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전체 글21388

漢陽陵车轮遗迹 车轮遗迹'漢陽陵南区从葬坑出Traces of wood wheelUnearthed from the south burial pit of Han Yang Ling Tomb, Xian, China 중국 섬서성 서안 한 양릉(한경제 무덤) 출토 바퀴 2018. 2. 16.
숭배 대상으로서의 우물[泉 혹은 井] 우물에는 신령이 사는 곳이라 해서 신물로 존숭받은 흔적을 동아시아 역사에서는 콕 집어 찾아 제시하기가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그 흔적 하나를 독서하다 우연히 발견해 소개한다. 조선 초기 문사文士 용재慵齋 성현成俔(1439∼1504)의 필기잡록 《용재총화慵齋叢話》 권 제3에는 그의 외할아버지 안공安公이 열두 고을 수령을 역임하면서 겪은 일화, 혹은 행한 일을 나열한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순흥 안씨 안종약安從約이라, 고려 공민왕 5년, 1355년에 출생하여 여러 지방관을 전전하다가 해주목사를 마지막으로 정계 은퇴해 은거하다가 세종 6년, 1424년에 향년 70세로 졸했다. 이에는 그가 지금의 충남 부여 일대에 설치된 임천林川군을 다스리던 때에 지방장관으로 행한 여러 행적 중 하나로 음사淫祠 철폐를 들었거니와.. 2018. 2. 16.
재모(再牟) 고구려 봉상왕 때 동촌이라는 마을 사람으로, 죽음을 피해 민간으로 숨어든 을불, 곧 훗날 미천왕과 함께 소금장사를 했다. 그가 모두루 묘지명에 등장하는 염모冉牟와 같은 동일인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 주장이 타당하다면, 再와 冉은 글자 모양이 흡사해 후대 필사과정에서 혼동이 일어난 듯하다. 삼국사기 권 제17(고구려본기 제5) 미천왕본기 즉위년 : 미천왕(美川王)은 이름이 을불(乙弗)이며 서천왕 아들인 고추가(古鄒加) 돌고(咄固)의 아들이다. 앞서 봉상왕이 아우 돌고가 배반할 마음이 있다 의심해서 그를 죽이니, 아들 을불은 살해당하지 않을까 해서 도망쳤다. 처음에는 수실촌(水室村) 사람 음모(陰牟) 집에 가서 고용살이를 했는데, 음모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고 일을 매우 고되게 시켰다. 그 집 주변.. 2018. 2. 14.
음모(陰牟) 삼국사기 권 제17(고구려본기 제5) 미천왕본기 즉위년 : 미천왕(美川王)은 이름이 을불(乙弗)이며 서천왕 아들인 고추가(古鄒加) 돌고(咄固) 아들이다. 앞서 봉상왕이 아우 돌고가 배반할 마음이 있다 의심해서 그를 죽이니, 아들 을불은 살해당할 것이 두려워 도망쳤다. 처음에는 수실촌(水室村) 사람 음모(陰牟)의 집에 가서 고용살이를 했는데, 음모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고 일을 매우 고되게 시켰다. 그 집 곁 늪에서 개구리가 울면, 을불에게 버밤에 기와조각과 돌을 던져 그 소리를 못내게 하는가 하면, 낮에는 나무를 해오라 독촉함으로써 잠시도 쉬지 못하게 했다.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일년만에 그 집을 떠나 동촌(東村) 사람 재모(再牟)와 함께 소금장사를 했다. 2018. 2. 14.
돌고(咄固) 고구려 봉상왕 동생으로, 형을 배반하려 한다 해서 죽임을 당했지만, 그의 아들 을불이 나중에 왕위를 이으니 이가 미천왕이다. 삼국사기 권 제17(고구려본기 제5) 봉상왕본기 : 2년 9월에 왕은 그 아우 돌고(咄固)가 배반할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자살케 했다. 국인들은 돌고에게 죄가 없었으므로 애통해 했다. 돌고의 아들 을불(乙弗)은 들판으로 달아났다. 삼국사기 권 제17(고구려본기 제5) 미천왕본기 즉위년 : 미천왕(美川王)은 이름이 을불(乙弗)이며 서천왕 아들인 고추가(古鄒加) 돌고(咄固) 아들이다. 앞서 봉상왕이 아우 돌고가 배반할 마음이 있다 의심해서 그를 죽이니, 아들 을불은 살해당할 것이 두려워 도망쳤다. 2018. 2. 14.
우불(憂弗) 고구려 제15대 미천왕(재위 300~331) 이름으로 을불(乙弗)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 권 제17(고구려본기 제5) 미천왕본기 즉위년 : 미천왕(美川王)은 이름이 을불(乙弗)이며 서천왕 아들인 고추가(古鄒加) 돌고(咄固) 아들이다. 앞서 봉상왕이 아우 돌고가 배반할 마음이 있다 의심해서 그를 죽이니, 아들 을불은 살해당할 것이 두려워 도망쳤다.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16대 미천왕(美川王)은 호양(好攘)이라고도 한다. 이름은 을불(乙弗)인데 우불(憂弗)이라고도 한다. 경신년에 즉위해 31년을 다스렸다. ☞미천왕(美川王) 2018. 2. 14.
을불(乙弗) 고구려 제16대 미천왕(美川王)의 이름. 우불(憂弗)이라 하기도 했다.삼국사기 권 제17(고구려본기 제5) 봉상왕본기 : 2년 9월에 왕은 그 아우 돌고(咄固)가 배반할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자살케 했다. 국인들은 돌고에게 죄가 없었으므로 애통해 했다. 돌고의 아들 을불(乙弗)은 들판으로 달아났다. …7년(298) 11월에 왕이 사람을 시켜 을불을 찾아 죽이려 하였으나 못했다. …9년(300) 봄 정월에 지진이 일어났다. 2월부터 가을 7월까지 비가 내리지 않아 흉년이 들자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었다. 8월에 왕은 나라 안의 남녀 15살 이상인 자들을 징발해 궁실을 수리하니, 백성들이 먹을 것이 떨어지고 일에 지쳐서 그 때문에 도망쳐 흩어졌다. 창조리가 간했다. “재난이 거듭 닥쳐 곡식이 자라지 않아.. 2018. 2. 14.
호양왕(好壤王) 고구려 제16대 미천왕(美川王)을 지칭하는 다른 이름.삼국사기 권 제17(고구려본기 제5) 미천왕본기 : 미천왕(美川王)은 이름이 을불(乙弗)이며 서천왕 아들인 고추가(古鄒加) 돌고(咄固) 아들이다.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16대 미천왕(美川王)은 호양(好攘)이라고도 한다. 이름은 을불(乙弗)인데 우불(憂弗)이라고도 한다. 경신년에 즉위해 31년을 다스렸다.☞미천왕(美川王) 2018. 2. 14.
미천왕(美川王) 고구려 제16대 왕으로 호양왕이라고도 한다. 이름은 을불 혹은 우불이며 서천왕 손자이고, 아버지는 고초가 돌고다. 258년 ~ 331년, 재위기간은 300년 ~ 331년이다. 삼국사기 권 제17(고구려본기 제5) 미천왕본기 : 미천왕(美川王)은 이름이 을불(乙弗)이며 서천왕 아들인 고추가(古鄒加) 돌고(咄固) 아들이다. 앞서 봉상왕이 아우 돌고가 배반할 마음이 있다 의심해서 그를 죽이니, 아들 을불은 살해당할 것이 두려워 도망쳤다. 처음에는 수실촌(水室村) 사람 음모(陰牟)의 집에 가서 고용살이를 했는데, 음모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고 일을 매우 고되게 시켰다. 그 집 곁 늪에서 개구리가 울면, 을불에게 버밤에 기와조각과 돌을 던져 그 소리를 못내게 하는가 하면, 낮에는 나무를 해오라 독촉함으로.. 2018. 2. 14.
설계두(薛罽頭) 삼국사기 권 제47(열전 제7) 설계두 열전 : 설계두(薛罽頭) 또한 신라 의관자손衣冠子孫이다. 일찍이 친구 네 사람과 함께 술을 마시며 각자 자기 뜻을 말하는데 계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라에서 사람을 등용하는 데 골품骨品을 따지므로 진실로 그 족속이 아니면, 비록 큰 재주와 뛰어난 공이 있어도 그 한계를 넘을 수가 없다. 나는 원컨대 서쪽 중화국中華國으로 가서 세상에서 보기 드문 지략을 드날려 특별한 공을 세워 내 힘으로 영광스런 관직에 올라 의관을 차려 입고 칼을 차고서 천자 측근에 출입하면 만족하겠다”. 무덕(武德) 4년 신사(진평왕 43년. 621)에 몰래 바다 배를 따라 당에 들어갔다. 마침 태종 문황제(太宗文皇帝)가 고구려를 친히 정벌하므로 스스로 천거해 좌무위(左武衛) 과의(果毅)가 .. 2018. 2. 14.
살계두(薩罽頭) 삼국사기 권 제47(열전 제7) 설계두 열전 : 설계두(薛罽頭)도 신라 의관자손이다. 2018. 2. 14.
계두(罽頭) ☞설계두(薛罽頭) ☞살계두(薩罽頭) 2018. 2. 14.
구리내(仇里迺) 삼국사기 권 제45(열전 제5) 박제상 열전 : 실성왕 원년 임인(402)에 왜국과 강화하니, 왜왕이 나물왕 아들 미사흔(未斯欣)을 볼모로 삼고 싶다고 했다. 왕은 일찌기 나물왕이 자기를 고구려에 볼모로 보냈음을 원망해 그 아들에게 앙갚음하고자 했으므로 거절하지 않고 보냈다. 또 11년 임자(412)에는 고구려가 역시 미사흔의 형 복호(卜好)를 볼모로 삼고자 하니 대왕이 또 그를 보냈다. 눌지왕이 즉위하자 말 잘하는 사람을 구해 보내 (두 아우를) 데려오고자 생각하고 있었으니, 수주촌간(水酒村干) 벌보말(伐寶靺)과 일리촌간(一利村干) 구리내(仇里迺), 이이촌간(利伊村干) 파로(波老) 세 사람이 현명하고 지혜가 있다는 말을 듣고 불러 물었다. “내 동생 두 사람이 왜와 고구려 두 나라에 볼모가 되어 여러 .. 2018. 2. 14.
벌보말(伐寶靺) 삼국사기 권 제45(열전 제5) 박제상 열전 : 실성왕 원년 임인(402)에 왜국과 강화하니, 왜왕이 나물왕 아들 미사흔(未斯欣)을 볼모로 삼고 싶다고 했다. 왕은 일찌기 나물왕이 자기를 고구려에 볼모로 보냈음을 원망해 그 아들에게 앙갚음하고자 했으므로 거절하지 않고 보냈다. 또 11년 임자(412)에는 고구려가 역시 미사흔의 형 복호(卜好)를 볼모로 삼고자 하니 대왕이 또 그를 보냈다. 눌지왕이 즉위하자 말 잘하는 사람을 구해 보내 (두 아우를) 데려오고자 생각하고 있었으니, 수주촌간(水酒村干) 벌보말(伐寶靺)과 일리촌간(一利村干) 구리내(仇里迺), 이이촌간(利伊村干) 파로(波老) 세 사람이 현명하고 지혜가 있다는 말을 듣고 불러 물었다. “내 동생 두 사람이 왜와 고구려 두 나라에 볼모가 되어 여러 .. 2018. 2. 14.
파로(波老) 삼국사기 권 제45(열전 제5) 박제상 열전 : 실성왕 원년 임인(402)에 왜국과 강화하니, 왜왕이 나물왕 아들 미사흔(未斯欣)을 볼모로 삼고 싶다고 했다. 왕은 일찌기 나물왕이 자기를 고구려에 볼모로 보냈음을 원망해 그 아들에게 앙갚음하고자 했으므로 거절하지 않고 보냈다. 또 11년 임자(412)에는 고구려가 역시 미사흔의 형 복호(卜好)를 볼모로 삼고자 하니 대왕이 또 그를 보냈다. 눌지왕이 즉위하자 말 잘하는 사람을 구해 보내 (두 아우를) 데려오고자 생각하고 있었으니, 수주촌간(水酒村干) 벌보말(伐寶靺)과 일리촌간(一利村干) 구리내(仇里迺), 이이촌간(利伊村干) 파로(波老) 세 사람이 현명하고 지혜가 있다는 말을 듣고 불러 물었다. “내 동생 두 사람이 왜와 고구려 두 나라에 볼모가 되어 여러 .. 2018. 2. 14.
박모말(朴毛末) 내물왕 때 신라 충신인 박제상의 다른 이름이다. 삼국사기 권 제45(열전 제5) 박제상 열전 : 박제상(朴堤上)은 시조 혁거세 후손이며, 파사 이사금 5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아도(阿道) 갈문왕(葛文王)이고, 아버지는 파진찬 물품(勿品)이다.☞박제상(朴堤上) 2018. 2. 14.
모말(毛末) 삼국사기 권 제45(열전 제5) 박제상 열전 : 박제상(朴堤上)은 시조 혁거세 후손이며, 파사 이사금 5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아도(阿道) 갈문왕(葛文王)이고, 아버지는 파진찬 물품(勿品)이다.☞박모말(朴毛末) ☞박제상(朴堤上) 2018. 2. 14.
물품(勿品) 박제상 아버지이자 갈문왕인 아도 아들로 정확한 활동연대는 알 수 없지만, 내물왕 혹은 그 이전이다. 최고 관위는 파진찬이다. 삼국사기 권 제45(열전 제5) 박제상 열전 : 박제상(朴堤上)은 시조 혁거세 후손이며, 파사 이사금 5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아도(阿道) 갈문왕(葛文王)이고, 아버지는 파진찬 물품(勿品)이다. 2018. 2. 14.
홍유후(弘儒侯) 유학의 큰 선비로 후작에 봉해진 인물이란 뜻인데, 고려시대에 최치원을 높여 추증한 이름이다. 삼국사기 권 제46(열전 제6) 설총 열전 : 우리 현종 재위 13년 천희(天禧) 5년 신유(1021)에 이르러 (설총은) 홍유후(弘儒侯)로 추증되었다. 어느 사람은 말하기를 설총이 일찍이 당나라에 가서 공부를 하였다고 하나 그런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설총(薛聰) 2018. 2. 14.
설총(薛聰) 삼국사기 권 제46(열전 제6) 설총 열전 : 설총(薛聰)은 자가 총지(聰智)이고 할아버지는 나마 담날(談捺)이며 아버지는 원효(元曉)인데, 처음에 승려가 되어 불경을 두루 통달하고 얼마 후에 환속하여 스스로 소성거사(小性居士)라 하였다. 총은 성품이 총명하고 예민하여 배우지 않고도 도술(道術)을 알았고, 방언(方言)으로서 구경(九經)을 읽어 후생을 가르쳤으므로 지금[고려]까지 학자들이 그를 높이 받든다. 또 능히 글을 잘 지었으나 세상에 전해오는 것은 없다. 단지 지금[고려] 남쪽 지방에 더러 설총이 지은 비명(碑銘)이 있으나 글자가 마멸되고 떨어져나가 읽을 수 없으므로 끝내 그의 글이 어떠하였는지를 알 수 없다.신문대왕(神文大王)이 한 여름[5월]에 높고 밝은 방에 거처하면서 설총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2018. 2. 14.
가실(嘉實) 삼국사기 권 제48(열전 제8) 설씨녀 열전 : 설씨녀(薛氏女)는 [경주] 율리(栗里)의 평민 집의 여자였다. 비록 빈한하고 외로운 집안이었으나 용모가 단정하고 뜻과 행실이 잘 닦아졌다. 보는 사람들이 그 고움을 흠모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나 감히 가까이 하지 못하였다. 진평왕 때 그 아버지는 나이가 많았으나 정곡(正谷)으로 국방을 지키는 수자리 당번을 가야 하였는데 그 딸은 아버지가 병으로 쇠약하여졌으므로 차마 멀리 보낼 수 없었고 또 자신은 여자의 몸이라서 아버지 대신 갈 수도 없었으므로 한갓 근심과 고민을 하고 있었다. 사량부 소년 가실(嘉實)은 비록 집이 대단히 가난하였으나 뜻을 키움이 곧은 남자였다. 일찍이 설씨를 좋아하였으나 감히 말을 하지 못하다가 아버지가 늙은 나이에 군대에 나가야 함을 설씨.. 2018. 2. 14.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