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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들이여, 제때 죽어주자! 고구려 장수왕(長壽王)은 이름대로 백수를 했다. 그의 아들로 세자는 조다(助多). 아버지가 무려 왕위에만 79년간 있다 죽었을 때 조다는 죽고 없었다. 조다 아들이 왕위를 계승하니 그가 문자명왕이다. 아버지가 하도 왕 노릇 오래하는 바람에 먼저 죽었으니 이름 그대로 쪼다가 되어 버렸다. 그보단 못하지만 조선 세종 역시 장장 32년이나 왕위에 있었다. 문종은 세종의 장자로 아버지가 재위 3년째인 1421년에 세자로 책봉되었다. 이때만 해도 아버지 세종은 모든 실권은 아버지 이방원에게 그대로 두어야 했다. 그러니 세종이 왕위에 재위한 기간과 문종이 세자로 있은 기간은 같다. 내가 놀랍기만 한 것은 이 긴 기간 문종이 내리 죽죽 세자로 있었다는 점이다. 세자나 태자 생활은 왕보다 더 힘들다. 언제건 틈만 나면.. 2018. 3. 13.
"역사는 자고로 막장드라마여야..." 작년, 아니 재작년 어느날이었다. 아니면 그보다 조금 빠른 시기였을 수도 있다. 김옹 책이 조만간 나오리라 마침내 그날 밥상머리에서 그 마누라한테 처음으로 통보했더니, 아니 이 영감이 탱자탱자 놀더니만, 그래도 책은 썼나 보네? 하면서 이내 눈이 초롱초롱해지는가 싶더니, 무슨 내용, 무슨 책이라 묻기에 블라블라 했더랬다. 그 말에 마누라가 이내 눈을 부라리면서 일장으로 훈시하기를, "내가 그리 말하지 않았느냐? 궁중 암투나 여인 질투 같은 주제로 승부를 보라고? 그리도 모르느냐? 역사도 막장이어야 먹힌다는 걸?" 하되, 이내 翁이 밥맛이 떨어져, 살다보면 그런 날도 있지 않겠느뇨 하며, 슬며시 숟가락을 놓고는 집을 나갔더라. 2018. 3. 12.
국정농단이 부른 미디어환경 변화 CNN 시대가 있었다. 걸프전이 초래한 뉴스전문 채널 전성시대의 서막이었고 실제 한동안 CNN은 총칼을 앞세워 전성기를 구가했다. 알 자지라 시대가 있었다. 사담 후세인 몰락과 함께한 미국의 이라크 정벌전은 또 다른 뉴스 전문채널 시대의 확인이었다. 작년에 터진 국정농단. 어느 막장 드라마보다 극적 반전을 거듭한 이 드라마는 시청자를 다시금 TV채널로 불러모았다. 뉴스 그 자체만이 아니라 그 파생상품들인 썰전이니 하는 각종 토크쇼 전성시대를 초래했다. 하루종일 이 채널 저 채널 돌리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한데 그 중심에 위치해야 하며 스폿라이트를 받아야 하는 뉴스전문 채널은 고전을 면치 못해 존재감을 상실했다. 그에 가야할 하일라이트는 뉴스전문채널이 아니라 JTBC를 필두로 하는 민영 케이블 종편.. 2018. 3. 12.
기자들은 공짜밥 얻어먹는 족속이라는데 대하여 소위 김영란법 제정 시행에 즈음해 그 적용대상으로 들어간 기자들과 관련해 저 제목과 같은 인식이 '의외로' 기자사회를 벗어난 일반 사회에는 광범위하다. 저런 인식 혹은 비아냥에 두어 마디는 적어두어야겠기에 오지랍주의 발동해 내 경험을 통해 몇 자 적고자 한다. 기자를 저리 보는 근저에는 무엇보다 기자를 단일한 층위로 보는 시각이 작동한다. 하지만 기자라 해도 왕청나게 달라, 중앙지냐 지방지냐에 따라 다르고, 종합일간지냐 전문지냐에 따라 또 다르고, 방송이냐 신문이냐 혹은 통신사냐에 따라서도 또 다른 측면이 많다. 그리고 그 청렴도라 할까 하는 것도 저런 성격별로 평균을 논하면 매우 다르다. 저 공짜밥 먹는다는 기준에서 내가 보기에 가장 깨끗한 언론 중 하나가 조선일보다. 갖은 욕을 얻어먹는 조선일보지만,.. 2018. 3. 12.
"기자들은 골프 공짜로 치나요?" 작년 꼭 이맘쯤 중학생 주말여행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작은 강연을 한 적이 있었다. 경주 답사가 예정된 모양이라 경주 지역 고고학 발굴 얘기를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강연이 끝날 즈음, 질의응답 시간에 내가 곤혹스러웠던 두 가지 질문이 있었다. 첫째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룩한 힘은 뭐냐? 둘째 기자들은 자기돈으로 골프를 치지 않는다는데 맞냐? 첫째에 대해선 뜬금없지만 악으로 깡으로라고 말했고, 둘째는 김영란법 시행 이전엔 대체로, 혹은 많이 그랬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왜 골프를 경멸하는지를 이야기했다. 내가 본 기자들의 골프 문화를 이야기했다. 내가 되물었다. 대체 그 얘긴 어디서 들었느냐 했더니 김용민 팟캐스터란다. 아..중학생들도 그걸 보는구나. 내가 한마디 더 했다. 공짜 골프, .. 2018. 3. 12.
나카 미치요(나가통세. 那珂通世. なかみちよ) 嘉永 4년 1월 6일(1851년 2월 6일)~明治 41년(1908) 3월 2일. 明治時代 일본 역사학자이자 동양사(東洋史)라는 개념을 동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창안한 인물이다. 盛岡藩 번사(藩士)인 藤村盛德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어린시절 이름이 荘次郎(莊次郞)이다. 번교(藩校)에서 성적이 뛰어나 14세에 藩校 교수이기도 한 漢學者 那珂悟楼의 청원으로 나카 가문[那珂家] 養子가 된다. 명치유신明治維新 뒤에 게이오의숙(慶應義塾)에 들어가 영학(英學)을 배웠다. 그후 사범학교 중학교 등지에서 교사로 일하는가 하면, 뒤에는 치바사범학교(千葉師範學校)와 동경여자사범학교(東京女子師範學校) 교장으로도 일하면서 여성 교육에 진력했다. 그뒤 제일고등학교(第一高等學校)와 동경고등사범학교(東京高等師範學校) 교수가 되고, 동경제.. 2018. 3. 12.
사학잡지(史学雑誌. 史學雜誌. 시가쿠잣시. しがくざっし)와 ‘회고와 전망’ 《사학잡지(史学雑誌)》는 일본의 財團法人 史学会(사학회. 史學會)가 발행하는 월간 학술지로 歷史學 전문을 표방한다. 창간은 1889年이며 일본에서는 역사학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잡지 중 하나로 꼽힌다. 매년 제5호는 ‘회고와 전망’(回顧と展望)을 게재하는데 그 前年에 이뤄진 역사학 연구 성과를 집대성하는 한편, 그를 통해 향후 역사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점검한다는 점에서 이 분야 종사자들에게는 必讀으로 통한다. 台植案 : 이 ‘회고와 전망’(回顧と展望. Retrospects and prospects) 운운하는 타령이 그대로 이 땅에 수입되어 허구한 날 회고와 전망만 일삼는 게 한국 역사학이다. 이 《사학잡지》는 월간지다. 그럼에도 1년에 고작해야 네 번밖에 잡지를 내지 못하는 한국 역사학회 기관지 .. 2018. 3. 12.
월터 스핑크(Walter M. Spink) 미국 미시간대학(University of Michigan, Ann Arbor) 미술사학과 명예교수로 1928년 생이다. 한국 미술사학계, 특히 불교미술사학계에 끼친 영향도 다대해 곳곳에 그를 직간접으로 사숙한 학도가 있다. 2008년 5월에는 그의 팔순에 즈음해 국내 미술사학도들이 그 헌정식을 겸해 그를 직접 초청한 학술대회를 개최하기도 했으니, 취재를 위해 나는 현장에 있었다. 다음 내 기사가 바로 그 내용을 다루었다. 팔순 헌정 월터 스핑크 교수 "아잔타석굴 보존 위해 관람객 제한해야"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특정 연구자의 회갑이나 정년퇴직, 혹은 칠순이나 팔순 등을 기념하는 논문집 발간이나 학술행사는 서구 문화권.. 2018. 3. 12.
Gwanghwamun or Main Gate of Gyeongbokgung Palace Founded in 1395 by the first king of the Joseon Dynasty, Gwanghwamun is the main gate of Gyeongbukgung Palace. Roughly meaning “may the light of enlightenment blanket the world,” the name symbolizes the resounding dedication that the people of the Joseon Dynasty had in creating a new dynasty. Constructed solely out of granite, its center is an entrance that resembles a rainbow, called Hongyemun .. 2018. 3. 12.
旧因州池田屋敷表門(黒門) or Gate of the Inshu-Ikeda Residence 重要文化財この門は、もと因州池田家江戸屋敷の表門で丸の内大名小路(現丸の内3丁目)に建てられていたが、明治25年、芝高輪台町の常宮御殿の表門として移建された。のちに東宮御所として使用され、さらに高松宮家に引き継がれる。表門は昭和29年3月、さらにここに移建して修理を加えたものである。創建年代は明らかでないが、形式と手法からみて、江戸時代末期のものである。屋根は入母屋造、門の左右に向唐破風造の番所を備えており、大名屋敷表門として最も格式が高い。昭和26年9月、重要文化財に指定。 Important Cultural PropertyGate of the Inshu-Ikeda ResidenceKnown as "Kuromon (Black Gate)" This was the gate to the Edo (Tokyo) residence of the Ikeda famil.. 2018. 3. 11.
월광보살(月光菩薩) 梵名은 Candra-prabha. 월광보살에 관한 出處를 보면 그 실체가 일치하지 않으나 대체로 이에 대해서는 3종류의 解釋이 있으니 다음과 같다. 첫째, 월광보살은 印度 古帝王으로 釋尊이 過去世에 보살행菩薩行을 닦을 때의 前身이라는 것이다. 《현우경(賢愚經)》 卷6, 《월광보살경(月光菩薩經)》, 《대보적경(大寶積經)》 卷80에 기재된 구절에 의하면 “此王具有大威德, 後施頭予勞度差婆羅門, 滿足檀波羅蜜行, 又稱月光菩薩”이라 한 것이 그 증거이다. 두 번째는 佛世 時에 中印度 舍衛國 波斯匿王의 異名이라는 것이다. 《인왕호국반야바라밀경(仁王護國般若波羅蜜經)》 卷上(大八·八二五中)에 이르기를 “舍衛國主波斯匿王, 名曰月光”이라 한 것이 그 증거다. 波斯匿은 梵名이 Prasenajit이며 팔리어 이름巴利名은 Pas.. 2018. 3. 11.
심덕잠(沈德潛. 沈德潜. 1673~1769) 淸代 文學家이자 시인. 字는 확사(確士), 號는 귀우(歸愚)이며 강소성(江蘇省) 장주현(長州縣)人이다. 일찍부터 詩로써 이름이 높았다. 과거에 거듭 실패하다 1739년 67세에 겨우 進士가 되었다가 뒤에 건륭제의 총애를 받고 예부시랑(禮部侍郞)까지 올랐으며 1747년 고령 때문에 직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가 여생을 시작과 저술로 보냈다. 청대 초기에 왕사정(王士禎)이 시에 신운설(神韻說)을 제창한 데 맞서 소위 격조설(格調說)을 주창하니 이는 《예기(禮記)》에서 말하는 “온유돈후(溫柔敦厚)함이 詩敎”라는 도덕적인 문학관에 기반해 바른 골격 위에 음률의 조화를 중시하는 시 정신을 찾는다. 이를 위해 격조파는 성당(盛唐)으로 복고하자고 외쳤으며 明代 전칠자(前七子)라든가 후칠자(後七子), 淸代 심덕잠 일파가.. 2018. 3. 11.
히라타 아쓰타네(평전독윤<平田篤胤>), 신도(神道), 적현태고전(赤縣太古傳) 2005.05.28 23:58:35 히라타 아쓰타네(평전독윤) 1776.9.25~1843.10.4 : 안영(安永) 5~천보(天保) 14년 복고신도(復古神道)를 주창한 에도시대 말기 일본 사상가로, 천황의 신성(神性)을 강조한 그의 사상은 19세기 후반에 왕정복고를 주창하는 존왕파(尊王派)에게 결정적인 논리를 제공한다. 그는 號를 이부키노야(氣吹舍) 혹은 마스게노야(眞菅乃屋)라 했다. 아버지는 出羽國 아키타(秋田) 번사(藩士)인 大和田淸兵衛 平田祚胤이다. 祿高 100석인 平田祚胤에게 그는 넷째 아들. 그러나 아버지에게서 하인과 같은 취급을 받는다. 어려서는 아사미 게이사이(?見絅?.1652~1712)의 학풍을 잇는 中山靑我에서 한적(漢籍)을 배우고 여기에서 國學을 닦음으로써 나중의 古道 硏究의 실마리를 열.. 2018. 3. 11.
쓰다 소우키치(진전좌우길津田左右吉 つだ そうきち) 1873.10.3~1961.12.4(明治 6~昭和 36) 일본어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면 '쯔다 소우키치', 현행 외래어 표기법으로는 쓰다 소키치다. 歷史學者. 본명은 津田親文이다. 기후현岐阜縣 米田東?井의 士族 집안에서 태어났다. 1887년(明治 20) 國民新聞 창간호의 田口卯吉 논설 「國を建つるの他は幾何ぞ」에 깊은 감명을 받고는 나중에 도쿄전문학교東京專門學敎 방어정치과邦語政治科에 입학해 1891년(明治24)에 졸업한다. 澤柳政太郞에게 寄寓했다. 그 뒤 富山縣 本願寺 別院 部屬學敎 교수로 일하다가 상경해 시라토리 구라키치(백조고길白鳥庫吉) 후원을 받는다. 또 中等敎師를 군마현립중학群馬縣立中學 치바현립중학千葉縣立中學 宇都宮中學 치바중학교千葉中學校 교사, 독일협회중학교獨逸協會中學學校 교사 등으로 일한다. 교.. 2018. 3. 11.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과 도홍경陶弘景의 본초경집주本草經集注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은 현존하는 중국 가장 오래된 전문 본초학서다. 그 성립 연대는 이론이 분분하나 기원전 1세기 무렵 전한 말기가 아닐까 한다. 본초(本草)란 글자 그대로는 근간이 되는 풀이란 뜻이니, 예서 본초는 말할 것도 없이 약초를 말한다. 신농(神農)이라는 말이 들어간 까닭은 그 저자가 神農으로 설정됐기 때문이니, 신령스런 농사꾼이라는 액면 글자가 시사하듯이, 신화상 인물인 그는 농업을 일으킨 시조로, 특히 병 치료에 맞는 약초를 찾아 이것저것 맛보느라, 독물에 중독도 되고 했다고 한다. 이런 神農이라는 신화상 인물에 그 저자를 가탁한 것이 신농본초경이다. 약초로서의 '본초(本草)'라는 말은 《한서· 평제기(漢書平帝紀)》에 가장 빠른 용례가 검출된다. 하지만 本草라는 말에 끌려 반드시 초본.. 2018. 3. 11.
무상비요無上秘要 운급칠첨雲笈七籤 정통도장正統道藏 도교의 3대 경전 결집이다. 정확히는 3대 경전집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 하면 보통 경전이라 하면 개개 경전을 의미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3대 경전은 경전들을 모아 분류하고 편집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불교에 빗대어 말한다면 대장경大藏經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첫째, 무상비요無上秘要이니, 이는 북주北周 무제武帝 우문옹宇文邕(재위 561~578)이 통도관通道觀 학사學士에게 명해 편찬케 했다. 《구당서 경적지舊唐書經籍志》와 《신당서 예문지新唐書藝文志》 및 《송사 예문지宋史藝文志》에 의하면 72卷이 현존한다고 했다. 현존 《정통도장正統道藏》 태평부太平部 목록에는 100권이라 하지만 결실이 있으니 1~2권, 10~14권, 36권, 58~64권 총 31권이 그것이므로, 실제 현존 권수는 69권이다. 따라.. 2018. 3. 11.
시경(詩經) : 특히 구성론과 역대 주석 이하는 성백효 역주 '현토완역 시경집전 上' 전통문화연구구회, 1996.10 초판3쇄 '이 책에 대하여'(5-8쪽)를 추린 것임. 1. 《시경(詩經)》의 출현 증거 논어 술이편(述而篇) “공자께서 평소에 늘 말씀하신 것은 시와 서와 예를 행하는 일이었다”(子所雅言 詩書集禮) 논어 태백편(泰伯篇) “배우는 자는 시에서 선한 마음을 흥기시키고 예에서 행실을 확립하며 악에서 완성된다”(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논어 계씨편(季氏篇) “(아들 伯魚에게) 너는 시를 배웠느냐? 사람이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할 수가 없다.”(學詩乎 … 不學詩 無二言) 같은 계씨편 “사람이 되어가지고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을 배우지 않으면 얼굴을 담장에 대고 서 있는 것과 같다”(人而不爲周南召南, 其猶正墻面而立也與) 논어 양화.. 2018. 3. 11.
류서(유서·類書), 분류식 백과사전 '유서'란 글자 그대로는 분류식 책이라는 뜻인데, 간단히 말해 분류식 백과사전이다. 우리한테 익숙한 백과사전은 대개 가나다 혹은 ABC 순서로 표제어를 배열하고, 해당 항목마다 그 개념을 설명하는 식으로 구성하지만, 이 유서(類書)라고 하는 백과사전은 동아시아에서 태동해 발전한 것으로, 주제 혹은 키워드별로 분류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 까닭에 類書는 해당 분류식 개념어를 적출하고는, 그 개념을 설명하거나, 그것을 주요한 소재로 활용한 先代 문헌에서 관련 구절을 그대로, 혹은 요약해서 배열하는데, 당나라시대에 나온 이런 종류로 대표적인 4가지로 《북당서초》와 《예문유취》와 《초학기》와 《백씨육첩》이 있으며, 이런 사업이 후대로 올수록 더욱 극성을 부려 특히 북송시대에는 《태평광기》라든가 《태평어람太平御覽.. 2018. 3. 11.
"여가 주차장이라?" 그제다. 점심시간 짬을 내서 경복궁 내 국립고궁박물관에 들렀다. 박물관 입구 안내판을 보니 왕실의례와 관련한 공간을 근자에 재단장했는지 혹은 새로 꾸몄다 했으므로, 이곳을 돌아봤다. 그곳을 돌아보고는 위층으로 계단을 이용해 올라가는데, 그 중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할머니 부대랑 마주쳤다. 각중에 지나치는 나를 붙잡고 개중 어떤 할매가 묻는다. "아재, 일로가마 주차장이지요?""엥? 뭔 주차장? 할매 주차장 가야대여?" 같은 일행이지 싶은 다른 할매가 나랑 같은 방향으로 계단을 올라오다가 문제의 주차장 할매한테 말한다. "니리갈꺼 업써. 암꾸도 볼끼 엄써. 차 두대밖에 엄써. 고마 올라가.""그라까? 볼끼 이키 없노? 가 고마" 국립고궁박물관 전시실 지하1층 홀에는 저 순종어차를 갖다 놓았다. 아마도 동네.. 2018. 3. 11.
임금과 신하, 재물과 베품 "천하에 부릴 만한 신하가 없음을 걱정하지 마라. 그런 그를 알아보고도 부릴 만한 임금이 없음을 걱정하라. 천하에 쓸 만한 재물이 없음을 걱정하지 마라. 재물이 있어도 그것을 분배할 줄 아는 사람이 없음을 걱정할지니라" (天下不患無臣, 患無君以使之: 天下不患無財, 患無人以分之) 管子 牧民篇에서 2018. 3. 11.
덕동댐을 찾아서(1)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과 덕동호 덕동댐은 1971년 박정희 정권이 입안하고, 이듬해 시행에 들어간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 일환으로 건설됐다. 경주를 古都 분위기에 어울리게 개발한다는 취지를 표방한 이 개발계획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됐으니, 하나가 경주 분지 일대에 산재하는 신라시대 유적 환경을 정비하는 ‘사적지구 정비계획’이며, 다른 하나는 그것을 관광과 연계한다는 취지에서 그것을 뒷받침하는 배후 시설인 ‘관광시설 계획’이 그것이니, 보문관광단지 개발은 두 번째 계획의 핵심이었다. 물론 이 두 계획을 위한 도로와 상하수도 정비 등 ‘관광환경 및 기반시설조성’ 계획도 다른 주축을 이룬다. 덕동댐은 이 중에서도 보문관광단지 개발과 직접 연동한다. 1971년 건설부가 작성한 《경주관광개발종합계획》을 보면 먼저 관광시설 계획 투자 방향으로.. 2018.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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