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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이야기333

잿더미에서 기적처럼 부활했다는 한국인 한국인과 한국사가 역사상 두 번의 위기가 있었다면필자가 보기엔 몽골 간섭기도 아니고, 임진왜란도 아니고, 바로 한군현 시기와 일제시대다. 이 두 시대는 한국을 침략해 들어온 두 세력과의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역량이그야말로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이 때문에 한국사 자체에도 큰 영향을 남겼다. 전자의 경우 당시 한 제국의 영향 하에 들어간 지역 중 그 후 독립하여 별도의 문명을 형성한 지역이 단 한 군데도 없다는 점에서 (베트남은 천년 후 독립)그 당시 한국인의 조상이라 할 한반도와 남만주 일대 사람들이얼마나 큰 위기였는지 알 수 있다. 두 번째는 일제시대로 이 역시 이 시기로 들어가기 전 조선 사회가 18세기 말까지도 노비사역이 끝나지 않은 동아시아의 다른 국가에 비해서도 낙후된 상.. 2025. 8. 28.
욕망의 멜팅 폿 19세기 우리 역사에서는 19세기 하면, 삼정 문란, 척왜양이, 민족주의, 제국주의 등만 보지만필자는 이 시기는 거대한 욕망의 멜팅폿이었다고 본다. 일단 그 전 세기까지 노비였던 전 인구 절반은어쨌건 호적상 양반이라는 유학까지 성공적으로 진입하여자신감이 나름 충만한 상태였고, 노비사역이 해체되고 지주 전호제를 기반한 소농사회에서 소작으로 떨어져 간신히 먹고 살던 양반 최하층들은 이 끝도 없는 악순환에서 어떻게든 탈출해 보려 했을 것이며, 지난 이백년간 권력을 독점하여 잘 먹고 잘 살던 경화사족들은어떻게 하면 다가오는 환란을 잘 넘겨서 이 부와 권력을 대물림할 수 있을까 골몰하고 있지 않았겠는가. 물론 그 와중에 우국충정 지사들도 있었을 테고 그분들에게는 마땅한 존경을 표할수 있겠지만, 문제는 세상이 그런 흐름에 .. 2025. 8. 25.
양반의 가마니 만들기, 사무라이의 새장 만들기 이 파적도-. 가운데 고양이를 쫒는 주인공은 양반 밑바닥 쯤 된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아마 맞는 이야기 일 것이다. 고양이를 잡느라 머리에서 벗겨져서 그렇지 원래 머리에는 관을 하나 쓰고 있었고장죽 길이를 보면 양반이 맞는 듯 하다. 그런데 그는 김단장 지적하신 대로 가마니를 삼고 있다. 이 정도 집안 꼴이라면 뭐 벼슬은 이미 5-6대 끊어졌을 테고호적 조사나 나오면 간신히 유학호나 유지하고 있으리라. 그가 가마니를 삼는 것은 살림살이에나 보태자고 하고 있을 터. 저런 집안 꼴에 과거 급제자가 나올 리가 없다. 한국에 이런 양반들이 있다면 일본에는 하급 사무라이들이 있다. 일본 막번체제의 말단에 위치한 이들로 농민이나 상인이 아니라 무사신분으로 칼을 차고 다니지만차라리 농민이나 상민인 편이 나을 뻔한 쥐꼬.. 2025. 8. 25.
생활사 연구의 찬란한 금자탑: 쇄미록 필자는 이 책을 거의 다 읽어가는데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이 책을 10년 전에만 아마 필자가 읽었더라도필자의 연구 방향이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이 일기 정도로 생활사가 디테일있게 쓰여진 기록이 또 발견될 것인가. 몇몇 후보가 될 만한 것이 있는 것으로 알지만 필자가 직접 본 바 없으니 그 부분에 대한 말은 아끼고자 한다. 아무튼 쇄미록은 우리 생활사는 물론 필자처럼 생물인류학-고병리학을 하는 사람에게도 정말 큰 자료가 되리라 본다. 지금까지 필자가 얻었던 여러 데이터의 재해석이 가능해 지는 것이 이 책을 본 최대의 수확이라 하겠다. 이 책은 한 번 보고 접을 것이 아니라 필자처럼 생물인류학-고병리학을 하는 사람들도 바로 옆에 두고꾸준히 다시 읽어가며 새로이 아이디어를 얻어 낼 만한 책이라 하겠다... 2025. 8. 24.
무슨 수단을 써서도 양반으로 남아라 다산은 그 아들들에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서울 근처에 남아라, 라고 했다던가. 이는 다산의 시대에 경화사족들이 모여사는 서울을 떠나게 되면영영 제대로 된 양반으로 남기 힘든다는 현실에서 비롯된 고언일 것이다. 지방사족들은 반대로 18-19세기가 되면 몇몇 예외적 존재를 빼고는 죄다 개털이 되어 문반의 경우 급제를 하더라도 하급지위를 맴돌거나 대대로 문반의 지위를 누리던 이들도 간신히 무반 자리하나 얻어차고 양반 자리를 얻은 자가 많아졌으니 노상추일기 등에 나오는 영남소외론 등은 사실 영남만이 문제가 아니라 당시 지방 사족들은 죄다 개털이 되었다는 점에서 별 차이가 없었다고 해도 좋겠다. 지방사족들의 경우 서자는 물론 적자라도 대대로 벼슬이 끊어져 버린 집안들이 점점 늘게 되었는데 이들이 순순히 3대 벼.. 2025. 8. 24.
조선후기의 의례에 대하여 우리나라 조선후기의 국가 의례, 그리고 사대부 반가의 의례는모두 조선의 유학자들이 창안해 낸 것이다. 원래 무슨 유교경전에 자세히 기록된 것이 아니다.이것을 고례古禮라고 하는데, 고례는 유교경전 몇 군데에 매우 소략하게 산견될 뿐으로 이미 아주 옛날에 사라져버려 이름만 간신히 전하는 정도로그것이 어떻게 시행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따라서 친영례라던가 향음례, 향사례 등무릇 고례를 따라가야 한다고 조선후기에 시행한 수많은 의례는모두 다 유학자들 창안품이다. 물론 그 안에는 근거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는 부분도 있는데그래 봐야 예기 등의 글 한쪼가리로 부풀려 만들어 놓은 거라근거라고 할 만한 부분도 전혀 없다. 사대부 반가의 의례로 내려오면 결국 주자가례인데,주자가례 자체가 고례와는 무관한 .. 2025.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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