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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80주년의 사건> (5) "처음 밝힙니다. 나는 일본군 소위였어요" 말쑥한 밤색 정장 차림이었다. 오늘 인터뷰를 의식해서라고도 하겠지만, 천상 할배요 천상 영감인 이 양반은 적어도 외부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생평을 이렇게 살았을 사람 같았다. 흐터러진 모습은 어디에서 찾을 길이 없었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단아했다. 곱게 늙는다는 말, 이런 사람한테 쓰는 갑다 했다. 말투 역시 차림과 하나도 다르지 않아, 천상 마음씨 좋은 문방구 할배의 그것이었다. 두 시간가량 진행된 인터뷰 내내 시종 웃음이 얼굴을 떠나지 않았으니, 그래 신선이 있다면 이런 사람이겠구나 했다. 목청은 높아진 적이 단 한 번도 없고, 이렇게 차분할 수 있을까 했다. 만나 보니 현승종은 그런 사람이었다. 이런저런 판에 박힌 인사를 나누고는 이력 조회에 들어갔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던 해에 .. 2019. 2. 23.
태산에 올라 삼족오 보리니 한시, 계절의 노래(280) 일관봉(日觀峰) [宋] 범치중(范致中) / 청청재 김영문 選譯評 태산은 동남쪽첫째 가는 경관이라 창공에 높이 솟은벽옥 봉이 가파르네 이 몸을 날게 하여정상에 세워주면 깃털도 덜 마른삼족오를 볼 수 있으리 岱嶽東南第一觀, 靑天高聳碧㠝岏. 若教飛上峰頭立, 應見陽烏浴未乾. 일관봉(日觀峰)은 중국 태산 정상인 옥황정(玉皇頂) 동남쪽에 있는 봉우리로 일출을 관망하는 명소다. 태산은 대악(岱嶽), 대종(岱宗)으로도 불렸다. 태산 산신을 모시는 태안시(泰安市)의 사당 이름이 대묘(岱廟)인 것도 대악(岱嶽)에서 유래했다. 양오(陽烏)는 태양 속에 산다는 삼족오(三足烏)다. 『산해경(山海經)』 「대황남경(大荒南經)」에 의하면 태양의 모친 희화(羲和)가 감연(甘淵)에 아들 10명을 목욕시켜 매.. 2019. 2. 23.
신선 놀음에 도끼자루는 썩어가고 한시, 계절의 노래(285) 바둑 구경 그림[觀弈圖] [明] 명 고계(高啓) / 김영문 選譯評 산속으로 잘못 들어선 채로 바둑 구경 가족들은 날 저물자땔나무를 기다리네 어찌하여 바둑 한 판에천년 세월 소요됐나 신선 할배 돌 놓는 게너무 늦은 탓이리라 錯向山中立看棋, 家人日暮待薪炊. 如何一局成千載, 應是仙翁下子遲.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한자 어휘로는 난가(爛柯)라고 한다. 나무꾼이 산속에서 어떤 사람들이 바둑 두는 걸 구경했는데 바둑이 끝나고 보니 도끼자루가 썩어 있고, 동네로 내려왔을 때는 이미 자신이 살던 시대가 아니라 몇 세대 뒤였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이 시는 이를 배경으로 그린 그림에 쓴 화제(畫題)다. 이 이야기는 중국 남조 양(梁)나라 임방(任昉)의 『술이기(.. 2019. 2. 23.
<3.1절 80주년의 사건> (4) 다급한 전화, 하지만 이미 물은 엎어지고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하나 확실한 것은 관련 인터뷰가 나간 1999년 2월 24일이 지난 어느 시점이었다. 전화가 왔다. 현승종 이사장이었다. 여든하나 뇐네가 손수 전화를 했다는 건 두 가지 중 하나다. 첫째, 기사 내줘서 고맙다둘째, 기사가 뭔가 문제가 있다. 유감스럽게도 두 번째였다. 유선상으로 전해진 그의 말을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다. 20년 전 일이니깐 말이다. 다만 그 요지는 내가 기억할 수 있으니, 다음과 같다. "그 기사 때문에 내가 곤란해졌다. 일본군 소위로 근무했다는 대목이 문제가 됐다. 나를 쫓아내려는 사람들이 그걸 꼬뚜리로 삼아서 들고 일어났다. 내가 친일을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는 나로서는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이게 무슨 낭배란 말인가? 대체.. 2019. 2. 23.
<3.1절 80주년의 사건> (3) 소송전을 불사한 전직 총리 현승종 서울지법 민사합의25부(재판장 안영률 부장판사)는 2000년 10월 19일 현승종(81.玄勝鍾) 전 국무총리가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도대체 무슨 일로 현승종은 재판까지 갔던가? 이 소식을 전한 이 날짜 당시 우리 공장 보도를 보면 "'일본군 장교로 독립군과 전투를 벌였다'는 허위 사실을 유포해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우홍구 건국대 동문교수협의회장 등 5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들은 원고에게 1천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는 것이다. 계속 기사를 보면,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현씨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제말 일본군 소위로 일제 군복을 입고 중국 팔로군과 전투하였다'고 밝힌 사실은 인정된다"며 "하지만 중국 팔로군에서 조선의용대 등 일부 독립군이 활동했다는 역.. 2019. 2. 23.
<3.1절 80주년의 사건> (2) 황소를 뒤로 하고 들어간 이사장실 현승종 (玄勝鍾) HYUN Soong Jong. 그는 거물이었다. 힘이 있는 거물이라기보다는 그 각종 화려한 이력이 사람을 질겁케 하는 그런 거물이었다. 우리 공장 인명록을 통한 그의 이력은 대략 다음과 같다. 음력 1919년 01월 26일생인 그는 공직으로는 국무총리를 역임하고, 교직에서는 성균관대와 한림대 두 대학 총장을 역임했으며, 건국대 이사장으로도 일했다. 나아가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회장, 인촌기념회 이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아호는 춘재(春齋), 본관은 연주(延州)이며, 올해 만 100세인데 아직 타계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다. 평안남도 개천 출신인 그는 1938년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제국대학에 들어가 1943년 법학과를 졸업했으며, 1973년 고려대에서 명예 법학박사, 1976년 대.. 2019.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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