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노년의 연구422 호적을 보면 매우 이상한 균역법 1750년 이후 조선시대 호적을 보면균역법의 실체에 대히 의문을 갖는다. 이거이 실제로 제대로 시행되었던 것일까. 매우 의심스럽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균역법 실시이후 선무군관 숫자가 너무 적다. 실록인지 어딘지 기록에 의하면 균역법을 실시하면 정부 수입이 줄어드니까 이를 메꿔 줄 선무군관은 정부에서 도별로 숫자를 정해 위에서 반드시 채우라고 내려 꽂았다. 그런데 막상 향촌의 호적을 보면 선무군관이 몇 없다는 말이다. 선무군관을 받으면 직역이 그 이전에 유학이건 업무건 업유건 간에선무군관으로 바뀐다. 거의 백프로 이전에는 갖은 방법으로 군역을 회피하던 소위 향촌의 중인들이 대거 충원되었어야 정상인데막상 호적을 보면 선무군관으로 잡혀 들어간 사람이 몇 안 된다. 그나마 이 사람들도 그.. 2025. 9. 6. 호적에서 보는 균역법 균역법은 1750년, 영조 26년에 공포되었다. 온라인의 나무위키 글을 따서 옮겨보면 이렇다. 인정(人丁) 단위로 2필씩 징수하던 군포(軍布)를 1필로 감해주고, 대신 균역청을 설치하여 줄어든 세원을 보충하는 정책을 실행하도록 했다. 왕족이나 권문세가, 지방 관아에서 세금을 매겨오던 어전(漁箭), 염분(鹽盆), 곽전(藿田), 태전(苔田)과 선박에 대해 국가에서 세금을 거두게 하였다. 그리고 토지마다 1결당 2말의 결작미를 징수하였는데, 이는 군역의 부담이 전세로 바뀌게 된 셈이다. 일부 상층 평민을 대상으로는 선무군관제에 따라 선무군관이라는 지위를 주어 선무군관포 1필을 납부하게 하였다.요약하면 군포를 노상 내던 평민들 2필을 1필로 감하는 대신, 새로 1필을 내는 사람들을 뽑아 손실분을 메꾸게 했다 이.. 2025. 9. 6. [연구 소식] 일본인류학회 발표 국립청주박물관 이양수 관장, 경상국립대학교 박물관 송영진 선생과 함께 韓国の考古学から見た弥生人の原郷 이라는 제목으로 시모노세키에서 열리는 79회 일본인류학회에서 발표하게 되었다. https://www.kuba.co.jp/anthropology79/index.html 2025. 9. 5. 19세기 유학모칭자들 우리나라 18-19세기에 향촌사회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소위 유학 모칭자들-. 이들은 숫자도 많고 신분 상승의 욕구도 강하여19세기 후반 이미 뚜렷한 입지를 드러내는데, 과연 조선 후기의 각종 차별을 뚫고 입신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겠다. 이들은 구한말의 거쳐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이들의 그 이후 추이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한 연구를 필자는 본 적이 없다. 일제시대 활발한 활동을 하던 한국인이 19세기 유학 모칭자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그리고 해방 이후 활동하던 사람들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면밀하게 따라가는 연구를 본 적이 없는 까닭이다 다만 필자의 막연한 추측이기는 하지만이들이 19세기, 유학호를 참칭하며 신분상승을 꿈꾸며 벌이던 그 강렬한 에너지와 물불 안 가리는 행각을 생각하면, 이들은 20세기 .. 2025. 9. 5. 메이지 초기를 지배한 출세주의 (2) 메이지 시대, 하면 우리는 아무래도 식민지배의 기억이 있어서이 시대는 제국주의자들의 시대, 라고 정의하기 쉽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메이지시대의 초창기는 조금 다른 각도에스의 조명도 필요한 것이, 이 메이지 초기는 막부를 쓰러뜨리고 개국개화의 국가적 대전환 위에 막부편에 섰던 사람이나 아니면 신정부 편에 섰던 사람이나 극소수의 벌열이 된 이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쪽박 차고 시작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여 극도로 빈핍한 이들이 공부 하나로 출세해보겠다는 기풍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던 대였다. 이 시기에 일본의 교육제도라는 건 근대적이라고 보기 일천하여 허술하기 짝이 없었는데 아래로는 소학교에서 위로는 대학까지 졸업생도 없고 가르칠 선생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만들어가며 교육하는 상황이라 어제까지 교육생.. 2025. 9. 5. 메이지 초기를 지배한 출세주의 (1) 일본 메이지 시대 초기를 보면, 눈에 띄는 것은나도 이제 막부가 쓰러졌으니 출세 한 번 해보자는 것이 되겠다. 에도 막부 300년은 한마디로 말해서 내가 할 일이 명확히 정해져 있고내가 받을 녹봉이 정확히 정해져 있어사무라이들은 위로는 쇼군부터 아래는 말단 하급 무사까지뭐를 해야 하고 얼마나 받을지가 정확히 결정되어 있었다. 이 녹봉이 너무 작은 경우 요샛말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벼락출세도 없었고또 하지말라는 거 안 하고 잘 보신주의로 버티면벼락 몰락도 거의 없었다. 한때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칼을 뽑았다가는 나는 물론우리 후손 대대로 먹을 녹봉을 날릴 판이라, 무사는 농민이 약올리면 죽여도 된다고 했지만아무도 그 말을 믿고 칼을 뽑는 이가 없었다. 그랬다가는 얼씨구나 하고 위에서 .. 2025. 9. 5. 이전 1 ··· 23 24 25 26 27 28 29 ··· 7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