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역사문화 이모저모2481 클럽문화가 없던 조선시대, 출근시간을 당겼다 전기도 없고 드라마도 없던 조선시대 사람들은 밥만 먹고 잤다 사극을 보면, 퇴청하는 조선시대 고관대작들이 한잔 빨자 하며 기생집 행차해서는 밤새워 퍼마시는 장면을 드물지 않게 만난다. 사실인가?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렇게 올나이트로 영업하는 기생집이 조선시대엔 없었다. 그렇다고 조선시대 관리라 해서 거나하게 밤새워 한 잔 빨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저 정도로 조선시대 한양이라는 도시가 향락 문화가 번성했을 것 같은가? 조선시대 문집 같은 데서 등장하는 기생은 모조리 관기라 준 국가공무원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강남 클럽들이 아니다. 그런 향락 문화가 없으니 출근시간이 저처럼 빨라도 대과가 없었다. 그 무수한 조선시대 사람들이 남긴 글을 보노라면 단 한 명도 아이고 오늘을 출근을 안 했음 좋겠다거나,.. 2024. 7. 4. 투탕카멘 엄마 키는 158센티미터 공식적으로 투탕카멘 왕의 어머니이자 KV55(몇몇 연구자는 아케나톤Akhenaten이라 하지만 공식화하지는 않았다)로 알려진 미라의 완전한 친누이로 확인된 이 “젊은 부인 Younger Lady” 미라는 아멘호테프 3세 왕과 그의 위대한 왕비 티예Tiye 사이에서 난 딸이다. 이 “젊은 부인”에 대한 현대적인 분석에 따르면 그녀가 죽었을 때 나이는 25~35세 사이였고, 키는 158cm였다.최근의 CT 스캔은 또한 아들 투탕카멘과 마찬가지로 이 “젊은 부인”이 사랑니가 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는데, 이 또한 그녀가 젊은 나이에 죽었다는 또 다른 지표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소식은 다음 참조. https://egypt-museum.com/tutankhamuns-mother-the-young.. 2024. 7. 4. 다리우스가 닦은 아케메네스 고속도로 도로를 정비하지 아니하고서 무슨 국가 통치를 하겠는가? 이 점에서 한반도 전근대는 재앙이다. 도로다운 도로도 없어 수레 하나 제대로 다닐 길이 없었다. 물론 전국토 70%가 산악이라는 특성에서 말미암기는 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간선도로 하나 없었다. 영남대로? 호남대로? 웃기는 소리. 그게 무슨 요즘 기준으로 도로 축에 속하는 줄 아는가? 그런 도로라 해 봐야 포장도 되지 않았다. 포장한 도로 봤는가? 기껏 왕성 혹은 왕궁이라 할 만 한데 흉내만 내다 말았을 뿐이다. 고갯길은 도로라도 있었던 것 같은가? 천만에. 오죽하면 육십령은 육십명이 모여야 비로소 통행을 허락하지 않았겠는가? 왜? 호랑이 산도적 때문이었다. 다리우스 대왕 Darius the Great (Darius I) 시절 기원전 5세기에.. 2024. 7. 3. 천애절벽 올라 베히스툰 비문 조사하는 서 헨리 롤린슨 Sir Henry Rawlinson 베히스툰 비문 Behistun Rock이 인류사, 특히 고대 근동사는 물론이고 쐐기문자 판독에 결정타를 날렸다는 점에서 그 중대성은 이집트 문자를 읽게 만든 로제타스톤에 비견한다. 그 발판을 마련한 이가 19세기 중반 헨리 롤린슨 Henry Rawlinson 경이라는 영국 동인도 회사 군인이었다. 그는 이 설형 문자를 판독 번역해 냈다. 그의 초인적인 노력이야 뭐라 하겠냐마는 그 발판을 마련한 베히스툰 비문을 조사하고자 그가 저런 험준한 벼랑을 올라 그가 비문을 조사했다 해서 회화로 표현한 한 장면이다. 내가 볼 땐 저리 오를 수도 없고, 더구나 저 상태로 계속 조사한다? 밧줄을 매달고 대롱대롱 매달려 조사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물론 내 막연한 추측이다. 지극히 극화한 상상화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2024. 7. 3. 밀비우스 다리 전투, 나와바리 쟁탈 조폭 쌈박질 서기 312년 10월 28일, 로마 제국 패권을 둔 조폭 내전이 벌어졌으니, 이 전쟁에서 콘스탄티누스가 이끄는 군대가 막센티우스 대군을 로마 근교 밀비우스 다리에서 사생 결단을 벌여 일망타진한다.이 승리로 콘스탄티누스는 사두정치체제라는 공동통치체제를 끝내고 1인 독재 시대를 화려하게 개막한다. 다만 이 기억이 싫어서였는지, 콘스탄티누스는 이후 로마가 싫다 해서 냅다 콘스탄니노플이라는 행정수도를 건설하기 시작하고는 기어이 그쪽으로 도읍을 옮기니, 이렇게 해서 로마시대는 비잔틴시대로 넘어간다. 로마사 분수령을 이룬 저 양아치 쌈박질을 그것이 일어난 장소를 따서 밀비우스 다리 전투 Battle of the Milvian Bridge 라 하거니와, 저 다리를 라틴어나 그 후신 이탈리아가 저리 부를 리는 없을 테.. 2024. 7. 3. 이집트에서는 물고기도 문신을 하고 붕어빵도 즐겼다 혹자는 낙인烙印이라 하겠지만 내 보기엔 태투 tatoo 문신이다. 물고기인들 태투 하지 말란 법 있는가? 그래 물고기도 세월이 지나 3천 년이 흐른 지금은 태투 대신 점만 남았지만 고대 이집트에서는 문신을 했다. 그게 유행이었다. 아 그보다는 붕어빵에 가까우니, 그렇담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붕어빵을 즐겼나 보다. 이르기를 Ivory fish amulet, with the throne-name of king Thutmose IV, "Menkheperure", meaning; "Established in forms is Re."New Kingdom, 18th Dynasty, c. 1479–1425 B.C. On display at the Virginia Museum of Fine Arts. 57.33 라.. 2024. 7. 2. 이전 1 ··· 71 72 73 74 75 76 77 ··· 414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