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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376

금괴를 찾는 박정희 이발사, 효자동 이발소 이야기 지금은 연합뉴스로 이름을 바꾼 연합통신에 1993년 1월 1일 입사해, 6개월에 걸친 수습기간을 끝내고 발령받은 부산지사에서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요새도 그러한지 모르겠지만, 그때만 해도 부산지사 신참기자는 언제나 남구 해운대에 배치되었으니, 이곳이 다름 아니라, 광안리 해운대 송정해수욕장을 낀 유흥지인 까닭이었다. 당시 부산 남구 인구가 60만을 상회했으니, 내가 서울로 옮긴 직후 그 일부를 떼어냈으니 그것이 수영구다. 당시 남구청 홍보 담당하는 공무원으로 대언론 업무로 이골이 난 분이 있었는데, 하루는 기자실에 들러서 전하기를 "희한한 사람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 전용 이발사였다고 하는 분인데, 그 분이 일본사람이 왜정 때 묻어놓은 금괴를 찾는다고 6년째 땅굴을 파고 있다"면서 취재하면 좋을 것 같다.. 2019. 3. 18.
대구 동화사 황금 소동 문화재판에서도 해프닝성 사건이 예외는 아니어니와, 내가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로 동화사 금괴 사건이다. 대구지역 일간지로 대구일보가 있다. 이 신문이 2012년 1월 5일 1면 톱 기사로 "동화사 뒤뜰에 금괴 묻었다는데"라는 기사를 게재하니, 이를 시발로 동화사는 느닷없은 금괴 매장 논란에 휘말린다. 보도인즉슨 이랬다. 40대 어느 탈북자가 "한국전쟁 당시 양아버지가 대구 동화사 뒤뜰에 다량의 금괴를 묻었다"고 주장하고 나서고, 이것이 언론지상을 통해 공개된 것이다. 2008년 12월 탈북한 김모(41) 씨라는 사람이 이 무렵 대구 지역 한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서는 "북한에 있을 때 남한 출신 양아버지(83)가 '한국전쟁 당시 40㎏ 정도 금괴를 동화사 대웅전 뒤뜰에 묻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 2019. 3. 18.
<3.1절 80주년의 사건> (6) 현승종 사태를 두고 한판 붙은 염소수염과 핏대 그의 연합뉴스 인터뷰가 건국대 안팎에서 심각한 권력투쟁 양상으로 발전할 줄이야, 현승종도 몰랐고, 나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인터뷰가 공개되자마자, 그를 이사장직에서 몰아내고자 하는 움직임이 노골화했다. 이로 볼 때, 1993년 이래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현승종이 건국대 내부에서 적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식민지시대 말기 그의 학도병 강제징집과 그에서 비롯되는 일본군 생활기간 소위 복무 사실은 건국대 교수협의회와 직원노조, 총학생회 등을 자극한 기폭제가 되었으니, 이들은 비상대책위를 구성하고는 현승종에 대해 이사장 사퇴 압박을 노골적으로 가하기 시작했다. 소위 복무 사실이 친일행위라는 것이었다. 이런 압박에 시달린 현승종은 결국 인터뷰 기사가 나간 지 대략 2개월 만인 1999년 4월 2.. 2019. 2. 24.
<3.1절 80주년의 사건> (5) "처음 밝힙니다. 나는 일본군 소위였어요" 말쑥한 밤색 정장 차림이었다. 오늘 인터뷰를 의식해서라고도 하겠지만, 천상 할배요 천상 영감인 이 양반은 적어도 외부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생평을 이렇게 살았을 사람 같았다. 흐터러진 모습은 어디에서 찾을 길이 없었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단아했다. 곱게 늙는다는 말, 이런 사람한테 쓰는 갑다 했다. 말투 역시 차림과 하나도 다르지 않아, 천상 마음씨 좋은 문방구 할배의 그것이었다. 두 시간가량 진행된 인터뷰 내내 시종 웃음이 얼굴을 떠나지 않았으니, 그래 신선이 있다면 이런 사람이겠구나 했다. 목청은 높아진 적이 단 한 번도 없고, 이렇게 차분할 수 있을까 했다. 만나 보니 현승종은 그런 사람이었다. 이런저런 판에 박힌 인사를 나누고는 이력 조회에 들어갔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던 해에 .. 2019. 2. 23.
<3.1절 80주년의 사건> (4) 다급한 전화, 하지만 이미 물은 엎어지고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하나 확실한 것은 관련 인터뷰가 나간 1999년 2월 24일이 지난 어느 시점이었다. 전화가 왔다. 현승종 이사장이었다. 여든하나 뇐네가 손수 전화를 했다는 건 두 가지 중 하나다. 첫째, 기사 내줘서 고맙다둘째, 기사가 뭔가 문제가 있다. 유감스럽게도 두 번째였다. 유선상으로 전해진 그의 말을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다. 20년 전 일이니깐 말이다. 다만 그 요지는 내가 기억할 수 있으니, 다음과 같다. "그 기사 때문에 내가 곤란해졌다. 일본군 소위로 근무했다는 대목이 문제가 됐다. 나를 쫓아내려는 사람들이 그걸 꼬뚜리로 삼아서 들고 일어났다. 내가 친일을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는 나로서는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이게 무슨 낭배란 말인가? 대체.. 2019. 2. 23.
<3.1절 80주년의 사건> (3) 소송전을 불사한 전직 총리 현승종 서울지법 민사합의25부(재판장 안영률 부장판사)는 2000년 10월 19일 현승종(81.玄勝鍾) 전 국무총리가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도대체 무슨 일로 현승종은 재판까지 갔던가? 이 소식을 전한 이 날짜 당시 우리 공장 보도를 보면 "'일본군 장교로 독립군과 전투를 벌였다'는 허위 사실을 유포해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우홍구 건국대 동문교수협의회장 등 5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들은 원고에게 1천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는 것이다. 계속 기사를 보면,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현씨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제말 일본군 소위로 일제 군복을 입고 중국 팔로군과 전투하였다'고 밝힌 사실은 인정된다"며 "하지만 중국 팔로군에서 조선의용대 등 일부 독립군이 활동했다는 역.. 2019.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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