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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가축과 작물 이야기91

신석기시대 화전론에 대한 해외의 시각 앞에서 이야기했지만 필자가 이 블로그에 쓴 신석기시대 화전론은 필자가 처음 한 이야기가 아니다. 온라인만 찾아 봐도 필자의 이야기와 매우 비슷한 이야기를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예를 들자면, A. The results of the experimental slash-and-burn demonstrate that permanent cultivation was not possible without additional organic matter inputs. Therefore, agriculture in the Neolithic could have been maintained by slash-and-burn of new areas of the forest, or by the addition of org.. 2024. 9. 10.
조선후기, 느닷없이 들고나온 여전제 동아시아사의 발전을 보면 한국사에서 유난한 부분은 사전私田을 뒤집어 공전公田화한 시도가 최소한 두 번은 성공했다는 점이다. 한 번은 전시과 제도. 또 한번은 과전법 체제다. 이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한국사에는 있지만 전시과제도와 과전법 체제는 사전을 부정하고 경제제도를 과거로 되돌린 반동적 흐름에 해당한다. 공전제를 무너뜨리고 사전이 성장하여 나올 때 한국처럼 사전을 완전히 해체하고 공전제로 복귀를 관철한 나라는 없다. 이러한 흐름이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가면서 억지로 만들어 놓은 공전의 구조는 다시 무너지고 사전이 다시 자라 나오는 것이다. 문제는 조선 후기. 나라가 잘 안 돌아간다고 공전제를 다시 하자고 들고 나온 얼빠진 유학자들이 있었다. 여전제 한전제 균전제 다 마찬가지다.. 2024. 9. 10.
식민사학 극복와 조선후기의 재검토 식민사학이라는 것이 흔히 이야기하는 대로정체성론, 탸율성론 등이라면필자의 생각으로는 21세기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이미 극복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역사에 연구에 의해 된 것이 아니다. 20-21세기 거지국가에서 일약 선진국으로 진입한 한국사가정체성과 타율성론에 대한 생생한 반박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지금 젊은 세대에게 이 이야기를 더 이상 꺼내기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고 본다. 이제는 조선시대와 구한말을 좀 더 냉정히 분석을 시작할 때다. 거듭 말하지만 조선과 구한말, 식민지시대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주변국가의 이해가 필수적이다. 조선이 왕조의 종말기에 망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면, 그 이유를 냉정하게 분석하여 내놓은 것이 역사가의 할 일이라고 본다. 이러한 작업은 필자가 보기엔 자화자찬의 한국사를 .. 2024. 9. 8.
신석기농경이 농경 같이 보이는 순간 한국은 신석기시대에는 농경이 없고 청동기시대에야 본격적으로 농경이 시작되었다는 주장이 오랫동안 정설의 위치를 차지한 것으로 안다. 물론 이런 주장도 최근에는 많이 바뀌어 신석기시대에도 초보적 농경이 시행되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고 들었다. 왜 신석기시대 한국의 농경은 그렇게 미흡하게만 보이는 것일까? 필자가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시비 곧 거름이 없던 시대에 지력이 떨어지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 이동해 다시 지력이 떨어질 때까지 그곳에 머물며 농사를 지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앞에서 이야기한 이런 "화전식 순환농경"은 소위 말하는 문명 중심지에서는 빨리 극복되거나 아예 경험하지 않고 넘어가기도 했던 것 같다. 왜? 그것이 바로 토지 비옥도의 차이다.  주기적으로 범람하여 비료도.. 2024. 9. 6.
주객이 전도된 초기농경 인식 우리나라 초기 농경은 조 기장 등의 잡곡 농사를 수렵채집의 와중에 파트타임으로 지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이렇게 파트타임으로 할 수 있는 농사는 이 세상에 없다. 오히려 수렵채집이 파트타임으로 가능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초기농경이 제대로 성립된 영구적 촌락이 아니라 영 허술해 보이는 주거지 유적 등지에서 곡물이 떡 나오는 것은이들이 화전을 바탕하여 주기적으로 주거지와 경작지를 옮기며 농사 짓는전업 농경민이었기 때문이다. 수렵채집민이 아니다. 이들은 2-3개의 개활지를 몇 년 농사 짓다가 다시 다른 개활지로 옮겨 몇년 묵힌 (아마도 5-6년) 땅을 불을 질러 지력을 확보하고 거기서 다시 몇 년을 버티다 다음 개활지로 이동하고 몇년후에는 원래의 위치로 돌.. 2024. 9. 5.
화전과 나무뿌리 신석기시대에 정기적으로 옮겨다니며 불지르고 다시 새로운 곳에서 밭농사를 했을 것이라 하였는데, 필자는 신석기시대의 초기 농경에서는 생판 새로운 숲을 불질러 새로운 농경지를 확보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미 노동력이 어느 정도 투입된, 몇 년 정도 묵혀 둔 지역에 돌아와 불을 질러 새로 농사를 지었을 거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물론 전적으로 추측에 불과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 당시 농경민은 새로운 토지의 획득이 목적이 아니라 농사가 가능한 땅을 얻는 것이 목적이므로 이미 한번 개활지로 만들어 놓았던 땅에 몇년 후 다시 돌아와 불을 질러 농사를 시작하는 편이 아예 새로운 땅으로 가는 것보다 훨씬 나았을 것이다. 불과 몇 년 정도라면 이전의 지력을 회복할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 세 군데 정도만 확보해도, 3년 간격으로.. 2024.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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