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병 환자에 대한 비극적 격리는 지구 반대편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고
지워야만 한 기억의 흔적이 이제는 크레타에서 가장 인기있는 관광지 중 하나가 되었다.
중세에는 오스만 제국의 진격에 대항한 베네치아 최후의 요새였으며
근세에는 유럽의 한센병 환자 수용소 중 마지막까지 기능한
스피나롱가Spinalonga 를 찾아 떠난 여행.
https://maps.app.goo.gl/GBmHdxLSqfmvYNdi9
미노스 문명 Minoan Civilization 중심지이자, 올리브로 잘 알려진 그리스 크레타Crete섬.
크레타 출신 지인에게 그곳에 가겠다고 했더니
크레타에서 가장 관광객이 많이 가는 곳은 '미궁'으로 알려진 '크노소스 궁전'이고,
그 다음으로 많이 가는 곳이 '스피나롱가'라는 말을 한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곳이라 자료를 찾다 보니
그리스 세계유산 잠정목록이자, 몇년 전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한 곳이다. (심사 결과는 좋지 않아서, 철회했다.)
그러려니.. 하고 잠정목록 자료를 읽다가, 내 눈에 들어온 한 줄.
소록? 내가 아는 그 소록도? 갑자기 왜?
세계사의 특수성 속에서, 가끔, 미처 예측치 못한 보편성을 마주할 때면.. 당황스럽다.
지도를 찍어 보니 공항에서 거리가 상당하긴 하지만.. 가 보기로 했다.
크레타에 가려면 아테네(피레우스)에서 배를 타도 되고, 비행기를 타고 되는데
섬이 옆으로 긴 만큼 공항도 두 개가 있다.
하니아 공항 정식 명칭은 Ioannis Daskalogiannis (Ioannis Vlachos, 오스만의 통치에 대항한 크레탄 봉기 주도자),
이라클리오 공항은 정식 명칭이 Nikos Kazantzakis ('그리스인 조르바'로 유명한 그리스의 문호)다.
이번 목적지가 크레타 동쪽이므로, 이라클리오로 갔다. (크노소스도 이라클리오로 가야 한다.)
스피나롱가로 가려면 일단 섬 건너편 마을까지 가서 배를 타야 하는데,
이라클리오에서 시외버스도 있긴 하지만, 쉽지 않기 때문에
렌트를 하거나, 이라클리오 시내의 여행사에서 스피나롱가행 여행을 예약하는 것이 좋다.
나는 차를 빌렸고, 공항에서 약 70km 거리인 엘룬다 Elounda 에서 일단 하루를 묵었다.
엘룬다에서도 스피나롱가행 배를 탈 수 있지만, 거리가 꽤 되므로
스피나롱가에 가는 가장 짧은 배를 타는 게 목적이라면 플라카 Plaka 라는 더 작은 마을로 약 10분간 이동해야 한다.
홈페이지에는 4월부터 운행한다고 적혀 있기도 하고 3월 마지막주부터라고 적혀 있기도 하고
운행시간은 10시부터라고 써 있기도 하고.. 무튼 정보가 일관성이 없어서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다행히 내가 방문한 날짜가 동절기가 막 끝나고 소규모 그룹들이 방문을 시작하는 시점이어서
10시반에 첫 배가 운행한다고 한다.
요금은 성인 12유로, 어린이 6유로이고 배에서 현금만 받는다.
사실 이 곳은 원래부터 섬은 아니었다고 한다.
중세 언젠가, 이곳과 옆 지역 사이를 파서 바닷물을 들어오게 해서 섬이 되었다고..
중세 이후 근세까지 이곳은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이자 최일선 요새로 기능했다.
지도에서 보면 바로 이해가 된다.
크레타 자치국 Cretan State이 스피나롱가를 1903년에 크레타섬 한센병 환자 수용소로 결정하고,
이 섬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터키인들이 떠남으로서,
베네치아-오스만 시기를 지나 한센병 격리지로서의 시기가 시작되었다.
크레타가 그리스에 편입된 이후엔 그리스 전역의 한센병 환자를 비롯, 나중에는 유럽 전역에서 환자를 이송해왔다.
당시의 생활은 너무나 비참했으나, 한센병에 걸린 Epameinondas Remoundakis라는 젊은 법학도가 이 섬으로 격리되어 오면서 그가 설립한 “Fraternity of Patients of Spinalonga”라는 단체를 통해 점차 생활환경이 개선되었다.
1940년대에 한센병 치료법이 발견되었지만 격리시설은 1957년까지 운영되었는데,
이후 이 섬의 비극적 역사는 정부에 의해 철저히 가려지고, 이 섬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또한 묻혀졌다.
그리스 정부는 한센병 격리지로 사용한 시기를 가리고,
1970년대에 이곳을 고고학 보호 지역으로 지정하여 발굴 작업을 시작했고,
관리 차원에서 한센병 환자와 관련된 건물들을 철거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0년부터 일반에게 개방을 시작한 후,
아이러니하게도 대다수 관광객은 이 섬의 슬픈 역사를 체험하기 위해 방문을 희망했다고 한다.
눈부신 푸른 바다, 수백년동안 굳건한 성벽, 그 위에 폐허가 된 콘크리트 건물들,
2005년에 스피나롱가를 배경으로 Victoria Hislop의 <Το Νησι - 섬> 이라는 소설이 발표되고(한국어 번역판도 있다는데 절판되었다고..),
이를 기반으로 TV시리즈까지 제작되면서 스피나롱가는 새삼스럽게 관광지로 주목을 받게 되었고,
2014년에는 그리스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근대 이전까지는 상업과 교역의 중심지로 활발히 기능했다.
군사적 요충지이자, 반란군의 대피처로 활용되기도 했다.
이러한 '통제 가능한' 환경 때문에 크레타 자치국은 이곳을 한센병 환자 수용지로 낙점하게 된다.
세계유산 등재추진까지 했으니 정비가 완료되었을 것이라는 내 예상과 달리, 내부는 상당히 날것의 모습이었다.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유산 관리자로서 어떻게 '정비'와 '복원'을 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유산의 안정성과 관람객의 안전, 관람의 편의를 위해서 어느 정도까지 정비와 복원을 해야 하는 것일까?
이곳에 방문하는 사람 대다수가, 흔히 말하는 '다크 투어'를 위해 이 곳에 오는 점을 고려하면
홍보 측면에서 이런 상태를 유지하는 큰그림(?)인가, 라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보았다.
여기까지 꾸역꾸역 찾아오는 사람들이 안락한 투어를 원하지도(기대하지도) 않을 테고..
당시, 생활 개선 사업의 일환으로, 섬을 빙 두른 산책로를 만들었다고 한다. 1939년 완공.
길을 걸으며,
격리되지 않은 사람들의 세상과, 한없이 푸른 바다를 바라보면서
숨을 쉬던 사람들을 생각했다.
ΣΤΟΝ ΜΑΡΤΙΡΙΚΟ ΕΤΟΥΣ ΤΟΠΟ ΤΟΥ ΥΠΟΧΡΕΩΤΙΚΟΥ ΕΓΚΛΕΙΣΜΟΥ ΕΒΑΨΑΝ ΟΛΕΣ ΤΟΥΣ ΤΙΣ ΕΛΠΙΔΕΣ ΓΙΑ ΤΗ ΖΩΗ ΕΚΑΤΟΝΤΑΔΕΣ ΣΥΝΑΝΘΡΩΠΟΙ ΜΑΣ ΧΡΥΠΗΜΕΝΟΙ ΑΠΟ ΤΗ ΛΕΠΡΑ. ΑΠΟ ΤΗ ΖΩΗ ΤΟΥΣ ΑΝΤΛΟΥΜΕ ΔΙΔΑΓΜΑΤΑ. ΑΙΩΝΙΑ Η ΜΝΗΜΗ ΤΟΥΣ.
ΠΑΝΕΛΛΗΝΙΟΣ ΣΥΝΔΕΣΜΟΣ ΧΑΝΣΕΝΙΚΩΝ.
6.7.2013
(원문)
Hundreds of our fellow citizens, suffocated by leprosy, put all their hopes for life in the martyr place of compulsory confinement. We learn lessons from their lives. Their memory is eternal.
Panhellenic Hansenic Association.
(구글 번역)
<공식 안내 홈페이지>
https://spinalonga-island.gr/?lan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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