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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거사 이규보를 디립다 깐 농암 김창협 조선 후기의 문인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 1651~1708)이 중국과 한국의 선배들을 평하면서 우리의 백운거사 형님도 논한 적이 있다. 뭐라고 말씀하셨냐 하면 요사이 호곡壺谷 남용익(南龍翼, 1628~1692)이 엮은 《기아箕雅》의 목록을 보니 이규보의 문장을 우리나라에서 으뜸이라고 칭찬하였는데, 내 생각에 그 논의는 매우 옳지 못하다. 시작부터 쎄게 나오신다. 까겠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논지를 전개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보이는데....일단 읽어보자. 이규보의 시는 동방에 명성을 떨친 지가 오래되었으니, 선배 제공諸公들도 모두 따라서 미칠 수 없다고 추앙하였다. 이는 그의 재능이 민첩하고 축적된 식견이 풍부하여 많이 짓고 빨리 짓기를 겨루자면 당대에 따를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조어造語 능력.. 2023. 10. 10.
비碑의 입지조건이 곧 입비立碑 목적이다 광개토왕비가 능원에 위치하는 까닭은 그곳이 바로 광개토왕을 필두로 하는 고구려 왕가의 유택이기 때문이다. 왕가의 뿌리에 대한 정당성과 그 뿌리의 보호 관리를 담은 내용이 비문에 들어간 이유다. 나아가 그런 까닭에 그런 선정성을 담은 광개토왕비는 결코 다른 곳에 들어설 수 없었던 것이다. 무령왕 부부 묘권墓券이 무령왕 부부능에서 발견된 까닭은 그곳이 다름 아닌 이들의 유택幽宅인 까닭이요 동시에 그것이 공산성 같은 데 들어설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남산신성비가 명활산성에 있을 수 없고, 반대로 명활산성비가 남산신성 성벽에 들어갈 수 없다. 이는 비가 어디에 입지하는가가 곧 그 비를 왜 세워야 했는지를 푸는 열쇠임을 의미한다. 아쇼카왕비는 그 도시에서 사람 내왕이 가장 많거나 관람성이 뛰어난 곳에 건립되었.. 2023. 10. 9.
고고학이 등자에서 봐야 할 건 양식이 아니라 고통이다 이 역시 내가 매양 하는 말이지만 이참에 확실히 박아둔다. 또 전제하지만 나는 말을 키운 적은 없다. 다만 그 이종사촌인 소는 내가 계속 키웠으니 그걸로 갈음한다. 이 소 한 마리 키우는 일이 얼마나 고역인지는 여러 번 말했지만 위생 측면에서 아주 골치아픈 문제가 있어 그 똥오줌을 거름으로 쓴다 해서 그걸로 비약적인 생산력 증대 운운할지 모르나 이건 소나 말 한 번 키워보지 않은 놈들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기마민족? 기마병? 웃기는 소리하네. 그 말 한 마리 키운다고 도대체 몇이나 되는 사람이 희생해야 하는지 단 한 번만이라도 생각해봤는가? 소나 말이 쏴대는 똥오줌은 파리 모기를 듫끓게 하고 비만 왔다 하면 온동네 냇가가 똥물이었으니 마굿간에서 흘러내린 그 똥오줌 때문이었다. 우리 집엔 90년대 말까.. 2023. 10. 9.
성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옛 성당이 사적이 아닌 이유 (1) 개설 경북 칠곡군 성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옛 성당 Od Parish Church of Benedictine Abbey Waegwan 현지 입간판 소개장은 아래와 같다. 성 베네딕도회는 이탈리아 누르시아 출신 베네딕도 성인(St. Benedict of Nursia, 480-547)이 저술한 [수도규칙] 에 따라 수도생활에 전념하는 가틀릭교회의 수행 공동체이다. 1909년 독일 남부에 위치한 상트 오틸리엔(St. Ottilien) 수도원에서 두 명의 베네딕도회 수도자가 파견되어, 서을 백동(현 혜화동)에 수도원을 세우고 이 땅에 성 베네딕도의 가르침을 전하는 한국 최초의 남자 수도원이 시작되었다. 교육 사업을 하던 그들은 차츰 선교활동에 눈을 돌렸다. 1920년 함경도와 북간도 지방을 선교지로 얻어 1927년 .. 2023. 10. 9.
여전히 강고한 농촌사회의 물물교환 전통 순전히 내 고향 기준이기는 하나 나는 거개 한국농촌사회가 같은 과정을 밟았다 보는데 개중 하나가 강고한 물물교환 전통이다. 내가 어린시절까지도 우리 고향에선 돈 구경하기 힘들었고 그 사용은 극히 제한적이었고 모든 것은 물물교환에 따라 삶을 영위했으니 그러다가 화폐가 유통되기 시작한 시점은 거의 정확히 교육제도 변화와 일치한다. 엄마 아부지야 당연히 까막눈이시라 학교는 문전에도 못가봤고 큰누이는 아마 국민학교도 안나오거나 다니다 말았으며 죽은 형은 국민학교 겨우 나와 중학교인가 다니다가 도망쳤고 가운데 누이는 중학교, 막내누이는 고등학교, 남동생은 훗날 전문대학을 나왔지만 고등학교도 계우 마쳤다. 국민학교는 의무라 했지만 말뿐이었고 문제는 중학교 이후. 등록금을 화폐로 지불해야 했으니 이에서 돈이라는 게 .. 2023. 10. 9.
소와 말, 닭이 없는 농촌 우리나라 농촌은 자연과는 거리가 멀다는 외침을 김단장께서 계속 반복 주입하고 있거니와, 당연히 지금 시골에서 볼 수 있는 농촌의 정경은 "산업화의 산물"이다. 아니 조선시대의 농촌 풍경 역시 "근세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청동기시대의 농촌은 이렇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삼국지 동이전을 보면, 種禾稻·紵麻, 蠶桑·緝績, 出細紵· . 其地無牛馬虎豹羊鵲. 이라 하여 왜의 정경을 묘사하되, 쌀농사, 양잠까지 하고 있지만 소와 말이 없는 상황을 쓰고 있거니와 이 당시 한반도는 남부지역까지 이미 소와 말을 키우고 있었다. 그런데 한반도에 소와 말이 언제부터 있었을까? 쌀농사가 시작되면서부터일까? 그것이 아니었을 것이라 본다. 우리가 아는 농촌의 여러 구성요소들은 일거에 몽땅 들어와 이식된 것이 아니고 들어온.. 2023. 10. 9.
죽은 자도 산 자도 다 함께 안주安住의 집이 없고 바람만 부는 다부원에서 다부원多富院에서 by 조지훈 한 달 농성 끝에 나와 보는 다부원은 얇은 가을 구름이 산마루에 뿌려져 있다. 피아 공방의 포화가 한 달을 내리 울부짖던 곳 아아 다부원은 이렇게도 대구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었고나. 조그만 마을 하나를 자유의 국토 안에 살리기 위해서는 한 해살이 푸나무도 온전히 제 목숨을 다 마치지 못했거니 사람들아 묻지를 말아라 이 황폐한 풍경이 무엇 때문의 희생인가를 고개 들어 하늘에 외치던 그 자세대로 머리만 남아 있는 군마의 시체 스스로의 뉘우침에 흐느껴 우는 듯 길 옆에 쓰러진 괴뢰군 전사 일찍이 한 하늘 아래 목숨 받아 움직이던 생령生靈들이 이제 싸늘한 가을 바람에 오히려 간 고등어 냄새로 썩고 있는 다부원 진실로 운명의 말미암음이 없고 그것을 또한 믿을 수가 없다면 이 가련한 주.. 2023. 10. 9.
[photo] 부사 사과 만한 석류가 영글은 가을 꼬다리가 아니었던들 천상 사과라 했으리라. 덩치가 부사 같아 크고 붉다. 경주 서악마을 돌담길을 치렁치렁하며 무겁게 시간을 짓이긴다. 그래도 시간은 간다. 2023. 10. 9.
간고등어 냄새 풍긴 영령들이 산화한 다부동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곳은 동서고금 막론하고 길목이다. 공격하는 쪽은 어케든 이곳을 차지해야 하며 지키는 쪽은 어케든 이곳을 사수해야 한다. 한국전쟁 격전지 중 하나요 그 분수령을 이루는 다부동전투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입간판을 살핀다. 이곳이 무너지면 대구가 붕괴하고 대구가 붕괴하면 갈 데가 없다. 종군문인으로 그 현장을 답사한 이가 있다. 그는 썩어가는 군인들 시체에서 간고등어 냄새를 맡는다. 그 비릿하면서도 케케한 냄새. 오직 승리만 기억한다 하나 그에는 간고등어 냄새 풍기며 죽어간 영령들이 있다. 쳐들어간다. 한데 배가 고프다. 2023. 10. 9.
미지未知 말살하러 찾은 칠곡 가산산성, 죽어간 문화재를 조곡한다 어쩌다 보면 인연이 닿을 듯 말 듯하다 미지未知로 지나치는 데가 한둘이리오? 이곳 칠곡 가산선성 역시 그러해서 인근 동화사며 송림사며 하는 데 들리면서 표지판만 봐둔 곳이라 이제 더는 생소로 남겨둘 수 없다 해서 경주서 김천 가는 길에 기어이 들렀거니와 막상 현장서 안내판 보고선 둘레 11키로라 해서 완주는 단념하고 복원 구간과 본래하는 지점이 적절히 섞인 남문 구간과 그 인근 폐허가 된 성벽 구간 일부만 맛뵈기로 봐둔다. 붕괴한 구간은 완전히 파괴됐으니 일반인 눈에는 그냥 폄범한 돌무더기일 뿐이라 이 가산산성이 한국문화재 정책사에서 중요한 지점은 산성 보호 표준작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흐지부지한 느낌이 있는데 문화재청이 김계식 보존국장 시절 더는 21세기 성벽 만드는 일을 용납하지 못하겠다 하며 그 .. 2023. 10. 9.
[한문강화] 형태에서 소리로, 고증학의 본령 우리는 흔히 淸代 학풍의 최대 특징으로 고증학을 든다. 고거학考據學 혹은 훈고학訓詁學이라고도 하는 고증학考證學이란 무엇인가? (이들을 흔히 주된 활동연간을 들어 건륭 가경 연간이라 해서 건가학파乾嘉學派라고도 한다.) 이르노니 형태에서 소리로의 일대 전환이다. 전대흔钱大昕(1728~804)이며 단옥재段玉裁(1735~1815) 왕념손王念孙(1744~1832) 왕인지王引之(1766~1834) 등의 18세기 고증학의 기라성들의 글을 보면 "봄눈 녹듯이 의문이 사라진다"는 표현이 일대 유행임을 볼 수 있거니와 고증학은 그 근간이 문자학이다. 물론 이 문자학에 대한 비판이 드세자 대진 같은 이는 "그래?" 하는 심정으로 "맹자소의의증"이라 해서 문자학으로 밝혀낸 성과를 맹자 철학 전반을 재해석하는 일대 금자탑을 이.. 2023. 10. 9.
[독설고고학] 보존과학을 진단한다 (2) 주연으로 서야 하는 보존과학[1] 앞선 글에서 나는 이른바 보존과학으로 통칭하는 문화재학 자역과학이 처한 상황을 이른바 정통 문화재학 범주로 취급하는 고고학이니 하는 분야를 빛내게 하는 데코레이션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을 했거니와(맨 뒤에 첨부하는 글 참조), 그를 이어 그렇다면 보존과학이라 통칭하는 문화재학 관여 자연과학 문제는 없는가? 이 대목을 점검한다. 나아가 이번 글은 앞선 신동훈 선생 글, 곧  고고학에 드리는 고언 (6): 아웃소싱 고고학에 드리는 고언 (6): 아웃소싱*** Editor's Note *** 필자가 이 글을 통해 주창하는 요지는 고고학은 자연과학과 접목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며 실제 외국 주요 대학 고고학과 교수진 구성 혹은 전공을 봐도 실상 고고학은historylibrary.net 그에 대한 김태식의 보.. 2023. 10. 9.
동이 비우니 달도 비어 by 이규보 산에 사는 스님 달빛 탐내어 山僧貪月色 한 동이에 달 물 함께 길었네 幷汲一甁中 절에 이르러 비로소 깨달으리 到寺方應覺 동이 기울면 달도 빈다는 것을 甁傾月亦空 ㅡ 이규보, 후집 권1, 고율시古律詩, 2수 중 1수 *** 백운거사 숱한 시 중에서 절창으로 꼽는다. 2023. 10. 9.
연근이 희미하게 일깨운 계급의식, 벤또모노가타리 弁当物語 일전에 내가 희미하게나마 계급이란 걸 어떻게 의식하기 시작했는지 잠깐 얘기한 적이 있거니와, 그에서 나는 벤또 또한 그런 의식을 일캐웠노라 한 적 있다. 그런 예고에 제법 깝죽대는 언론계 모 후배가 계란으로 떡칠한 쏘세지 동그랑땡을 언급했지만,벤또가 나에게 안겨준 굴욕감은 동그랑땡이 아닌 연근蓮根이었다. 고교 진학과 동시에 대덕 산골을 나와 김천 시내에 자취를 하게 된 나는 도시락도 내가 밥을 해서 싸다녀야 했지만 그것도 1학년이 지나고 2학년이 되어서는 아예 싸가지 않는 날이 많았으니, 그렇다고 내가 집이 풍족한가 하면 김천고등학교 구내매점에서 파는 라면 하나 사 먹을 돈이 없었다. 그러니 나는 고학년이 될수록 점심을 굶는 날이 많았고 벤또를 싸가는 날도 변변한 반찬이 없어 실로 난감하기만 했다. 그렇.. 2023. 10. 9.
고고학에 드리는 고언 (6): 아웃소싱 *** Editor's Note *** 필자가 이 글을 통해 주창하는 요지는 고고학은 자연과학과 접목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며 실제 외국 주요 대학 고고학과 교수진 구성 혹은 전공을 봐도 실상 고고학은 자연과학으로 분류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고고학 현실은 어떤가? 자연과학에 퉁치는 부문들은 우리가 할 일 아니라고 그 바깥 세계에다 던져버린다는 것이니 이리 되니 고고학이 스스로 제밥 그릇을 차버리고 스스로 협소함에 갇히고 말았다는 뼈아픈 지적이다. 나아가 이 부문은 고고학과 협업하는 자연과학, 곧 문화재업게선 보존과학이라 통칭하는 분야의 한계와도 밀접한데 이 대목은 편집자가 따로 할당해서 별도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 고고학에 드리는 고언 마지막 이야기다. 이 이야기도 아주 오랫동안 고고학을.. 2023. 10. 8.
농부도 아닌 먹물인 내가 할 일은 뜬구름 잡기라는 정이천程伊川 이천선생(伊川先生, 程頤) 이르시길, “지금 농부들이 심한 추위와 무더위와 장마에 깊이 밭 갈고 잘 김매어서 파종한 오곡을 내가 먹고, 온갖 장인이 솜씨를 부려 만든 기물을 내가 사용하고, 군인이 무장하고 지키는 나라에 내가 편안히 살고 있는데, 만일 이처럼 한가롭게 세월이나 보낸다면, 이는 바로 천지간에 한 마리 책벌레가 되는 것이다. 공덕과 은택이 사람들에게 미치지도 못하고 별다른 일을 할 수도 없으니 오직 성인이 남긴 글을 모아 엮어서 보탬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今農夫祁寒暑雨、深耕易耨、播種五榖。吾得而食之。今百工技藝作爲器用。吾得而用之。甲冑之士披堅執銳以守土宇。吾得而安之。却如此閒過了日月、即是天地閒一蠹也。功澤又不及民、別事又做不得、惟有補緝聖人遺書、庶幾有補爾。] 라고 하였다. 《二程全書》 卷18 〈遺書·伊川.. 2023. 10. 8.
고고? 미술? 고건축? 이런 걸로 살아남을 수 없다 이 얘긴 누누이 했다. 그래도 세상 물정이 어찌 돌아가는지 모르는 이 천지라 세상은 이미 heritage로 재편했다. 저 조막디만한 것들로는 암것도 할 수 없다. 고고학이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미술사가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건축학이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가야고분? 고고학 한계는 단적으로 드러났다. 지들이 단 한 번이라도 ouv를 고민한 적 있었던가? 지들이 세계유산이란 걸 단 한 번이라도 고민한 적 있었던가? 그걸로는 암것도 할 수 없단 걸 절감했으면 바꿔야 할 것 아닌가? 이번에 제대로 경험했을 거 아닌가? 그러면 커리큘럼부터 재편하고 나부터 바꿔야 할 거 아닌가? 구닥다리 같은 토기론 때려치고 시대 추세 맞는 커리큘럼으로 재편하고 그런 구닥다리가 전부인양 살아오며 개사기친 나 자신부터.. 2023. 10. 8.
호수로 둔갑한 장경호, AI 번역 발전할수록 영어는 더 잘해야 한다 이게 웃기는 듯하지만, 알아야 면장을 한다고, 영어 역시 마찬가지라, AI 자동번역이 발달할수록 그것을 잘 이용하기 위해서는 나는 그만큼 더 영어를 잘해야 하는 숙명이 있다. 이거 믿고 넋 놓고 있다가 개망신 당하기 십상이라, 예컨대 우리네 동네에서 비교적 자주 등장하는 석가탑이니 다보탑이니 하는 탑만 해도, 우리가 말하는 탑이라 하면 stupa 혹은 pagoda 정도가 되면 좋겠지만, 넋 놓으면 tower가 되어버려 에펠탑과 같은 기념탑으로 둔갑하고 만다. 물론 우리가 말하는 승탑을 저리 말해도 아주 썩 틀린 말이라고도 장담하기 힘들겠지만, 전연 의도하지 못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이는 아주 간단한 보기지만, 세부로 들어가서는 복잡다기하기만 해서, 고고미술사만 해도, 우리네 특유한 표현들이 있어 그.. 2023. 10. 8.
축구 야구 우승 원동력은 결국 군대였다 [아시안게임] '금메달+병역혜택' 이강인에게 'PSG+동료들 축하인사' 송고시간 2023-10-08 09:09 음바페·하키미·나바스·베라티 등 전·현직 동료 축하 메시지 https://www.yna.co.kr/view/AKR20231008011400007?section=search [아시안게임] '금메달+병역혜택' 이강인에게 'PSG+동료들 축하인사' | 연합뉴스(서울=연합뉴스) 이영호 기자 = 이강인(파리생제르맹)의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금메달 획득 소식에 소속팀 전·현직 동료들의 축하 ...www.yna.co.kr 볼짝 없다. 이기기 위해서는 동기 부여가 있어야 하며, 동기부여로 성인 남자한테 군대 면제만큼 달콤한 카드 없다. 어느 야구대회였던가? 껌 질겅질겅 씹는다 해서 개막살난 그 .. 2023. 10. 8.
사진, 내가 조작하는 팩트 구절초 피는 시즌이라 이걸로 근래 한창 재미 본 데가 경주 서악마을 이 동네 걸물 진병길이 배후엔 신라시대 무덤 밀집하고 전면으로는 서악동 고분군이라 해서 이른바 태종무열왕릉이니 해서 중고기 신라시대 대따시 무덤 한 줄로 나란히 선 모습을 조망하는 도동서원 인근 선도산 기슭 밭떼기에다 봄이면 작약 심고 가을이면 구절초 피워 한 시대를 풍미했거니와 저 모습만 보면 와 올해도 어김없이 구절초 잔치겠거니 하겠거니와 그래 이런 사진으로 장난 치면 얼마든 그러리라 하겠거니와 실은 이는 교묘한 사진 작란作亂이라 그렇다면 실제 지금 현장은 어떠한가? 이 꼴이라 올해는 비가 많이와서 그런지 구절초 농사 망쳤다. 덜 피었을 수도 있겠지만 근래 서악마을 가을 풍광으로 익숙한 그 모습은 아니다. 사진이 실상 얼마나 정치적인.. 2023. 10. 8.
타다 남은 활옷, 문득 떠오르는 옛날 이야기 1950년대 말, 의류학자 난사 석주선 선생은 제자들과 함께 창덕궁을 드나들고 있었다. 창덕궁 창고에서 먼지를 벗삼고 있던 조선시대 공주의 혼례복-활옷을 복제하기 위해서였다. 1:1로, 옷감부터 수놓는 법, 수실 색깔까지 그대로 만들기로 했다. 당연히 실측이 뒤따라야 했고, 당시 창덕궁 안에 있던 구황실재산사무총국의 협조를 얻었다. 어느 날이었나, 난사 선생이 작업실에 와 보니 작업 중이던 활옷이 어딘가 달라보였다. 수실 색이 바뀐 건 물론이고 수놓은 무늬나 배색이 천양지차였던 것이다. 이에 선생은 그야말로 그 수실을 '쥐어뜯었다.' 그리고 제자들이 들어오자 매섭게 꾸짖었다. "우리가 하는 것은 옛 어른들의 솜씨를 재현하는 것이지 창작이 아니다." 제자들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저.. 2023.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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