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족보 이야기331 대동보는 망각과 타협의 결과이다 이런 이야기는 어떤 특정 문중 이야기는 아니니 오해 없길 바란다. 그렇다고 해서 가공의 이야기는 아니다. 어느 집안이나 흔히 있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우리는 문중의 옛날부터 뭔가 대동보 비스무리한 족보가 있어이것이 확대되면서 지금의 대동보 모습을 갖추었으리라 생각하지만 족보도 사람의 기억의 산물인지라 자연히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게 되어 있고내 주위는 많이 알고 멀어지면 모르게 되어 있다는 말이다. 족보라는 건 결국 망각과의 싸움이라 제때 정리하지 않으면 하나도 기억이 남지않는 것은 옛 어른들이라 해서 다를 바 없다. 이런 경우가 있다고 해보자. 우리 문중으로 알던 사람들은 아닌데 수백년 전에 갈려 나간 동족이라고 하여 족보에 이제부터라도 적어 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도 수백년 전 조상의 후손들이니 수.. 2025. 9. 30. 족보는 어떻게 만들어 졌는가 우리나라 족보는 1600년대 초반만 해도 부실하기 짝이 없어그 족보를 편찬하는 이들 주변은 그나마 봐 줄만 하지만 여기서 멀어질수록 소략하거나 빠진 것이 많아 오늘날 우리가 아는 대동보와는 차이가 있었다. 때문에 같은 본관의 문중이라 해서 전체를 아우른 대동보가 출현하는 것은 한참 뒤의 일로 그전에 우선 이런 형태의 계보들이 출현하다가 점점 이런 계보들이 연합하여 보다 확대된 형태의 족보들이 완성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위 평산신씨의 계보를 보면 시조인 신숭겸 부터 11세까지가 단계로만 내려오는데 이는 이 집안이 여말선초 때까지만 해도 체계적으로 문중의 계보가 정리되던 것이 아니라 직계조상의 계보만 정리하여 가승으로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그나마 이 집안은 이런 계보라도 가지고 있는 것이고, 이런.. 2025. 9. 29. 문중은 어떻게 덩치를 키우는가 우리나라 각 문중은 어떤 조상에서계속 자손들이 번창해서 커지는 형태로 발전한 것이 아닌듯 하다.이건 어느 한 군데만 그런 것이 아니라대개 몸집이 아주 큰 문중일수록 이런 경우가 많은데 문중이 덩치를 키울 때 우리는 족보를 수단할 때 이름을 새로 넣어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보다 실제로 큰 기여를 하는 게 원래 서로 별개 문중이었던 사람들이 우리는 공통 조상으로부터 분지했다고 합의하고 같은 문중 우산 아래로 모이는 것이다. 우리나라 지금 수십만씩 문중 사람들을 거느린 경우대개 이렇게 여러 개 같은 성 문중이 동일 조상으로부터 갈려나갔다고 생각하고한 문중 별개의 파로 새로 정의하고 세계도를 만들면서 이루어지는 것 같다. 따라서 문중 사람 숫자가 늘어나는 양상을 보면 원래 분적한 집안이 다시 원대 복귀하는 형.. 2025. 9. 29. 족보에 기재된 처가의 정보 족보에 실린 사실을 교차검증할 제 3의 사료가 있다면예를 들어 당시의 호적이라던가, 이런 일급 사료가 있다면족보의 사실을 考訂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렇게 족보의 진위를 판별할 만한 자료가 많지 않다. 조상이 아주 유명해서 사료에서 쉽게 검증가능하다면 모르겠는데그런 경우가 얼마나 있겠는가. 이런 경우에는 그나마 족보에서 쉽게 그 당시 조상의 사회적 위상을 확인 할 방법은처가 쪽을 보면 안다. 조선시대 계보에서 사회적 위상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그 부계 당사자의 관직이라던가, 뭐 이런 사실들 같지만 이런 건 공명첩 등이 있어 위조까지 하지 않더라도 쉽게 업그레이드가 되기 때문에부계 관직으로 이를 살펴보기 쉽지 않다. 오히려 그 집의 사회적 위상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처가에.. 2025. 9. 28. 공자와 맹자의 사대부: 씨가 있는 것이 아니다 조선왕조도 원론적으로는 이 말을 부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공자와 맹자가 말씀하신 바 사대부는 씨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 씨가 있었다면 공자도 맹자도 모두 결격자다. 사대부는 그 의지와 행동이 결정한다. 일본을 보라. 메이지 유신기, 자기 몸을 초개 같이 던진 "사무라이"들은 거의 모두 사무라이라고 부르기 미안한 하급무사 출신이거나 아니면 심지어는 농민 중에서 나왔다. 이들이야말로 당시 수백 년 동안 막부로부터 대접 받아가며 사무라이로 자임한 상급무사들 보다 훨씬 사무라이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 말기, 구한 말 19세기의 시기-. 평민과 심지어는 노비에서 성장해 나왔을지도 모르는 소위 "모칭 유학"들-. 이들이 당시 "사대부의 품성"을 갖추지 않았으리라고 우리는 장담할 수 있겠는가? 2025. 9. 26. 양반과 민중 코스프레의 조선후기사 필자가 보기엔 우리나라 조선후기는 매우 역동적으로향촌사회를 파고 들면 별의별 사람들이 다 모여살며그 안에서 갖가지 욕망이 분출하고 충돌하는 공간일진대, 우리가 이 시대를 보는 눈은양반의 눈으로 그 정신세계를 흉내내며 이 시대를 코스프레 하거나 민중이라는 모호한 용어로 피지배자 일체를 뭉뜽그려 파악하는 작업으로 인해, 그 세밀함을 잃고 이 시대를 정확히 보는 데 실패하고 있다고 본다. 양반과 민중이라는 이 둘을 모두 포기해야 비로소 우리는 조선후기를 제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 [편집자주] *** 80년대를 풍미한 저 민중사관이라는 이름이야말로 한국역사를 뒤틀리게 한 원흉이라 하겠다. 민중, 참 말은 그럴 듯해서, 언제나 이 민중은 집합명사이자 추상명사였고, 그런 집합추상명사가 반제 반봉건을 기치.. 2025. 9. 26. 이전 1 ··· 22 23 24 25 26 27 28 ··· 56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