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3175 나는 옳다 해서 기사 썼는데 그것이 누군가의 공작이라면? 기자질 하며 제일로 기분 나쁠 때가 내 기사가 내가 의도한 바와는 전연 딴판으로 굴러가는 것이다. 더 기분 더러운 때는 이것이 옳은 길이요 가야 할 길이라고 해서 그쪽 방향으로 썼는데 알고 보니 이게 누군가 그쪽으로 유도한 것임이 밝혀졌을 때다. 문화재 분야라고 예외가 아니다. 몇해 전의 일이다. 서울 어느 지역 주민들이 난데없이 나를 찾아왔는데, 핵심은 인근 지역 재개발을 막아달라는 것이었다. 명분이 있어야 하니 이들이 내세운 무기는 문화재 보존이었다. 문화재 기자한테 주민들이 자발로 문화재 보호를 위해 개발을 반대한다는데 얼마나 그들이 대견해 보이겠는가? 한데 알고 보니 그 재개발지역이 이른바 서민형 임대주택 예정지였다. 반대한 이유는 자명해졌다. 하마터면 속을 뻔 했다. 다행히 저 건은 기사를 쓰진.. 2024. 1. 7. 육십이후의 전략 필자의 논문 인용 횟수 변화다. 뭐 요즘은 워낙 잘들 하는 사람이 많아 필자의 인용횟수는 그냥 평범한 수준이다. 여기서는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고, 필자의 인용횟수 변화를 보면, 2014년에 한 번, 2018년에 한 번 그리고 2021년에 반등하여 피크를 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인용횟수가 반등한 것은 사실 그보다 몇 년 전에 연구 주제의 변화를 모색했기 때문이다. 연구주제를 변화시키고 소위 말하는 current trend와의 동기화를 꾀한다. 그래야 다시 연구수준이 흐름을 타고 갈 수 있다. 이게 아주 힘이 들고, 사실 사람 할 짓이 못된다. 이런 변화를 모색하지 않으면 인용횟수가 떨어지기 시작하다가 학자로서 종국에는 산송장이 된다. 필자 생각에는, 이런 변화의 모색은 나이가 들면.. 2024. 1. 7. 탁사정한테 죽다 살아난 고구려 후예 거란 외교관 고정高正 요사遼史 권80 열전列傳 제18 고정高正은 어느 군郡 사람인지 알 수 없다. 통화統和 연간 초기(983 무렵)에 진사로 급제해 관직에 진출해 누차 승진해서 추밀직학사樞密直學士가 되었다. 황제가 장차 고려를 정벌하려하매 먼저 고정한테 고려로 가게 해서 그 이유를 알렸다. 돌아오자 우복야右僕射가 되었다. 마침 그때 고려왕高麗王 순詢(현종)이 표문을 올려 들어와서 친히 황제를 뵙겠다고 하니 황제가 그리하라 하고는 고정을 보내서 기병 천 명을 데리고 가서 맞도록 했다. 객관에 머물다가 고려 장수 탁사정卓思正한테 포위되니 고정이 정세를 감당할 수 없음을 알고는 휘하 장사들과 더불어 포휘를 뚫고 탈출을 감행하다 사졸 상당수가 죽거나 다쳤다. 황제가 경솔하게 움직였다고 후회하면서 그의 죄를 용서했다. 이듬해 공부시랑.. 2024. 1. 6. 강조를 사로잡은 야율홍고耶律弘古 분눌은盆訥隱 열전 요사遼史 권80 열전列傳 제18 야율홍고耶律弘古는 字가 분눌은盆訥隱이라 요련선질가한遙輦鮮質可汗의 후손이다. 통화統和 연간 초기(983?)에 일찍이 군사 임무를 맡아 예랄상온拽刺詳穩이 되었다가 이내 남경통군사南京統軍使로 옮겼다. 13년(995)에 남쪽 변경을 돌다가 사악교四岳橋에서 적을 만나 이기니 목 벤 이가 100여 급이었다. 송宋을 정벌하매 전공을 세워 동경유수東京留守로 옮기고 초국공楚國公에 봉해졌다. 훗날 고려를 정벌하매 선봉先鋒 야율분노耶律盆奴 부사령관이 되어 강조康肇를 동주銅州에서 사로잡았다. 30년(1012) 서북부가 반란하매 남부재상南府宰相 야율노과耶律奴瓜를 따라 그들을 토벌했다. (황실을 호위하는 군대인) 금군禁軍을 맡았을 때는 호령號令이 정비되고 엄숙하니 여러 部가 다 복종했다. 이내 시.. 2024. 1. 6. 요사遼史 야율적록耶律的琭 야녕耶寧 열전 요사遼史 권80 열전列傳 제18 야율적록耶律的琭은 字가 야녕耶寧이라, 중부방仲父房의 후손이다. 군사 일에 익숙해 좌피실상온左皮室詳穩으로 삼았다. 통화統和 28년(1010)에 고려를 정벌하매 적록的琭은 본부의 군대를 이끌고 야율분노耶律盆奴 등과 함께 강조康肇와 이현온李玄蘊을 동주銅州에서 사로잡았다. 황제가 이를 대견하게 여기며 말하기를 “경은 뛰어난 재주로 나를 위해 온힘을 다했으니 진실로 우리 집안의 철리마[千里駒]라 하겠소”라고 하면서 어마御馬와 촘촘히 짠 갑옷[細鎧]을 내렸다. 이듬해 북원대왕北院大王이 되었고 외직으로 나아가서 마고적렬부도상온馬古敵烈部都詳穩이 되었다. 나이 72세에 졸했다. 49 耶律的琭,字耶寧,仲父房之後。翌兵事,為左皮室詳穩。 50 統和二十八年,伐高麗,的琭率本部軍與盆奴等擒康肇、李.. 2024. 1. 6. 요사遼史 야율분노耶律盆奴 호독근胡獨堇 열전 요사遼史 권80 열전列傳 제18 아율분노耶律盆奴는 字가 호독근胡獨堇이라 척은惕隱 날로고涅魯古의 손자다. 경종景宗 시대에 마고부馬古部 상은詳穩이 되어 다스림이 언제나 엄하고 급하니 백성들이 그것을 고통스럽게 여겼다. 담당 부서에서 이런 소문을 보고하자 황제가 조칙을 내리기를 “분노는 한 쪽 지방 일을 맡아 세세한 일까지 따져 물으니 위엄과 신망이 손상당하지 않을까 한다”면서 마군태보馬群太保로 자리를 옮기게 했다. 통화統和 16년(998)에 몰래 연燕 지방 군대에 복무하는 자로서 직책을 감당하지 못할 자를 살펴 그들을 도태케 했다. 28년(1010), 황제가 고려를 정벌하면서 분노를 선봉으로 삼았다. 동주銅州에 이르러 고려 장수 장조康肇가 군사를 세 갈래로 나누어 우리 군대에 저항하니 군영 하나는 동주 서쪽.. 2024. 1. 6. 이전 1 ··· 1563 1564 1565 1566 1567 1568 1569 ··· 3863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