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노년의 연구422 그 많은 통훈대부가 모록이다? 호적이나 족보를 보면, 대개 통훈대부와 같은 품계를 받으면 더이상 유학이라 쓰지 않고 그 품계를 직역에 적는다. 대개 호적이나 족보에 앞서 김단장께서 올리신 것과 같이 등제 출신, 음서의 가능성이 없는데 느닷없이 품계가 나오는 경우에는 필자는 이건 공명첩이 아닐까 의심한다. 그런데 공명첩을 사서 품계를 얻는다면 이게 모록일까? 필자는 모륵이라는 말을 쓸 때는 주의해야 한다고 보는 바,모록은 그야 말로 없는 사실을 위조해 만드는 사기술에 붙여야 할 이름이지정부에서 흉년 때 납속 등의 댓가로 발부한 공명첩-. 이걸로 얻은 품계에 모록이라는 말은 쓸 수 없다고 생각한다. 모록이라는 말은 자격도 없이 자기 맘대로 사칭했다는 뜻이 있는 바, 공명첩의 대가로 얻은 품계의 고신은 이건 가짜가 아니라 진짜이기 때문이다.. 2025. 8. 30. 이른바 유학모칭론을 비판한다 (2) 이러한 시각은 필자도 16-17세기라면 타당하다고 본다. 이 시기에는 필자 생각에도 만약 양반이 아닌데 유학을 참칭했다면유림의 공론에 의해 유학에서 퇴출되었을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19세기에는 호적에 유학이라고 올려놔도 퇴출되지 않았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유학인 상황은 조선이 망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누구도 저 놈은 유학도 아니니 빼버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왜일까? 19세기가 되면 이른바 유림의 공론이란 쑥덕거림 이상의 의미는 더이상 없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조선사회의 정점에는 전통적인 명가들이 계속 집권해 있었고 유림의 공론의 여진이 계속 남아 있긴 해지만, 유림의 공론으로 유학이라 호적에 올린 이를 맘대로 쫒아내지 못하는 여건이 이미 되어 있었다는 말이다. 그 때문에 대원군 집정후 전.. 2025. 8. 30. 이른바 유학모칭론을 비판한다 (1) 일반적으로 18-19세기에 급증한 유학幼學은 양반이 아니다. 이것을 양반으로 간주하여 19세기에 양반이 급증했다고 보는 시각은 틀렸다라는 시각이 있다. 19세기가 되면 양반이 급증한다는 주장을 처음 한 사람은 필자가 알기로 일본인학자 사방박四方博이다. 그는 우리나라 대구부 호적을 분석하여19세기까지 한국에서 유학으로 상징되는 양반호구가 급증한다고 주장했던 것으로 알고, 이에 대해서는 아직 여러 의견이 있다고 본다 . 필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여러 설왕설래 중19세기 유학幼學은 양반이 아니며이들을 모두 양반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는 시각이다. 그래서 이들에 대해 붙인 이름이 이른바 "유학모칭자"이다.그런데 이러한 시각은 타당한 것일까. 이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써 본다. 우선 "유학모칭자"라는 .. 2025. 8. 30. 김단장께서 포스팅 한 준호구 필자의 포스팅에 김단장께서 자료 사진을 하나 붙여두신 바 이 자료에 대해 필자 나름의 해설을 좀 해본다. 조선시대에 준호구는 호적을 기본으로 뗀 요즘으로 치면 호적등본 같은 것인데, 대개 과거 시험 보러 갈 때들 많이 뗐다고 들었다. 이 준호구는 광서 8년에 발급된 것이니 1882년이다. 이 해에 임오군란이 있었다. 이 준호구를 발급받은 분이 과거를 보러 이것을 뗸 것이 맞다면 청운의 뜻을 품고 올라갔을 터. 이 분의 직역은 이 자료를 보면 유학이다. 양반이라는 뜻이다. 준호구에 부인의 성 아래에는 "씨"로 되어 있다. 조선시대 호적에 "씨"는 아무나 붙이지 않고 양반의 부인에게만 "씨"를 붙인다. 호적에서 중인의 부인은 "성", 평민의 부인에게는 "소사 (혹은 조이)"로 붙이므로 이 준호구를 보면 이 .. 2025. 8. 30. 감옥과 티푸스, 판결보다 더 무서운 불결 후쿠자와 유키치는 김옥균이 고종에 의해 처형된 후 노발 대발하며 이런 야만적인 처형풍습을 가지고 있는 조선은 더이상 정상적 교류의 대상이 아니며 사라져야 한다고 외쳤지만사실 조선의 형벌제도는 주변 국가보다 훨씬 덜 가혹하여 사형수는 내장을 갈라 거리에 전시해 버리는 일본에 비하면훨씬 문명적인 편이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죄수들이 덜 죽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고조선의 문제는 사형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번 잡혀 들어가면 언제 풀려나올지 기약도 없고 판결이 나기 전에 감옥에서 죽어버리는 것이 문제였다. 말하자면 감옥에서 병들어 죽어 버리는 것이 문제란 것인데 감옥에서 죽을 때 그 병은 높은 확률로 티푸스일 가능성이 많았다. 이는 동서고금 동일하여 감옥 안에는 사람들이 좁은 밀도에 모여살며이와 벼룩 등이 들끓.. 2025. 8. 30. 동학"농민"전쟁: 그 이름의 반학문성 이제 다시 동학"농민"전쟁으로 돌아가보자. 19세기 말, 한국이 가지고 있던 모든 문제가 일거에 폭발한 이 전쟁은조선후기 한국의 향촌사회에 내재한 복잡다기함을 생각하면이 전쟁 주체를 "농민"이라 정의하는 일이 얼마나 반 학문적이고 몰 이성적인지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조선후기 향촌사회 주역을 "농민"으로 파악해서는 아무 것도 못 건진다. 그러니 동학"농민"전쟁 연구 수십 년에도 그 전쟁 경과를 제외하면그 전쟁의 성격이 아직도 오리무중인 것이다. 이 전쟁의 성격이 오리무중이라는 소리는조선후기 사회의 규명이 오리무중이라는 소리와도 같고, 구한말, 일제시대에 대한 이해도 오리무중이라는 소리와 똑같은 이야기이다. 바라건데 동학전쟁에서는 "농민"이라는 이런 모호한 용어를 제외해 버리고, 먼저 향촌사회를 .. 2025. 8. 29. 이전 1 ··· 27 28 29 30 31 32 33 ··· 7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