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기 조선인 일부는 연합군 포로감시원으로 갔다. 이들은 열라 열심히 일했다. 어떻게?
악랄했다. 일본놈들보다 서너배, 아니 몇십배 악랄했다. 그래야 살아남고 그래야 대접받았기 때문이다.
식민지시대 짭새 혹은 면서기 등으로 진출한 조선인이 꽤 된다. 이들한테 붙잡혀 취조 받은 사람들 증언을 보면 일본놈 순사보다 조선놈 순사들한테 이를 더 간다.(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취조 당한 국어학자 일석 이희승 회고록을 보면 조선인 순사한테 이를 더 간다.)
일본놈 순사들보다 졸라 더 악랄했다 한다.
그래야 대접받고 그래야 승진했기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
이를 묻는 과정은 시덥잖은 변방 오스트리아 치하 독일인이 히틀러가 왜 극렬한 게르만 민족주의자였는지를 이해하는 첩경이다. 프랑스 중에서도 왜 알자스 로렌 지방이 더욱 내셔널리즘 성향이 더욱 강성한지를 이해하는 지름이다.
항상 나는 말한다. 주변인일수록, 외지인일수록 그 중심부로 치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중심부 사람들보다 더욱 중심인이어야 한다고.
일본인이 아닌 조선인이 일본인이 되기 위해서는, 일본인보다 더욱 일본인다워지기 위해서는 일본인보다 더욱 피나는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악독한 조선인 포로감시원 악랄한 조선인 순사는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단순히 민족을 배반한 나쁜놈이라는 도식은 개돼지나 하는 주장이다. 이 따위는 역사학이 아니다.
(2017. 9. 13)
***
이는 앞선 글의 후속으로 쓴 글이었다.
변경에서 태어나는 내셔널리즘, 히틀러의 경우
나아가 포로감시원들 자신의 절규는 아래 참조
어느 연합군 포로감시원의 회고와 울분
다시금 지적하지만 민족 혹은 민족정기는 결코 무엇을 판단하는 절대선이나 도덕일 수는 없다. 춘원을 비롯한 수많은 친일파가 왜 과거사청산을 인정하지 못했고 안했는가?
그들만큼 내셔널리즘 민족주의에 처절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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