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3983 [2022 베를린 풍경(19) 함부르크 Hamburg 行-③엘브 필하모니 Elbphilharmonie Hamburg by 장남원 함부르크는 바닷가에 있다고 생각했다. 출렁이는 깊고 푸른 물길과 갈매기... 화물을 실은 거대한 화물선들...붉은벽돌 조적조 공장과 부두, 창고들...하지만 엘베강이었다. 동유럽에서 발원하여 독일을 지나 함부르크를 통해 북해로 나가는 그 엘베강 말이다. 도시는 북쪽으로 덴마크에 가깝고, 서쪽으로 암스텔담까지 비행기로 1시간 거리다. 그래서인지 북유럽풍 실내장식과 조명기구 판매점이 적지 아니 눈에 띄었다. 중세 한자Hanza동맹 일원이었으니 지금도 그 공식명칭은 “자유 한자도시 함부르크 Freie und Hansestadt Hamburg”로 자치주다. 독일에서 가장 부유하고, 생동감 넘치는 도시...이 도시 랜드마크는 이제 단연 ‘엘브 필하모니(별명, 엘피)’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부두 창고.. 2022. 12. 16. 죽어도 노비 손에는 죽을 수 없다는 백제 명농왕明穠王 일본서기 흠명 15년 조에는 유명한 성왕이 승하하는 장면이 나온다. 성왕이 아들 위덕왕을 찾아 가다 매복에 걸려 죽는 장면이다. 여기에는 의미심장한 부분이 두 군데 있다. 1. 고도가 말하기를 "우리나라 법에는 맹약을 어기면 비록 국왕이라 할지라도..."라는 부분이 있다. 성왕이 맹약을 어겼다는 뜻일 터다. 무슨 맹약일까? 이미 앞에 한 번 쓴 바 있다. 백제는 신라와 공수동맹을 맺었지만 가야방면으로는 끊임없이 가야와 연계하여 신라를 견제하려 했다. 우리가 모르는 적대행위가 또 있었을 수 있다. 아무튼 문맥으로 보면, 적어도 신라로 보면 한강 탈취 명분은 "백제가 맹약을 어겼기 때문"인 셈이다. 그 명분 역시 모든 정치판 명분이 그러하듯 구실에 불과했겠지만. 2. 고도가 명왕을 사로잡아 "왕의 머리를 베.. 2022. 12. 15. [요지경] 무슬림사원 공사장 앞에서 통돼지 굽고, 헤롱헤롱 곽도원은... 대구 이슬람사원 공사장 앞 '통돼지 바비큐 잔치' 논란 송고시간 2022-12-15 14:25 비대위 "폭력행위 강력대응" 회견 뒤 '연말 큰잔치' 열고 바비큐 만들어 비대위 비판 대자보 등장…"돼지고기 아닌 대화로 문제 해결해야" https://www.yna.co.kr/view/AKR20221215103200053?section=society/all&site=hot_news 대구 이슬람사원 공사장 앞 '통돼지 바비큐 잔치' 논란 | 연합뉴스 (대구=연합뉴스) 황수빈 기자 = 이슬람 사원 건축을 반대하는 대구 북구 대현동 일부 주민들이 기자회견을 마친 후 사원 공사장 인근에서 통돼지 ... www.yna.co.kr 이거 참...이 땅에서 무슬림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죄악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명목상 이.. 2022. 12. 15. 단재주의가 말살한 신라와 가야 단재주의란 무엇인가? 드넓은 만주가 한민족 영역이며 그에서 기반한 대륙지향 주체적 강성군사 대국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미래의 길이며, 그것을 준거로 그에서 벗어난 역사는 치욕과 굴종으로 치부하는 사관史觀이다. 그가 그 롤모델로 삼은 데가 고구려라, 그의 사관이 지향하는 모든 종착은 오직 고구려로 향했다가 고구려에서 뻗어나올 뿐이다. 강고한 내셔널리즘에 기반한 저 단재주의는 그 태동 공간에서는 강한 흡인력을 발판으로 제법 쓸모가 있었고, 그것이 이른바 식민주의를 청산하는 가장 호소력 큰 구호이기도 했으니, 문제는 그 유산이다. 그때는 쓸모가 있었고, 어쩌면 그랬기에 시대사명이기도 한 저 구호 혹은 저 정신이 21세기에 접어든 지금에서도 버전을 달리하며 재생산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저 고구.. 2022. 12. 15. [유성환의 이집트 이야기] 투탕카멘과 하워드 카터(8) 끝없는 갈등과 쓸쓸한 말년 제5대 카나본 백작 조지 허버트(George Edward Stanhope Molyneux Herbert, Fifth Earl of Carnarvon: 1866-1923년) 경의 미망인 알미나 허버트 카나본 백작부인(Almina Herbert, Countess of Carnarvon: 1876-1969년)은 카나본 경이 사망한 후에도 발굴작업이 계속될 수 있도록 발굴 허가권 시한을 연장하는 데 기꺼이 동의했습니다. 따라서 하워드 카터(Howard Carter: 1874-1939년)가 현장을 계속 통제하면서 발굴작업을 계속해나갈 수 있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카터의 발목을 잡은 것은 발굴현장이 아니라 정치 대외적 상황들이었습니다. 특히 카나본 경이 「타임즈」(The Times)와 체결한 독점 보도권으로.. 2022. 12. 15. [유성환의 이집트 이야기] 투탕카멘과 하워드 카터(7) 본격화하는 발굴 제5대 카나본 백작 조지 허버트(George Edward Stanhope Molyneux Herbert, Fifth Earl of Carnarvon: 1866-1923년) 경이 1923년 4월 5일 사망하기 약 한 달 전인 2월 28일에는 투탕카멘(Tutankhamun: 기원전 1336-1327년) 왕묘(KV 62)의 묘실(burial chamber)이 마침내 개방되었습니다. 왕묘가 발견되고 발굴팀이 꾸려지자 하워드 카터(Howard Carter: 1874-1939년)는 1922년 12월 27일부터 전실(antechamber)의 유물을 수습하여 카이로의 박물관으로 보내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유물이 왕묘 밖으로 운반되면 람세스 11세(Ramesses XI: 기원전 1099-1069년)의 왕묘(KV 6)에.. 2022. 12. 15. 이전 1 ··· 2315 2316 2317 2318 2319 2320 2321 ··· 399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