 가르는 가장 주된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간단히 말해 재야 쪽은 요서 요동에 처음부터 있었다는 것이고, 강단 쪽은 평양 황해도 일대에 있었다고 보며 서로를 공격하는 재미로 산다. 이 논란과 관련해 나는 언제나 다음과 같은 말을 했으며 지금도 그런 생각은 변함이 없다. 둘 다 맞을 수도 있다. 딱 이거다. 낙랑 대방 위치 문제 관건은 313년 고구려 미천왕에 의한 이른바 한 군현 축출이라, 이것도 솔까 삼국사기 등등 이런 사실을 전하는 기록은 하나 같이 낙랑을 미천왕이 공격했다 했지, 그래서 축출했다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그냥 한 방 건드려 봤다 딱 .. 2024. 2. 15.
더 얻어터져야 하는 이강인 남영동 시저 인근 어느 갤럭시 매장인지 광고판이다. 통신사 광고인지도 모르겠다. 이번 아시안컵 축구대회 뒷말이 아연 무성하고 그 논란 핵심에 저 앳되디 앳된 이강인이 휘말려 있다. 손흥민이랑 멱살잡이하고 주먹질을 했다나 마나 한다. 급기야 이강인이 사과문을 올리는 사태로 발전했다. 젊은 혈기에 뭔 짓인들 못하겠는가? 아들놈이랑 동갑내긴데 문제는 누구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이강인 편이 없다는 사실이다. 질타 일색이다. 속내 곡절 개무시하고 새까만 놈이 것도 주장한테 대들었다는 걸 용납할 사람은 없다. 더구나 주장한테 대드는 일은 항명이다. 리버풀 시절 그 악동 수아레즈도 절대 레전드이자 캡틴 제라드 앞에선 찍소리도 못했다. 그건 복종이 아니라 존중이다. 치기라고 하자. 손흥민이라고 저 나이에 저러지 않았다.. 2024. 2. 15.
AI가 증폭한 윤동주 김별아 작가 포스팅을 보니 내일 2월 16일이 윤동주 시인 공식 사망일이라 한다. 각지를 저화질로 떠도는 동주 사진들을 모조리 AI로 증폭해 봤다. 그대로 클릭해서 다운로드 가능하니 사용하고픈 분들 맘껏 사용하시기 바란다. 2024. 2. 15.
각중에 궁금해서 물어본 안중근 키와 몸무게 현역에서 나름 기자랍시고 우쭐대며 현장을 뛸 때 이야기다. 근자 느닷없이 경기도박물관장으로 튄 이동국 선생이 예술의전당 서예관을 한창 말아드실 적에 안중근 유묵전을 대대적으로 개최한 적이 있는데, 그 유묵 중에는 널리 알려졌듯이 이른바 단지斷指 동맹이라 해서 조국 독립 의지를 다지며 동지들과 손가락 하나를 짤라 맹서한 그 흔적이 오롯하거니와 그는 유묵마다 거개 이 손바닥으로 낙관을 대신해 찍었으니, 그때 전시실을 채운 그 유묵에다가 무심코 내 손바닥을 펴서 얹어보고서는 놀란 점이 하나 있으니 이 유묵 손바닥은 말할 것도 없이 안의사 손바닥 실물크기를 말해줌이라, 한데 그에다 얹어 보니 내 손바닥보다 딱 마디 하나가 짧았다. 아 그때야 못 먹고 살 때니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영 기분이 묘했으니, .. 2024. 2. 15.
잡곡문화의 이해는 왜 중요한가 최근에 중국 쪽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잡곡기반의 황하유역과 도작기반의 장강유역이 심지어는 돼지키우는 법도 달랐다는 이야기가 있다. 생활양상 전반이 양쪽은 많이 달랐는데 그 이유는 역시 양측의 생산기반이 무엇이었느냐가 정말 중요했던 듯 하다. 도작기반 사회가 언제나 경제적으로 우위였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도작기반의 장강유역이 경제적으로 잡곡기반의 황하유역을 압도한 것은 어마무시한 세월의 뒤로 서기 천년기가 되어야 비로소 강남의 경제력이 중원을 앞질렀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우리는 잡곡 기반사회라고 하면 무조건 후진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고조선 고구려는 깡 잡곡이나 먹고 살던 사회라고는 생각않는다. 그래도 쌀농사 지었겠지.. 여기랑 비슷했겠지 하는 생각이 머리 .. 2024.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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