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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2821

삼국사기 신라 직관지의 미스터리, 내명부 담당 관청이 없다! 삼국사기 신라 직관지에는 반드시 있어야 할 게 없다. 내명부 담당 관청이다. 하지만 있는데 모르는 거랑 진짜로 없는 것은 번갯불과 반딧불 차이다. 있는 데도 혹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2016년 1월 21일) ***삼국사기 직관지 중 유독 신라 부분만큼은 특정한 시기 있은 신라 관청을 빠짐없이(물론 누락한 데도 있을 것이다만) 정리해 놓았다.그 구체하는 기능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지는 몰라도, 신라가 적어도 어떤 방삭으로 국가를 운영하려 했는지가 이 관부와 그 직원 구성록을 통해 엿보게 된다.한데 이상하지 않은가?그런 신라 관부 체계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저 내명부다. 저 내명부를 담당하는 관청이 없다! 왕비를 필두로 왕실 여인네들 관련 업무를 전담하는 조직이 있어야 할 게 아닌가?왕비를 필.. 2025. 1. 21.
형님 얼굴에 비친 아버지, 그런 형님이 가버리니 연암 박지원은 시는 잘 짓지 않았다.그는 알려진 대로 산문에서 유감없는 천재성을 드러냈다.그런 그의 시 중에서도 무릎을 치게 만드는 몇 편이 있으니 연암집 제4권 영대정잡영映帶亭雜咏이 수록한 연암燕岩에서 돌아가신 형님을 생각하다[燕岩憶先兄]는 만고의 절창이다. 우리 형님 얼굴 덮은 수염 누굴 닮았나?아버지 생각날 때면 우리 형님 쳐다봤지이제 형님 그리우면 어딜 봐야 할꼬두건 도포 걸치고선 냇물 비친 나를 봐야지我兄顔髮曾誰似 每憶先君看我兄 今日思兄何處見 自將巾袂映溪行 저에 부친 한국고전번역원 주석은 다음과 같다.정조 11년(1787) 연암의 형 박희원朴喜源이 향년 58세로 별세하여 연암협燕巖峽의 집 뒤에 있던 부인 이씨 묘에 합장하였다. 이덕무는 이 시를 읽고 감동하여 극찬한 바 있다. 《過庭錄 卷1》 .. 2025. 1. 20.
이덕무 행장에서 유념할 대목들 반드시 메모한 청장관 이덕무, 박지원이 정리한 그의 행적 앞서 연암 박지원이 쓴 형암炯菴 행장行狀, 곧 이덕무가 죽고 나서 절친 연암이 쓴 행적을 소개했거니와, 연암집에 수록된 이 행장은 분량이 길어 제대로 읽고 소화할 독자가 몇이나 될까 몹시도 의뭉스럽기도 하거니와 저에서 나름 우리가 착목해야 하는 대목 몇 가지를 추려 강조하고자 한다. 먼저 어린 시절 이덕무와 관련한 일화로한 번은 집안 사람들이 그가 어디로 갔는지 몰랐다가, 저녁 무렵에야 대청 벽 뒤의 풀더미 사이에서 발견했으니, 대개 벽에 도배지로 바른 고서古書를 보는 데 빠져서 날이 저문 줄도 몰랐던 때문이었다.라는 증언이 있거니와 이는 고서가 어떻게 소멸해 갔는지를 엿보이는 대목이라, 창호지 벽지로 쓴다 해서 고서 혹은 고문서가 사라져갔다... 2025. 1. 19.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참고문헌 200개 언젠가 쓴 말이기는 하지만 지금도 나는 이해를 할 수 없는 것이100매 혹은 150매 안팎인 논문에서 어찌하면 선행 연구성과 참고문헌이 100~200개에 달하는지 참말로 신통방통하다.나 역시 한때 논문이라는 걸 쓰기는 했지만, 이른바 원전류 혹은 그에 버금하는 보고서류를 제외하고서는 참고문헌 10개 달기도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한데 이런 덕지덕지한 참고문헌 논문은 실상 국내보다는 외국이 더 심각해서 그래 저쪽은 연구 축적이 그리 두텁고, 또 연구윤리가 우리보다는 훨씬 더 강하니, 표절 혐의를 피하기 위해서도 그리 하는 갑다 싶기는 하다만 도대체 어찌하여 그 짧은 글에 참고문헌이 수백 개에 이른단 말인가? 내가 그 참고문헌이 달린 데를 유심히 살핀 적이 있는데, 더 놀라운 것은 왜 이딴 문구까지 참고문.. 2025. 1. 19.
반드시 메모한 청장관 이덕무, 박지원이 정리한 그의 행적 연암집 제3권 공작관문고孔雀館文稿형암炯菴 행장行狀우리 정종 공정대왕定宗恭靖大王 열다섯째 아들 무림군茂林君 시호諡號 소이공昭夷公은 휘가 선생善生이다. 그로부터 10세를 내려와, 휘 정형廷衡은 감찰로서 호조 참판에 증직되었으며, 휘 상함尙馠을 낳았다.상함공이 휘 필익必益을 낳으니 강계 부사江界府使요, 부사공이 휘 성호聖浩를 낳으니 이 분이 형암의 선친이다. 모친은 반남 박씨潘南朴氏로 토산 현감兎山縣監 휘 사렴師濂의 따님이요, 금평위錦平尉로서 시호가 효정공孝靖公인 휘 필성弼成의 손녀이다.형암은 휘가 덕무德懋요 자는 무관懋官이니, 형암은 그의 호다. 영종英宗 신유년(1741, 영조 17)에 태어났는데, 나면서부터 뛰어난 자질을 지녔고 성품이 단정하고 엄격하였다.세 살 때 이웃에 사는 창기娼妓가 엽전 한 푼을 가.. 2025. 1. 18.
택리지, 죽임이 일상화한 당장 시대가 갈구한 유토피아 조선은 당쟁 때문에 망했다는 언설이 이른바 당파성론이다. 흔히 말하기를 식민권력에 복무한 일본 관학 역사학이 이런 논리를 구조화했다 하며, 그것을 정체성론 타율성론과 더불어 식민사학을 규정하는 삼대 악의 축으로 대서특필한다. 맞는가?당파 싸움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는 인식은 저들이 새삼스럽게 개발한 것도 아니요, 무엇보다 조선시대 당쟁을 몸소 겪은 사람들이 하는 말이었다. 이런 인식은 구한말 그리고 식민지시대 민족주의 계열 역사학이나 다른 계열 역사학 문화사에서 광범위했으니, 조선이 망한 이유 중에 가장 큰 병폐 중 하나가 저 당파성론이 당당히 올라 있다. 함에도 왜 이런 사실은 도외시한 채 모든 책임을 일제에 덮어씌우는가? 편하기 때문이다. 전가의 보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우리 스스로가 면피가 되는 까.. 2025.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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