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20982 지자체 학예연구사가 있어야 하는 이유 [2018.11.15. 페이스북] 등산로에 노출되어 있던 상태에서 무덤임을 직감하고, 긴급발굴조사 신청했다. 기존에 한 번도 보고된 적 없었던 유적이다. 내 예상대로 석곽묘가 맞았다. 기분 좋다. 석성산에 도기가마, 봉수, 산성 거기에 석곽묘까지 더 찾았으니, 용인의 진정한 문화유산 寶庫가 아닌가 싶다. 석성산이 명산인 이유다. 덧붙여서, 지자체 학예연구사가 왜 있어야 하는지, 바로 이런 거다. 지자체 학예연구사가 있어야 하는 이유 - 학예연구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해야만 하는 일, 그리고 이런 일을 해냈을 때 가장 성취감이 크다. 2022. 11. 15. 돌무지무덤이 짓누른 석촌동의 주둥이 깨진 닭대가리 한성백제박물관, 석촌동 고분군 널무덤 발굴현장 설명회 김준태 / 2022-11-15 06:00:05 한성백제박물관, 석촌동 고분군 널무덤 발굴현장 설명회 (서울=연합뉴스) 김준태 기자 = 서울시 한성백제박물관은 15일 서울 송파구 석촌동 고분군 발굴조사 현장에서 공개 설명회를 연다고 밝혔다.8호 적석묘(돌무지무덤) 아래에서 올해 발견된 8기의 k-odyssey.com 아래 한성백제박물관 보도자료를 첨주하게 되겠지만, 이번 성과를 간략히 정리하면 석촌동고분군이라고 할 때 우리가 떠올리는 대형 돌무지무덤, 고고학계에서 흔히 적석총積石塚이라 부르는 그 네 모난 모양 무덤 아래에서 당연히 그 이전 시대에 만든 새로운 양식의 무덤인 나무널무덤, 곧 목관묘木棺墓가 드러나고, 그걸 팠더니만 동시대 중국에서 수입했음이.. 2022. 11. 15. 통일벼는 왜 냉해를 자주 입었는가 앞서 필자는 한국은 벼농사에 적합하지 않은 땅으로 이렇게 높은 위도까지 벼농사가 끌어올려지면서 촘촘한 시간표에 따라 부지런히 농사 짓고 하늘의 비를 애타게 기다려야 하는 초조한 농법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각설하고-. 우리 어렸을 때만 해도 혼분식장려에 도시락에는 반드시 잡곡을 30프로 이상 섞어야 했다. 학교에서 도시락 뚜겅을 열어 잡곡 퍼센트를 선생님들께서 체크했다. 필자가 다니던 학교는 왜인지 콩은 잡곡으로치지 않았다. 아마도 보리를 넣으라는 것 같은데, 콩이나 보리나 어차피 잡곡인데 야단을 맞고 억울했던 기억이 있다. 이 당시 통일벼라는 것이 있었다. 내 나이 또래는 다 알 것이다. 이 통일벼는 못먹고 산 당시에 배 부르게 한 번 먹어보자는 시대정신이 낳은 산물이라고 할수 있는데, 밥맛이 .. 2022. 11. 14. 농민이 언제 시를 쓰고 군인이 언제 시를 읊는단 말인가 앞서 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농민시인은 없다. 농민이 언제 시를 쓴단 말인가? 우리가 아는 농민시인은 그런 농민들을 원두막에서 수박 까놓고 우거적우거적 쳐먹으며 완상하는 놈들이다. 잠삼岑參(715∼770)이라는 중국 당대 문단을 대표하는 시인이 있다. 이 친구 주특기는 전쟁 변방 황량한 전쟁터를 묘사한 시로 당대를 호령했는데 이 친구 직업은 군대 문관....서류 작성담당 행정관이었다. 지 손으로는 칼 한 번 잡아본 적 없고 전쟁 한 번 해 본 적 없다. 원두막에서 수박 까먹는 그 심정으로 군 막사에서 난로 피워 놓고 군고구마 까먹으며 동치미 국물 먹어가며 북풍한설 몰아치는 바깥으로 대가리만 내놓은 채 잠깐잠깐 구경하며 뇌까린 것이 이른바 변새시邊塞詩다. 칼 잡고 말 몰아 돌진하는 군인이 언제 시를 쓴.. 2022. 11. 14. 유건儒巾과 정자관程子冠 제향할 때 쓰는 유건儒巾을 앞뒤를 잘 몰라 거꾸로 쓰는 이가 적지 않다. 심지어 한학자인척 폼잡느라 한복 입고 다니는 이 가운데 거꾸로 쓴 경우도 많다. 유건은 민자건民字巾이라고 하는데 유생이 평소 쓰는 모자로 서원, 사당의 제향에서는 이를 쓴다. 그리고 양반이나 서당 훈장 등이 쓰는 정자관程子冠이라는 것이 있다. 사극에 자주 등장하므로 전에 내가 썼을 때 조카가 대감모자라고 했다. 선조모께서 장만해 준 게 어딘가 들어 있을 텐데 찾지 못하고 있다. 이는 집밖에서는 쓰지 않고 제향에도 써서는 안된다. 2022. 11. 13. "한국에서의 도작"은 고도의 기술이었다 앞서 도작농경이 가능한 정도의 기술 수준이라면 양잠도 당연히 가능했을 것이라고 썼었다. 도작농경 자체도 물론 대단한 수준의 농업 기술이지만, 특히 "한국에서의 도작"이야 말로 매우 복잡해 질 수 밖에 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한국은 도작이 제대로 수행되기에는 위도가 너무 높다. 원래 쌀은 이렇게 높은 위도에서 재배되는 것이 아니었다. 열대-아열대에서 자라던 녀석을 북쪽으로 끌어올리다 보니 필요한 일조량을 아슬아슬하게 채우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때문에 한국의 벼농사는 조금만 시작이 늦거나 종료가 조금만 지체되어도 한해 농사를 망치는 극한의 타임테이블에 따라 움직이는 빡빡한 농사가 되어버린것이다 (원래 쌀농사라는 것이 이렇게 빡빡한것이 아니라는 것은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보면 알수 있.. 2022. 11. 13. 아베크 족들에 고한다, 엄폐 은폐는 이 정도가 되어야 물론 가을이 주는 덤이라 하겠으니 저 정도면 짙은 숨소리에 기인하는 성애가 낀다 한들 무에 대수겠으며 발버둥에 앞창으로 발바닥을 찍어누른들 표가 나겠는가? 다만 그래도 요동치다 비자발적 무심결 요동에 발바닥으로 크략션 눌러 야밤 산책하는 불특정다수 주민을 놀라게 하는 일이 있어선 곤란하다 하겠다. 2022. 11. 13. [지자체 학예연구직 학술토론회에 대한 개인적인 후기] 준비를 많이 했지만, 막상 지나고 나니,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일하면서 눈치 안보고 준비하는게 정말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고생많았다고 많은 분이 말씀 해주셨지만, 토론회 과정에서 무엇이 아쉽고 부족한지는 스스로가 너무 잘 안다. 그리고 그럴 수 밖에 없던 내부 상황을 하나하나 설명하기도 어려웠다. 날짜를 잡아 놓고 처음 얘기한 발표자가 계속 발표를 고사하는 바람에 2주 전에야 가까스로 발표자와 토론자가 확정되었다. 게다가 당일 현장에 오신 분들은 알겠지만 문체부와 문화재청의 온도차가, 실무 협의 하는 과정에서도 너무나 컸다. 이 과정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나중에 밝힐 날이 있을 거다. 무엇보다 여러 가지 아쉬움이 남는 이유는, 처음 만든 자리인 만큼 더 잘 만들어내고 싶은 마음이 누구보다 가장 컸기 때문.. 2022. 11. 13. 가축 사육은 생각해야 할 것이 많다 최근에도 소파동 돼지파동 등이 있어 가축 값이 폭락하는 경우가 있지만, 청동기시대 원삼국시대 우리 조상이라 해서 가축은 닥치고 사육하면 될 만큼 간단한 일은 아니었던것 같다. 쌀농사가 한반도로 도입된 후에도 상당기간 가축사육이 이 땅에서 시작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생각해야 할 부분이 많다. 우리에게 쌀농사를 전해준 중국 화북지역은 이미 신석기시대에 가축사육이 정착한 모습을 보여 그 기술적 전통이 만만치 않은 상태였다. 왜 농경+가축사육의 복합체에서 하필이면 벼농사만 홀랑 뽑아 들어왔을까? 그리고 왜 그 긴 기간 가축은 제대로 도입되지 못했을까? 몇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첫째. 굳이 단백질원 공급을 위해서라면 야생동물 사냥감이 지천에 널려있었다는 점. 닭대신 꿩(꿩 대신 닭인가?) 이라.. 2022. 11. 13. 남면南面과 조알朝謁, 동아시아 건축을 관통하는 그랜드디자인 Grand Design 동아시아, 개중에도 한국건축에는 그랜드 디자인이 있다. 이곳은 전남 장성군 필암서원, 하서 김인후를 배향한 곳이다. 이 서원 건축이란 것도 동시대 궁궐 사찰 건축과 근간이 똑같아 금천禁川이라 해서 서원으로 들어가는 경계가 남쪽에 포진하고 금천교禁川橋라는 다리를 지나면 중문中門이 나타나고, 중문을 뒤로 해서 안양루 정도에 해당하는 건축물이 버티고 그 뒤로 주축이라 할 만한 뼈대가 등장하니 대웅전에 해당하는 사당이 북쪽 중앙을 차지하고, 그 전면에 동서 회랑에 해당하는 동재東齋 서재西齋라는 부속건물이 위치한다. 나는 동아시아 건축사는 이런 그랜드 디자인에 기반해 그것을 해체하는 방식으로 기술해야 한다고 본다. 이 그랜드 디자인을 뒷받침하는 양대 축은 내가 계속 지적하듯이 남면南面 조알朝謁 이 두 가지가 핵심.. 2022. 11. 13. 농촌의 정경, 청동기시대에 비단옷을 걸쳤다 우리가 연상하는 시골 풍경은 기껏해야 우리 기억에 남아 있는 1970년대 농촌의 기억이다. 하지만 그 당시 농촌이란 이미 수천 년에 걸친 변화가 축적된 최종 결과물이었으므로 이 시대의 정경을 가지고 수천년 전의 마을 풍경을 연상하는 것은 무리라 하겠다. 우리나라 마을 풍경은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였을 것이라 본다. 시대 추이에 따라 마을이 변화해 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기 바란다. 1. 신석기시대: 밭 + 개 사육 (기본적으로 수렵채집) 2. 청동기시대: 논농사 + 누에치기 + 개 사육 + 돼지는 청동기시대 말기 쯤 시작되었을 가능성 있음 (확신 못함). 3. 초기철기시대: 논농사+ 누에치기+개+돼지+말+소+닭 사육. 말, 소, 닭 등 상당수의 가축이 이 시기에 사육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2022. 11. 12. [홍보영상] 엠빅뉴스 '흙 속에 묻힌 과거를 꺼내 생명을 불어넣다' 영상 업로드 알림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은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에게 보여질까요?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매장문화재조사기관 연구원, 학술 연구자료를 전시로 보여주는 박물관 학예사 이야기 까지! 엠빅뉴스(전체공개)에서 문화유산 발굴조사 과정을 쉽게 풀어 영상으로 제작하였습니다. 그럼 즐겁게 시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 영상제작 : 엠빅뉴스(MBC뉴스 유튜브 채널) ● 영 상 명 : 흙 속에 묻힌 과거를 꺼내 생명을 불어 넣다 ● 촬영협조 : 영남문화재연구원, 경기도박물관, 한국문화유산협회 급하게 연락드렸음에도 흔쾌히 영상 촬영을 허락해 주시고, 적극적으로 협조해주신 영남문화재연구원 선생님들, 경기도박물관 선생님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씀드립니다. 그럼 우리 같이 즐겁게 영상 보실까요? 2022. 11. 12. [2022 베를린 풍경(17) 함부르크(Hamburg)行①] 몽블랑 하우스 by 장남원 함부르크는 베를린에서 2시간 남짓 거리다. 만나야 할 사람, 봐야 할 것이 많은 곳이지만 나같은 만년필 동호인들에게 몽블랑 Montblanc의 고향 함부르크는 일종의 성지다. 그리고 독일인들에게는 국민브랜드다. 도심에서 20분 정도 외곽의 슈텔링엔 인근 몽블랑 공장과 서비스센터가 있는 지역에는 2022년 5월 몽블랑하우스 Montblanc Haus 라는 뮤지엄이 개관했다. 그러고 보니 어쩌면…..나는 첫 한국인 관람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https://www.montblanc.com/en-us/discover/montblanc-haus/the-story?fbclid=IwAR2ErN-4ivaj2NUbChzmXxnul2DyzVsi-BDOCWP0ga9-p90xECbtSrEOZcw The Story Behind.. 2022. 11. 12. 알프스 아이스맨 외치, 30년이 흐른 지금은? 5300년 전에 죽은 석기인간 '외치'가 고고학에 파란을 일으킨 지 어언 30년. 그 간 진행된 연구로 새로 알게된 사실이 없을 리 없고, 또 이를 정리하여 발표하라는 재단의 압력이 없을 수 없기 때문인지 한 리뷰 논문이 11월 7일자로 세이지 출판사(Sage Publication)를 통해 발표되었다. 제목은 Ötzi, 30 years on: A reappraisal of the depositional and post-depositional history of the find. 오픈액세스 논문이라 사진 무료이나 국내에 기사화되지 않았거나 주목받지 못한 것 같다. 신나는 결과보다는 흥분을 가라 앉히는 결론이라 그런 듯. 그 논문의 결과만 줄여 소개한다.원래 주장은 외치가 격렬한 싸움 끝에 부서진 장비를 들.. 2022. 11. 12. 우리는 고유업무를 하고 싶다, 어느 지자체 학예사의 절규 드디어 논의가 시작된 중요한 계기다. 아쉬운 건 전문성의 부분이다 학예직들이 성을 쌓고 구분짓기를 하는게 아니라 원래 학예직들이 해야 할 일을 하게 해 달라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고유업무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 지방학예직들이 얼마나 잡스럽고 황당한 일을 하는지. 아실까 모르겠다. 그리고 이제는 학예행정 이란 말은 하지말자. 13년전 내가 처음 시작했을 때 조직에서 학예직이 인정받기 위해, 아직 학예직이 조직에서 자리잡기 전에 짐이 되지 않기 위해 했던 거다. 과거 우리도 그렇게 컷으니 그렇게 일을 배웠으니 너희들도 그렇게 노력하라는 건 경우가 아니다. 행정업무나 시설업무는 행정직이나 시설직분들이 더 잘하시고 우리는 학예 업무를 잘하면 된다. 이제는 우리 후배들은 학예사 본연의 업무를 해서 그걸로.. 2022. 11. 12. 구리가 부족했을 것이 틀림없는 한국의 청동기시대 역사상 인류문명이란 반드시 금속기의 도입을 수반하는 것은 아니다. 농업의 발전으로 생산력이 올라가면 금속기의 도입에 적당한 조건이라면 그것이 청동이건 철이건 간에 도입해서 쓰게 되겠지만 여의치 않은 조건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뭔가 변형스러운 모습의 문명이 발전할수 밖에 없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20세기 이전 전통적으로 구리가 귀한 나라였다. 조선시대도 만성적인 구리 부족현상에 시달렸으며 동전 주조할 구리가 모자라 일본으로 부터 수입도 많이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에 반해 주변국가인 중국과 일본은 상대적으로 구리 생산이 좀 넉넉하여 특히 일본 같은 경우는 막대한 양의 구리를 채굴, 제련하여 수출까지 했던 것으로 안다. 조선시대에 없던 구리가 청동기시대에는 넉넉했을 리가 없다. 고고학자가 .. 2022. 11. 12. 청자 수선분水仙盆 타이베이 고궁박물원에 있는 중국 옛 도자기 중에서도 첫손에 꼽는다는 보물이 있으니 북송 말 휘종徽宗 때 만든 여요汝窯 자기 수선분이다. 그 옛날 수선화를 심고 즐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그 색이 워낙 맑아, 비 그친 뒤 개인 하늘색 같다 하여 우과천청雨過天晴이라고 불린다. 펜으로 그 색은 재현 못하지만 수선화 두 뿌리 심는 것쯤이야 어렵겠는가. 2022. 11. 12. [전국학예연구회] 지자체 학예연구직 학술토론회 후기 2019년 12월 14일, 전국학예연구회 출범을 위해 상연재에서 처음 모였던 날이 기억납니다. 출범식을 기획하며 얼마나 많은 분이 올까 노심초사했는데, 작은 장소를 꽉 채워주셨던 그날을 잊지 못합니다. 그리고 3년이 채 되지 않은 오늘, 국회에서 처음으로 지자체 학예연구직들의 목소리를 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사실 오늘 같은 자리가 올 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못했는데, 이런 날이 오게 되네요^^ 이 자리를 마련하기까지 도움 주신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법안 발의해주신 김예지 의원님, 행사 준비와 기념품 지원해주신 최응천 문화재청장님을 비롯해서 발표와 토론을 맡아주신 여러 선생님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늘 지자체 학예연구직의 중요성을 역설해주시고 오늘 토론 좌장도 선뜻 맡아 주신 김태식 단장님께도 감사드립.. 2022. 11. 11. 이재난고, 실학자로 포장된 성리학도 황윤석의 일기 학자들은 이재 황윤석을 실학자라고 주장하지만 철저한 성리학자였다. 그의 실사구시 자세가 바로 성리학자의 기본이었으나 그에 대한 몰이해로 그를 실학자라는 틀에 구겨 넣으려고 한다. 그의 《이재난고》는 독특한 일기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자세히 살피면 그는 한 번 쓰면 화석처럼 퇴적되어버리는 일기를 쓰지 않으려고 했다. 작성된 일기를 이후에도 자꾸 수정 보완하여 완성된 연구노트를 만들고자 했다. 그가 일기를 쓸 때 시종 견지한 태도를 《이재난고》 권17 에 적어두었으니, "조정의 일을 쓰지 않고, 잡스러운 사람의 말을 쓰지 않고, 성인의 말씀이 아니면 쓰지 않고, 허원한 주장을 쓰지 않는다.[勿書朝廷事 勿書雜人語 勿書非聖言 勿書虛遠說]" 는 것이었다. *** 편집자주 성리학과 실학을 맞장뜨게 하는 구도는 .. 2022. 11. 11. [요지경] 시카고 컵스 108년만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다시 봤다는 115세 미국 할매 美 최고령 115세 할머니, 90세 딸과 함께 생일 축하 송고시간 2022-11-11 05:01 세계 4번째 고령…"노래 부르기 좋아하고, 평생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해" https://www.yna.co.kr/view/AKR20221111003600009?section=international/all&site=hot_news 美 최고령 115세 할머니, 90세 딸과 함께 생일 축하 | 연합뉴스 (시카고=연합뉴스) 김현 통신원 = 미국 최고령으로 알려진 아이오와주의 할머니가 115번째 생일을 맞았다. www.yna.co.kr 저 소식에 아래와 같은 구절이 있으니, 웃을 수밖에 더 있겠는가? 1907년생인 헨드릭스는 21명의 대통령을 거치며 2차례의 세계대전과 대공황, 타이타닉 침몰, 그리고 미 프로야구(M.. 2022. 11. 11. 식민지 시절, 재在평양 일본인들의 취미 1910~20년대, 평양 일대에 산재해있던 낙랑樂浪 고분 열에 아홉은 도굴꾼의 곡괭이를 피하지 못했다. 그 시절 도굴의 열기가 얼마나 거셌던지, 평양에 살던 일본인이 “1~2원을 주고 낙랑 청동거울 1점이나 토기 항아리 1점쯤 구입하지 못했다면 남한테 바보 취급을 당했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 편집자補 *** 도굴은 장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근자 중국에서 발견 발굴된 조조 무덤의 경우, 삼국지 그의 본기를 보면 죽으면서 무덤은 봉분을 만들지 말고 편평하게 해서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게 하라 유언하는 장면이 있다. 그만큼 도굴을 두려워한 까닭이다. 한반도라 해서 사정이 다르지 아니해서 왕릉이 문종 이후인가? 회격묘 일색으로 변하고, 이른바 후장厚葬에서 박장薄葬으로 간 가장 큰 이유도 도굴에.. 2022. 11. 11. 이전 1 ··· 524 525 526 527 528 529 530 ··· 1000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