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전체 글22500

일본 동양사학의 거물 시라토리 구라키치 白鳥庫吉의 엽서 이른바 '식민사학'의 계보를 읊을 때 빠지지 않는 인물 시라토리 구라키치白鳥庫吉(1865-1942). 그의 사진이나 글은 접한 이들이 적지 않겠지만 그의 글씨를 본 분은 좀 드물 것이라 생각한다. 이 엽서는 그가 어느 봄날(소인이 흐려서 연도는 분명치 않다) 서울 '경성호테루'에 머물며 지인에게 부친 것이다. 조선 땅에 와서 불국사 근처 옛날 탑도 보고, 강서 진남포도 간 모양인데 일본 초서가 되놔서 읽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글씨는 제법 유려한 편이다. 2023. 4. 14.
광개토왕비의 "신래한예": 동부여는 어디인가? (2) 광개토왕비에 의하면 광개토왕릉 수묘는 왕이 정복전에서 잡아온 사람들을 쓰도록 했다. 이에 관하여 비에 나와 있는 사람들이 바로 "신래한예"인데 어딘가의 정복전에서 잡아온 사람들일진데, 앞의 "한"은 분명히 백제에서 잡아온 사람들일 터, 문제는 뒤의 "예"가 어디서 잡아온 사람들일까? 광개토왕비 정복전을 보면, 신래한예의 "예"에 딱 맞는 사람들은 동부여 외에는 없다. 396년: 백제 토벌 398년: 식신 토벌 399년: 신라원조 404년: 왜와 대방에서 전투 407년: 확실치 않은 지역에서 전투 410년: 동부여 정벌 그렇다면 동부여가 "예"일까? 신래한예의 "예"는 두만강 유역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일까? 사실 이 동부여에 대해서는 그 실체가 두만강 유역이 아니라 삼국지의 "동예"와 같은 것이라는 주장을.. 2023. 4. 13.
고려시대에도 개미는 있었다 개미보다 더 작은 것은 없건마는 / 微莫微於蟻 벌레를 끌고 잘도 달아나는구나 / 曳蟲猶善走 크거나 작거나 모두 똑같이 보니 / 大小若等視 범이 온갖 짐승 제압하는 것 같도다 / 如虎制百獸 - 후집 권10, 고율시, "개미가 벌레를 끌고 가다 쌍운 蟻拖蟲 雙韻" 2023. 4. 13.
[무령왕릉과 쌍릉 사이, 백제 장인들의 눈물겨운 생존투쟁] 일신한 치석治石 기술, 전대미문하는 무덤 집을 만들다 그렇다 해서 하루아침에 없던 기술이 하늘에서 뚝 떨어질 수는 없는 법이다. 다만, 전축분을 이식·습득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무엇이 부족한지는 분명히 드러났다. 그 이전 우리는 명색이 치석治石이라 하지만 구석기 시대 그 기술을 벗어나지 아니해서 가공이라는 개념은 없었다. 돌맹이를 주어다가 새로 쌓았을 뿐이니 그건 치석이 아니라 실은 재배치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 문제는 바로 이거다. 말 그대로 돌을 가공하자! 이 정도는 공정이 하나 더 늘고 공사 단가가 높아지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어차피 우리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고 우리 가치를 스스로 높이는 것이기에 마다할 이유는 없다. 그렇게 해서 어느 순간 백제 엔지니어들이 돌을 가공하기 시작했다. 돌덩이는 애초 쓰임새를 염두에 두고 잘라내고, 그것은 다시금 .. 2023. 4. 13.
광개토왕비: 동부여는 어디인가? (1) 광개토왕비에는 "동부여"가 나온다. 동부여는 흥미로운 나라다. 삼국지 동이전에는 동부여가 없다. 동예, 옥저, 읍루까지 나오는데 동부여는 없다. 현재 한국학계 통설에서는 동부여란 연변 지역이다. 여기 있었다면 왠만하면 삼국지 동이전에 기록이 나올 것 같은데 없다. 현재 동부여 위치를 두만강 하류 일대에 비정한 지도를 보면 동부여 위치가 옥저하고 읍루 사이에 끼어 있다. 그런데 삼국지를 보면 옥저와 읍루 사이에는 동부여가 없고 두 세력은 서로 접경하고 있다. 동부여는 한국측 기록에만 나오는 실체이다. 필자가 아는 한 삼국사기에 나오는 기록이 거의 유일하다. 그렇다면 동부여라는 나라는 그 실체가 모호한 것 아닌가 싶은데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광개토왕비에 동부여가 나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자세하게 나온다.. 2023. 4. 13.
[무령왕릉과 쌍릉 사이, 백제 장인들의 눈물겨운 생존투쟁] 협잡과 혁신, 위기의 양 날개 전축분 도입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백제 장인들한테는 일대 위기였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들의 이런 좌절 분노을 딛고서 막상 모습을 드러낸 그 전축분 왕릉이었다. 어랏? 우리가 그렇게 전축분은 안 된다고 그렇게 집요하게 공격했는데 막상 완공에 즈음해 드러낸 그 모습을 보고는 또 한 번 좌절할 수밖에 없었으니, 그들한테는 주마등처럼 그네들이 이 전축분 이전에 그네들이 만든 다른 왕릉과 오버랩할 수밖에 없었다. 막상 모습을 드러낸 그 벽돌집 왕릉은 누가 봐도 그네들이 지금껏 만든 그것과는 도대체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뽀대가 났다. 우리가 봐도 폼이 나기는 하네, 이런 감정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랬다. 겉으로는 중국 놈들이라 해서 별 다를 것도 없다 했지만, 그네들 무덤 만드는 기술은 분명 우리보다.. 2023. 4. 13.
세형동검이 수 백개는 녹아 들어갔을 성덕대왕신종 우리나라는 알다시피 구리가 잘 안 난다. 청동기시대 위세품으로 동검과 함께 석검이 많이 쓰인 것도 그런 이유일 터다. 뭔가 폼잡을 게 필요한데 구리가 워낙 안 나다 보니 석검으로 만들어 차고 칼자루만 세형동검처럼 위장하지 않았을까. 지난 주말에 학회를 참석하고 시간이 남아 경주박물관을 들렸다. 성덕대왕신종이 보였다. 그 규모에 새삼 놀라면서도 도대체 저 구리가 어디서 났을까 궁금해졌다. 아마 구리를 사오기도 했겠지만, 전해 오는 고물 청동기물도 많이 저 종 안에 녹아들어가지 않았을까. 에밀레 종 전설처럼 스님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시주를 받았을때 아마 돈을 내놓고 전답을 내놓은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청동기물을 내 놓은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내 생각에 성덕대왕 신종에는 그때까지도 전해오던 세형동검 수 백.. 2023. 4. 13.
[무령왕릉과 쌍릉 사이, 백제 장인들의 눈물겨운 생존투쟁] 수릉壽陵, 대권 잡은 군주가 맨 먼저 만든 자기 집 구미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동아시아권 군주, 특히 중국의 경우 대권을 잡으면서 가장 먼저 착수한 일 중 하나가 자기가 죽어서 살 집, 곧 제 무덤을 만드는 일이었다. 이렇게 생전에 미리 만든 왕릉을 수릉壽陵이라 한다. 이런 전통이 한반도 문화권에서는 어떻게 발현되는지 모호한 측면들이 있다. 죽을 때를 대비해 미리 만든 무덤은 그 죽을 시점에 무덤 문을 따고 들어가야 하는데, 신라의 경우 중고기 이전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이 있으니, 경주분지를 장식하는 저 거대한 무덤들은 적석목곽분이라 해서, 개중 몇 기를 발굴하기는 했지만, 수릉 흔적이 확실히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문을 따고 들어가 시신을 나중에 안치하기 위한 시설은 아무래도 적석목곽분은 구조상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으며, 그런 전통은 중고.. 2023. 4. 13.
미친 고려인 대략 따져보니 11세기 초에서 13세기 중반까지 고려에서 새겨 찍은 초조대장경-의천교장-재조대장경이 권수로만 14000권 분량에 글자수는 대략 따져봐도 1억자를 훨씬 넘는데 미쳐야만 뭐든 남긴다는 말이 정말 맞는 말이다. 일제시대에 이 대장경판을 보고 외침에 미신으로 맞서려 했다는 비판 같지도 않은 비판을 저명한 일인 사학자가 남긴 것은 유명한 일화인데, 같은 시기 돌고래가 헤엄치는걸 보고 중요한 전쟁의 승패를 점치던 나라에서 할 소리는 아니었다 하겠다. 2023. 4. 13.
어려운 국문시 이건 전적으로 필자 개인 의견임을 전제하고 쓴다. 필자가 문학에는 문자 그대로 까막눈, 문외한인 탓도 있겠는데, 국문시를 보면 당시, 와카보다도 그 심리를 이해하기가 훨씬 어렵다. 단어를 아예 모르겠는 것도 있고, 단어를 알아도 도대체 뭔 소린지 알수 없는 시가 태반이다. 당시나 와카는 외국어라도 알 듯 모를 듯 해도 대충 이런 뜻이다 짐작이 가는데 반해 어리석은 백성이 하고자 하는 말이 있어도 시러 펴지 못할까 봐 만들었다는 한글 시인데 도대체 뭔소린지 알 수가 없다. 중국이나 일본의 현대시도 이런지? 물론 필자가 무식한 탓일 것이다. 2023. 4. 13.
[무령왕릉과 쌍릉 사이, 백제 장인들의 눈물겨운 생존투쟁] 전대미문前代未聞, 하지만 국경을 벗어나면 유행이 되고 어떤 사회에서 새로움은 어떤 경로를 통해 등장하는가? 그 새로움은 일시로 끝날 수도 있고 장기 지속할 수도 있다. 이 새로움이 어느 정도 지지세를 확보하면 그것을 우리는 ‘유행’이라 부를 수 있겠으며, 그런 유행이 어느 정도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면 ‘전통’이라 부를 수 있겠다. 무덤이란 무엇인가? 아주 간단히 정의하면 ‘죽은 사람이 사는 집’이다. 이 집은 여타 다른 부문이 그런 것처럼, 산 사람이 사는 집이 그런 것처럼 시대별 유행 또한 아주 민감하다. 다만, 그 죽은 사람의 집이 변화하는 양상이 어떠한지를 견주려면, 비교 대상을 어떤 기준에 따라 범위를 좁혀야 한다. 그래야 비교의 의미가 있다. 같은 집이라 해서 오직 집이라는 이유로 아파트와 초가를 견줄 수 있겠는가? 물론 집이라는 전체 범위를 논할.. 2023. 4. 13.
꽃이 진 아침은 울고 싶어라? 낙화落花 조지훈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밖에 성긴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켜야하리 꽃이 지는데 꽃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이 있을까 저어 하노니 꽃이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1946) 2023. 4. 13.
가장 완벽한 애인은 죽은 애인 빛나는 것들은 모두 땅속에 있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애인은 죽은 애인이라고 춤추는 일들은 모두 지문이 없지 속이 빈 새들이 날아가는 창문은 소경과 귀머거리의 시간 이용임, '오수' 부분,《시는 휴일도 없이》, 걷는사람, 2020 *** 영원히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려거든 죽으란 뜻이다. 죽자. 첫 소절은 고고학이 성전으로 삼아야 한다. 2023. 4. 13.
제주 오미자 임금님 바쳐 점수 따려다 개쪽 당한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를 만들어 18세기 제주 사회를 우리에게 보여준 제주목사 이형상李衡祥(1653~1733), 그는 얼마 안 되는 임기 동안 제주에 크나큰 발자취를 남겼다. 절과 신당을 때려부수고 심방들로 하여금 농사를 짓게 한 일은 제주 노인들에게 '영천 이목사' '영찰목사'가 지금껏 회자되게 만들었다. 그런 그가 제주에서 행한 일 중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있다. 권38, 숙종 29년(1703) 5월 20일자 기사를 보면.... 처음에 제주 목사 이형상이 치계馳啓하기를, "본도本島의 오미자五味子는 세상에서 뛰어난 맛이 있다고 일컬어서 어공御供에 합당하므로 분의(分義, 의리)로 보아 숨겨 둘 수 없기에, 먼저 다섯 말을 주원(廚院, 왕실 부엌)에 올리고, 명년부터 진헌進獻하기를 청합니다." 라고 하였으므로 사옹원司饔院에서.. 2023. 4. 13.
박물관을 움직이는 사람들 “생각보다 작네요.” 혹은 “너희 박물관은 작긴 한데 재미있어.”라는 말을 가끔 듣는다. 그 ‘작다’라는 말이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현대미술관같은 대형 박물관과 비교해서 나온 말이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그 말에 설명을 덧붙이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대신 이렇게 말해준다. “그래도 저희 박물관에는 100명 정도가 일하고 있어요.” 그럼 다들 휘둥그레진다. “생각보다 일하는 사람들이 많네.” 한 명과 백여 명 사이 박물관을 운영하려면 몇 명이 필요할까. 사실 그것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 정확히 몇 명이 최소 인원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소장 유물 수량, 건물 크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산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이 박물관에 일하기 전에는 대학박물관에서 일했다. 대학박물관은 몇몇을 제외하면 학.. 2023. 4. 12.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운명, 해직을 앞둔 사람들을 위한 고언 모든 인간은 해직된다. 정년퇴임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를 일삼는 자가 없지는 않지만 그 퇴직 또한 해고임은 한밤중 장작불만큼 분명하니 이직 역시 실상 해직과 동시에 일어나며 이직 역시 해직을 피할 수는 없다. 나는 일차 해직을 겪었고 2차 해직 또한 멀지 않았다. 이런 사람들을 위한 두 가지 고언을 해둔다. 첫째 이메일은 기관 것을 쓰지 마라. 해직과 더불어 닫혀버린다. 타력에 의한 해직의 경우 내가 해직된 다음 그 이메일이 털려도 내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기관 메일 삭제하라. 둘째 우편물은 집으로 받아라. 그리하지 않으면 우편물이 계속 해직된 직장으로 간다. 그 회수도 한두 번이지 해직된 직장 나가는 일도 고역이다. 나는 저 1차 해직과 더불어 저리 조치했다. 오늘도 이만한 전질 역주본이 남영동 .. 2023. 4. 12.
건물은 타도 좋으니 편액만큼 건져라 매년 이맘쯤이면 닥치는 강원도 산불이 올해라고 예외는 없어, 강릉 일대를 강타한 모양이라, 화마가 새둥지를 넘어 인간 둥지로까지 덮치고, 또 그 마수가 문화재 권역으로까지 번지자, 당국에서 맨먼저 한 일이 편액 혹은 현판은 모조리 떼서 안전한 곳으로 옮긴 일이니 저런 유서 깊은 정자 혹은 건물채가 화마에 사라져도 편액 혹은 현판이 살아남은 힘이 바로 이거다. 건물은 타도 좋으니 편액만큼은 현판만큼은 건지자 하는 이 전통은 아주 오래되어서 그것이 현대판으로 발현했을 뿐이다. 가깝게는 2008년인가 남대문 화재가 나자, 역시 맨먼저 한 일이 그 육중한 현판을 떼어낸 일이었으니, 그래서 이 현판만큼은 비교적 멀쩡하게 살아남은 힘이다. 저런 산불에 특히 취약한 데가 산중 사찰이라, 산중 사찰 건물채로 기껏해야 .. 2023. 4. 12.
P1Harmony's new song concept photos K-pop boy group P1 Harmony released a concept poster for its new song "Super Chic" in collaboration with the British band New Hope Club on the 12th. The agency, FNC Entertainment, will release the digital single's music and music video on various music sites on April 21. 2023. 4. 12.
종묘와 사직은 남녀가 밀회하고 섹스하는 곳 아래는 종묘와 orgy 라는 제목으로 2008년 1월 26일 19:04:08에 쓴 글이다. 춘추전국시대 종묘宗廟 혹은 사직社稷을 일컫는 이름은 차이를 보였던 것 같다. 아니, 그보다는 이들 국가 최고 제사시설이라 할 수 있는 곳을 그것이 자리한 지명을 따서 다르게 부르기도 한 모양이다. 연燕의 경우 조祖라 했고, 제齊는 사직社稷이라 했으며, 송宋은 상림桑林이라 했다. 또 초楚는 운몽雲夢이라 했다. 이들은 수풀이 우거진 곳에 자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글 맨 뒤에 출전이 있다.) 그러한 특성은 송나라 사직 혹은 종묘가 있던 곳이 뽕나무 수풀이라는 데서 단적으로 확인되며, 초나라 사직이 있던 운몽 또한 장왕을 비롯해 초나라 역대왕들이 자주 거둥해 사냥하던 곳이라는 점에서 수풀이라는 특성을 검출해 낼 수 있.. 2023. 4. 12.
[무령왕릉과 쌍릉 사이, 백제 장인들의 눈물겨운 생존투쟁] 우체통을 닮은 능산리 사리감舍利龕 얼마 전 국립부여박물관을 가서 보니 저 배치가 조금 바뀌어 이른바 백제금동대향로는 이 박물관을 대표하는 마스코트라 해서 상설전시실 가장 후미진 데 독립하고 고립한 안방을 차지한 데 견주어 저 사리감은 꼭 문지기처럼 그 전면에서 자리를 차지한다. 따라서 존재감은 말할 것도 없이 향로에 견주어 훨씬 미약해 그 모습을 보노라면 묘한 감정이 일기도 하니, 유물 역시 금칠을 해야 빛이 더 나는 법이며, 화강암 돌덩이는 제아무리 잘 갈아 만든다 해도 금덩이 견주어서는 빛이 덜 날 수밖에 없다 하겠다. 사비시대 백제유산을 대표하는 저 둘은 이전에는 저런 식으로 서로 마주보게, 그리고 그 간극에는 현재와 같은 그 어떠한 가림 장치가 없이 마치 세트를 방불하게끔 배치했지만, 그것이 출토한 지점이 같은 부여 능산리 절터이.. 2023. 4. 12.
날벼락 같은 명령, "무령왕릉은 중국식 벽돌무덤으로 만든다" 절규하는 엔지니어들 백제 조정에서 어느 시점에 무령왕과 그 부부가 묻힐 무덤을 만들라는 명령을 발동했는지는 그것이 수릉壽陵인지 아닌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아무튼 공포된 그 명령은 백제 엔지니어들을 일순 패닉 상태에 빠뜨리고 말았다. 그 명령을 보니 자기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백제 행정시스템이 어땠는지는 추적이 용이하지 아니해서 그 정확한 실상을 증언하는 기록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니, 아무튼 성왕聖王 시대에 정비했다는 관부로는 내관內官 12부를 포함한 22부部가 알려졌으니, 이를 기준으로 할 때 왕릉 조성과 같은 일은 현재의 국토교통부 같은 데서 전담했을 법하지만, 이런 일을 정확히 어떤 부서에서 관장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조선시대처럼 왕이 .. 2023. 4. 11.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