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19907 룩소르의 추억 – 카르낙 신전 by 유성환 이집트에 체류하는 동안 한국전통문화대학 복원팀과 저는 모두 4개 신전을 방문했습니다. 이들 신전은 모두 지금의 룩소르 시, 고대의 테베(Thebes)에 있습니다. 테베 중심을 흐르는 나일 강을 기준으로 태양이 떠오르는 산 자의 땅인 동안에는 순수하게 신만을 모시는 의례전(儀禮殿: cult temple)이, 태양이 지는 망자의 땅인 서안에는 주신과 사망한 왕을 함께 모시는 장제전(葬祭殿: mortuary temple)이 각각 건립되었습니다. 이번 방문에서 가장 중요한 방문지는 – 당연한 말씀입니다만 – 복원 대상인 신왕국시대 제19왕조 람세스2세(Ramesses II: 기원전 1279-1213년) 장제전인 라메세움(Ramesseum)이었습니다. 라메세움은 당연히 서안에 있습니다. 이어 동안에 위치한 의례전.. 2023. 5. 22. 용산, 한양으로 가는 길목 Yongsan, the gateway to Hanyang 한양의 길목 용산 Yongsan, the gateway to Hanyang 조선시대 용산은 도성 서쪽의 무악산, 오늘날의 안산에서 남쪽으로 뻗어나간 산줄기와 한강으로 둘러싸인 지역을 아울렀다. 그 구불구불한 능선이 한강에 이르러 봉우리를 형성하는데 전체적인 형세가 용을 연상시킨다 하여 용산이라 이름 불었다. 건국 초기 용산은 명확히 한양 땅은 아니었다. 당시 한양의 경계는 도성이었다. 다만 수도 한양을 관할한 관청 한성부는 도성과 함께 도성으로부터 10리(약 4km)에 이르는 성저십리城底十里까지 관할했다. 용산은 이 성저십리에 해당했다. 도성 밖 한적한 강변 마을이었던 용산에 물길 따라 포구가 발달하면서 삼남三南을 오가는 대로가 용산에서 갈라졌고, 각 지역의 세곡이 용산에서 집결되어 도성 안으로 운반됐다.. 2023. 5. 22. 한 번의 실험으로 끝난 국립박물관 국빈 만찬장 활용 과거의 오늘을 살피다 보니, 1년 전 어제(2022. 5. 20)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환영 만찬이 열린 모양이라, 이 일이 청와대 시대 청산과 더불어 그 만찬장을 어찌할 것인지 하는 논란을 불러일으켰거니와, 그 논란 복판에 휘말린 데가 바로 국립중앙박물관이라는 점에서 이 사건은 반추가 필요하다고 본다. 어느 무렵인가부터 청와대가 제왕적 대통령제를 상징처럼 통용하는 바람에 대통령 집무실이 그곳을 떠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는 아니해서, 문재인 시대에도 그것을 추진하다가 대안 부재론에 휘말려 가오 상하게도 그런 방침을 스스로 접어야 한 일이 있거니와, 그런 비슷한 공약을 내세우고 당선한 윤석열이 그 전철을 밟을 수는 없다 생각했음인지, 용산으로 짐을 싸 갔다. 하지만 그에 따른 문.. 2023. 5. 22. 철도병원을 탈바꿈한 용산역사박물관을 찾다 20년 넘는 용산구민이라는 내력도 있을 테고 그것 아니라 해도 이런저런 일로 자주 지나치는 까닭에 저 용산역사박물관이라는 데는 생소함보다는 익숙함이 나한테는 크다. 물론 나한테는 중앙대병원이 익숙하지만 내가 문화재 담당 기자 생활하던 때 마침 그 건물 전체가 근대문화재로 등록된 까닭에 유심히였다고는 할 순 없지만 눈여겨 보는 정도이기는 했다. 다만 그 자세한 내력은 듣기는 했지만 흘려버리고 말았으니 그러다가 지난해인가 용산 구립 용산역사박물관으로 개관했다 해서 한번은 꼭 들려보리라 하던 차였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지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주말 이틀을 내내 방구석에 틀어박혀 빈둥거리다간 이래서는 아니되겠다 싶어 마침 저곳이 떠올라 조금전 다녀왔다. 내 기억에 이곳은 최초의 용산구립 박물관 아닌가 하거니와.. 2023. 5. 21. 라말여초의 "호족"과 일본사의 "무사단" 우리나라 라말여초에는 "호족"이란 세력이 있어 신라의 지배가 끝나자 한반도 전역에 호족의 세상이 펼쳐졌다. 한국사 라말여초의 "호족"에 상응하는 일본사의 세력은 누구일까? 바로 일본사에서 무가로 발전하게 되는 "무사단"이다. 무사단은 헤이안 시대 말기에 발생하는데 당초에는 귀족들의 보디가드로 출발했지만, 이내 귀족들을 무력으로 압도하고 무가정권을 수립한다. 가마쿠라, 무로마치, 에도 막부로 이어지는 사무라이 정권의 기원이 바로 이 무사단에 있다. 이 무사단은 그냥 몰려다니는 군사조직이 아니다. 무사단 자체가 땅을 차지한 봉건영주가 된다. 헤이안시대 말기에는 지방 영지를 점유하고 중앙의 통제(소위 율령체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무사단이 출현하기 시작하였다. 각지에 성립한 무사단이 서로 이합집산하며 싸우기 .. 2023. 5. 21. 곽거병霍去病과 기련천산祁連天山, 그리고 그의 무덤 망가진 몸을 이끌고 《사기史記》 이광李廣·위청衛靑 그리고 곽거병霍去病 열전을 막 통독했다. 그들이 묻힌 곳을 막 다녀와서인가? 이전에 읽을 때보단 조금은 새롭게 다가온다. 곽거병 죽음과 그에 따른 장송葬送 의례가 이 열전엔 잠깐 보이거니와, 그의 무덤을 기련산祁連山을 본떠 만들었다는 구절이 눈에 띈다. 기련산祁連山..기련은 흉노어로 '하늘'이란 뜻이거니와 그런 까닭에 이광 열전엔 이를 '기련천산祁連天山'이라 표기하기도 했으니 '역전앞'과 같은 표현 발상이다. 앞선 포스팅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한 무제漢武帝가 묻힌 무덤인 무릉茂陵을 위성처럼 감싼 소위 배장묘陪葬墓 중에서도 그 동쪽 위청과 김일제 묘 사이에 위치한 곽거병 묘만큼은 동아시아 묘제 역사에서는 돌발 중의 돌발이다. 쐐기형 방형 봉분인 그의 무덤에는.. 2023. 5. 21. 반란은 마흔 전에, 쫓겨나도 신하들한테 이성계랑 비슷하게 아들한테 쫓겨난 중국 황제로 당 고조 이연李淵이 있다. 566년생인 그는 53세에 唐을 개국했다. 너무 늙어서 권좌에 올랐다. 이성계의 최대 약점 역시 너무 늙어 권좌를 탈취했다는 것이다. 1335년생인 이성계가 역성혁명으로 조선을 개국하기는 58세였다. 내일 어찌 될 줄 모르는 할배였다. 오늘의 결론. 거사를 하려거든 적어도 40대 혹은 그 이전에 반란하라. 내 보기에 조선왕조 27왕 중에서 가장 멍청한 임금이 태조 이성계다. 얼마나 못났으면 아들한테 쫓겨나니? 딴 사람들은 신하들한테 쫓겨났지 아들한테 쫓겨나진 않았다. 아들한테 쫓겨나면 가오가 상하자나. 가오가? (2014. 5. 19) *** 조선사에서 이성계는 아들한테 쫓겨난 전무후무한 왕이다. the one and only다. 2023. 5. 21. 세이와 겐지 [清和源氏, 청화원씨] 일본사에서 소위 무사 시대를 여는 무사단 종족으로 유명한 것이 세이와 덴노清和天皇의 후예라는 세이와 겐지[清和源氏]와 간무 덴노[桓武天皇]의 후예라는 간무헤이시[桓武平氏]다. 이 중 가마쿠라 막부를 연 미나모토 요리토모[源賴朝, 원뢰조] 집안인 세이와 겐지-가와치 겐지[河内源氏, 하내원씨] 일족 계보를 보면: 세이와 덴노 5세손이 미나모토노 요리노부[源頼信, 원뢰신]가 되며, 그 미나모토노 요리노부 7세손이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信]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가마쿠라 막부 개조인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세이와 덴노의 대략 11세손에 해당한다. 그런데-. 세이와덴노 5세손인 源頼信 시대가 되면 (10-11세기) 이들은 이미 무사단의 수장 위치를 굳히고 있었다. 공가公家에서 무가武家로 이미 완전히 탈바꿈하고 .. 2023. 5. 21. 문화재활용? 뭘 고민해? 닥치고 꽃 심어! 재론 삼론 사론 무한반복재생한다. 문화재활용? 뭘 고민해? 닥치고 꽃 심어라. 기왕이면 외래종, 것도 환경유해라고 평가된 것들 심카라!! 그런 꽃일수록 환상 제국이다. 핑크뮬리 댑싸리 갖다 뿌려라. (2022. 5. 21) 2023. 5. 21. 이집트어 갈래를 재음미하는 신간 by 유성환 제가 이집트에 머물고 있는 동안 아마존에서 책이 도착했습니다. 책 제목은 『고대 이집트어와 아프리카-아시아 어족: 그 기원을 다시 생각한다』(Ancient Egyptian and Afroasiatic: Rethinking the Origin). 관련 링크: https://www.amazon.com/Ancient-Egyptian-Afroasiatic-Rethinking-Languages/dp/1646022122/ref=sr_1_1?crid=33HSGBEL7TNN0&keywords=Ancient+Egyptian+and+Afroasiatic%3A+Rethinking+the+Origin&qid=1684589473&sprefix=ancient+egyptian+and+afroasiatic+rethinking+the.. 2023. 5. 21. 월성 인골 발굴현장 탐방 (2017) 월성 성벽 인골 발굴 현장을 찾은 까닭은 이것이 과연 성벽 축조와 관련한 인신공희人身供犧인가를 내 눈으로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 발굴 양상이 혹여 무덤일 가능성이 없지는 않으므로 보통 무덤에서 보이는 묘광墓壙의 흔적이 있다면 무덤 위에다가 성벽을 축조한 셈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인신공희 설은 물건너가고 만다. 이 점을 경주문화재연구소 조사원들도 매우 주의깊게 살폈다 하며 실제 내가 현장에서 관찰한 바로도 성벽 축조 일환으로 인신을 공희한 것은 분명하다. 이 시신 두 구는 성벽 아랫단 소위 부엽층敷葉層에서 발견됐다. 하지만 이것도 일종의 매장행위임에 분명한 이상 동시대 무덤 매장 방식과 궤를 형성한다. 첫째 머리 방향이 북동쪽이란 점이다. 둘째 묘광 같은 굴광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매장패턴을 따라 시신 .. 2023. 5. 20. 북한이 우리일까? 아니 우리였을까? 진보 성향을 표방하는 이들에게 아킬레스건은 내 보기엔 북한이다. 특히 북한 인권 문제는 늘 아킬레스건이다. 그들은 속내는 어떤지 모르지만 늘 우리 민족을 주장했다. 그런 그들이 봉착한 모순이 남한의 인권에는 이를 악물면서도 북한의 그것에는 늘 입을 다문다는 점이었다. 실제 내 보기에는 입을 다물었다. 아니 부러 외면했다. 북한을 둘러싼 이런 사정은 요즘도 크게 변한 듯하지는 않다. 이에서 이른바 종북이라는 이상한 색깔논쟁이 발발한다. 이것이 내 보기엔 왜 아킬레스건인가? 그 반대편이라는 이른바 조중동에서는 이를 호되게 비판하기 때문이다. 나는 늘 이런 얘기를 했다.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제 목소리를 내는 쪽은 조중동이며, 이것이 역설이라고. 한데 이른바 진보성향에서는 나의 이런 지적에 늘 사시나무 떨 듯.. 2023. 5. 20. 좌절한 신라왕경 복원계획 경주시가 추진한 신라왕경 복원계획은 좌절되었다. 며칠간이나 그제나 저제나 언론보도가 날 것 같아 기다리다가 아무데도 언론 보도가 없어 내가 대신 한다. 문화재위원회는 요저납시 세계유산 사적 건축의 3개 분과 합동회의를 갖고 경주시가 확정한 신라왕경 복원 계획을 보고받았지만 문서는 반려했다. 이날 문화재위는 경주시가 신청한 이 계획을 "검토할 가치조차 없다" 해서 경주시의 문서 접수 자체를 거부했다. 문화재위 50여년 역사에서 문서 접수 거부는 이번이 처음이다. 문화재위가 이리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경주시의 왕경 복원 계획이 경주 시내 중심지역의 사업 대상지들인 월성과 황룡사지 등등이 '복원' 중심이었던 까닭으로 알려졌다. 황룡사지에다가 9층 목탑과 강당을 세우겠다고 했는가 하면, 월성에는 신라.. 2023. 5. 20. 같은 50주년이라는데, 갑갑하기 짝이 없는 점말동굴 조태섭 옹이 근자 거의 은거 칩거 상태라, 그 칩거한 데가 동굴인 모양이라, 마침 올해가 한국 동굴유적 중요성을 알린 제천 점말동굴 발굴 5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라 이 사건은 한국고고학에서 대서특필해야 한다. 작금 국가 주도로 올해가 천마총 발굴 50주년이라 해서 적지 않은 돈을 쏟아부어 각종 홍보에 열을 올리거니와, 실상 그 홍보라는 내용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어 전연 새로울 것 없는 생존 조사원들 불러다 밥상 차리는가 싶더니 급기야 황남대총에 누가 묻혔느냐 하는 철 지난 불장난까지 치는 장면을 목도하고는 돌부처도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같은 해에 발굴된 이 점말동굴은 단순한 하나의 동굴유적에 그치지 아니한다. 조태섭 명의로 된 저 안내문이 왜 점말인가 왜 동굴유적인가를 웅변하거니와 그럼에도 저를.. 2023. 5. 20. 도전과 응전으로만 점철한 한국사 토인비는 인간의 역사를 도전과 응전 (challenge and response) 의 이야기라고 했다던가. 도전과 응전의 결과가 결국 그 문명의 생존이라고 본다면 한국의 역사는 어쨌건 성공적이다. 청동기시대 이래 수천년의 문명사 동안 짧은 이민족 통치기를 제외하면 거의 본토인의 역사가 이어졌고 21세기 들어서도 성공적으로 역사의 흐름에 적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사가 도전과 응전의 기술이 지나치다는 점에 있다. 한국사를 보면 주변 역사와 두드러진 차이는 역사기술의 뼈대가 이민족의 침략--격퇴--침략--격퇴의 끝없는 반복으로 점철된 듯 보인다. 아마 비슷한 역사라면 베트남사 정도가 될 텐데 이 두 나라 역사는 외세침략과 격퇴를 빼고 나면 사실상 역사서를 탈탈 털어보면 그 외의 부문의 기술은 매우 부.. 2023. 5. 20. 아랍세계 최대 도시, 카이로는 이렇게 탄생했다 by 유성환 [여기는 카이로였습니다] 이제 카이로를 떠나 한국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오늘날의 카이로는 아프리카와 중동의 아랍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입니다만 멤피스(Memphis) • 테베(Thebes) • 룩소르(Luxor) 등 고대 서아시아 세계를 호령하던 유서 깊은 도시들과 비교하면 그 역사가 겨우(!) 1,300년 남짓인 신도시입니다. 그리스 지배기(기원전 332-30년)부터 멤피스는 쇠퇴하기 시작했고 로마 지배기(기원전 30년-기원후 395년)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로마 제국은 멤피스 북쪽에 "이집트의 바빌론"(Babylon-in-Egypt)이라는 대규모 요새를 건설하여 멤피스를 대체하려 했습니다. 기원후 451년 칼케돈 공의회(Council of Chalcedon)를 계기로 동방정교회(Eas.. 2023. 5. 20. 접붙이는 위치가 다른 한국과 중국의 감나무 감나무는 고염나무에다가 접을 붙인다. 그래야 우리가 생각하는 감이 달린다. 모르겠다 요새는 혹 개량종이 나와서 그대로 씨를 심어 감나무가 자라는지는. 이 접붙이기 방법이 인류문화사에서는 혁명 중 하나로 특기할 만한데, 결국 혼성이 더 낳은 후손을 낳는다는 보기가 아니겠는가? 물론 그렇다 해서 모든 혼성이 좋은가는 판단을 유보한다. 접붙였다가 망한 케이스가 한둘인가? 인간만사만 봐도 접붙었다가 웬수되어 서로 칼부림하는 꼴 한두 번 보는가? 고염에다가 감나무 접을 붙이는 방식이 한반도에서는 언제쯤 발명되었는지 혹은 외부에서 도입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에 대한 흔적이 혹 있는데 내가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 접을 붙이는 방식을 그 접붙이는 단면을 기준으로 보면 한국에서는 뿌리에서 상당히 가까운 곳.. 2023. 5. 19. 시종 유쾌했던 신형식 선생 19일 타계 소식을 전한 신형식申瀅植 선생은 내가 만난 이래 30년 정도를 간헐적으로 지켜봤지만, 시종 유쾌한 사람이었다. 물론 그렇다 해서 그의 삶이 유쾌하기만 했겠는가? 하지만 언제나 그는 웃는 표정을 잃지 아니했고, 언제나 웃는 얼굴로 이야기했다. 선생을 모시고 한 때 노래방도 자주 갔고, 중국 여행을 동행하기도 했다. 1957년 충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61년 서울대 사범대학를 마친 그는 결코 요란스럽다 할 수는 없겠지만, 제도권 역사학이 보장한 꽃길만 걸은 사람이다. 무엇보다 성격이 모나지 아니해서 누구랑도 잘 어울렸으며 그런 까닭에 이렇다 할 적이 없었다고 기억한다. 그렇다고 야물딱지게 자기 이익만을 챙기는 그런 모습을 보여준 사람으로는 나는 기억하지 않는다. 언뜻 허허실실한 삶을 산 듯이 .. 2023. 5. 19. Archives of April 19 Revolution and Donghak Peasant Revolution Newly Inscribed on Memory of World The 216th session of the Executive Board of UNESCO, meeting in Paris from May 10 to 24, made the final decision on May 18 to inscribe the “Archives of the April 19 Revolution” and the “Archives of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on the UNESCO Memory of the World Register. The Archives of the April 19 Revolution and the Archives of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are considered the documentary her.. 2023. 5. 19. <문화트렌드> 바뀌는 기념논총 / 회갑논총 소멸, 퇴임논총으로 / 세 과시용에서 주제 중심으로 지금은 당연하나 20년 전만 해도 새로운 흐름이었다. 2006.02.27 06:24:00 바뀌는 기념논총 회갑논총 소멸, 퇴임논총으로 세 과시용에서 주제 중심으로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최근 타계한 역사학자 이기백(李基白.1924-2004) 씨는 정년을 5년 앞둔 60세에 서강대를 퇴직하고는 한림대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에서 10년을 더 채운 94년, 그의 은퇴와 고희(古希)를 기념한 논총집인 '이기백 선생 고희 기념 한국사학 논총'(일조각)이 나왔다. 이는 상·중·하의 총 3권으로 구성됐으며 분량이 2천809쪽에 이른다. 수록 논문은 공교롭게도 70편. 마치 70세 생일에 맞추어 70편을 채운 듯한 느낌이 들고, 나아가 공자가 거느린 제자의 숫자와 겹친다는 인상도 주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2023. 5. 19.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란? 아래는 「4.19혁명기록물」과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면서 문화재청이 참고자료로 배포한 개념 설명이라, 나름 이해하는데 요긴해서 전재한다. 이 기록유산에 대한 가장 중대한 설명이 누락됐는데, 기록유산제도는 국제법인 협약에 기반하는 세계유산이나 인류무형유산과는 달리, 유네스코 자체가 벌이는 사업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흔히 세계유산이라 통칭해서 이해하는 다른 제도들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간단히 말해 세계유산과 인류무형유산이 거창한 이념과 제도 법적 구속력 아래 유네스코라는 외피를 빌려 벌이는 국제무대인 데 견주어 세계기록유산은 유네스코가 쏙딱하게 커피 시켜 놓고 하는 집안 잔치다. 등재기준으로 가장 중요한 개념이 세계적 중요성(world significance)이라, 이 점이 추상으로.. 2023. 5. 19. 이전 1 ··· 414 415 416 417 418 419 420 ··· 94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