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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세기58

국민의 이상형 '화랑' 2000년대 접어들어 신라 화랑을 국민만들기 nation building 라는 시각에서 접근한 글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 이전에도 이런 시각의 글이 있었는지 자신은 없으나 거의 없었다고 기억한다. 《화랑세기》, 이를 두고 참 말이 많다. 진짜니 가짜니 해서 쟁투를 벌인다. 나는 진짜라는 쪽에 서서 맹렬히 싸웠다. 한데 실로 묘하게도 이 가짜라는 《화랑세기》가 역설적으로 순국무사 화랑을 해체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국민의 이상형으로 근대 국민국가 한국이 화랑을 발견했다는 총구는 외람스럽지만 내가 당겼다고 본다. 《화랑세기 또하나의 신라》, 이 졸저가 나옴으로써 화랑은 비로소 국민의 실체로 발가벗기 시작했다고 본다. 나는 이 책을 내며 그 프롤로그로 '순국무사 화랑을 해체하며'라는 장중한 역사 에세이.. 2020. 8. 20.
언니를 제끼고 김춘추를 차지한 문희, 그 발설자는? 오늘 《화랑세기》 강연에서도 나는 예의 김유신 김춘추 축국 경기와 그에 따른 김유신의 옷찢어발리기와 이후 전개된 야합 행각을 이야기했다. 보희寶姬는 월경 중이었으므로 김춘추와 맺어질 수 없었다. 그래서 행운은 그 동생 문희文姬한테 돌아갔다. 강연에서 이야기했다. 이 얘기가 어떻게 전해졌겠는가? 난 이들 네 년놈 중에 한 명의 발설자가 있다고 했다. 이들 중에 까발리는 사람이 없었으면 이 이야기는 결코 후세에 전해질 수 없다. 그러면서 나는 《화랑세기》를 꺼내들었다. 발설자는 누구냐? 문희였다. 《화랑세기》에서 이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그 출처가 《문명황후사기文明皇后私記》라 했다. 문명文明이 누구인가? 바로 문희다. 사기私記가 무엇인가? 사사로운 기록이란 뜻이다. 그러니 《문명황후사기》는 문명에 의한 회고록.. 2020. 5. 23.
폭설이 돌려세운 의성 탑리오층석탑 2012년 12월 7일, 누군가 운전하는 차에 룰루랄라 불알 휘날리며 경북 의성 톨게이트에 들어섰다. 싸대기 직전 변비 투성이 같은 날이었다. 의성군청에 들어섰다. 이땐 영미는 아직 코흘리개 시절이라, 훗날 대한민국을 들었다놨다 하는 그 시절이 아녔다. 그날 나의 기념비적인 발표가 예정됐다. 따신 실내에 들어서고 발표를 좀 듣다보니 졸음이 쏟아졌다. 보다시피 내 주옥같은 발표 말곤 들을 발표가 없었다. 뭘 하며 소일할까 잔머리 굴리다가 탑리오층석탑이나 댕기오자 하곤 길을 나섰다. 내 차를 몰고간 건 아니기에 지인 차를 빌렸다. 어찌 됐냐고? 가는 길에 폭설이 쏟아졌다. 나설 때 날리던 눈발이 가다 보니 이리 순식간에 변했다. 돌릴 수밖에 없었다. 갈땐 유유했으나 중간에 돌아선 길은 엉검엉검이었다. 기어서.. 2019. 12. 7.
화랑세기 없이는 나올 수 없는 발상, 용춘과 비형랑 October 3, 2013 글인데, 오타 등을 바로잡는 수준에서 교정한다. 신라사 중고기 왕실 관련 인물로 용춘龍春이라는 사람이 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의하면, 이 사람은 신라 제25대 진지왕眞智王의 아들이요,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아버지다. 그의 행적에서 그가 화랑, 혹은 화랑이 이끄는 무리 일원이라는 언급은 단 한 군데도 없다. 용춘과 관련되는 인물로 오직 《삼국유사》에만 보이는 비형鼻荊이라는 인물이 있다. '도화녀 비형랑桃花女鼻荊郞' 이야기 주인공 중 마지막에 등장하는 인물로서, 그는 폐위된 뒤에 죽은 혼령이 된 진지왕이 도화녀라는 얼짱 여자와 관계해 낳은 '귀신 아들'로서, 주특기는 공공기술자을 이끄는 우두머리라는 점이다. 이런 그가 화랑 혹은 그가 이끄는 무리와 관계있다는 언급은 그 .. 2019. 10. 3.
돈 많은 과부 만나 출세한 화랑 문노 문노文弩는 아버지가 신라 재상을 지낸 비조부比助夫라는 사람이고, 엄마는 대가야 문화공주文華公主라, 그런대로 괜찮은 혈통이랄 수 있지만, 신라로 넘어와서는 빌빌 쌌다. 비조부 아들이라 하지만, 서자인데다, 대가야는 신라에 대들다 쫄딱 망하는 바람에, 그 대접이 순수하게 나라 전체를 몽땅 받친 금관가야랑 달랐다. 이런 한계를 스스로 절감한 때문인지, 문노 본인도 출세에는 전연 관심이 없이 오로지 칼잡이로 일생을 소일하니, 칼잡이로 소문이 나니, 쫄개들이 수하로 몰려들었으니, 개중에는 사다함이란 어린 친구도 있었다. 거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런 칼잽이 성향 무인들이 그렇듯이, 문노 역시 의협심 하나로 똘똘 뭉친 사람이라, 그에게도 오야붕이 있었으니, 세종世宗이라는 사람이 바로 그의 주군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2019. 10. 3.
결코 백제 무왕의 정비일 수 없는 신라 선화공주 익산 미륵사 서탑 해체과정에서 이 석탑 조성 내력을 기록한 백제 무왕시대 석탑 봉영사리기奉迎舍利記가 발견되기는 2009년 1월 14일이다. 그것이 발견되기 이전부터 나는 결코, 때려죽여도 선화공주는 백제 무왕의 정비가 아니라고 단언했다. 후궁이라고 주장했다.봉영사리기 출현과 더불어 내 예언은 어찌 되었는가? 내 말이 맞았다. 무왕 정비는 선화공주 아닌 걸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근거로 이리 주장했던가? 나는 아다시피 《화랑세기》를 신라인 김대문이 남긴 것으로 보는 이른바 화랑세기 진본론자다. 그 화랑세기와 세트가 되는 남당 박창화 유품으로 사진으로 제시하는 족도族圖가 있다. 겉장에는 상장돈장上章敦牂이라 쓴 글자를 표제처럼 삼는 이 족도는 화랑세기 등장 인물들간에 얼키고설킨 혈연 관계를 사진으로.. 2019.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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