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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재서록해제直齋書錄解題》 중국 남송(南宋)시대 국자감사업(國子監司業)을 지냈으며 대장서가(大藏書家)이며 목록학자(目錄學家)인 진진손(陳振孫)이 가희(嘉熙) 2년(1238)에 임안(臨安. 今 杭州)에서 편찬을 시작해 완성한 사인장서(私人藏書) 해제목록(解題目錄)이다. 陳振孫은 號를 직재(直齋)라 하며, 절강(浙江) 안길(安吉) 사람이다. 영가학파(永嘉學派) 학자인 주행기(周行己)의 外孫이다. 어릴 때는 강서(江西) 남성(南城)과 복건(福建) 보전(莆田)에 있었으며, 절강에서 지방관으로 재직하면서 서적을 구입하여 초록하고, 만년에는 시랑(侍郞)으로 치사(致仕)한 뒤 서적 수집을 계속하여 당시 최대 장서가가 되었다. 書錄은 원래 56권이었으니 經․史․子․集 4錄에 53類로 나누었다. 총서(總序)와 대서(大序)가 없고, 겨우 語孟․時令.. 2018. 3. 9.
《경적찬고(經籍纂詁)》 중국 청대(淸代) 가경(嘉慶) 연간에 완원(阮元)이 편찬을 총지휘해 완성한 자전(字典)으로 총 106권이다. 당대(唐代) 이전 古書에 출현하는 文字를 휘집(彙輯)하여 훈석(訓釋)한 훈고학의 금자탑 중 하나이다. 阮元이 撰集하는 가운데 장용당(臧鏞堂)․장예당(臧禮堂) 형제를 비롯한 40여 명을 동원, 찬교(纂校)해 가경(嘉慶) 3年(1798)에 간행됐다. 이 때 완원은 독학절강학정(督學浙江學政)이었으니 지금으로 보면 절강성이라는 지방자치단체의 교육부 장관이었던 셈이다. 왕인지(王引之)와 전대흔(錢大昕), 장용당(臧鏞堂)의 序와 後序가 수록했다. 全書는 《패문옥부(佩文韻府)》가 시도한 分韻編字에 준거해 표제어를 배열하되, 《佩文韻府》에 없는 글자는 《광운(廣韻)》이라든가 《집운(集韻)》을 참조해 배치했다. .. 2018. 3. 9.
피석서(皮錫瑞. 1850~1908. PiXirui) 字를 녹문(鹿門)이라 하며 녹운(麓雲)이라고도 한다. 호남(湖南) 선화(善化) 사람이다. 서한(西漢) 초기에 《尙書》를 전했다는 유자(儒者) 복생(伏生)을 흠모하여 그 서재 이름 또한 ‘사복당’(師伏堂)이라 했으며 그런 까닭에 그를 일컬어 ‘사복선생’(師伏先生)이라 한다. 청말 광서(光緖) 5년, 30세가 된 피석서는 경학 연구를 개시했다. 복생은 금문학파에 속하며, 나아가 그가 전한 尙書 판본을 서한 당시에 통용되던 예서체로 된 텍스트라 해서 금문상서(今文尙書)라 하거니와, 이런 그를 숭모했으니, 청말에 재연된 금문-고문학파 논쟁에서 피석서는 당연 빠따로 금문경학 쪽에 서서 고문학파를 공격하게 된다. 광서(光緖) 8년 순천향시(順天鄕試)에 합격했으나 이후 3번이나 거푸 예부시(禮部試)에 도전했다가 낙방.. 2018. 3. 9.
도종의(陶宗儀)와《설부(說郛)》 원말(元末)~명초(明初)를 살다간 도종의(陶宗儀)가 편찬한 총서(叢書) 이름이다. 도합 100권 거질이며 이에 수록된 조목(條目)은 수만을 헤아린다. 진한(秦漢) 이후 송원(宋元)에 이르기까지 제가(諸家)의 작품을 초록했으니, 그 포괄 범위는 제자백가(諸子百家)․각종 필기(筆記)․시화(詩話)․문론(文論) 등을 망라한다. 역대 사가(私家)가 편집한 총서로는 비교적 크다. 그것이 포괄한 내용은 삼라만상이라 경사전기(經史傳記)․각종 잡서(雜書)․고고박물(考古博物)․산천풍토(山川風土)․충어초목(蟲魚草木)․시사평론(詩詞評論)․고문기자(古文奇字)․기문괴사(奇聞怪事)․문복성상(問蔔星象) 등이다. 양유정(楊維楨)은 그 序에서 이르기를 “배우는 자가 이 책을 얻으면 들은 바를 열게 되고 본 바를 넓히게 되는 이가 많을 .. 2018. 3. 9.
배송지裵松之 《삼국지주三國志注》 유송劉宋 문제文帝인 유의륭劉義隆이 삼국시대의 異同을 모아 진수陳壽의 《三國志》를 주석하라고 명하여 裴松之가 완성한 해설서이다. 裴松之는 傳紀를 수집해 이문異聞을 널리 모아 완성하고는 헌상했다. 이에 황제는 이를 예람叡覽하고는 “이야말로 불후不朽라고 할 만하다”고 상찬했다. 이 당시 裴松之가 올린 표문表文에는 이런 말이 있다. “진수陳壽의 책은 볼 만한 일을 嚴選했으나 간략함이 지나친 단점이 있고 누락된 곳이 여러 곳이 됩니다. 臣은 성지聖旨를 奉하여 상세함을 갖추어 철저함을 기해 기록해야 하지만 진수가 기재하지 않은 사실은 남김 없이 채록했습니다. 같은 사건에 대해 기록이 모순되면 사건의 출처가 달라 판단할 수 없는 경우에도 모두 요약해서 함께 異聞을 固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裴松之 편찬방침이라 할 수.. 2018. 3. 9.
호삼성(胡三省. 1230~1302)과 《자치통감음주(資治通鑒音注)》 호삼성(胡三省)은 원래 이름이 만손(滿孫)이며 字가 신지(身之), 號는 매간(梅澗)이다. 5형제 중 3남이다. 영해(寧海) 중호촌(中胡村) 사람이다. 《論語》에 나오는 “吾日三省吾身”이라는 구절에서 삼성(三省)이라고 개명했다. 다른 字로는 경삼(景參)도 썼다. 보우(寶祐) 4년(1256)에는 문천상(文天祥), 육수부(陸秀夫), 사방득(謝枋得) 등과 함께 과거에 급제하여 進士가 되었으며 吉州泰和尉에 임명되었으나 어머니가 연로하다 해서 부임하지 않았다. 나중에 경원부자계위(慶元府慈溪尉)에 임명되었으나 재임기간 중 경원지부(慶元知府) 여문옹(厲文翁)에게 죄를 얻어 파직되었다. 그러다가 문학행의(文學行誼)로 추천되었다. 사마광이 주편한 《자치통감(資治通鑑)》 연구에 몰두하고 《통감(通鑒)》을 교감했으며 제자들을.. 2018. 3. 9.
마숙(馬驌)과 《역사(繹史)》 《역사(繹史)》는 전체 160卷이며 世系圖 1卷과 年表 1卷이 별도로 첨부됐다. 찬저자(撰著者)는 청대(淸代) 마숙(馬驌. 1621~1673)이다. 강희(康熙) 연간에 판각된 판본은 전체 40册이며 版框 高廣은 匡高 19.7公分이고 寬은 14.3公分이다. 行格은 14行24字이며 小字雙行 36字이다. 판식(版式)은 백구(白口), 무어미(無魚尾), 좌우쌍변(左右雙邊)이다. 장정(裝訂)은 선장(線裝)이며, 수장인기(收藏印記)는 학여당발태(學餘堂發兌)이며, 서발제교자(序跋題校者)로는 이청(李淸) 서(序)가 있다. 사고전서(四庫全書)에서는 사부(史部) 중에서도 편년류( 編年類)로 배당했다. 부주(附註)로는 내봉제(內封題)로 “마씨역사”(馬氏繹史)라 했으며, 原鈐 “學餘堂發兌” 硃文印記가 있다. 卷端署에는 “추평마.. 2018. 3. 9.
사마정司馬貞과 《사기색은史記索隱》 사마정司馬貞은 사마천司馬遷 불후의 저작인 《사기史記》에 대한 해설 혹은 주석으로 시도한 완성물인 《사기색은史記索隱》 저자이나 이상하게도 행적은 불비하기 짝이 없다. 생년은 물론이요 몰년도 모조리 미상이다. 관적貫籍은 회주懷州 하내河內이며, 당 현종玄宗 개원開元 연간(713~741) 초기에 국자박사國子博士를 지냈으며, 이후 윤주별가潤州別駕와 굉문관학사宏文館學士를 지낸 이력 정도밖에 알려져 있지 않다. 《史記索隱》 외에 《補史記보사기》가 있다고 하며, 《전당문全唐文》 卷402에 그의 산문이 수록된 정도다. 이런 가운데 그의 행적은 《신당서新唐書》 卷132 유자현전劉子玄傳에 찔끔 보이며, 그 외 북송시대 도서목록집인 《직재서록해제直齋書錄解題》卷4에도 역시 간략한 기술이 나온다. 그 불후의 성과로 꼽히는 사기색.. 2018. 3. 9.
곽무천(郭茂倩)과 《악부시집(樂府詩集)》 곽무천은 생졸년 미상이며 宋代 운주(鄆州) 수성(須城. 지금의 東平縣) 사람이다. 북송 남송 중에서도 南宋시대를 살다 갔다. 그의 이름은 그가 편집한 방대한 《악부시집》(樂府詩集) 100권을 통해 빛을 발한다. 郭茂倩의 생평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四庫全書總目提要》에서 이르기를 “《建炎以來系年要錄》載茂倩爲侍讀學士郭裒之孫, 源中之子, 其仕履未詳.”라고 했을 뿐이다. 《樂府詩集》에서는 그를 太原 郭茂倩이라고 했다. 어릴 적에 이미 詩 훈도를 받았으며, 음률에 대한 조예가 깊었고, 전록(篆錄)을 잘 했다. 《樂府詩集》 100권은 위로는 요순(堯舜) 시대 가요를 시작으로 아래로는 唐代의 신악부시(新樂府詩)에 이르는 각종 시가 5천389수를 모았다. 이에 수록된 가사를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으니 하.. 2018. 3. 9.
中國 요녕성(遼寧省) 객좌현(喀左縣) 동기교장(銅器窖藏. Kazuo tongqi jiaocang) 중국에서는 무엇인가를 한꺼번에 한 장소에 매납한 곳을 교장(窖藏)이라 부르거니와, 청동기를 묻은 곳을 동기교장銅器窖藏이라 한다. 중국 고고학계에서는 喀左縣 지역에서 出土한 靑銅器를 西周시대 初年에 그 封國 중 하나인 燕國에서 山川祭祀를 지낼 때 埋藏한 청동예기(青銅禮器)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 유적은 遼寧省 喀左縣 西南쪽 대릉하(大淩河) 兩岸 구릉지대 정상에서 발견됐다. 1941년 이후 모두 6차에 걸친 발굴조사 결과 출토한 銅器는 연대가 西周 초기, 혹은 商末~周初에 속한다고 추정한다. 1941年 고로구촌(咕嚕溝村)에서 출토한 周初 동정銅鼎 1점은 높이 50여㎝이며 重量은 70여 ㎏으로 銘文이 있다. 1955年, 마창구馬廠溝 출토 周初 銅器 16건 중에는 鼎․․․ 盂․․卣․壺․盤과 압형준(鴨形尊) 등이.. 2018. 3. 9.
두헌(竇憲. ?~92)과 당고지금(黨錮之禁) 두헌(竇憲)은 字가 백도(伯度)이며 부풍(扶風) 평릉(平陵), 지금의 섬서성(陝西省) 함양(咸陽) 사람이다. 두융(竇融)의 증손으로 후한시대에는 외척으로서 要職을 역임했다. 후한 建初 2年(77), 황제 장제(章帝)가 두헌의 누이동생을 황후로 세우자 외척으로서 동생인 두독(竇篤)과 더불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런 사정을 사서에서는 “賞賜累積, 寵貴日盛, 自王․主及陰․馬諸家, 莫不畏憚”이라 적었다. 황제가 내린 상이 쌓이고 총애가 날로 깊어지니 왕 이후 권세가로 그를 두려워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영원(永元) 元年(89), 竇憲은 刺客을 보내 太后 총신인 유창(劉暢)을 살해하고는 그 죄를 채륜(蔡倫)에게 덮어 씌우려 하다가 나중에 일이 발간되어 宮廷에 감금됐다. 후한서 두융전(竇融傳.. 2018. 3. 9.
후지시마 가이지로(藤島亥治郎. 藤島亥治郞. 등도해치랑) ふじしま がいじろう. 1899. 5. 1~2002. 7. 15 일본 건축사가. 1933년 이래 1945년까지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朝鮮宝物古跡名勝天然記念物保存会) 위원으로 일하면서 식민지 조선 고건축에 대한 조사 활동을 했다. 제국 일본이 패망해 일본으로 돌아가서는 平泉遺跡調査会를 조직하고 毛越寺와 中尊寺 整備, 中山道宿場 연구 등을 진행했다. 오사카(大阪) 시텐노지(四天王寺, 사천왕사) 가람 재건 계획을 수립하기도 했다. 3세기를 살며 103세로 장수했다. 1899年, 岩手県 盛岡市 出生1920年, 第六高等学校 卒業1923年, 東京帝国大学 工学部 建築学科 卒業․ 조선총독부朝鮮総督府 경성공업학교京城工業学校 조교수助教授1924年, 同校 教授․ 朝鮮総督府 技師兼任1929年, 東京帝国大学 助教授1933年,.. 2018. 3. 8.
《변경유적지(汴京遺跡志)》 《변경유적지(汴京遺跡志)》 二十四卷(河南巡撫 採進本) 明 李濂 撰. 濂에게는 《상부선현전祥符先賢傳》이라는 저술이 있으니 (사고전서에) 이미 著錄했다. 이 書는 歷代 都會에 대해 모두 專志가 있지만 오직 汴京에는 그것이 없으며 나아가 宋 孟元老의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은 蕪穢 猥瑣하여 볼 만하지 않다고 하여(생각건대 元老는 風俗 瑣事를 기록하여 地志體와는 다르니 이 말은 온당함이 지나치다 하겠으니 삼가 이에다가 교정을 부친다) 마침내 舊聞을 수합해서 編次를 정하고 책을 만들었다. 체제가 정비되고 자못 요점이 있다. 전거의 핵심을 끌어대고 나아가 구체적으로 根據를 보였다. 여기輿記 중에서는 善本이라 칭할 만하다. 그 정미함과 가려냄이 《장안지長安志》라든가 《옹록雍錄》과 같은 여러 책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주량.. 2018. 3. 8.
중국 요녕성(遼寧省) 객좌현(喀左縣) 마창구유지(馬廠溝遺址) 객좌현 현성(縣城)에서 남쪽으로 약 25㎞ 떨어진 해도영자촌(海島營子村)의 소전산(小轉山)에서 발견된 청동기 교장(窖藏) 유적이다. 소전산은 대릉하(大凌河)에서 서쪽으로 약 3㎞ 지점에 위치하니 유적은 이곳 북쪽 경사면에서 발견됐다. 1955년 이곳에서 발견된 구덩이에서 중원식(中原式) 청동예기(靑銅禮器)가 총 13점 수습됐다. 다만 유적에 대한 자세한 보고가 없어 窖藏, 즉, 구덩이 형태나 크기는 분명하지 않다. 출토 청동예기는 세발시루인 언(甗) 2점, 굽그릇인 궤(簋) 3점, 유(卣)와 뢰(罍)와 호(壺) 등의 술통 4점, 기타 4점으로 구성된다. 이들 청동기는 제작시기로 보면 대체로 商代 후기 이후 西周 중기까지 비교적 시간 폭이 상당하다. 마창구 유적 주변에서는 신석기시대 주거지와 재구덩이인 회.. 2018. 3. 8.
중국 요녕성(遼寧省) 객좌현(喀左縣) 산만자유지(山灣子遺址) 객좌현 현성(縣城)에서 남쪽으로 약 25㎞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는 청동기 교장(窖藏) 유적이다. 같은 청동기 교장 유적인 마창구유지(馬廠溝遺址)에서는 동쪽으로 4㎞ 지점에 있다. 이 산만자유적은 중원식(中原式) 청동기를 매장한 교장으로 대릉하(大凌河) 동쪽 범람원에서 발견됐다. 교장, 즉, 구덩이는 평면 원형에 직경 약 120㎝에 깊이는 약 90㎝로 보고됐다. 이곳 출토 청동기는 모두 22점이니, 사각형 정(鼎) 1점, 세발솥인 격(鬲) 1점, 세발시루인 언(甗) 3점, 유(卣)와 뢰(罍) 등의 술통 4점, 술두루미인 준(尊) 1점, 굽그릇인 궤(簋) 10점, 기타 1점으로 구성된다. 출토 당시 구덩이 속에서 이들 청동기는 무질서한 상태로 발견됐다. 출토 청동기 중 제작 연대가 가장 빠른 것은 商代 후기.. 2018. 3. 8.
고청(古靑) 윤경렬(尹京烈, 1916~1999) □ 생년월일 : 1916.1.14□ 출 생 지 : 함경북도 경성군 주을면 중향동 55번지□ 학력사항○ 1928 주을공립보통학교 졸업○ 1934 일본 하카다(博多) 다미인형연구소 수업□ 경력사항○ 1943 개성 고려인형연구소 경영 (고유섭, 오지호 선생 등과 교유)○ 1943 조선미술전람회 조각부 입선 (1943년, 1944년 2회 연속 입선)○ 1945 개성 중경학교 근무 (장남 ‘광주(光柱)’ 태어남)○ 1947 개성 정화여학교 근무○ 1949 경주 한국풍속인형연구소 고청사(古靑舍) 설립, 경주예술학교 강사○ 1954 진홍섭 경주박물관장과 ‘경주어린이박물관학교’ 개설○ 1955 ‘경주어린이박물관학교’ 1주년 기념 교가 작사 (작곡 윤이상)경주박물관 근무○ 1956 ‘신라문화동인회’ 창립○ 1959 근화.. 2018. 3. 8.
칙찬삼집(勅撰三集):《능운집(凌雲集)》《문화수려집(文華秀麗集)》《경국집(經國集) 》 天皇이나 上皇의 下命으로 찬집撰集한 책을 칙찬집(勅撰集)이라 하거니와, 고대 일본 헤이안(平安)시대에 이런 勅撰으로 성립한 한시집漢詩集 세 종류인 능운집(凌雲集)과 경국집(經國集), 그리고 문화수려집(文華秀麗集)을 한데 일컬어 칙찬삼집(勅撰三集)이라 한다. 이들은 현존 最古 일본 漢詩集인 회풍조(懷風藻) 바로 뒤를 잇는 한시집으로 중요성을 지닌다. 《능운집》(凌雲集. 료우운슈우. りょううんしゅう)헤이안시대平安時代 초기인 홍인(弘仁) 5年(814)에 차아천황嵯峨天皇 命으로 편찬됐다. 전1권. 정식 명칭은 능운신집(凌雲新集)이다. 小野岑守와 관원청공(菅原清公, 스가와라노 기요키미) 등이 찬집했다. 그에 수록된 한시 작가는 평성천황平城天皇과 차아천황, 大伴親王 등 23명 90首가 수록됐다. 나중에 1首가 추가.. 2018. 3. 8.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 新撰姓氏録) 신센쇼지로쿠 or Shinsen Shōjiroku(しんせんしょうじろく) 2011.06.10 06:14:21 台植注 : 아래는 위키피디아 한.중.일 3개 국어판을 재편집했다. 한글판은 보아하니 일본어판을 축자 번역한 것이다. 추후 보강을 기약한다.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 新撰姓氏録) 신센쇼지로쿠 or Shinsen Shōjiroku(しんせんしょうじろく) 고대 일본 헤이안(平安)시대 초기인 홍인(弘仁) 6年(815)에 사가천황(嵯峨天皇. 차아천황) 명으로 편찬된 일본 고대 씨족 일람서다. 제목은 새로 편찬한 성씨에 대한 기록이라는 뜻이다. - Shinsenshōjiroku, ‘New Selection and Record of Hereditary Titles and Family Names’ is an imperially commissioned Japanese genealogica.. 2018. 3. 8.
서경보(徐耕輔. 1771~1839) 2011.06.14 15:55:51 台植注 : 한국학중앙연구원 관련 항목 문장 기술을 약간 손질해 재가공했다. 문장이 맘에 들지 않아 바꿔봤다. 더불어 내가 생뚱맞게 이 서경보를 다룬 까닭은 오늘자 기사에서 그의 중국 시선집 옥생관시수(玉笙館詩粹)를 다루게 됐기 때문이다. 서경보(徐耕輔. 1771~1839)1771년(영조 47)∼1839년(헌종 5). 조선 후기 문신. 자는 임세(任世), 호는 묘옹(卯翁). 본관은 대구(大丘)다.문헌공 서종태(徐宗泰) 현손이자 대제학 서유신(徐有臣) 아들이다. 이조판서 서영보(徐榮輔)는 그의 형이다. 어려서 서유로(徐有老)의 양자로 들어갔다. 음보(蔭補)로 기용돼 순창과 예천군수를 지내다가 1825년(순조 25) 알성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이듬해 대사성에 제수됐다. .. 2018. 3. 8.
재불 서지학자 박병선 박사 공적 2011.11.23 14:20:55 台植注 : 以下者 大韓民國 文化體育觀光部之2011年11月23日報道資料添附物也. 박병선 박사 공적 □ 프랑스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던 직지심체요절과 외규장각의궤를 최초로 발견하여 세상에 알리는 데에 결정적인 공헌 ㅇ 박병선 박사는 우리나라 여성유학비자 1호로 프랑스로 유학하여 역사학 박사(프랑스 파리제7대) 취득 및 1967~1980년까지 프랑스 국립도서관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동서관에 보관되어 있던 「직지심체요절」과 외규장각 의궤 297권을 최초로 발견하여 외규장각 의궤의 존재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리게 됨. ㅇ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직지심체요절」이 우리 문화재임을 발견하고, 직지심체요절이 현존하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임도 직접 실험을 통해 밝혀냄으로써 우.. 2018. 3. 8.
호극가(胡克家)와 《문선고이(文選考異)》 《문선고이(文選考異)》는 도합 10卷이며 清代 胡克家가 昭明太子 蕭統의 《文選》과 그 注疏를 考證한 책이다. 宋 淳熙 年間에 尤袤이 刻한 李善注 本을 底本으로 삼고, 나아가 宋代 吳郡 袁氏․茶陵 陳氏가 刻한 六臣本을 근거로 異同을 校刊했다. 清代 《文選》의 校勘과 考訂에서 이 《考異》는 梁章钜의 《문선방증文選旁證》과 더불어 비교적 독특한 색채를 띤다. 전태길(錢泰吉)이 《폭서잡기(曝書雜記)》에서 이르기를 胡克家가 “嘉慶 十四年(1809)에 《文選》을 판각하니, 《考異》 10권이 있어 元和 顧君 廣圻․鎮洋 彭君 兆蓀 所撰이다. 두 분은 모두 校勘이 정밀하고, 변석(辨晰)한 바가 자못 상세하다. 근거로 삼은 바는 淳熙 辛醜 尤延이 貴池에서 판각한 本이지만 吳郡 袁氏가 翻雕한 六臣本․茶陵 陳氏가 刻하여 增補한.. 2018.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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