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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자물쇠 빠다 기름 바른 유창 미국영어로 여친인듯한 동행한테 미국인 듯한 양코배기 젊은 친구가 남산을 장악한 열쇠 더미를 보고는 "love locks"라 설명하는 말을 우연히 엿듣고는 피식 웃고 말았다. 접때 어떤 아줌마는 남산이 처음인듯, 대뜸 하는 말이 "이게 대체 돈이 얼마야" 하는 게 아닌가? 열쇠로써 변치않는 사랑 상징한답시며 자물쇠 채우곤 그에다가 "변치 않는 우리 사랑"이니, "죽을 때까지 한가지로" 하는 오글거리는 몇 마디 적고는 그 아래다가 그를 맹서한 커플 이름과 날짜를 적어 걸어주는 저 전통이 중국에선 아주 흔한데 혹 그에서 흘러왔는지는 모르겠다. 볼 때마다 글쎄, 저리 요란스레 맹서한 사랑이 지금도 영속하는 커플 몇이나 될까 못내 의뭉한 까닭은 내가 냉소적이기 때문일까? 아님 그러지 못한 내.. 2018. 10. 9.
탁본이 역사 인멸 주범이다 전남 화순군 이양면 증리 산 191-1 번지에 소재하는 쌍봉사라는 사찰 서쪽 뒤편으로 올라간 쌍봉산 기슭에 통일신라말, 이곳을 무대로 이름을 떨친 철감(澈鑒)이라는 선사(禪師) 산소가 있다. 이 무렵이면 승려는 거의 예외없이 다비를 할 때라, 원성왕 14년(798)에 출생한 철감이 경문왕 8년(868)에 입적하자, 그 역시 다비식을 하고는 그 유골과 사리를 수습하고는 그것을 봉안할 산소를 조성하고 그 인근에는 선사의 공덕을 칭송하는 신도비를 세우니, 그것이 현재는 저리 배치되어 있다. 승려 무덤은 여타 직업 종사자 혹은 다른 신분과는 독특하게 다른 점이 있어, 역시 승려임을 표시하고자 그 모양을 탑으로 만들었으니, 불교에서 탑은 바로 부처님 사리를 모신 산소인 까닭이라, 이 전통을 살린 것이다. 저 두 .. 2018. 10. 9.
해방신학과 학생운동 일전에 두어번 어딘가 긁적거렸지만, 어딘지 모르고 검색도 되지 않으니 이참에 다시 정리한다. 데모하다 잡혀가는 놈은 대체로 나같은 데모 아마추어다. 1987년 7월, 한열이 장례식 때 시청 앞에서 노제가 있었다. 그거 끝나고 해산하는 과정에서 남산 지금의 하얏트호텔 쪽으로 가다가 나는 붙잡혀 남대문경찰서로 연행됐다. 그 남대문경찰서는 지금이나 그때나 위치가 같아, 서울역 맞은편 남산 기슭, 옛 대우건물 인근에 위치한다. 당시 나는 마침 교련복 바지까지 입었던 데다 거기 경찰서가 있는 줄도 몰랐다. 얼씨구나 날 잡아드시오 하고 제발로 호랑이굴 찾아간 멍청한 멧돼지였다. 얼치기가 뭘 알겠는가? 붙잡혀 경찰서로 연행되는 동안 몇 백 미터 끌려가며 양쪽에 도열한 의경인지 전경인지 하는 놈들한테 졸라 맞고 졸라 .. 2018. 10. 9.
도전과 응전, 孝를 창출한 불교 생소한 도덕 윤리 관념으로 무장한 불교가 바다를 건너고,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타클라마칸 사막을 넘어서, 혹은 동지나해를 지나 동아시아로 침투해 서서히 저변을 넓혀가자, 그것이 못마땅하기 짝이 없던 동아시아 지식인들은 그 타도의 기치를 높이 쳐들었으니, 그 플랑카드엔 언제나 "저 외부 귀신들은 애미 애비도 모르는 상놈"이라는 문구가 선두를 차지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출세간出世間을 지향하는 불교는 필연적으로 혈연의 단절을 전제할 수밖에 없으니, 그리하여 부모도 버리고 형제자매도 팽개치며, 석가모니 자체가 그랬듯이 피붙이 자식조차 팽개치고는 더 큰 구제를 내걸었으니, 그들에게 혈연은 무엇보다 단절해야 할 괴물이었다. 그런 까닭에 이는 필연적으로 노우 섹스로 흘렀으니, 자식도 생산하지 아니하.. 2018. 10. 9.
김춘추의 여인들(3) 고타소 이 고타소古陀炤는 앞서 여러 번 다루었고, 그것이 등장하는 맥락이나 사건은 이곳 내 블로그에서 '고타소' 혹은 그의 남편 '품석'으로 검색하면 되거니와, 혹 그것들이 모두 필요하신 분들은 참고바란다. 고타소란 이름은 내 조사가 철저한지 아닌지는 자신이 없거니와, 일단 내 추산대로라면 《삼국사기》 권 제41 열전 제1 김유신上에 보이거니와, 그것이 등장하는 맥락은 다음과 같다. 선덕대왕 11년 임인(642)에 백제가 대량주(大梁州)를 격파했을 때, 춘추공(春秋公)의 딸 고타소랑(古陀炤娘)이 남편 품석(品釋)을 따라 죽었다. 춘추가 이를 한스럽게 여겨 고구려에 청병함으로써 백제에 대한 원한을 갚으려 하자 왕이 허락했다. 이것이 삼국시대 말기, 삼국 관계에서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 대량주, 곧 지금의.. 2018. 10. 8.
껍데기 에리로 세운 대원각사비 탑골공원..민족해방운동 성지 중 한 곳이라는 서울 종로통 한복판 이 공원이 근자엔 다른 상징을 탑재했으니, 고령화 사회 지표와도 같은 곳이라, 갈 곳 없는 노인들과 이른바 박카스 아줌마 집결지로 통용한다. 이곳이 그보다 더 유서 깊은 역사 흔적이란 사실은 경내 십삼층석탑과 더불어 그 한 켠 비각이 둘러친 이 석물이 우뚝히 증언하거니와, 이를 일러 대원각사비大圓覺寺碑라 한다. 그 이름은 비석 자체에 보이거니와 머릿돌 전면에 전서체로 '대원각사지비大圓覺寺之碑'라 적어놓았다. 그러니 이 비는 볼짝없이 대원각사라는 사찰이 어떤 내력으로 창건 혹은 중수되었는지를 적은 족보다. '대大'는 똥폼 낸다 붙인 수식어니, 그냥 원각사라 보면 대과가 없다. 그 구체적인 내력이야 거북 등을 뚫고서 고추 선 대리석제 직사각형 .. 2018. 10. 8.
번들번들 문화재 안내판, 내가 거울인가 안내판인가? 일전에 나는 우리 문화재 현장의 문화재 안내판 문제를 정리한 글을 이곳 블로그 포스팅을 통해 정리하면서, 그것을 다음 네 가지로 집적했거니와, 1. 무엇을 담을 것인가?(내용)2.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디자인) 3. 어디에 세울 것인가(위치)4. 영어판은 어찌할 것인가?(독자) 오늘 소개하는 서울 탑골공원 대원각사비(大圓覺寺碑)에서와 같은 이런 양식 안내판은 바로 두 번째 디자인과 연계한 것이니, 이는 볼수록 구토와 짜증만 자아낸다. 이런 양식 안내판이 심각성을 더하는 까닭은 첫째, 그것이 광범위하게, 주로 국가기정 문화재 현장에 소위 대세를 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둘째, 그럼에도 이 디자인은 어떤 놈이 개발해 퍼트리기 시작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반사가 극심해 글을 읽어.. 2018. 10. 7.
성큼한 가을 산책 삼아 남영동 집 근처를 배회했다. 갈아탄 갤놋나인 카메라 성능도 실험할 겸 이런저런 풍광과 경물景物을 듬성듬성 담가봤다. 길을 나서자마자 마주한 오동나무는 이파리가 쭈구렁이라, 저러고선 무슨 계전오엽이추성階前梧葉已秋聲이겠는가 싶으니, 누르딩딩한 기운도 없진 않으나, 시퍼렇게 멍든 채 거꾸러지고 말리니, 저래선 어찌 가을 소리를 내겠는가? 미군 부대 담장에 기댄 산딸나무는 시뻘건 열매가 영롱하기는 한데 볼수록 저 열매는 식용인가 아닌가가 의뭉스럽다. 하이마트에 저 비스무리한 농산물은 본 적 없으므로 혹 독을 품지 않았나 모르겠다. 하긴 버섯은 화려할수록 독성이 강하다는데, 뭐 그러고 보면 수박 역시 속이 시뻘겋기는 저보다 심하지 아니한가? 아들놈 다닌 삼광초등학교엔 그 무성한 담쟁이 덩쿨이 화장기 완.. 2018. 10. 7.
여의도 불꽃놀이 왜 갔느냐 묻거들랑 뭐 귀차니즘 때문이었다고 해 두자. 뭐 사람 그리 복닥이는데 피곤하게시리 왜 가느냐 해서였다고 해 두자. 그런 귀차니즘과 피고니즘을 한 번쯤은 던져버릴 수도 있지 아니한가. 돌이켜 보니, 내가 뭐 그리 내 신념에 투철했던 것도 아니요, 그보단 수시로 변신 변심했더랬다. 그래 세상에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조폭답사반원 한 분이 그제 생일이었단 소식을 접하고는 주말인 어제 번개를 쳤다. 태풍 여파로 전날부터 쌔리붓던 비가 오후 되니 일순 사라지는가 싶더니 가을 창공을 선사했다. 그래 하늘도 나를 돕는다 생각하고는, 번개쳐서 모인 반원 몇 명과 종로통 일대를 어슬렁이며 깔깔 웃다 밤이 이득해져 막 남영동에 내려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서쪽 하늘이 쿵쿵 거린다. 그래 그랬지. 오늘밤 여의도.. 2018. 10. 7.
세운상가 옥상에서 태풍이 지났다. 가뜩이나 불면증 시달린 나날들이라, 우중충함이 주는 그 늦은 낮잠에서 주섬주섬 깨어, 흐리멍덩한 몸뚱이 이끌고 나선다. 볕이 났다고 아들놈이 알려준다. 어디론가 나서야 했다. 1호선 남영역에 서니 역사 지붕 빈틈으로 파란물이 쏟아진다. 시내로 향한다. 종로3가 역에 내려 세운상가 쪽으로 향한다. 종로대로를 사이에 둔 세운상가 옥상에 오른다. 저 계단 아래로는 근자 발굴조사를 통해 드러난 조선시대 유적을 보존조치했다. 9층 옥상에 오르니 눈이 부시다. 우선 종로 방면을 본다. 아래로는 재개발을 기다리는 판자촌이 광할하다. 6.25 전쟁 이후 쏟아져 들어온 피난민들이 이룩한 그 판자촌에서 역사를 시작한다. 눈길을 오른쪽 정면으로 돌린다. 저 멀리 종묘 너머로 북한산이 보이고 다시 그 뒤편엔 .. 2018. 10. 6.
태풍 지난 서울 하늘 어제 아침 쏟아지기 시작한 비가 오늘 낮이 되어 개이니 하늘이 올갱이 국물을 흩푸린 듯 하다. 태풍 콩레이가 남쪽을 지나 동해로 빠나갔다 하니 근래 태풍 중엔 한반도 미친 영향이 가장 컸다. 가을 태풍을 흔히 백해무익이라 하나, 꼭 그렇지만도 아니해서 모든 태풍이 그렇듯이 이번 콩레이 역시 적폐를 청산하고 창공을 선사한다. 2018. 10. 6.
쓰임이 다하면 버려지는 법 찾아 보니 고려가요 중에서도 〈동동動動〉이 출전이다. 1년 한 해 농사 과정을 달마다 나누어 그 풍광을 노래한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형식을 빌리되, 시종일관해서는 남자한테 버림 받은 여인네 궁색한 처지를 노래한 패로디 시문학으로, 그 6월 조가 다음이라. 19六月(유월)ㅅ 보로매 아으 별해 룐 빗 다호라.20도라보실 니믈 젹곰 좃니노이다.21아으 動動다리. 이에서 말한 6월 세시풍속은 그달 보름에 해당하는 유두(流頭)라, 이날은 각종 산해진미 차려 산간 폭포나 동쪽으로 흐르는 시내로 가서는 머리를 감고 액(厄)을 씻어 버리고는 놀이를 한판 벌이곤 했다. 한데 이 한자 표기가 묘해서 글자 그대로는 대가리를 물에다가 흘려버린다는 뜻이어니와, 경상도 지방에서는 이를 물맞이라 했다고 하니, 이에서 유두는 결.. 2018. 10. 6.
Hwaeomsa Temple, Gurye Is it possible to visit Hwaeomsa Temple next spring when red apricot blooms? 全羅南道 求禮郡 華嚴寺 紅梅 2018. 10. 5.
가을비 우산속 aging 제주 앞바다까지 치고 올라온 태풍 콩레이 여파라 하는데, 아침부터 종일 비가 그치지 아니한다. 한반도 남쪽을 관통한다는 예보가 있거니와, 그런 엄포만 놓다 시름시름 앓다 가 버린 저번 태풍보단 분명 위력이 센 듯, 녹조 범벅인 지난 여름에나 올 것이지, 왜 이 계절이란 말인가? 저들은 우리 공장 인부들이거니와, 우산을 보면 그 우산을 걷어치지 아니해도, 그것을 쓴 사람 연령대를 짐작하거니와, 저런 파라솔형 골프형 우산은 나이들수록 선호하거니와, 실제 저 큼지막한 우산 아래 고난의 연초 행진을 마치고 공장으로 복귀하는 저들은 나이로 보면 쉰 안팎이다. 그에 견주어 젊을수록 대가리만 덮을 만 해서, 접으면 한줌인 접이형 초간단형을 선호하니, 이 비 그치면 주머니에 넣거나 가방에 쏙 넣고는 표표히 사라진다. .. 2018. 10. 5.
구폰을 퇴역시키며 모든 만남이 그랬듯이 너 또한 느닷없었다. 마른 하늘 날벼락처럼 내려 어쩌다 수송동에 똬리를 틀었으니, 돌이켜 보건대 그때가 2016년 1월 아니면, 그 전달이었을 것이로대, 내가 무에 널 특별히 어여쁘다 해서 골랐겠는가? 너를 앞세운 신모델이 나왔다기에 네 동료 중 고른다는 것이 어쩌다 너였으니, 이 모든 것이 우연의 장난이었느리라. 뭐 필연이라 해도 달라질 건 없다. 벼락 같은 만남이었으니, 내 너를 라후라마즈다를 앞세워 퇴출하노라. 나를 원망하지 말지어다. 3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다 보니, 미운정고운정 이런저런 잡상 만감이 교차하며, 어느새 이젠 피로감과 처연함과 무던함과 무료함이 밀려왔더랬다. 마침 새 사람 나타났다 하니, 미루고 미루다 나 역시 갈아타고자 한다. 이별을 결심하니 부디 너는 좋은 .. 2018. 10. 5.
알알이 한점 그림이 되어 한시, 계절의 노래(191) 추일 잡영 여덟 수(秋日雜詠八首) 중 넷째 [宋] 육유(陸游) / 김영문 選譯評 잎 아래 고운 새는불러도 오지 않고 바람 속 작은 나비시든 잡초에 점을 찍네 집 남쪽 집 북쪽엔가을빛이 하 좋아라 여기저기 모든 곳이한 폭 그림이네 葉底珍禽不受呼, 弄風小蝶點殘蕪. 舍南舍北秋光好, 到處皆成一畫圖.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에서 김희성은 봄밤을 즐기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여기 다 있구려.... 난 이리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봄, 꽃, 달....” 무용(無用)한 것으로 말하자면 봄보다는 가을에 훨씬 많다. 맑은 하늘, 붉은 잎, 하얀 억새, 스산한 바람, 가녀린 코스모스 여기에다 하늘색 쑥부쟁이, 애절한 풀벌레, 황금빛 국화, 투명한 햇볕, 찬란한 .. 2018. 10. 4.
자주색 기러기 한번 울자 붉은 잎 떨어지고 한시, 계절의 노래(190) 가을 저녁 누각에 올라(秋晚登樓) [淸] 축열림(祝悅霖) / 김영문 選譯評 바야흐로 비 개어기쁘게 발 걷으니 골목에는 구름처럼나락가리 쌓인 가을 자주색 기러기 한 번 울자붉은 잎 떨어지고 석양 속 한 사람죽서루에 기대 있네 卷簾恰喜雨初收, 村巷雲堆粳稻秋. 紫雁一聲紅葉落, 夕陽人倚竹西樓. 옛날 시골 가을 풍경 중 하나는 집집마다 낟가리를 쌓는 일이었다. 논에서 베어낸 벼를 한 단 한 단 묶어서 사람이 지게로 져서 나르거나 소 지르마로 실어서 날랐다. 자기 집 마당이나 공터에 벼를 차곡차곡 쟁여서 높다랗게 쌓아 올리고 타작할 때까지 그렇게 보관했다. 어릴 때 작은 지게로 벼를 져 나를 때는 어깨를 눌러오는 무게 때문에 힘들기도 했지만, 다른 아이들보다 한 단이라도 더 지려고 애를.. 2018. 10. 4.
역사덕후 문재인의 문화재 행보 이건 우리 문화재 담당 기자더러 하나 별도 기사화를 주문할까 하다가, 너 문빠냐 어쩌나 하는 말이 일각에서 나올 것이 빤해 이것으로 갈음하고자 한다. 제목이 말한 저 행보, 문통이 유별나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 평가건대, 역사 혹은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박정희와 더불어 최고를 다툴 만한 행적을 보인다. 주지하듯이 문화재 현장을 자주 찾은 역대 대통령으로 박정희를 능가할 이는 아직 없다. 그의 기나긴 재위기간을 감안한다 해도, 그는 주요 발굴현장까지 친림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한데 취임 1년 반밖에 되지 않은 문통 역시 그에 못지 않은 행보를 보이거니와, 언제나 우리 사회 다른 부문에 견주어 언제나 열세를 면치 못하는 문화재계에 이는 분명 고무적인 현상이라는 말, 사석에서 나는 자주 한다. 문통 자서전.. 2018. 10. 3.
그 나물에 그 밥, 신라사 지난 100년의 역사 근자 어떤 자리에서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전보가 예정된 유병하 국립경주박물관장을 만났더니, 새삼스레 명함 한 장 달라면서 이르기를, "최근에 나온 책자들 좀 보내주겠다"고 한다. 며칠 뒤, 저들 책자 4종이 우편물에 묻어왔다. 뜯어보니 지난 8~9월 두 달간 경주 지역에서 열린 신라 및 박물관 방재 시스템 관련 학술대회 발표집이었다. 주최별로 보니 국립경주박물관이 주최한 것으로는 '6세기 신라 석비石碑의 세계' 한 종이 있고, 나머지는 유관 기관들이 개최한 것들이었다. 지진방재 심포지엄이야 워낙 분야가 달라 논외로 치고, 이른바 정통 역사학, 정통 신라사 분야 직업적 학문종사자들이 관여했을 법한 학술대회 발표집을 죽 훑어봤다. 저런 학술대회가 열린다는 소식과 그 내용은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듣기도 .. 2018. 10. 3.
꽃에 깃든 가을 서리를 깔보고 고고한 절개를 자랑한다 해서 국화를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 했던가? 보니, 국적 불명한 이 가을꽃 역시 그에 버금하니, 근자 주변에 흔히 보이는 이 꽃이 무어냐 물으니, 가우라(gaura)라 하는 분홍바늘꽃이라는데, 이르기를 미국 원산지로 2년생 또는 다년생 초본으로 근경이나 종자로 번식한다고 하거니와, 관상용으로 식재하며 자연상태에서 월동하며 자란다나 어쩐다나? 국화여, 긴장하라! 언제까지 연명 도씨 기대어 독고다이할 수는 없는 법, 적자생존으로 역사는 흘렀거니와, 그대 역시 넘버2, 넘버3로 밀려나지 말란 법은 하늘 땅 어디에도 없으리라. 2018. 10. 2.
홍시 모노가타리 아직 이 단계는 아니나, 이달 말이면 대한민국은 온통 홍시로 넘쳐난다. 나훈아는 홍시를 보며 따뜻한 젖가슴 내 주던 엄마를 떠올렸지만, 나는 그냥 초로 등치한다. 제맛을 내는 홍시는 실은 초로 변하기 직전의 그것이라, 하지만 이 무렵,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홍시는 곧잘 땅으로 고공직하하기 마련이다. 먹을 것 없던 그 시절엔 흙만 대강 털어내곤 한 입에 털어놓곤 했으니, 그것 하나만으로도 꿀맛 방불하던 시절이었다. 먹을 것이 지천으로 깔리는 지금은 중력의 법칙을 시험한 홍시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 괜실이 밟았다간 개똥 소똥과도 같은 대접이니, 하기야 어쩌겠는가? 시대가 변하고 입맛도 변했거늘, 홍시라고 언제까지나 나훈아가 기억하는 그 홍시로 남을 수는 없지 않은가? 터져버려 더는 손 쓸 재간이 없.. 2018.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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