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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문(帝文) 신라시대 문장가로, 진평왕 시대 중국에 조빙사로 파견된 행적이 확인된다. 삼국사기 권 제4 신라본기4 진평왕 : 22년(600) 고승 원광이 조빙사(朝聘使) 나마 제문(諸文)과 대사 횡천(橫川)을 따라 돌아왔다.삼국사기 권 제46(열전 제6) 강수 열전 : 신라 고기(古記)에 “문장으로는 강수, 제문(帝文), 수진(守眞), 양도(良圖), 풍훈(風訓), 골답(骨沓)이 유명하다”고 했으나 제문 이하는 행적이 전하지 않아 전기를 세울 수가 없다.
수진(守眞) 신라시대 문장가로 자세한 행적과 활동시기는 알기 힘들다. 삼국사기 권 제46(열전 제6) 강수 열전 : 신라 고기(古記)에 “문장으로는 강수, 제문(帝文), 수진(守眞), 양도(良圖), 풍훈(風訓), 골답(骨沓)이 유명하다”고 했으나 제문 이하는 행적이 전하지 않아 전기를 세울 수가 없다.
량도(良圖) ☞김량도(金良圖)
풍훈(風訓) 신라에 의한 일통삼한기 무렵 문장가로서, 김진주 아들이면서 중국에서 숙위 학생으로 있으면서, 설인귀 예하 부대에 소속되어 신라군에 대항했다는 행적만 전한다. 삼국사기 권제7(신라본기 제7) 문무왕 하 : 15년(675)...가을 9월에 설인귀가 숙위 학생 풍훈(風訓)의 아버지 김진주(金眞珠)가 본국에서 처형당한 일을 기화로 풍훈을 이끌어 향도(鄕導)로 삼아 천성(泉城)으로 쳐들어 왔다. 우리 장군 문훈(文訓) 등이 맞아 싸워 이겨 1천4백 명을 목 베고 병선 40척을 빼앗았고, 설인귀가 포위를 풀고 도망가자 전마(戰馬) 1천 필을 얻었다. 삼국사기 권 제46(열전 제6) 강수 열전 : 신라 고기(古記)에 “문장으로는 강수, 제문(帝文), 수진(守眞), 양도(良圖), 풍훈(風訓), 골답(骨沓)이 유명하다”..
골답(骨沓) 활동시기와 활동내역을 알 수 없는 신라시대 문장가. 같이 거론된 인물들로 보아 삼한일통기 무렵일 것으로 짐작된다. 삼국사기 권 제46(열전 제6) 강수 열전 : 신라 고기(古記)에 “문장으로는 강수, 제문(帝文), 수진(守眞), 양도(良圖), 풍훈(風訓), 골답(骨沓)이 유명하다”고 했으나 제문 이하는 행적이 전하지 않아 전기를 세울 수가 없다.
교시요 계시인 상식과 통설 상식 혹은 통설, 이는 항용 열어놓아야 한다.어디를 향해? 의심을 향해이를 나는 겸손이라 부른다. 상식 혹은 통설이 빗장을 건 상태. 이건 교시요 계시다.전복해야 한다. 빗장은 부수어야 한다.
김유신(金庾信) 595~673년. 신라 장군이자 정치가로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멸하고 삼한을 일통한 제1의 원훈공신이다. 화랑세기에서는 그를 '신국의 영웅[神國之英雄]'이라 했다. 금관가야 왕가 직계 후손이자 부계와 모계 모두 신라 왕가 혈통을 이어받았다. 시조가 김수로, 증조가 금관가야를 들어 항복한 구형왕, 조부가 김무력, 아버지가 김서현이요, 어머니는 숙흘종과 만호 태후 사이에서 난 만명부인이다. 아버지 부임지인 만노군(지금의 진천)에서 태어나 15살에 화랑이 되고 18세에 풍월주가 되어 출세 발판을 마련했다. 37세 때인 진평왕 61년(629) 고구려와의 낭비성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이끌어 이름을 날렸으며, 이후 종횡무진 전장을 누빈다. 선덕여왕 재위 말년에 일어난 비담의 난을 진압하면서 권력 최정점에 섰으..
구근(仇近) 생몰년 미상. 신라의 일통삼한 전쟁기에 김유신을 호종한 군인. 백제 멸망 뒤인 661년, 고구려 정벌에 나선 당군을 지원하고자 군량미 수송에 나선 김유신을 호종하다가 신라군이 위험에 빠지자 렬기와 더불어 특공대를 조직해 평양성으로 들어가 당군과 접선했다. 김유신 사후에는 김유신 아들인 김원정 휘하에서 서원경에 속한 술성이라는 성을 쌓는 일을 감독하기도 했다. 삼국사기 권 제47 (열전 제7) 구근 열전 : 구근(仇近)은 원정(元貞)공을 따라 서원경(西原京)[현재의 충북 청주시]의 술성(述城)을 쌓았는데, 원정공이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일을 게을리 한다 하여 곤장을 때렸다. 구근이 말하기를 “나는 일찍이 열기와 더불어 죽음을 헤아릴 수 없는 곳에 들어가 대각간의 명을 욕되게 하지 않았고 대각간은 나를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