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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고려시대 문신 조선시대 문과나 고려시대 문과나 그 권위에 있어서는 별 차이 없다. 고려시대를 "귀족사회"라고 정의하니 고려시대에는 과거제를 거쳐도 귀족 자제가 음서를 한 것보다 시원치 않아 중하위 관료층을 형성했을 것 같지만 고려시대에 좀 힘 좀 쓰고 유명한 문관치고 과거 급제자가 아닌 사람은 거의 없다. 문과 급제자를 보자. 편의상 고려후기는 이미 과거제가 정착한 것은 잘 알려져 있으므로 전기의 관료 중 이름 석자 대면 알 만한 사람들만 적어본다. 강감찬: 성종 3년 과거 급제 윤관: 문종대 문과 급제 김부식: 숙종대 문과 급제 정지상: 예종대 문과 급제 강민첨: 목종대 문과 급제 김돈중: 문종대 문과 급제 문극겸: 문종대 문과 급제 서희: 광종대 과거 급제 오연총: 문종대 문과 급제 윤연이: 예종대 문과 급제 최충.. 2023. 7. 26.
고려는 귀족사회인가 고려는 조선시대와 다른 "귀족사회"라고 보는 시각이 현재 주류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좀 더 정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보는데, 그렇다면 과연 "귀족사회"가 도대체 뭘 말하는가 하는가 부터 시작해야 할 거 같다. 신편한국사의 "귀족사회" 정의를 보면 다음과 같다. 고려를 귀족제사회로 보려고 할 때 이에 대해서는「家門·門閥이 좋은 사람들」을 귀족으로 규정하고, 이들이 정권을 차지하고 국가를 운영하는 사회를 곧 귀족사회로 이해하였으며, 또 身分制社會라는 점에 중점을 두어 이같은 사회에서의 지배신분층을 귀족이라 보고 이들을 중심으로 말할 때에 그 사회는 곧 귀족사회라고 할 수가 있다. 일반적으로 넓은 의미에서 귀족은 ‘일반 인민과 구별되는 신분적·정치적 특권이 주어진 가족에 태어난 인간’ 또는 ‘신분제사.. 2023. 7. 26.
농가무! 다람쥐 추락사건 사건 발생 장소 및 일시 : 요저납시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 어느 계단 주연 :삐둘기 조연 : 다람지 대사 삐둘기 : 농가무 다람지 : 안주여 삐둘기 : 혼차 쳐먹노? 다람지 : 니줄끼 어딨노? 지문 : 삐둘기가 꼬리로 다람지를 슬쩍 넘어뜨려 계단 밑으로 구르게 해서 추락사 시킨다. (2016. 7. 26) 2023. 7. 26.
아래로는 흘러가는 구름도 없는 피렌체 조토종탑 피렌체 좃또 종탑에 올랐다. 걸어 달팽이 껍띠 같은 길을 걸어오르니 온몸에선 비린내가 났으니 그래도 왜 오르냐 묻거든 계단이 있기 때문이라 대답해 본다. 올라보니 온통 기와집이니 신라 전성기 금성도 풍모가 이랬을 까나 생각해 보거니와, 황룡사 목탑에 오른 13세기 고려 시인 김극기는 구름이 탑 아래로 흐른다 했거니와 이 좃또 탑은 낮아서 그런가 아래로는 구름도, 기러기도 흘러 날으는 모습을 볼 수는 없다. (2017. 7. 26) #피렌체 #피렌체여행 #조토종탑 #조토탑 #이탈리아 #이탈리아여행 2023. 7. 26.
“攻, 猶治也”라는 2015년 3월 15일의 메모 남들 눈에야 허투루하다 보일 수도 있겠지만, 또 그런 세평이 어느 정도 실상을 반영하는 부분도 분명하지만, 나는 보기보다는 메모에 관한 한 나름대로는 치밀해서 요새는 그런 경향이 훨씬 줄어들기는 했지만, 상당한 메모광이다. 어느 정도인가? 어떤 책을 읽으면, 그걸 다 뽀개서, 키워드를 죽죽 뽑아 그것을 분류하고 메모한다. 이 키워드는 나중에 내가 기사를 쓰거나 논문을 작성할 때, 혹은 지금과 같은 블로그질을 할 때마다 필요한 자료 혹은 전거를 뽑아내는 고리가 되는데, 그렇게 내가 평소에 훗날 필요할지도 모른다 해서 메모한 것들이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그만큼 나는 메모에 관한 한 狂이다. 구양수歐陽修 필기인 《귀전록歸田錄》은 그 항목 하나하나를 전부 다 뽀개서 내가 훗날 필요할지도 모르는 지남이 될 만한.. 2023. 7. 26.
개선문=독립문이라는 등식은 무엇에 말미암으며 무엇을 말하는가? 대한민국 사적으로 지정된 이 서울 서대문 서울 독립문獨立門, Dongnimmun Arch, Seoul을 일컬어 흔히 이르기를 갑오개혁 이후 자주독립의 의지를 다짐하기 위해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迎恩門을 헐고 세운 기념물이다. 갑오개혁(1894∼1896)이 성공하지 못하자 민족 독립과 자유를 위해서는 어떠한 간섭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중국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우게 되었다. 건양建陽 원년(1896년) 서재필이 조직한 독립협회 주도하에 국왕의 동의를 얻고 뜻있는 애국지사와 국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얻으며,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을 본떠 광무 2년(1898년) 완성하였다. 라 하거니와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이걸 따지기 전에 저와 같은 설명은 역사학이며 문화재학 영역이랄 .. 2023.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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