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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이야기333

수수께끼의 책 열성수교 (2) 서얼, 지손들의 위기 앞에서 여러 차례 썼지만, 우리는 20세기 대동보 족보의 입장에서 한 문중을 본다. 예를 들어 명문으로 알려진 집안이라고 알려져 있으면나도 그 집안 족보에 올라 있으니 나도 명문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조선후기 상황을 보면 그렇게 상황은 간단치 않아어떤 문중 족보를 보면 소위 현달한 명문 반열에 오른 후손에서부터 19세기에 들어서나 간신히 족보 끄트머리에 올라가는, 이들의 출자도 불분명한 후손에 이르기까지 정말 별의별 집안이 다 뒤섞여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빨라야 17세기나 되야 성립하는 대부분 집안의 족보의 후손들은 서자에 대한 금고, 노비 후손의 입보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사다난한 일들이 있어 대동보 한 권에 실린 후손은 그들이 모두 같은 조상 후손이라 해도 도저히 같은 사회적 신.. 2026. 1. 14.
수수께끼의 책 열성수교列聖受敎 (1) "귀천을 가리지 말고" 앞에서도 한 번 썼지만, 우리나라 조선후기에는 열성수교列聖受敎라는 책이 있다. 이 열성수교는 내용이 하나가 아니라 필자가 아는 바 여러 집안에서 열성수교를 찍어냈다. 이 열성수교는 빠른 것이 정조대까지 확인되고실물은 국립박물관과 규장각에도 들어 있다. 열성수교의 내용은 간단하다. 이 집안의 이러이러한 조상이 이처럼 대단한 사람이니 이 사람의 후손들은 귀천을 막론하고 군역에서 빼주라는 것이다. 열성수교라고 이름 붙은 책에서 다루는 집안과 조상도 다르고 그 내용도 차이가 있지만 결국 마지막, 그 사람의 후손에게 군역의 편의를 봐주라는 점에 있어서는 거의 동일하다 하겠다. 이 책은 현재 국박이나 규장각 모두 해제가 간단하게만 붙어 있는데, 이 책은 어떤 집안 조상을 찬양하는 단순한 동기로 쓰여진 것이 아니다.. 2026. 1. 14.
조선시대의 방목과 호적, 그리고 족보 조선시대 향촌 질서를 보여주는 3대 자료라고 한다면 첫째는 과거 입격, 출신, 급제자 프로필을 모아 놓은 방목榜目, 둘째는 국가가 작성하고 유지한 호적, 그리고 마지막은 문중이 써내려가고 출판한 족보가 되겠다. 이 세 가지 자료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르고다른 듯하면서도 뭔가 의미하는 바가 있다. 우선 뻥을 쳤다가는 모가지가 날라갈 수도 있는 엄정함이 있는 기록이 바로 방목이다. 과거를 보면서도 사기를 쳤다가 적발되어 경을 치게 되는 기록이 간간히 보이기도 하지만, 일단 호적과 비교해도 방목은 과거 합격자와 그 조상에 대한 기록에 있어서 맘대로 뻥을 치기 어려운 엄정함이 있다고 해야 할까. 호적에도 유학幼學이라고 버젓이 적혀 있는 이들도 방목에는 한등 낮추어 한량閑良이라고 적어 두는 경우도 있다. 호적은 .. 2026. 1. 13.
끼어든 후손 잊어버린 조상 우리는 족보의 변개變改라 하면 후대에 어떤 이유든 끼어든 후손만 생각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조상을 잊어버리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고려사에 나와 있는 인물들 이 들 중 상당수는 후대의 어떤 문중 족보에도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꽤 있다. 예를 들어 김부식-. 이 유명한 고려 전기의 문신집안은무신정변때 극심한 멸종을 당했는지지금 어떤 집안의 족보에도 김부식과 그 후손은 나와있지 않다. 김부식을 경주김씨라고 하지만 정작 경주김씨 족보에는 김부식이 안 보이는 것이다. 이런 예는 꽤 많이 보여 고려사에 나오는 사람들 중 분명이 이 집안 사람인데도정작 그 집안 족보에서는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이는 왜 인가 하면, 우리가 보는 지금의 족보라는 것이 빨라 봐야 15세기, 늦으면 17세기나 되어야 계보가 수.. 2026. 1. 11.
조선의 선비가 왜 그렇게 행동 했는가를 보고 싶거든 눈을 들어 그들의 노비와 땅을 보게 하라. 우리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행동을 결정짓는 규범이성리학적 철학, 역사관, 윤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남들 보라고 쓴 정치회고록 같은 일기를 빼면나날의 일상사를 적어 놓은 일기들을 보면, 그런 철학, 역사관, 윤리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이것은 소위 말하는 대학자들도 마찬가지로 다산 같은 당시의 일대 거장도 은밀한 편지에서는 너희는 절대로 서울 뜨지 말라고 아들에게 타이르는 것이니, 우리가 사건의 고비마다 나오는 조선 선비들 행동을 이해하는 데 있어 철학, 역사관, 윤리관으로 이를 점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인생 80년에서 이렇게 철학, 역사관, 윤리관으로 온전히 움직일 수 있는 시기는 딱 20대뿐이다. 그래서 조광조의 죽음에 항의한 청년 사류들의 조선판 .. 2026. 1. 11.
여말선초- 왕씨는 왜 사라졌는가 고려시대가 5백년을 지속했으니 그 종친 숫자만 해도 엄청났을 것이다. 이 왕실 종친은 비교적 세계가 뚜렷해지는 고려말 세계를 상고해 보면당시 한다 하는 집안들과 얼키고 설키어 조선 전기처럼 지배층의 혈연관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여말 선초의 격동을 넘어 살아 남은 당시 현달한 집안들은 족보를 보면개성왕씨와 혈연관계가 있는 집안이 많다. 그런데 조선 건국 이후 알다시피 왕씨는 거의 사라졌으니이처럼 집안 자체가 소멸하다시피한 것은 여말선초 사실 개성왕씨 외에는 없다. 나머지 고려에 충절을 지켰다던가 아니면 두문동에 들어갔다던가 하는 집안들은 대부분 그 신빙성이 의심스러우니, 고려에 충절을 지켰던 사람들은 정몽주 길재 등 극소수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신왕조 벼슬을 받았다. 마치 조선이 망할 때 세족 .. 2026.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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