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4454 [나만 못본 구라파 유람기] (4) 코딱지 만한 센강 이 구라파 유람은 나로서는 난생 처음으로 시도한 자유여행이었다. 기자입네 해서 업무로 해외로 나가는 일은 예외없이 주최 측에서 준비한 대로 나는 따라다니기만 하면 됐다. 그와는 관계 없는 다른 여행이라 해도, 그에서 내가 주도적으로 나서 본 적이 없어 이 역시 마찬가지였다.그런 까닭에 내 손으로 비행기나 숙소 예약을 해 본 적도 없으니, 할 줄도 몰랐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그에 익숙한가 하면 여전히 젬병 신세를 면치 못한다. 이런 놈이 덜커덩 파리를 오가는 벵기와 그 첫 기착지인 파리에서 머물 하꼬방 같은 이틀치 호텔, 그리고 로마로 넘어가는 벵기표 세 가지만 예약하고 출발했으니, 나보다 마누라가 더 걱정했던 것이 사실이다. 뭐 지하철이니 버스니 하는 대중교통 이용하는 방법도 몰랐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2025. 1. 18. [슈겐도와 일본 미라 이야기] (3) 요시쓰네와 겐페이합전 미나모토노 요시쓰네源義経 이야기를 좀 더 써 본다. 이 이야기를 길게 쓰는 이야기는 이 사람이 일본에 있는 미라와 이래저래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일본미라 이야기를 하자면 요시쓰네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어 지면을 여기에 할애해 좀 자세히 써 보기로 한다. 일본의 군담 소설 헤이케 모노가다리平家物語 주인공이라 하면 누굴까. 이 작품에는 한 명의 주인공만 뽑기가 참 어렵다. 삼국지 주인공이 유비 한 명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헤이케 모노가다리는 헤이케平家와 겐지源氏의 싸움을 다룬 역사적 팩트에 기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 쓰인 이야기가 바로 역사적 팩트 그 자체는 아니다. 삼국지연의에 다루어진 이야기가 하나하나 모두 사실에 기반하지만 그 자체 세월이 흐르면서 대중의 첨삭과 과장, 그리고 뻥이 들어.. 2025. 1. 18. 반드시 메모한 청장관 이덕무, 박지원이 정리한 그의 행적 연암집 제3권 공작관문고孔雀館文稿형암炯菴 행장行狀우리 정종 공정대왕定宗恭靖大王 열다섯째 아들 무림군茂林君 시호諡號 소이공昭夷公은 휘가 선생善生이다. 그로부터 10세를 내려와, 휘 정형廷衡은 감찰로서 호조 참판에 증직되었으며, 휘 상함尙馠을 낳았다.상함공이 휘 필익必益을 낳으니 강계 부사江界府使요, 부사공이 휘 성호聖浩를 낳으니 이 분이 형암의 선친이다. 모친은 반남 박씨潘南朴氏로 토산 현감兎山縣監 휘 사렴師濂의 따님이요, 금평위錦平尉로서 시호가 효정공孝靖公인 휘 필성弼成의 손녀이다.형암은 휘가 덕무德懋요 자는 무관懋官이니, 형암은 그의 호다. 영종英宗 신유년(1741, 영조 17)에 태어났는데, 나면서부터 뛰어난 자질을 지녔고 성품이 단정하고 엄격하였다.세 살 때 이웃에 사는 창기娼妓가 엽전 한 푼을 가.. 2025. 1. 18. 택리지, 죽임이 일상화한 당장 시대가 갈구한 유토피아 조선은 당쟁 때문에 망했다는 언설이 이른바 당파성론이다. 흔히 말하기를 식민권력에 복무한 일본 관학 역사학이 이런 논리를 구조화했다 하며, 그것을 정체성론 타율성론과 더불어 식민사학을 규정하는 삼대 악의 축으로 대서특필한다. 맞는가?당파 싸움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는 인식은 저들이 새삼스럽게 개발한 것도 아니요, 무엇보다 조선시대 당쟁을 몸소 겪은 사람들이 하는 말이었다. 이런 인식은 구한말 그리고 식민지시대 민족주의 계열 역사학이나 다른 계열 역사학 문화사에서 광범위했으니, 조선이 망한 이유 중에 가장 큰 병폐 중 하나가 저 당파성론이 당당히 올라 있다. 함에도 왜 이런 사실은 도외시한 채 모든 책임을 일제에 덮어씌우는가? 편하기 때문이다. 전가의 보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우리 스스로가 면피가 되는 까.. 2025. 1. 18. 절친 담헌 홍대용 죽음에 연암 박지원이 쓴다 연암집 제2권 연상각선본煙湘閣選本홍덕보洪德保 묘지명 덕보德保[홍대용洪大容]가 죽은 지 3일 후에 문객門客 중에 연사年使[동지사]를 따라 중국에 들어가는 사람이 있었는데, 사행길은 응당 삼하三河를 거치게 되어 있었다.삼하에는 덕보의 친구 손유의孫有義란 사람이 있는데 호를 용주蓉洲라 하였다.몇 년 전에 내가 북경으로부터 돌아오는 길에 용주를 방문했다가 만나지 못해, 편지를 남겨 덕보가 남쪽 지방으로 원이 되어 나간 사실을 자세히 서술하고 덕보가 보낸 토산물 두어 종류를 남기어 성의를 전달하고 돌아왔다.용주가 그 편지를 떼어 보았다면 응당 내가 덕보의 벗인 줄을 알았을 것이다.그래서 그 문객에게 부탁하여 다음과 같이 부고를 전하게 했다.“건륭乾隆 계묘년(1783) 모월 모일 조선 사람 박지원은 머리를 조아리며.. 2025. 1. 18. 몹시도 괴로운 연암 박지원 그제부터 연암집 완독에 들어갔다.끝을 볼란지는 모르겠다.아마 어중간에 엎어버리지 않을까 싶다.사진속 제1권과 더불어 전2권이 완결판이다.분량이 만만찮다.민족문화추진회에서 신호열 김명호 옮김으로 출간했다.옛날 풍모가 완연한 판형이다.이미 이 당시 신호열 선생은 불귀의 객이 되고 그 문하생 김명호 선생이 선생과 같이 작업한 원고들을 정리했거니와김명호 선생이야 연암 전문가로 두 마디가 필요없는 발군의 연구자라이걸 내고서 불미한 데가 많다해서인지 아마 다른 상업출판사서 쏵 개비한 판본을 냈을 것이다.그 판본 역시 나는 보유 중이나 서재 어디 있는지 찾기가 곤란해 이 구판으로 접근 중이다.오역 또한 신판에서는 많이 바로잡았다 했다 기억하는데 신판이건 구판이건 일단 독파가 중요하다.이전에 여러 번 완독을 시도했다 .. 2025. 1. 18. 이전 1 ··· 1059 1060 1061 1062 1063 1064 1065 ··· 4076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