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20965 월성 성벽을 깔고 누운 시체들(2) 순장殉葬 금지 주체는 지증왕? 혹은 소지왕? 앞서 본 대로 삼국사기 신라 지증마립간본기에 의하면 同王 3년(502) 봄 3월에 임금이 令을 내려 순장을 금했다고 하거니와, 이 조치가 하필 왜 이때였을까? 나는 일전에 이때 나온 순장 금지를 지증왕 전왕인 소지 마립간炤知麻立干, 일명 비처 마립간毗處麻立干 주체로 볼 필요도 있음을 역설한 적이 있다. 다시 말해, 이 순장 금지 율령을 반시頒示한 이는 분명 지증왕이지만, 그것을 가능 혹은 추동케 한 원인으로 소지왕의 유훈을 고려할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증왕본기 관련 기록을 더욱 세심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에 이르기를, 三年 春三月 下令禁殉葬 前國王薨 則殉以男女各五人 至是禁焉 라고 했거니와, 下令한 주체가 분명 現王인 지증왕이고, 그 대상이 王陵이라는 점이다. 이를 액면 그대로 풀면, 왕.. 2023. 5. 23. 장인이 되어 버린 자비왕비 파호巴胡 삼국사기에는 신라 제20대 자비왕의 왕비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의 본기 4년(461) 봄 2월 조에 이르기를 "임금이 서불한 미사흔未斯欣의 딸을 왕비로 삼았다. [王納舒弗邯未斯欣女爲妃]"라고 할 뿐이다. 그 자비왕비 이름을 밝히지 아니한다. 삼국유사에서는 그 왕력편을 보면 제20대 자비마립간慈悲麻立干에 대해 "비는 파호갈문왕巴胡葛文王의 딸인데, 미질희각간未叱希角干 또는 미사흔각간未斯欣角干의 딸이라고도 한다. [妃巴胡葛文王女 一作未叱希角干 一作未斯欣角干女]"라고 해서 실명은 거론치 않으면서 그 아버지 이름만 희한하게 '파호巴胡'라고 했다. 자비왕비는 누구인가? 巴胡 다. 자비왕비 이름이 바로 파호다. 따라서 이 둘을 종합하면 이렇다. 눌지왕 아들로 신라 제30대 왕이 된 자비는 재위 4년째에 막.. 2023. 5. 23. 전시과와 장원정리령: 그 한 끗 차이란? 한국사의 전시과제도와 일본사의 장원정리령은 율령제의 붕괴과정에서 산출되어 나오는 토지의 사적소유를 억제하고 토지공전제로 돌아가고자 하는 기득권의 시도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차이가 있다. 일본사의 장원정리령은 토지공전제를 침탈하는 장원의 확대를 막는 덴노의 명령으로-. 다분히 수세적이고 방어적으로 이루어졌지만, 한국사의 전시과제도는 상당히 공격적으로 이전에 분출되어 나온 나말여초의 호족의 발호를 일거에 일소하고 토지공전제를 고려 국초에 확립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말이다. 이러한 차이는 왜 나타나는 것일까? 필자는 이 차이야 말로 한국사와 일본사의 바탕에 흐르는 가장 큰 차이-. 결국 한국사는 일본사보다 대륙으로부터의 침략에 보다 취약하여 공전제를 유지하여 막대한 군사력을 국.. 2023. 5. 23. 무신정변武臣政變과 헤이시정권平氏政権 무신정변 (1170년)과 최씨 막부 성립(1196년). 일본 최초의 무가武家 정권인 헤이시정권平氏政權의 성립 (1160년대 ~ 1185년) 이 두 사건이 거의 동시기에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의 한국과 일본사 전개를 보자. 한국: 후삼국과 호족의 시대 (892-936) 대 일본: 각지에 무사단 성립 (10세기) 한국: 전시과제도 (10세기-11세기 성립) 대 일본: 장원정리령 (10세기-12세기) 한국: 무신정변(1170년)과 최씨정권 (1196-1258) 대 일본: 호겐의 난 (1156), 헤이지의 난(1159-1160)과 헤이시 정권 1167-1185) 한국과 일본사는 몽골침략기까지는 거의 비슷한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한국사와 일본사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2023. 5. 22. 학예사들의 또 다른 습관 : 온전히 전시를 즐기지 못하는 이유 언젠가부터 전시를 즐겁게 보지 못하게 되었다. 아니, 전시를 전시 그대로 보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이것도 습관이자 강박이라면 그렇다 할 만 한 것이다. 그리고 사실 지난번 에피소드에 끼워넣지 못했기 때문에, 별도로 쓴다는 것을 고백해둔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 이런 말을 들은 때가 있었다. “학예사인데 다른 전시를 보며 느꼈던 점이 없냐고.' 새로운 전시 구성안을 내밀었더니, 다른 전시를 보고 참고할 만한 것이 없었냐고 물으시면서 하셨던 말이었다. 어떤 의도로 하신 말인 지는 지금은 알지만, 전시를 몇 번 하고나니 이런 생각이 든다.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나는 학예사가 되기 전에도, 전시를 열심히 보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작품에 쉽게 감동하는 스타일도 아.. 2023. 5. 22. 덴노天皇의 카운터 리볼루션: 장원정리령荘園整理令 일본사에서 무가정권은 율령제-공전제를 부수면서 출현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첫 단추가 바로 무사단이라 하였다. 그 무사단이 한국사에서는 라말여초의 호족에 상응한다고 하였다. 일본사에서도 율령제-공전제를 부수고 성장하는 무가정권에게 순순히 기존 권력이 자리를 내준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수시로 공전제로의 복귀를 희망하였는데 그러한 시도는 모두 덴노의 "장원정리령荘園整理令"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장원정리령은 쉽게 말해서 토지의 사적 소유인 장원을 공전제로 되돌리자는 시도였다 할 수 있다. 덴노의 장원 정리령은 서기 10세기초부터 12세기 중엽까지 수시로 내려왔는데, 모두 장원을 억제하기 위해 시도된 것이었다. 아래는 일본사에 보이는 장원정리령이다. 延喜の荘園整理令 902年(延喜2)醍醐天皇 この整理令以.. 2023. 5. 22. "추사체는 구제불능" 오경석이 평한 추사 글씨 우리나라의 글씨는 옛날에는 진晉나라 사람 글씨를 배웠습니다. 하지만 순전히 팔을 써서 그저 모양만 추구하였고, 예로부터 서학書學에 대해 강론한 적이 없었으므로 이따금 글씨에 능한 명필이 배출되었더라도 일종의 거칠고 속된 기운을 면하지 못했습니다. 근일에 김 추사秋史 글씨가 성행하는데, 경솔한 데다 더욱 구속됨이 없어 드디어 마계魔界로 들어가 약으로도 구제할 수가 없습니다. 일재日齋의 글씨는 결구가 원만하고 정돈되었으며 풍채가 유창하고 아름다워 비록 골력이 약간 허약하지만 고상한 운치가 넉넉하다 하겠습니다. 재주와 식견이 빼어나지 않았다면 어찌 누적된 악습에서 물결을 되돌려 홀로 깃발 하나를 세우고서 옛사람과 겨룰 수 있었겠습니까? 완상하면서 손에서 차마 놓지 못하여 이에 몇 마디를 덧붙여 공경하는 뜻을 .. 2023. 5. 22. 백제 창왕昌王의 오리무중한 매형공주妹兄公主 부여 능산리 사지 목탑지 출토 이 석조사리감 전면에는 양쪽 줄에 걸쳐 百濟昌王十三年季太歲在 / 丁亥妹兄公主供養舍利 ( /는 줄바뀜 표시) 라는 문구가 확인되거니와, 이는 지금은 이름을 알 수 없는 능산리 백제시대 절이 언제 창건되었는지를 알려주는 결정적인 근거가 된다. 저 문장은 '백제 창왕 13년, 간지로는 정해년에 매형공주가 사리를 공양했다'는 뜻이거니와, 이를 통해 이 절을 창건한 대단월이 매형공주임을 안다. 이 절을 창왕이 직접 창건한 것으로 간주하는 글이 많고, 그에 따라 이를 근거로 하는 논설이 부지기에 이르는데 다 볼썽 사납다. 이 절을 창건한 주체는 분명히 '妹兄公主'다. 이 절을 창건한 백제 창왕 13년, 간지로는 정해년은 567년. 다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연표를 따를 때는 창왕 14년.. 2023. 5. 22. 룩소르의 추억 – 카르낙 신전 by 유성환 이집트에 체류하는 동안 한국전통문화대학 복원팀과 저는 모두 4개 신전을 방문했습니다. 이들 신전은 모두 지금의 룩소르 시, 고대의 테베(Thebes)에 있습니다. 테베 중심을 흐르는 나일 강을 기준으로 태양이 떠오르는 산 자의 땅인 동안에는 순수하게 신만을 모시는 의례전(儀禮殿: cult temple)이, 태양이 지는 망자의 땅인 서안에는 주신과 사망한 왕을 함께 모시는 장제전(葬祭殿: mortuary temple)이 각각 건립되었습니다. 이번 방문에서 가장 중요한 방문지는 – 당연한 말씀입니다만 – 복원 대상인 신왕국시대 제19왕조 람세스2세(Ramesses II: 기원전 1279-1213년) 장제전인 라메세움(Ramesseum)이었습니다. 라메세움은 당연히 서안에 있습니다. 이어 동안에 위치한 의례전.. 2023. 5. 22. 용산, 한양으로 가는 길목 Yongsan, the gateway to Hanyang 한양의 길목 용산 Yongsan, the gateway to Hanyang 조선시대 용산은 도성 서쪽의 무악산, 오늘날의 안산에서 남쪽으로 뻗어나간 산줄기와 한강으로 둘러싸인 지역을 아울렀다. 그 구불구불한 능선이 한강에 이르러 봉우리를 형성하는데 전체적인 형세가 용을 연상시킨다 하여 용산이라 이름 불었다. 건국 초기 용산은 명확히 한양 땅은 아니었다. 당시 한양의 경계는 도성이었다. 다만 수도 한양을 관할한 관청 한성부는 도성과 함께 도성으로부터 10리(약 4km)에 이르는 성저십리城底十里까지 관할했다. 용산은 이 성저십리에 해당했다. 도성 밖 한적한 강변 마을이었던 용산에 물길 따라 포구가 발달하면서 삼남三南을 오가는 대로가 용산에서 갈라졌고, 각 지역의 세곡이 용산에서 집결되어 도성 안으로 운반됐다.. 2023. 5. 22. 한 번의 실험으로 끝난 국립박물관 국빈 만찬장 활용 과거의 오늘을 살피다 보니, 1년 전 어제(2022. 5. 20)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환영 만찬이 열린 모양이라, 이 일이 청와대 시대 청산과 더불어 그 만찬장을 어찌할 것인지 하는 논란을 불러일으켰거니와, 그 논란 복판에 휘말린 데가 바로 국립중앙박물관이라는 점에서 이 사건은 반추가 필요하다고 본다. 어느 무렵인가부터 청와대가 제왕적 대통령제를 상징처럼 통용하는 바람에 대통령 집무실이 그곳을 떠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는 아니해서, 문재인 시대에도 그것을 추진하다가 대안 부재론에 휘말려 가오 상하게도 그런 방침을 스스로 접어야 한 일이 있거니와, 그런 비슷한 공약을 내세우고 당선한 윤석열이 그 전철을 밟을 수는 없다 생각했음인지, 용산으로 짐을 싸 갔다. 하지만 그에 따른 문.. 2023. 5. 22. 철도병원을 탈바꿈한 용산역사박물관을 찾다 20년 넘는 용산구민이라는 내력도 있을 테고 그것 아니라 해도 이런저런 일로 자주 지나치는 까닭에 저 용산역사박물관이라는 데는 생소함보다는 익숙함이 나한테는 크다. 물론 나한테는 중앙대병원이 익숙하지만 내가 문화재 담당 기자 생활하던 때 마침 그 건물 전체가 근대문화재로 등록된 까닭에 유심히였다고는 할 순 없지만 눈여겨 보는 정도이기는 했다. 다만 그 자세한 내력은 듣기는 했지만 흘려버리고 말았으니 그러다가 지난해인가 용산 구립 용산역사박물관으로 개관했다 해서 한번은 꼭 들려보리라 하던 차였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지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주말 이틀을 내내 방구석에 틀어박혀 빈둥거리다간 이래서는 아니되겠다 싶어 마침 저곳이 떠올라 조금전 다녀왔다. 내 기억에 이곳은 최초의 용산구립 박물관 아닌가 하거니와.. 2023. 5. 21. 라말여초의 "호족"과 일본사의 "무사단" 우리나라 라말여초에는 "호족"이란 세력이 있어 신라의 지배가 끝나자 한반도 전역에 호족의 세상이 펼쳐졌다. 한국사 라말여초의 "호족"에 상응하는 일본사의 세력은 누구일까? 바로 일본사에서 무가로 발전하게 되는 "무사단"이다. 무사단은 헤이안 시대 말기에 발생하는데 당초에는 귀족들의 보디가드로 출발했지만, 이내 귀족들을 무력으로 압도하고 무가정권을 수립한다. 가마쿠라, 무로마치, 에도 막부로 이어지는 사무라이 정권의 기원이 바로 이 무사단에 있다. 이 무사단은 그냥 몰려다니는 군사조직이 아니다. 무사단 자체가 땅을 차지한 봉건영주가 된다. 헤이안시대 말기에는 지방 영지를 점유하고 중앙의 통제(소위 율령체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무사단이 출현하기 시작하였다. 각지에 성립한 무사단이 서로 이합집산하며 싸우기 .. 2023. 5. 21. 곽거병霍去病과 기련천산祁連天山, 그리고 그의 무덤 망가진 몸을 이끌고 《사기史記》 이광李廣·위청衛靑 그리고 곽거병霍去病 열전을 막 통독했다. 그들이 묻힌 곳을 막 다녀와서인가? 이전에 읽을 때보단 조금은 새롭게 다가온다. 곽거병 죽음과 그에 따른 장송葬送 의례가 이 열전엔 잠깐 보이거니와, 그의 무덤을 기련산祁連山을 본떠 만들었다는 구절이 눈에 띈다. 기련산祁連山..기련은 흉노어로 '하늘'이란 뜻이거니와 그런 까닭에 이광 열전엔 이를 '기련천산祁連天山'이라 표기하기도 했으니 '역전앞'과 같은 표현 발상이다. 앞선 포스팅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한 무제漢武帝가 묻힌 무덤인 무릉茂陵을 위성처럼 감싼 소위 배장묘陪葬墓 중에서도 그 동쪽 위청과 김일제 묘 사이에 위치한 곽거병 묘만큼은 동아시아 묘제 역사에서는 돌발 중의 돌발이다. 쐐기형 방형 봉분인 그의 무덤에는.. 2023. 5. 21. 반란은 마흔 전에, 쫓겨나도 신하들한테 이성계랑 비슷하게 아들한테 쫓겨난 중국 황제로 당 고조 이연李淵이 있다. 566년생인 그는 53세에 唐을 개국했다. 너무 늙어서 권좌에 올랐다. 이성계의 최대 약점 역시 너무 늙어 권좌를 탈취했다는 것이다. 1335년생인 이성계가 역성혁명으로 조선을 개국하기는 58세였다. 내일 어찌 될 줄 모르는 할배였다. 오늘의 결론. 거사를 하려거든 적어도 40대 혹은 그 이전에 반란하라. 내 보기에 조선왕조 27왕 중에서 가장 멍청한 임금이 태조 이성계다. 얼마나 못났으면 아들한테 쫓겨나니? 딴 사람들은 신하들한테 쫓겨났지 아들한테 쫓겨나진 않았다. 아들한테 쫓겨나면 가오가 상하자나. 가오가? (2014. 5. 19) *** 조선사에서 이성계는 아들한테 쫓겨난 전무후무한 왕이다. the one and only다. 2023. 5. 21. 세이와 겐지 [清和源氏, 청화원씨] 일본사에서 소위 무사 시대를 여는 무사단 종족으로 유명한 것이 세이와 덴노清和天皇의 후예라는 세이와 겐지[清和源氏]와 간무 덴노[桓武天皇]의 후예라는 간무헤이시[桓武平氏]다. 이 중 가마쿠라 막부를 연 미나모토 요리토모[源賴朝, 원뢰조] 집안인 세이와 겐지-가와치 겐지[河内源氏, 하내원씨] 일족 계보를 보면: 세이와 덴노 5세손이 미나모토노 요리노부[源頼信, 원뢰신]가 되며, 그 미나모토노 요리노부 7세손이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信]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가마쿠라 막부 개조인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세이와 덴노의 대략 11세손에 해당한다. 그런데-. 세이와덴노 5세손인 源頼信 시대가 되면 (10-11세기) 이들은 이미 무사단의 수장 위치를 굳히고 있었다. 공가公家에서 무가武家로 이미 완전히 탈바꿈하고 .. 2023. 5. 21. 문화재활용? 뭘 고민해? 닥치고 꽃 심어! 재론 삼론 사론 무한반복재생한다. 문화재활용? 뭘 고민해? 닥치고 꽃 심어라. 기왕이면 외래종, 것도 환경유해라고 평가된 것들 심카라!! 그런 꽃일수록 환상 제국이다. 핑크뮬리 댑싸리 갖다 뿌려라. (2022. 5. 21) 2023. 5. 21. 이집트어 갈래를 재음미하는 신간 by 유성환 제가 이집트에 머물고 있는 동안 아마존에서 책이 도착했습니다. 책 제목은 『고대 이집트어와 아프리카-아시아 어족: 그 기원을 다시 생각한다』(Ancient Egyptian and Afroasiatic: Rethinking the Origin). 관련 링크: https://www.amazon.com/Ancient-Egyptian-Afroasiatic-Rethinking-Languages/dp/1646022122/ref=sr_1_1?crid=33HSGBEL7TNN0&keywords=Ancient+Egyptian+and+Afroasiatic%3A+Rethinking+the+Origin&qid=1684589473&sprefix=ancient+egyptian+and+afroasiatic+rethinking+the.. 2023. 5. 21. 월성 인골 발굴현장 탐방 (2017) 월성 성벽 인골 발굴 현장을 찾은 까닭은 이것이 과연 성벽 축조와 관련한 인신공희人身供犧인가를 내 눈으로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 발굴 양상이 혹여 무덤일 가능성이 없지는 않으므로 보통 무덤에서 보이는 묘광墓壙의 흔적이 있다면 무덤 위에다가 성벽을 축조한 셈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인신공희 설은 물건너가고 만다. 이 점을 경주문화재연구소 조사원들도 매우 주의깊게 살폈다 하며 실제 내가 현장에서 관찰한 바로도 성벽 축조 일환으로 인신을 공희한 것은 분명하다. 이 시신 두 구는 성벽 아랫단 소위 부엽층敷葉層에서 발견됐다. 하지만 이것도 일종의 매장행위임에 분명한 이상 동시대 무덤 매장 방식과 궤를 형성한다. 첫째 머리 방향이 북동쪽이란 점이다. 둘째 묘광 같은 굴광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매장패턴을 따라 시신 .. 2023. 5. 20. 북한이 우리일까? 아니 우리였을까? 진보 성향을 표방하는 이들에게 아킬레스건은 내 보기엔 북한이다. 특히 북한 인권 문제는 늘 아킬레스건이다. 그들은 속내는 어떤지 모르지만 늘 우리 민족을 주장했다. 그런 그들이 봉착한 모순이 남한의 인권에는 이를 악물면서도 북한의 그것에는 늘 입을 다문다는 점이었다. 실제 내 보기에는 입을 다물었다. 아니 부러 외면했다. 북한을 둘러싼 이런 사정은 요즘도 크게 변한 듯하지는 않다. 이에서 이른바 종북이라는 이상한 색깔논쟁이 발발한다. 이것이 내 보기엔 왜 아킬레스건인가? 그 반대편이라는 이른바 조중동에서는 이를 호되게 비판하기 때문이다. 나는 늘 이런 얘기를 했다.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제 목소리를 내는 쪽은 조중동이며, 이것이 역설이라고. 한데 이른바 진보성향에서는 나의 이런 지적에 늘 사시나무 떨 듯.. 2023. 5. 20. 좌절한 신라왕경 복원계획 경주시가 추진한 신라왕경 복원계획은 좌절되었다. 며칠간이나 그제나 저제나 언론보도가 날 것 같아 기다리다가 아무데도 언론 보도가 없어 내가 대신 한다. 문화재위원회는 요저납시 세계유산 사적 건축의 3개 분과 합동회의를 갖고 경주시가 확정한 신라왕경 복원 계획을 보고받았지만 문서는 반려했다. 이날 문화재위는 경주시가 신청한 이 계획을 "검토할 가치조차 없다" 해서 경주시의 문서 접수 자체를 거부했다. 문화재위 50여년 역사에서 문서 접수 거부는 이번이 처음이다. 문화재위가 이리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경주시의 왕경 복원 계획이 경주 시내 중심지역의 사업 대상지들인 월성과 황룡사지 등등이 '복원' 중심이었던 까닭으로 알려졌다. 황룡사지에다가 9층 목탑과 강당을 세우겠다고 했는가 하면, 월성에는 신라.. 2023. 5. 20. 이전 1 ··· 464 465 466 467 468 469 470 ··· 999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