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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 동촌리고분군 사적지정 예고, 닥치고 땅사라 전북 최대 가야 무덤떼 '장수 동촌리 고분군' 사적 된다송고시간 | 2019-07-22 09:30마봉산 주변에 80여기 조성…발굴조사서 편자·재갈 나와 이번 사적 지정 예고가 문재인 대통령에 의한 가야사 연구복원 지시에 따른 후속조치라는 느낌이 강해서 좀 그렇기는 하지만, 그간 홀대받은 전북 동부지역 가야계 유산에 대한 배려라는 측면에서 자못 의의가 있다고 나는 본다. 남원과 장수 지역에 밀집하는 고분과 봉수대, 그리고 제철 유적을 필두로 하는 삼국시대 유적이 모두 가야, 특히 대가야 계통이라 확언하기는 힘들지만, 그것을 남긴 주인공이 어떤 정치체건, 마뜩히 사적 지정 등을 통해 보호받았어야 하는 유산이 제대로 보호관리되지 못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 홀시에서 언론 역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나 역시.. 2019. 7. 24.
박영우 작가의 <아재>(4) 또 튀어나옴 2019. 7. 24.
새사랑 찾아 야반도주한 작제건 마누라 저민의 얼마전 북한이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개성에 소재하는 고려 온혜릉이라는 고려 태조 왕건의 할매 무덤인 온혜릉을 발굴했다는 소식을 타전했거니와, 그 소식을 인용하면서 나는 대체 그의 할매 무덤이라니? 더구나 그 할매 무덤을 온혜릉이라고 한다는 근거가 무엇인지 심대한 의문을 표시했더랬다. 그도 그럴 것이 고려사나 고려사절요, 혹은 제왕운기, 혹은 기타 우수마발 고려시대 고려 사람들이 남긴 기록에서 그 어떤 그 조모 무덤 관련 흔적을 보지 못한 까닭이다. 그렇다면 온혜릉이란 어느날 느닷없이 출현한 귀신인가? 그런 의문 제기에 전라도 장성땅 행주기씨 호철 선생이 관련 문헌 기록을 디립다 긁어다 주었거니와, 보니 온혜릉이란 溫鞋陵이라 쓰고, 그것이 태조 왕건의 조모, 그러니깐 작제건作帝建하고 쿵쿵딱해서 장자 륭.. 2019. 7. 24.
The 2nd Excavation of Seobongsa Temple Site, Yongin, 2014 / 용인 서봉사지 2차 발굴조사(2014년) 용인 서봉사지 2차 정밀발굴조사 학술자문회의 개최 / 龍仁瑞峰寺址第二次精密發掘調査 □ 개최 계획 ㅇ 일 시 : 2014년 11월 26일 오전 11시 ㅇ 현장공개 : 2014년 11월 26일 오후 02시 ㅇ 장 소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신봉동 산110번지 조사현장 ㅇ 참석대상 : 자문위원 지건길ㆍ장경호ㆍ양정석 (재)한백문화재연구원 ․ 용인시청 관계자 등 ㅇ 회의안건 : 유적의 성격 및 향후 처리방안 등 □ 발굴 개요 ㅇ 허가번호 : 제2014-0722호 ㅇ 발굴사유 : 시굴조사에서 확인된 유구(건물지)의 성격 확인을 위하여 발굴조사를 실시함. ㅇ 허가받은 자 : 용인시청 ㅇ 조사기간 : 2014. 09. 25 - 2014. 11. 26 ㅇ 조사기관 : (재)한백문화재연구원 ㅇ 조사범위 : 1,780㎡ .. 2019. 7. 24.
작제건作帝建, 고려왕조의 뿌리 고려를 창업한 태조 왕건의 조부. 신라시대 말기를 산 인물이지만, 그 남은 행적이 신이神異로 일관해, 자세한 경력은 알기가 어렵다. 태조 2년(919)에 왕건이 선대 직계 조상들을 일괄 추존하면서 할아버지인 그를 의조 경강대왕懿祖景康大王이라 하고, 그 부인은 원창왕후元昌王后했다. 이로 보아 고려 건국 이전에 작제건은 죽고 없었음에 틀림없다. 帝王韻紀 > 帝王韻紀 卷下 > 本朝君王世系年代 > 自古受命君, 孰不非常類 自古受命君, 孰不非常類 本朝君王世系年代凡七百言. 自古受命君, 孰不非常類. 惟我皇家系, 於此尤奇異. 唐肅潛龍時, 遊賞東山水. 禮彼八眞仙, 寄宿松山趾.唐書曰, “肅宗少封忠王.” 本朝學士洪瓘, 所撰世紀曰, “唐忠王, 遊松岳山, 禮八眞仙, 宿養子洞居士寶育家.” 則肅宗來遊明矣. 又按本紀, “龍王謂景康曰,.. 2019. 7. 24.
폐허란 무엇인가? 갈수록 무엇을 위한 폐허인가를 묻는다. 이제는 이를 대답할 시점이 된 듯하다. 폐허주의....그렇다고 우리가 100년전 이상화 오장환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왜 폐허인가에 대한 그럴 듯한 답을 이제는 내어놓아야 한다. 돌이켜 보면 이런 철학적인 물음을 성찰하지 아니했다. 하긴 이런 일은 한국지식인 사회 고질이라 무엇인가 이론을 체계화하고 그것으로써 문화를 묶어내는 이런 철학적 접근은 언제나 외국, 특히 구미유럽의 몫이라 생각했고, 그리하여 언제나 이런 거창한 물음은 누군가는 하겠지 팽개쳐두고는 언제나 우리네 지식인사회가 달려간 곳은 주거지 변천양상이었고, 토기의 변화양상이었다. 이는 가장 저급한 형이하학에 지나지 않는다. 왜? 무엇을? 이런 물음을 동반하지 않는 저런 학문은 이제는 설 .. 2019.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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