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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싶은 글을 쓰야 피곤하지 않다 주변에 이른바 학문으로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 워낙 많아 그네 중 일부가 매양 하는 말이 글쓴다 징징대는 말이라 왜 징징대는가?글 같은 글이 아닌 걸 부여잡기 때문이다. 물론 개중에는 엄살도 많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 나 이만큼 열심히 공부한다 티 내고, 그래서 징징거리는 사람도 있다는 건 안다. 징징대지 마라. 맨 쓰는 글이라는 무슨 사적지정을 위한 학술대회라는 자리 몇 푼 돈 보고 불려 나가서 맨 쓰고 싶지도 않은 글, 쥐어 짜봐야 한 움큼도 남지 않는 글 논문이랍시며 억지로 쥐어짜내니 그 글이라고 무슨 정신이 박혀 제대로 나오겠는가?돈 받고 쓰는 글 중에 제정신 박힌 글 한 편 못 봤다. 가뜩이나 돌아가지 않는 대가리, 돈 받는다고 돌아갈 리 있겠으며, 주어진 주제에서 무슨 참신한 발상과 생각이 나오.. 2025. 3. 25.
몹시도 고약한 삶, 쪽팔리지만은 말아야 이게 아마 궤적에서 비롯하는 차이일 듯 한데 통섭지향을 선언한 외우 신동훈 교수께서는 논문 쓰기에서 결국 희열을 느낀다 했지만 나는 정반대다.내가 논문 혹은 그에 준하는 글로 이곳저곳 싸지른 글이 사오십편은 될 듯한데 난 논문에서 단 한 번도 오르가즘을 맛 본 적 없다.그렇다고 뭐 억지로 꾸역꾸역 썼느냐 하면 것도 아니어서 기사건 논문이건 내가 쓰고 싶은 글만큼은 워즈워스가 말한대로 spontaneous overflow of powerful feelings로 걸신걸린 듯 썼다.하지만 내가 기사나 혹은 논설을 써서 맛보는 그 희열은 논문에선 없었다.주변에서 나를 두고 기자가 아니라 연구자 길을 갔어야 한다는 분이 많다. 한둘이 아니라 실은 엄청 많다.왜 그럴까 상상해 보면 조금 동의하는 부분도 있지만 나는.. 2025. 3. 25.
[무령왕릉] 왜 머리 방향도, 남녀 위치도 반대인가? 무령왕이 죽었을 때 그 무덤 배치 양상이다. 이 무덤 예제禮制에 맞지 않는다. 머리 방향은 북쪽을 두어야 하지만 남쪽이다. 3년 뒤 그 마누라가 죽었다. 죽어서 이리 배치됐다. 이 역시 예제에 맞지 않는다. 첫째 부부가 모두 남쪽을 향해 머리를 두었다. 둘째 남녀 위치가 바뀌었다. 부부 위치는 바뀌어야 한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빚어졌을까?백제가 무식해서?이런 이해가 의외로 많다. 하지만 백제는 저 당시 철저히 중국식 예제를 고수하려 했고 실제 철저히 고수했다. 심지어 3년상까지 맞추었다. 그런 그들이 유독 머리 방향과 남녀 방향만 반대로?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비밀을 나는 저 상태가 실은 빈전 상태라 했다. 왜?빈에 있을 때까지도 죽었으나 산 사람 취급했다. 저것이 바로 산 사람 위치, 산 .. 2025. 3. 25.
알타이 얼음공주 Siberian Ice Maiden 편집자 주 : 아래는 영문 위키피디아 Siberian Ice Maiden을 전문 번역한 것이다. 도판은 내가 첨가한 것들이 있다. 제공 도판도 거지 같은 화질은 손봤다. 시베리아 얼음 처녀Siberian Ice Maiden는 현지에서 알타이 공주 Altai Princess(Алтайская принцесса), 또는 우코크 공주Princess of Ukok(Принце́сса Уко́ка), 또는 데보츠카Devochka("소녀"), 또는 오치발라Ochy-bala(Очы-бала, 알타이 서사시 여주인공)이라고도 하는 기원전 5세기 여성 미라다. 1993년 러시아 알타이 공화국 파지리크 문화Pazyryk culture에 속하는 파지리크 매장지azyryk burials 중 한 쿠르간kurgan에서 발견.. 2025. 3. 25.
깐쫑한 알타이 아이스 여성의 마구 이 마구harness는 어느 스키타이 여성 무덤에 묻힌 여섯 말 말 중 하나에 걸쳤던 것이다.이 여성은 아마도 기원전 5세기 무렵에 breast cancer로 사망한 듯하다. 러시아 알타이 산맥 Altai Mountains 영구동토층permafrost 에서 발견된 말들은 곡괭이pickaxe로 살해당한 다음 사슴 형상을 묘사한 가죽 장식leather appliqués depicting deer figures을 갖춘 어떤 여성이 안치된 나무 관 옆 무덤방 안에 묻혔다.이 여인은 내장과 뇌를 포함한 모든 장기가 제거되고 대신 그 안에는 허브, 풀, 양모로 대체되었다.실크 블라우스silk blouse, 술 장식 벨트가 달린 줄무늬 모직 치마striped woollen skirt with tassel belt, .. 2025. 3. 25.
로마네스크 교회 아래서 쏟아지는 무덤들 Centuries-old tombs and sarcophagi unearthed beneath Romanesque church in France프랑스 로마네스크 양식 교회 아래에서 수세기 된 무덤과 석관 발굴프랑스 디종Dijon의 생 필리베르 교회Church of Saint-Philibert에서 최근 고고학 발굴을 통해 로마 제국에서 현대까지 이어지는 복잡한 역사 계층이 드러났다.국립 예방 고고학 연구소 National Institute for Preventive Archaeological Research (Inrap)에서 실시하고 고고학자 클라리스 쿠데르크Clarisse Couderc와 캐럴 포수리에Carole Fossurier가 이끄는 이 발견은 이 유적의 건축적 진화와 수세기에 걸친 매장 센터로서의.. 2025. 3. 25.
유대 성소 우물 미크베mikveh 로마 관문 오스티아 안티카서 출현 The ruins of an ancient Jewish ritual bath have been found near Rome – the oldest such discovery outside of the biblical region of Israel and the surrounding area. 고대 유대인의 의식용 정화 목욕탕 Jewish ritual bath인 미크베mikveh 유적이 로마제국 수도 로마로 통하는 관문 항구 도시 유적 오스티아 안티카 Ostia Antica에서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목하 쏟아졌다. 이는 이스라엘 성경 지역과 주변 지역 밖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발견이라 대서특필된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놀라운 발견디다." 고대 오스티아 고고학 공원 Archaeological Park of .. 2025. 3. 25.
실망 무쌍이었던 조선후기 성리학 성리학이라고 했지만 조선후기 학문과 동의어이다. 어차피 조선후기에는 성리학밖에 제대로 된 학문이 없었기 때문에. 여담이지만 필자는 성리학을 한 번 작심하고 파 본 적이 있다. 따라서 전공자 분들 정도야 안되겠지만 대략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이 뭘 떠들었는지 정도는 파악하고 있다. 그 당시 조선후기 성리학을 공부하면 정말 실망했던 것은 임란 이후 수백년 동안 그 많은 선비들이 밥만 먹고 글만 쓰며 살았던 터에 도대체 창의적인 이론이 단 하나 이 시기에 나온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조선후기에도 성리학 논쟁은 몇몇 굵직한 것이 있었는데 그 논쟁들, 알고 보면 북송대 학자들 사이에 다 있던 이야기라고 하면 믿겠는가? 사실 16세기의 사단칠정논쟁도 이미 북송대 다 있었던 논쟁이 조선에서 느닷없이 재연된 것인데,.. 2025. 3. 25.
인도태평양 선사학회: 2026년 11월 https://www.ippasecretariat.org/ippa2026 Indo-Pacific Prehistory AssociationDr. Anggraeni Gadjah Mada Universitywww.ippasecretariat.org인도태평양 선사학회 Indo-Pacific Prehistory Association (IPPA) 가 2026년 11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모양이다. 필자는 과거에 이 학회 두 번인가 참석했는데상당히 많은 학자가 모인다. 가 볼 만하다. 관심있는 분들께서는 위 링크를 따라가 보시길. 2025. 3. 24.
왕조실록에는 왜 산불이야기가 별로 없을까 요즘 산불이 너무 커서 많은 분들 상심이 크실 줄 안다. 빨리 진화되어 더 이상 피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각설하고, 왕조실록에서 산불을 찾아보면 생각보다 내용이 많지 않다. 산불이 많았는데 별일 아니라 생각해서 채록이 안 되었을 수도 있고, 실제로 많지 않았을 수도 있을 텐데, 어느 쪽일까? 둘 다 가능성이 있지만 필자가 보기엔 후자의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필자가 어린 시절에도 산불은 있었다. 그때 온동네 어른들과 애들까지 모두 산으로 올라가 소나무 가지 꺾어들고 불을 두드려 껐는데지금 생각해 보면 그 산불이 요즘처럼 맹렬하지 않았던 것이일단 산에 나무가 별로 없어 무서울 정도로 타오를 수가 없었다는 생각이다. 조선시대이미 산에 나무가 없어 산불이 나봐야 지금처럼 맹렬하지 않았던 것 아닐까? 조선시대에.. 2025. 3. 24.
[한국학계의 후진성 그 또 다른 이유] 정치보다 알바! 바로 앞서 신동훈 교수께서 한국학계가 낙후를 면치 못하는 가장 심각한 이유로 짙은 정치 성향을 들었으니, 그 연원을 조선시대로까지 논급햐셨으니 나 역시 이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같은 맥락 혹은 비슷한 맥락에서 왜 한국학계가 후진을 면치 못하는가를 내가 지켜본 바를 기준으로 논하면 저거다. 본업보다는 알바에 열심이기 때문이다. 신 교수님이야 그 업계에 몸담았기에, 그리고 나랑은 인품에 현격한 차이가 있어 상당한 예의를 차리고 점잖게 말을 하셨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태생이 다르고 인성도 다르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이에서 알바는 그 학문 본연의 연장을 가장한 학문 외적 활동을 말하는데, 물론 이런 경향이 왜 짙게 나타나는가 하는 데 대대해서는 여러 분석이 있을 수 있지마는 그건 이 자리서는 논외로 치고.. 2025. 3. 24.
한국학계는 왜 낙후하는가 요즘 중국학계를 보면그 성과가 한국보다 낫다. 네이쳐 사이언스를 넘나드는 논문이 자국 연구만으로도 쏟아져 나오고특히 필자의 분야도중국 친구들 요즘 너무 잘한다. 일본이야 그렇다고 쳐도 왜 한국학계는 중국한테도 낙후되는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필자가 보기엔 이렇다. 한국학계의 낙후는 사실 일제시대에 시작된 것도, 지금 새삼스럽게 쳐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조선후기에 이미 중국과 일본 학계에 뒤떨어져 있었다. 그 차이를 지금도 못좁히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학문을 바라보는 자세에 있어 한국학계가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데, 이렇게 근본이 탄탄하지 못한 이유는 결국 따지고 보면조선후기까지 이유를 소급할 수 있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학자들이 정치판을 넘본다? 이미 조선후기 우리나라 선비들의 행태가 지금까지 .. 2025. 3. 24.
깔대기 모양 두형 칠기가 등잔받침? 가야문화유산연구소가 김해 봉황동 유적 발굴성과라 해서 공개한 목제 유물 중 이른바 항아리형 목기가 나는 실은 촛대 아닐까 의심했거니와 이 의심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해 둔다. 다만 촛대라 해서 많은 오해를 유발할 수 있음을 알거니와 내 친구 이영덕 원장 지적대로 설혹 그것이 맞다손치더라도 정확히는 등잔받침이라 해야 한다는 지적을 겸허히 수용해서 등잔받침으로 추정한다는 정도로 해 둔다. 한데 이번에 그런 제기류 중 가장 많은 칠기 목제 유물로 주목할 것이 이른바 두형斗形 목기들이라이는 생김새가 천상 깔대기 모양이라 길쭉하니 나팔형으로 벌어지고, 받침 또한 그 나팔을 엎어놓은 것과 같으니 한국고고학이 악질적인 고질, 곧 모양새만 정신 팔리고 기능에는 전연 관심이 없었던지라 뒤늦게 내가 저런 두형 칠기를 .. 2025. 3. 24.
오리무중한 김해 봉황동 목제품, 아무리 봐도 촛대 김해 봉황동 유적에서 출토했다 해서 오늘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가 공개한 목제품 중에서 나는 이 제품이 특히 눈길이 가는 바이걸 연구소에서는 항아리 모양 목기라고 했으니 자신이 없어 이리 처리하고 만 모양인데 저거 향로 아니면 촛대 아냐?향로라면 불을 피워야 하니 목제품에는 어울리지 않을 듯하고 아무리 봐도 촛대 같단 말이지?같이 출토한 유물들이 제기祭器 성격이 강하고 나아가 저 양태를 볼 적에 아무리 봐도 촛대 같다. 훗날 불교공양구 중에 촛대가 저 모양으로 생긴 것이 많은 점을 감안하고 봤으면 싶다.방금 이인숙 실장과 통화한 결과 속이 파여 있다 하니 내 추정이 아마도 맞을 듯하다. 제사에 당연히 촛불이나 향로가 있어야지 않겠는가? 아님 말고...아몰랑 *** 급한 김에 촛대라 했지만 정확히는 등잔받침.. 2025. 3. 24.
달을 숭배하고 조개로 거래한 치무 왕국과 치무 문명 치무Chimú 왕국은 치모르Chimor라고도 하는 고대 페루 기반 문화 정치체다. 이 문화는 모체 문화Moche culture를 계승해 서기 900년 무렵에 일어났으며 훗날 스페인 사람들이 이 지역에 도착하기 50년 전인 1470년경에 잉카 황제 Topa Inca Yupanqui한테 정복당했다.치무는 후기 중간기 Late Intermediate Period에서 가장 큰 왕국으로, 그 통치 영역은 1,000km(620마일) 해안선을 포함했다.  Chimú 구전에 따르면 그 역사는 타이카나모Taycanamo가 발사 뗏목을 타고 바다에서 모체 계곡Moche Valley에 도착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그 후손들은 그의 아들 과크리우르Guacriur를 시작으로 주변 지역을 정복했다. 그의 시대에 계곡 .. 2025. 3. 24.
태아로 돌아간 페루 치무 미라 In the arid deserts of northern Peru, archaeologists have uncovered a Chimu mummy dating back to approximately 1200-1400 AD. 페루 북부의 건조한 사막에서 고고학도들이 생성 시점이 서기 1200-1400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치무 미라Chimu mummy 한 구를 발견했다.이 발견은 정교한 문화와 복잡한 매장 관습으로 유명한 치무 문명Chimu civilization에 대한 귀중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이 미라의 뛰어난 보존은 주로 이 지역 건조한 기후가 자연 건조를 용이하게 했기 때문이다.의도적으로 방부 처리를 거친 이집트 미라들과는 달리 치무족은 혹독한 환경에서 사망자를 미라화했다.매장 관행의 핵심은.. 2025. 3. 24.
[한반도 거지론] 고생물화석도 거지, 공룡은 어디가고 맨 발자국만 이 놈의 나라는 어찌된 셈인지 지질유산이라 해 봐야 맨 주상절리 타령이라 발길로 채는 게 현무암 빼곤 나면 맨 주상절리라 그거 빼고 나면 남는 게 없다.요새도 천연기념물 지정했다는 지질자원 보면 현무암 동굴 빼고 나면 맨 주상절리라 지긋지긋해 죽겠다.고화석으로 넘어가면 이쪽도 피장파장이란 무슨 공룡발자국만 그리 많은지 막상 그럴 듯한 공룡뼈다귀 하나 나오지 않는다.공룡은 아주 혹가다 알을 남기기도 하지만 그뿐이라 남들은 차고넘친다는 어엿한 뼈다구 하나 없다.그래 과학관 지질관 가면 암모나이트 삼엽충도 태백인지 어디가면 있기는 한 모양이지만 것도 택도 없어 남들은 송아지 만한 삼엽충 선사하는데 이 땅은 그조차 거지다.화석 하나 볼 만한 것이 없는 거지 나라다.매머드?없다.이 놈들은 한반도만 피해다닌 듯 이.. 2025. 3. 24.
나폴리서 글레디에이터 공동묘지? 기원전 2세기 후반 이탈리아 중부 캄파니아Campania에 건설된 로마 식민지이자 로마 장군이며 정치가로서 제2차 포에니 전쟁Second Punic War을 승리로 이끈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Scipio Africanus가 거주한 리테르눔Liternum에서 검투사 무덤을 포함해 이 시대 생활문화상을 엿보게 하는 묘지가 발굴됐다. 이 식민지는 기원후 1세기와 2세기에 비아 도미티아나 건설을 계기로 이 일대 주요 무역 중심지이자 지역 산업의 상업 허브로 부각하게 된다. 광역 나폴리시 통제하에 실시된 최근 발굴에서는 포럼 Forum 및 원형극장Amphitheatre에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이 도시 공동묘지에 대한 조사에 집중했다. 시모나 포르몰라 박사 Dr. Simona Formola가 이끄는 고고학 팀은 두.. 2025. 3. 24.
봉황동 신전에서 쓰다 버린 중고 제기들 2천년 전 귀하게 쓰인 명품 칠기…김해 봉황동 유적서 첫 확인 송고2025-03-24 09:00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 발굴 조사…의례용 옻칠 그릇 15점 출토 33평 공간서 칠기, 항아리·새 모양 목제품, 점 뼈 등 300여 점 나와 "변한의 수장급 거처→금관가야 중심지"…함안서 영남권역 예담고 개관https://www.yna.co.kr/view/AKR20250323053500005?section=culture/all 2천년 전 귀하게 쓰인 명품 칠기…김해 봉황동 유적서 첫 확인 | 연합뉴스(김해=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금관가야의 왕궁터로 추정되는 경남 김해 봉황동 유적 일대에서 '명품' 옻칠 그릇이 처음으로 확인됐다.www.yna.co.kr 내가 현장을 보지 않았으므로, 또, 좀 더 자세한 약보고서.. 2025. 3. 24.
거시기 꼬다리를 좋아한 백제 2012년 문화재보호재단에서 조사한 부여 구교리 백제문화층 출토물이다.무엇인가 뚜껑 꼭지임이 분명했을 법한데모양이 영략없는 거시기 남근이다.높이 5cm, 너비 3.8cm그 옛날 이를 발굴한 정훈진 선생이 나한테 선물(물론 사진이다)인데 지금에서야 다시 발견하고선 정보 공유 차원에서 다시금 상기한다. 이렇게 흘려보낸 기물이 넘치고 넘친다. 2025. 3. 24.
은제 숟가락? 검시 약물 검사 도구 아냐? 이건 일찍이(2020년 12월 11일로 나온다) 지금은 국립김해박물관에 있는 전효수 군이 의문을 제기했거니와 저를 아무런 문제의식이라고는 있을 수 없는 고고학도들이 안이하게 그냥 은제국자라 퉁치고 마는 금속 유물이라, 저 분이 황남대총 출토품이시랜다. 암튼 그에 의하면 "오래전부터 든 생각인데 과연 이것을 국자로 보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구조적으로 손잡이랑 뚜껑 없는 주전자에 가깝다" 하면서"가령 반신불수 중환자에게 약이나 물을 주입하기에 적당한 구조다. 사행천 처럼 흐르니 뜨거운 것도 알아서 식을 것 같다. 나의 뇌피셜로는 약기로 보인다"고 했거니와 상식으로 봐도 저런 은제 국자가 정상적인 사람이 쓰는 국자이겠는가?조선시대 같으면 은수저이니 그냥 약기보다는 검시檢尸 혹은 검안檢案에 쓴 약물 .. 2025.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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