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족보 이야기331

과거가 없어져 분통이 터진 이승만 부친 우남 이승만의 회고를 보면, 조선왕조의 마지막 과거가 캔슬되어이제는 과거시험 더이상 없다고 했을 때, 이 대통령 부친도 평생을 과거 시험 보러 다녔던 모양으로 땅을 치며 통분해 마지않았다는 구절이 있다. 아마도 자신의 영달 마지막 수단으로 과거를 노렸던 것인데 그것이 좌절되었으니 너무나 분통했을 것이다. 이 대통령 집안은 전주이씨 양녕대군파 이지만이미 오래전에 벼슬이 끊겨 영달하지 못한 집안으로 알아서 아마도 이대통령의 부친이 과거시험 볼 때도 준호구를 떼서 들고가면 틀림없이 거기에는 유학, 친가 3대 외조 학생처가 3대 외조 학생이리 적혀 있었을 것임에 분명하다. 참고로 [일성록]에서고종 28년(1891)의 과거시험 기록을 확인해 보니10만 명 이상이 응시한 시험을 이 해에만 26회 실시했다고 한다.그.. 2025. 8. 31.
족보와 호적에 솔직하지 못하면 한국근대사는 없다 언젠가 한 번 이야기 한 거 같지만일본 미츠비시상사의 창업자인 이와사키 야타로는 岩崎弥太郎에도시대 그 집안이 완전하게 쫄딱망한 향사 집안으로 향사집안 자체가 사무라이 계급에서는 바닥인데아버지 대인가 할아버지 대인가에는 그 바닥을 치는 사무라이 자격까지 팔아버리고 말 그대로 거지 같은 신분이 되어 있었다. 일본 이토추 상사의창업자인 伊藤 忠兵衛는 에도시대 직물 소매상을 하던 집 출신이며, 미쓰이 그룹은 에도시대 옷집인 에치고야에서 시작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정재계 막론하고 양반 후손 아닌 사람들이 없어서 재벌 집안까지도 조상들은 양반집이라는 것인데필자가 보기엔 모두 19세기에 흥기한 새로운 유학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아마도 20세기 일제시대와 대한민국 독립이후 활동한 많은 사람들의 가계를.. 2025. 8. 31.
호적에서 믿지 못할 정보 하나 나이 족보와 호적을 대조해 내려가다 보면, 양측에 서로 보완하는 기록도 있고 영 안 맞는 기록도 있다. 예를 들어 이름이 호적과 족보의 이름이 다른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 1-2대 아래의 호적을 보면 정정 되는 경우가 있다. 대개 어쨌건 양반들은 3대조 이름을 적게 되어 있으므로 위 대에서 다른 이름이 1대 내려오면 족보 이름과 매칭되는 경우가 나온다. 이런 경우 호적과 족보가 서로 이름이 다른 경우는 요즘도 볼 수 있는 사례이므로 특별한 부분은 아니다. 유난히 호적과 족보가 상충되는 것 중의 하나가 군역이 무조건 면제인 상층부 양반이라면 또 다르겠지만, 평민이나 면제가 아슬아슬한 양반들의 경우 호적에 올라 있는 나이를 믿을 수가 없다. 군역은 조선시대에 16-60세까지인지라, 조선시대 호적을 보면 유난히 .. 2025. 8. 30.
욕도 많이 먹는 진종황제 권학문 富家不用买良田,书中自有千钟粟。 安居不用架高堂,书中自有黄金屋。 出门莫恨无人随,书中车马多如簇。 娶妻莫恨无良媒,书中自有颜如玉。 男儿欲遂平生志,五经勤向窗前读。진종황제 권학문은 아시다시피 고문진보 첫권 첫머리에 나온다. 우리나라 유학자들이 성리학이 깊게 침투하여 과거제를 세상 적폐로 간주하던 그 시기에도 고문진보는 열심히들 읽었는데 그 고문진보 첫장을 딱 넘기면 저 진종황제 권학문이 첫 부분에 나온다. 이 진종황제 권학문은 그 내용이 보여주는 적나라 함 때문에 조선시대 성리학자들한테 욕을 많이 먹었다. 이들에게 학문이란 위기지학, 자기 수양의 도구이며 진리의 추구인 것이지결코 녹이나 먹자고 하는 것이 아님을 설파하였는데고문진보 첫 장을 넘기자 마자 진종황제가 설파한 바 공부 열심히 하면 잘먹고 잘산다는 저 이.. 2025. 8. 30.
배운자가 되어 신분세탁을 한 조선의 기억 사람은 태어나면 누구나 신분상승을 꿈꾼다. 그런 적 없다고 하면 거짓일 것이다. 신분상승에 대한 욕구야말로 역사를 진보시키는 힘이다. 그런 동기가 없으면 아무도 일하지도 않고 공부하지도 않는다. 조선시대 성리학에서는 공부하는 동기를 출세가 아니라 인성도야로 선언했지만그 성리학자들에게 공부를 왜하냐고 물어보면 술 몇 잔 걸치고 나면 결국 나오는 건 다음 과거 시험 이야기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속물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속성이 그런 탓이다. 그러니 우리나라 유학자들의 필독서 중 하나인 고문진보 첫 머리에는세속적이라고 욕을 먹으면서도 진종황제 권학문이 떡 하니 실려 있는 것 아니겠다. 각설하고, 조선시대 18-19세기. 신분세탁을 꿈꾸는 이들이 동원했던 방법-. 배운자가 되어 (유학) 양반으로 올라가 군.. 2025. 8. 30.
대동보: 완전한 신분해방을 전제로 한 근대의 산물 우리는 족보, 대동보를 케케묵은 과거의 유산 조선시대의 고물 정도로 생각하지만족보 중 요즘 보급된 대동보는 과거의 고물이 아니라 그야말로 근대적 산물이라 할 수 있겠다. 앞에서도 썼지만 우리는 동성 친족집단 하면같은 조상 모시고 제사 지내고 제사 후에는 음식 나눠 먹으며 음복하는 형제 친척 정도로 생각하지만 조선시대에 동성친족 집단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앞에서도 썼지만, 조선시대는 한번 조상 중에 서자가 끼면 (얼자, 즉 어머니가 천민인 경우에는 이것도 안되었다)그 후손 전체가 금고 되어버리는 지라 과거 합격 자체가 되지를 않으니 (물론 19세기 이전 상황이다)한 마을에 동성집단이 있다 한들 그 안에는 적자 후손인 집과 서자 후손인 집이 공존하며서자 후손인 경우 결코 적자후손과 대등할 수 없음은19세기.. 2025. 8. 3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