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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이야기233

절대로 만만치 않은 외거노비 조선후기 인구 다수를 차지하던 사람들외거노비. 흔히 생각하기에 외거노비 하면 노예 비슷하게 사역되고 두들겨 맞고 일방적으로 당하고 살았을 것 같지만전혀 그렇지 않다. 16세기에 이미 외거노비들은 집에 붙어 있다가 도망갔다가 다시 돌아왔다가 완전히 자기 맘대로이며심부름을 시켜 놓으면 알아서 떼먹기 심지어는 자기 논 밭도 가지고 있어 매매도 맘대로 하는 등 말이 좋아 외거노비이지 통제가 잘 안되는 존재였다는 것이 일기를 보면 분명히 드러난다. 이들이 기존 사회가 해체되면서 일부는 지주로 상승하고 그 재력을 바탕으로 양반을 모칭하고 유학이 되어 나라에서 돈받고 뿌리는 공명첩 하나 사서 자기 이름 적어 놓으면양반으로 완벽히 탈바꿈하는 것이다. 19세기 중후반 양반 중에는 이런 노비 출신 양반상당히 있었을 것이라.. 2025. 7. 22.
노비가 주인 성을 따른다?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 중에 구한말 성을 모두 가지게 되면서 그때까지도 성이 없던 사람들 중 노비들의 경우 자기 주인성을 따라 몽땅 그대로 바꾸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 사실일까? 주인은 노비들이 자기 성 따라 바꾸는 것을 그냥 놔뒀을까? 필자가 보기엔 이렇다. 아마 주인 성 따라 성을 지은 노비들도 있을 것이고 아닌 노비들도 있을 것인데, 전자의 경우 필자가 보기엔 그냥 노비가 아니라 사실은 이들이 얼자라고 보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서자는 어머니가 평민인 경우이고, 얼자는 어머니가 천민인 경우인데, 어머니가 노비인 경우 아이가 나와도 이는 그대로 노비가 되었고 그 어머니를 면천 시키지 않는 한은 아이는 족보에 올라올 수 없었다. 반면에 어머니가 평민인 경우에 서자가 되는데, 이 경우에는 특별한 상황.. 2025. 7. 21.
한국사회 고도성장 첫 단추는 18-19세기 한국사회의 20세기 고도성장은 눈부셨으니그 기원에 대해서는 설왕설래 말이 많다. 이 기원을 어디 두느냐에 따라 식민지 근대화론을 둘러싼 논쟁도 일어나는 바, 필자는 이 부분에 대해 약간 써 본다면, 굳이 산업화, 성장률 등으로만 보지 않고사회 구조의 긍정적 변화, 근대적 사회로의 전진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필자는 한국 근대화 고도성장 첫 단추는 18-19세기에 있다고 생각하는 바. 특히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후반까지 약 100년간 한국사회는 격동의 변화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흔히 근대화를 산업화, 화폐경제, 자본주의 맹아론 등에만 두지만필자는 중세적 계급사회가 무너지는 과정 이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필자가 이 시기를 고도성장 첫 단추라고 이야기하는 까닭은18세기 전반의 호적과 같은 동네 19세.. 2025. 7. 21.
제사에 너무 올인하지 말라 앞에서 본 것처럼 우리나라기층사회까지 유교적 질서유교적 세계관유교적 문화가 침투한 시기를 길어봐야 일이백년, 족보는 그 진위가 의심스러운 것 아니면, 계보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 없는 것이 태반이다. 만약 자신들이 살던 동네에 아직 먼 친척들이 살아 그 동네가 삼 사백년은 집성촌으로 내려온 깡촌 마을 출신에 이름 석자 대면 다 아는 집안의 문중 종손들이 아니라면 아니, 족보에 적힌 이름 석자가 조선시대 호적에서 확인한 이름들이 아니라면, 족보에 적힌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보고 우리 집이 대단한 집안이라고 생각하며집안의 기강을 잡는 것 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족보에 적힌 벼슬? 관직?미안하지만 우리나라는 18세기 이후 공명첩을 써서 관직을 뿌린 나라다. 양반층이 급증하여 죄다 유학이 되어 면세층으로 빠져.. 2025. 7. 20.
위로 삼대가 양반에 중요한 이유 흔히 삼대가 벼슬을 못하면 양반이 아니라던가, 과거 볼 때는 반드시 위로 삼대 양반이 있어야 한다던가 하는 이야기가 있고, 그런 규정은 아무 데도 없다. 낭설이라는 주장도 또 반대편에는 있다. 어느 것이 맞는 이야기일까? 위로 3대가 벼슬을 해야 양반이다, 뭐 이런 규정이야 당연히 없겠지만, 문제는 역시 호적이다. 호적에 보면 자기쪽 위로 3대의 이름과 직역을 적고, 처가쪽 위로 3대의 이름과 직역을 적게 되어 있는데, 배운 사람이 아니면 자기나 처가쪽 3대의 이름을 못 적을 뿐더러, 직역은 소위 말하는 양반 직역은 호적에서 딱 보면 알 수 있게 되어 있어서, 과거에 응시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가기 전에 자기 호적에서 요즘으로 치자면 등본을 떼어 들고 갔다고 하던가, 그 등본에는 당연히 자신의 직계 3대,.. 2025. 7. 20.
대동보의 근대성 공통의 시조로부터 갈려 나온 모든 후손을 몽땅 다 적어 놓은것을 대동보라 하는데 사실 파의 시조로 부터 나온 모든 후손을 적는 파보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집집마다 꽂힌 족보들은 그 안에 근대성을 담고 있다. 지금 족보들은 적사차별도 없다. 모든 후손을 골고루 다 적는다. 족보를 봐서는 자기 집 족보가 돈 주고 산 것이 아니라 해도 도대체 적자인지 서얼인지 알 수가 없다. 이것은 현대 족보의 근대성의 표현이다. 조선시대에는 호적만 봐도 적서의 구분이 어느 정도 가능했다. 물론 19세기 이전까지의 이야기다. 호적에는 군역상의 임무, 즉 직역을 적게 되어 있는데 적자와 서자로 직역이 달랐다. 예를 들어 유학은 서자는 18세기 초반까지도 쉽게 못 적었다. 족보에 업무, 업유 등으로 적어 놓은 경우 높은 확률로 .. 2025.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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