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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가축과 작물 이야기96

삼국지 동이전의 말....한반도에는 조랑말 뿐? 박물관에 가면 신라나 가야의 무사를 복원해 놓은 모형이 있는데 말을 탄 기마무사도 있다. 이 기마무사들은 모두 20세기 서러브렛Thoroughbred 같은 체고體高가 높은 말들이다. 마갑을 입은 말들도 모두 체고가 높은 우람한 말들 뿐이다. 그런데-. 비교적 문헌 자료가 많은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한반도 말들은 근세에도 그렇게 우람한 말들은 별로 없었다.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기병들의 열병을 하는데, 왕이 갑옷을 입히고 열병을 하자 하니, 대신들이 반대한다. 왜? 갑옷을 입고 말을 타면 말이 자빠진다는 것이다. 한반도의 19세기 말 기록을 보면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한반도 말들은 모두 조랑말이다. 그리고 이 조랑말은 근성이 있고 적게 먹고도 멀리 가지만 성질이 나빠 조랑말끼리도 틈만 나면 싸우고 마부가 .. 2024. 9. 27.
많이 키우지 않았던 조선 돼지 우리나라는 조선시대까지도 돼지를 많이 키우지 않는다는 기록이 반복적으로 나오며 구한말 외국인의 견문록에도 이 이야기가 나온다. 반면에 농사에 쓴다고 도살을 금지한 소는 전국적으로 열심히들 잡아 먹었다. 돼지를 왜 많이 키우지 않았을까? 전통적으로 돼지를 키우는 방식은 두 가지다. 첫째는 돼지를 우리에 가두고 키우는 방식 둘째는 놔서 키우는 방식이다. 돼지를 놔서 키우기도 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놔서 키우는 것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훨씬 보편적이었다. 유럽은 중세까지도 돼지는 놔서 키웠고 동양도 황하문명이 남하하기 이전 양자강 유역은 돼지를 놔서 키웠다. 이렇게 놔서 키우는 곳은 대개 인구밀도가 가둬 키우는 곳보다 낮다. 인구밀도가 낮다 보니 거주지 주변에 광범한 황무지가 존재하고 그 황무지를.. 2024. 9. 27.
조선시대 소, 말, 돼지 구한말과 일제시대 우리나라 재래종 소, 말, 돼지에 대한 기록을 보면 일치하는 기술이 있다. 간추려 보면, 소: 그 체격과 성격, 힘에 대해 극찬하는 기술이 많다. 순하고 힘이 좋고 몸도 크다. 말: 조랑말에 대한 기술이 많다. 소위 서러브렛 비슷한 녀석들에 대한 기술은 별로 없다. 적게 먹고 강인하지만 체격이 작고 성격이 온순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돼지: 작다. 색은 검다. 등쪽에는 털도 나있다. 성장이 느리다라는 지적이 많이 나온다. 재래종 돼지는 현재 복원되었다고 이야기 하는 품종들이 있는데필자가 보기엔 남아 있는 기록과 거의 비슷한 것 같다. 조선시대의 가축 중 소, 말, 돼지를 보면, 이 중 소는 현재까지 제대로 남아 내려온것 같지만 말과 돼지는 거의 소멸한 것 같다. 흔히 제주도 조랑말, .. 2024. 9. 27.
강아지풀을 먹어보려 함 조의 야생종이 강아지풀이다. 그래서 조를 재배하기 이전에는 강아지풀을 먹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농사가 시작된 후에도 강아지풀은 정말 먹을 것이 없으면 먹었다고 한다. 아래 동영상을 보면 먹는 법이 나온다. 불로 그슬려서 털을 날려버리고 그냥 먹는다. 2분 20초부터 보면 된다. 강아지풀을 한 번 먹어보려고 오랫동안 별렀는데 오늘 산책 나가 보니 익었더라. 금명간 먹어보고 말씀드리겠다. 먹는 방법은 하나는 불에 그슬려 구워 먹어보고, 다른 하나는 쌀에 섞어 밥을 지어 먹어보려 한다. 물론 찐밥이다. https://youtu.be/ay7deBcT0Ns?si=JPpu_APqzm-x0Sz9 2024. 9. 22.
부여와 고구려는 휴경을 극복했을까 앞에서 필자는 벼농사는 수전경작 때 외부로부터 매년 새로 유입 유출되는 논물로 인해 연작이 가능해질 수 있다고 하였다. 자 그렇다면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는 일부 수전의 경우 매년 연작이 가능해지고 있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남만주 일대, 부여와 고구려는 어떨까. 여기는 논이 거의 없는 곳이었을 텐데 (고구려의 경우 평양천도 이전) 이들은 농사에서 휴경을 극복했을까. 거의 밭농사 일색일 텐데 휴경과 화전을 매개로 한 윤작을 극복하고 있었을까 부여와 고구려가 한반도를 통일하지 못하고 결국 남쪽의 국가가 승리한 이면에는 논의 연작에서 오는 생산력 제고가 과연 무관했을까 2024. 9. 15.
조선후기: 한국에는 보가 가득했다 사대강 때 하도 수중보가 유명해져서 보[洑 혹은 湺]라는 것이 사대강 이전에는 없었고 사대강 때 비로소 생겨나 수질 오염을 낳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잘못된 지식이다. 전술한 글에서와 같이 조선후기 들어 17세기가 되면전국적으로 개간 열풍이 불고 수리시설이 폭증하여 이전까지 보편화하지 않은 이앙법이 비로소 완전히 정착하게 되는데 이때 한반도 전역에 폭증한 것이 바로 보다. 물론 사대강 때처럼 콘크리트 수중보가 아니라 돌과 나무로 엮은 허술한 보라 대개 다음번 큰 홍수가 나면 다 떠내려가고 새로 만들어야 했던 것으로 안다. 중요한 것은 이 보가 전국적으로 폭증하여 논 물을 이 보로 대며 개간과 이앙에 혁신이 있었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후기 논문만 읽어봐도 이미 그 시대에 우리나라는 전국 곳곳 보가 없는.. 2024.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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