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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 부는 K-방산 열풍 by 유성환 한때 아나톨리아 군사대국 히타이트와 건곤일척乾坤一擲의 맞짱을 뜬 고대 군사대국 이집트. 기원전 1300년경 람세스 2세(Ramesses II: 기원전 1279-1213년) 치세 육군은 약 100,000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렇다면 현대 이집트 군사력은 어느 정도일까요? 미국 민간 군사력 평가기관 GFP(Global FirePower)에 따르면 현대 이집트, 즉 이집트 아랍 공화국(Arab Republic of Egypt) 군사력은 2023년 현재 전세계 145개국 중 15위인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집트 군은 육해공군 그리고 항공방위대로 구성되는데 특히 항공 전력이 모든 항공작전을 책임지는 공군과 영공 수호를 주 임무로 하는 항공방위대로 나뉘어 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1948년 제1차 중동전에.. 2023. 5. 29.
코로나 시대와 박물관 : 3년 간 박물관들의 좌충우돌 코로나가 한창 때의 일이었다. 의료진도 그렇지만 공무원도 코로나 관련 업무에 대거 동원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나 같은 지자체 소속 학예직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코로나 확진자 동선 추적 업무를 도왔으나, 나중에는 코로나 확진자들이 격리된 생활치료센터 업무에 차출되기에 이르렀다. 낮밤 3교대로 돌아가는 일이 버겁기도 했지만, 일주일간 멀리 나가서 하는 일인지라 업무가 바쁜 이들에게는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러자 내부 게시판에는 이런 말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코로나 때문에 박물관, 미술관들은 문 닫고 있지 않나요? 거기는 일이 없을 텐데, 거기부터 보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 외에 익명 사이트들에서도 박물관, 미술관 혹은 도서관 사람들은 코로나 때문에 쉬고 있을 텐데 부럽다는 글이 종종 보.. 2023. 5. 28.
[Discover Korea] Mallard chicks playing in stream When you see these mallard chicks playing in Cheonggyecheon Stream, you are mesmerized. 청계천 노니는 이 청둥오리 병아리들을 보면 넋을 잃는다. 2023. 5. 28.
우골탑과 사람 값 (경향신문 1978) 전술한 전종휘 선생은 일제시대 의대를 졸업하고 해방이후 한국 전염병 의학 토대를 닦은 분 중의 한 분이다. 이 분 이야기 중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어 적어 둔다. 전종휘 선생 이야기를 다른 분이 전언하여 기사화한 이야기다. 이것이 1960년대 이야기인데, 이렇게 한번 죽으면 일가친척이 모두 모여 울었다는 그 소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 소가 팔려 집안 아들을 대학에 보냈다. 그게 우골탑이다. 그리고 지금은 위 기사에 나오는 두 가지 문제, 의료와 교육문제를 다 잡은 상태인데, 한국의 근대화가 일본의 근대화보다 더 위대한 과정이었다고 필자가 보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이다. 2023. 5. 28.
일제시대 한국인 의학자의 평 이건 전적으로 필자 개인의 경험이긴 한데, 일제시대를 경험한 한국인 의학자의 경우 일본인 교수, 동급생을 좋게 평가하지 않는 경우가 꽤 있다. 물론 일본인 한 명 한 명에 대해 모두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교수들 중에도 인격을 높이 평가하는 경우도 많지만, 전반적으로 일제시대 당시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 상당히 많다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일본인 동급생에 대해서는 별 애착이 없는 듯 한 느낌도 있고. 이건 일제시대에 가장 부조리함을 느낀 사람들이 과연 누구겠는가 하는 부분과도 같은 이야기인데, 조선인에 대한 차별이라던가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다던가, 조선인을 우습게 본다던가, 이런 부분은 사실 역사를 쓰는데 있어서는 구조적인 부분으로 이해하기는 어려운 부분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인 평이기 때문이다) 조선의 수.. 2023. 5. 28.
상주박물관이 준비한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1664~1732) 관련 문건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1664~1732)를 저 박물관은 다음과 같이 소개하면서 첨부물과 같은 문건을 전시한다. 저 양반 제자 이익이 현창되면서 더 현창된 측면이 있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중서仲舒, 호는 식산息山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1697년(숙종23) 상주尙州 노곡魯谷으로 이주하였다. 당쟁이 극에 달한 18세기 때 남인이지만 북인 소론 노론 등과의 교류를 통하여 학문적 자유를 고수한 학자다. 이기론理氣論에서는 이황李滉과 이이李珥의 이론을 절충하고 중국과 동국 제가의 설에서 미진함을 보완하여 자가설(일명 천도유경설天道有敬說)을 수립하였다. 실학관에서는 물질적인 이용후생利用厚生에 앞서 정신적인 면을 강조한 실심실학實心實學을 강조함으로서 윤휴尹鑴와 박세당朴世堂에서 싹튼 실학 체계를 잡아 이익李瀷을 거쳐.. 2023. 5. 28.
6월 16일 서울대병원 의학박물관 일전에 말씀 드린 "서울의대 해부학교실 77년사"가 개막합니다. 큰 박물관의 대형전시회에 비교하면 작디 작은 전시회입니다만, 전시의 촛점을 이전과는 달리 해방이후 한국인의 손에 의한 의학발전에 맞추었습니다. 최근 이 블로그에 제가 계속 일제시대와 해방이후 한국의 발전에 관심을 둔 글을 올리는것도 이 작업과 전혀 무관하다 할 수 없습니다. 현재 전시회 준비 막바지 작업 중인데 확정되면 다시 소식을 올리겠습니다. P.S.1) 이 주제는 필자의 60대 이후 연구작업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향후 이 주제는 필자 연구의 한 부분이 될 것인데 더 자세한 내용은 논문이나 단행본, 그리고 이 블로그에서 계속 써 나갈 생각입니다. P.S.2) 문헌에 기반한 조선시대-일제시대-현대한국의 질병과 건강현황에 집중하되 결국 그 .. 2023. 5. 28.
일제시대 아웃사이더 사실 이것은 일제시대 조선 학계의 상황 전반과 관련된 일인데 정도의 차는 있지만 일제시대 학계마다 조선인은 거의 아웃사이더였다. 전술한 역사학의 경우 해방이후 서울대 국사학과의 주축이 되는 조선인학자들은 예외없이, 거의 모두 일제시대에는 아웃사이더였다. 지금이니 양자를 대척점에 놓고 이야기 하는 것이지 일제시대 당시에는 조선인 학계란 일본인 교수들 입장에서 치지도외였을 것이다. 이병도 등 사학자로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들도 그러할진대 이것도 아닌 소위 국학을 연구하는 양반들 이야기는 그러니 제대로 먹힐리가 없다. 조선인학자들이 발표할 지면은 조선, 동아 등 신문을 빼면 아마 진단학보나 각종 동인지 정도가 전부아니었을까. 이것은 의학도 그렇다. 경성제대 의학부, 경성의전 등이 거의 일본인 교수들이었기 때문에.. 2023. 5. 28.
우복종가愚伏宗家 대산루와 계정 對山樓附계정溪亭 대산루와 계정 對山樓附계정溪亭 Daesannu and Gyejeong Houses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6호, 상주시 외서면 우산리 193-1 Gyeongsangbuk-do Tangible Cultural Heritage No. 156 193-1, Usan-ri, Oeseo-myeon, Sangju-si 대산루는 조선시대 이조판서, 홍문관 예문관 대제학(정2품)을 지낸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의 독서 강학처로 6대손 입재立齋 정종로鄭宗魯(1783~1816)가 전보다 크게 중창한 가옥이다. 이 건물의 좌측 언덕 위에는 우복종가愚伏宗家와 뒤쪽에는 도존당道存堂 및 고직사가 있다, 때산루는 단층과 2층 누각이 연접한 T자형 건물이다. 단층은 정사靜舍로 강학공간, 누각은 휴양 접객 장서 독서 등을 위한 복합용도.. 2023. 5. 28.
상주 우복 종택 상주 우복 종택 尙州愚伏宗宅 Ubok Head House, Sangju 국가 민속문화재 제296호, 상주시 외서면 채릉산로 799-46 외 National Folklore Cultural Heritage No. 296 상주 우복 종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예학의 대가인 우복 정경세(1563 ~1633)의 종택으로, 종택으로서 갖추어야 할 건축적 요소들을 잘 간직하고 있다 종택은 우복산과 이안천을 낀 배산임수의 자리에 안채, 사랑채, 행랑채, 사당 등이 있으며, 영조가 하사한 사패지에 우복의 고손자인 정주원(1686~1756)이 지었으며, 사랑채의 당호는 산수헌이다. 종택보다 먼저 지은 대산루(1602년)와 계정(1603년)은 처음에 독서공간으로 사용되다 나중에는 종택의 별당과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으로 사.. 2023. 5. 27.
일제시대 한국사연구 일제시대 한국사 연구는 왜 일본인에게 압도당했는가 공학 의학 등 자연과학이야 어차피 수준차가 컸던 분야라 그렇다고치고, 한국사 관련은 말하자면 한국인의 나와바리인데 왜 이렇게 일본인 학자의 주장이 우세한 지경에 있었을까. 요즘 이 부분에 대해 일제시대의 글을 보면서 조금 이해가 가는 바다. 한마디로 조선인 학자들은 일차사료 자체도 많이 접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이병도도 진단학회를 만들고 싶어서 만든 것이 아니다. 일본인 주류 학회에서 제대로 활동이 안 되니까 만들 수 밖에 없었던 것 같고. 지금은 이병도 선생이 무슨 식민사학의 괴수처럼 되어 있지만, 당시 신문을 읽어 보면 그도 경성제대에 "일반인"에게도 책 좀 보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아웃사이더에 불과했다는 말이다. 해방 전에 한국인 손으로 파본 유적 .. 2023. 5. 27.
경성제대 도서관 사실 이것도 굉장히 중요한 사안인데 전혀 분석되지가 않았다. 다행히 경성제대 도서관에 있던 구 장서는 현재 목록까지는 구비되어 얼마전 서울대에서 간행되었다. 아래에 1940년 당시 이병도가 바라보았던 경성제대 도서관에 대한 감회를 적어둔다. 조선일보 기사다. 이병도의 이야기는, 경성제대 도서관에는 도서관이 충실하다. 이를 공개해서 맘대로 볼 수 있게 해 달라. 조선은 고가의 책을 구입하기 어렵다. 경성제대의 도서관을 공개해 달라. 요컨대, 이병도 정도의 당시 조선인 중 탑클래스 연구자도 경성제대 도서관 장서에는 맘대로 접근이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조선인은 1940년 당시 경성제대 교수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조선인이 아무리 날고 뛰어도 학술적 성취를 이루기 힘들었다는 이야기와 같다. 2023. 5. 27.
일제시대는 어떻게 비판해야 하는가 오늘 김단장님 블로그에 글을 많이 남긴 것 같아 이제 간단하게 쓴다. 일제시대는 어떻게 비판해야 하는가. 일제시대 비판은 그 시대 조선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니라 일본사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서 시작해야 한다. 예를 들어 조선의 교육제도는 조선만 달랑 봐서는 절대로 그 숨겨진 의미를 알 수 없다. 일본의 메이지사, 그리고 그들의 교육사를 봐야 비로소 일본 식민통치의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조선만 죽어라 파면 식민통치의 구조가 보일까? 최근 일각에서 나오는 식민지 무조건 악마론과 식민지근대화론은 한국학계의 일본사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이유가 크다. 조선만 놓고 보면, 그것이 식민지악마론이건 식민지근대화론이건 간에 그 구조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동아시아 전체를, 세계사 전체.. 2023. 5. 27.
일제시대 전문학교 및 학생 수 일제시대 전문학교 및 학생수. 조선인 학생수는 1937년 현재 2600명 정도로 대부분 사립 전문학교에 몰려 있다. 경성제대 예과 입학생의 절반과 공사립 전문학교 졸업생 2600명이 조선인으로 매년 대학진학이 가능한 숫자의 전부였던 셈이 되겠다. P.S.1) 1944년에는 연희전문과 보성전문이 문을 닫았다. 2023. 5. 27.
식민지시대 연전과 보전: 고졸자 그러나 후순위 앞서 식민지시대 고보를 고등학교로, 전문학교는 대학으로 많이 착각한다고 하였다. 이제 식민지 시대 전문학교에 대해 이야기 해 보자. 제일 유명한 양대 사학, 연전과 보전에 대한 이야기다. 연전과 보전은 졸업할 때 학사학위를 받지 못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학사학위는 대졸자에게만 주어지기 때문이다. 학사호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조선에서는 경성제대 졸업자 뿐이었다. 대학이 그거 하나였기 때문이다. 연전과 보전은 졸업장이다. 학위기가 아니라. 연전과 보전을 졸업하면 고등학교 졸업 학력이 인정되었다. 학력으로만 보면 경성제대 예과 졸업생과 동등했던 셈이다. 그렇다면 연전과 보전 졸업생은 경성제대 진학이 가능했을까? 거의 불가능했다. 이유는 경성제대 본과는 원칙적으로 예과졸업생 우선, 그 후순위로 구제 고등학교.. 2023. 5. 27.
일제시대 교육제도: 착시의 이유 일제시대 교육제도 전반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경우, 식민지 조선에는 초등, 중등, 고등, 대학교육이 모두 있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런 착시가 일어나는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우선 초등교육인 소학교 졸업후 조선에서는 고등보통학교 (고보)에 진학하였는데 이름이 비슷해서인지 이 학교를 대개 고등학교로 인식한다. 특히 해방이후 양정, 경기 고보 등이 모두 고등학교로 바뀌면서 일제시대의 양정고보, 경기고보를 고등학교로 인식한다. 하지만 일제시대 고보는 중학교 과정이고, 고등학교는 따로 있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고보라고 인식하는 이유 중 하나가 한국에는 "고등학교"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 내지에는 고등학교가 많았다. 이 고등학교를 졸업해야 "대학"진학이 되었다. 이 고등학교에 대응하는 조선의 교육기.. 2023. 5. 27.
한국사: 서바이벌의 제왕 20세기까지의 한국사를 단 하나의 영어 단어로 뽑아보라면 필자의 경우 단연코 "Survival"이다. 한국사는 살아 남기 위해 모든 것을 총동원한 역사다. 결국 역사라는 것이 번영은 둘째이고 일단 살아남는 것이 첫 번째 명제라면, 한국사는 성공적이었다 할 수 있다. 실제로 수없이 많은 문명이 명멸하는 와중에도 한국은 끝까지 지도에서 지워지지 않고 21세기로 넘어왔으니 가히 "Survival"의 끝판왕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단순히 survival이 아닌 그 이상의 무엇을 누리고자 한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전략과 비전을 한국사는 가져야 한다. 쳐들어온 도둑놈을 잡는 세계관으로 한국과 세계를 바라보는 것은 수천년간 한국사를 관주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자는 것이다. 도둑놈 잡는 세계관 이상의 그 무엇을 .. 2023. 5. 27.
하늘에서 떨어진 몽촌토성 시유도기 쪼가리 서울대학교박물관, 몽촌토성-동북지구발굴조사보고, 1987. 40쪽 일부다 이것이 내가 아는 몽촌토성 성벽 출토 쪼가리 출토에 관한 기술 전부다. 한때 나와 내 동료들이 저에 관련된 추가 기술이 있을까 당시 몽촌 발굴 보고서는 모조리 뒤졌는데 이것이 전문도기 출토 상황에 대한 기술 전부였다. 정확한 출토지점 기술도 없고, 그 출토 정황을 보여주는 사진도 없다. 함에도 저에서 이미 동진제 시유도기라 해서 제한한 기술이 이뤄졌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대체 시유도기 쪼가리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하늘에서 왔나? 2023. 5. 27.
몽촌이 구축한 헛다리 백제사 백제고고학, 특히 한성백제 고고학 편년은 80년대 몽촌토성 발굴성과를 토대로 삼는다. 하지만 사정이 일변해 90년대 이래 풍납토성이 발굴됨으로써, 또 이에서 몽촌토성이 기존에 커버할 수 없는 문화층이, 그것도 다양하게 출현함으로써 사정이 일변해 몽촌으로 한성백제고고학을 논할 수는 없게 되었다. 문화층이라 하지만, 80년대 몽촌토성 발굴은 문화층 개념이 없다. 있다고? 있는지 봐라 없다. 그 발굴보고서 어디를 뒤져봐도, 또 나중에 최종택이 그에서 고구려 토기를 골라냈다 대서특필하나 미안하지만, 그렇게 골라낸 고구려토기가 몽촌 어느 문화층에서 어찌 출현했는지를 알려주는 보고서 기술 한 단 줄도 없다. 그냥 팠을 뿐이고, 그냥 끄집어 내서 그냥 기종에 따라 분류했을 뿐이다. 그래서 그 고구려토기는 적어도 보고.. 2023. 5. 27.
[Birding Korea] A pensive grey heron Don't know if it's an outcast. What a pathetic looking heron. Last year, at Cheonggyecheon Stream in downtown Seoul #왜가리 #birding 2023. 5. 27.
JOSEON WHITE PORCELAIN, PARAGON OF VIRTUE at LEEUM JOSEON WHITE PORCELAIN PARAGON OF VIRTUE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君子志向 2023. 2. 28 - 5. 28 2023.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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