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전체 글16855

‘황남대총 파라’고 한 간 큰 사람은? 《시사IN》 2016년 12월 08일 목요일 제481호 ‘황남대총 파라’고 한 간 큰 사람은?경주 발굴단은 황남대총 발굴 작업을 꺼렸다. 규모가 너무 커서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이 거대한 고분을 파라고 누가 처음으로 주장했는지는 아직까지도 고고학계의 미스터리다.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 언론인)2016년 12월 08일 목요일 제481호 ⓒ경주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황남대총은 너비가 동서 80m, 남북 120m에 이르는 한반도 최대 고분이다. 위는 발굴 당시 작업 모습.황남대총은 경주시의 신라 시대 고분 가운데 가장 큰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이다. 한반도를 통틀어 최대 고분이기도 하다. 황남대총은 남북으로 뻗은 두 개의 봉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너비가 동서 80m, 남북 120m에 달한.. 2018. 4. 14.
낮은 포복으로 기자들이 기어왔다 출처 : 《시사IN》 2016년 12월 01일 목요일 제480호 낮은 포복으로 기자들이 기어왔다정부가 보도 통제를 했지만 천마총 발굴과 황남대총 발굴 과정에는 기자들의 특종 경쟁도 심했다. 전화국 교환수를 동원해 정보를 빼내기도 하고, 기록영화 촬영기사들을 접대하며 발굴 정보를 듣기도 했다.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 언론인) 2016년 12월 01일 목요일 제480호 경주관광개발계획이 시행 중이던 1970년대 중반, 발굴단원들만큼이나 바쁘고 긴장한 사람들이 있었다. 기자들이었다. 당시 우병익 기자(현재 83세)는 다른 언론사 기자들과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특종 경쟁을 벌였다. 특히 의 경주 주재 기자와는 사생결단 수준이었다. “하루하루가 전쟁터였지. (박정희) 정권은 정국의 .. 2018. 4. 14.
나오지 말았어야 할 유물’을 수습하는 방법 출처 : 《시사IN》 2016년 11월 18일 금요일 제478호 나오지 말았어야 할 유물’을 수습하는 방법천마총은 보존과학이라는 학문이 현장에 도입된 최초의 고고학 발굴 현장이다. 발굴단은 천마도를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했다. 김정기 당시 단장은 “백발이 된 게 천마총 발굴 때다”라고 말할 정도였다.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 언론인) 2016년 11월 18일 금요일 제478호 제476호에서 1973년 8월 경주의 발굴단이 천마총 내부의 목곽에서 무덤 주인의 ‘장니(障泥)’를 발견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장니란, 말의 발굽에서 튀는 흙을 막기 위해 안장 밑으로 늘어뜨려 놓은 판이다. 당연히 좌우 한 쌍으로 이루어졌다. 좌우의 장니에는 각각 천마도가 그려져 있었다. 좌우로.. 2018. 4. 14.
나와서는 안 될 유물 천마도가 나와버렸다 출처 : 《시사IN》 2016년 11월 03일 목요일 제476호 나와서는 안 될 유물 천마도가 나와버렸다천마도는 하늘로 비상하는 ‘천마’를 호쾌하게 표현했다. 신라 시대의 회화 작품으로 매우 진귀한 유물이다. 천마총 발굴조사단은 발굴 당시 현기증을 느낄 만큼 거대한 공포와 환희를 경험했다.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 언론인) 2016년 11월 03일 목요일 제476호 “청와대가 천마도(天馬圖)엔 통 관심을 안 보였나요?” 천마총 발굴 당시 조사보조원이었던 윤근일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과 최병현 숭실대 명예교수에게 물었다. 두 사람의 대답은 비슷했다. 최 교수는 “에이, 그 사람들이야 번쩍번쩍한 걸 좋아하잖아? 금관 말고는 관심이 없었어. 천마도는 솔직히 학자들이나 좋아하고 관심을 보였지,.. 2018. 4. 14.
“무덤 파는 게 기분 좋은 건 아니지만” 출처 : 《시사IN》 2016년 10월 31일 월요일 제475호 “무덤 파는 게 기분 좋은 건 아니지만”천마총 발굴은 한국 고고학 사상 최초로 실측을 제대로 시행한 현장으로 평가된다. 천마총 발굴조사단 김정기 단장을 비롯한 8명은 훗날 황남대총 등 경주의 대규모 국책 발굴 현장을 도맡았다.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 언론인)2016년 10월 31일 월요일 제475호 천마총 발굴조사단 단장은 그 유명한 문화재관리국 김정기 실장이었다. 단원들도 모두 특이한 경력과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사실상 부단장 격이었던 김동현 문화재전문위원은, 경주와 서울을 오가야 했던 김정기 단장을 대신해 현장에 상주하는 책임을 졌다. 김동현은 이후 김정기 소장과 장경호 소장에 이어 제3대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을 .. 2018. 4. 14.
“금관 빨리 파라, 각하께 갖고 가게” 출처 : 《시사IN》 2016년 10월 21일 금요일 제474호 “금관 빨리 파라, 각하께 갖고 가게”최대 고분 황남대총 발굴에 앞서 실험용으로 삼았던 천마총에서 금관이 출토되었다. 언론에 이 사실이 보도되자 청와대 경호실에서 금관을 가져오라는 연락이 왔다. 발굴 현장은 분주해졌다.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 언론인)2016년 10월 21일 금요일 제474호 “1973년 7월인가 금관이 나왔을 때 신문에 나니깐 청와대에서 가져오라 그러더라고. 김정기 박사한테 가져갈 수 있느냐 물으니, 필요한 조사와 기록을 다 마친 뒤에 들어내어 가져갈 수 있다고 해요. 저녁에 출발했어요. 자동차 사정이 좋지 않은 시대여서 차를 두 대 가져갔어요. 금관 실은 차 한 대, 호송차 한 대. 금관 실은 차가 .. 2018. 4. 14.
경주 복원 지휘한 한국 고고학의 아버지 출처 : 《시사IN》 2016년 10월 13일 목요일 제473호 경주 복원 지휘한 한국 고고학의 아버지지난해 작고한 김정기 박사는 박정희 대통령의 애정을 듬뿍 받은 문화재 원로 인사이다. 그는 한국 고고학 현장에 처음으로 실측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석굴암·불국사 등 주요 문화재 복원을 진두지휘했다.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 언론인) 2016년 10월 13일 목요일제473호 지난해 8월26일 저녁 7시30분 서울 은평구 신사동의 한 주택에서 한 노인이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향년 85세. 그는 ‘한국 문화재 부문의 박정희’라고 불려 마땅한 인물이었다. 철권통치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어쩌면 평범한 고고학도요 고건축학자에 지나지 않을 그의 이름만은 기억하고 노골적으로 챙길 정도였다. 그도.. 2018. 4. 14.
박정희에게 경주는 특별했다 출처 : 《시사IN》 2016년 10월 07일 금요일 제472호 박정희에게 경주는 특별했다경주 개발은 박정희 정권이 집권기 내내 의욕적으로 추진한 경제개발과 국토종합개발계획의 중요한 부문이었다. 여기에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통해 경제개발에 필요한 외화를 획득하자는 경제 논리가 깔려 있었다.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 언론인) 2016년 10월 07일 금요일 제472호 활성 단층대 위에 놓인 경주는 요즘 계속된 지진으로 불안한 상황이다. 관광객도 크게 줄어든 것 같다. 온통 학생들로 들썩이던 수학여행의 계절인데도 불국사나 석굴암, 대릉원, 첨성대 등의 주변이 한산하다. 음식점 주인들은 한숨만 쉬고 숙박업소마다 빈 객실이 넘쳐난다. 경주를 한국의 대표 관광도시로 키우려 했던 박정희 전 대.. 2018. 4. 14.
박정희의 황당 지시 “왕성 터에 호텔 지으라” 출처 : 《시사IN》 2016년 09월 22일 목요일 제470호 박정희의 황당 지시 “왕성 터에 호텔 지으라”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9년 신정 연휴를 경주에서 보냈다. 황룡사 발굴 현장을 찾았던 그는 ‘반월성을 발굴하고 영빈관을 지을 것’을 지시했다. 신라 천년 왕성에 호텔이 들어섰을지도 모르는 아찔한 순간이었다.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 언론인) 2016년 09월 22일 목요일 제470호 1979년 1월6일, 당시 석간이던 1면에는 ‘부산·경주에서 신정 연휴 보내’라는 제목으로 1단짜리 박정희 대통령 동정 기사가 실렸다. “박정희 대통령은 두 영애(令愛) 그리고 영식(令息) 지만 생도 등 가족과 함께 부산과 경주에서 신정 연휴를 보낸 뒤 5일 오후 상경했다.” 박정희의 신정 연휴 .. 2018. 4. 14.
어이쿠! 이거 다시 덮어야겠다 출처 : 《시사IN》 2016년 09월 12일 월요일 제469호 어이쿠! 이거 다시 덮어야겠다박정희 정권 때 경주 월성 내부를 판 적이 있다. 하지만 발굴 초기 조사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지금은 월성 조사를 못한다’라고 판단해 다시 덮었다. 역설적으로 이 덕분에 월성은 ‘막무가내 발굴’을 피할 수 있었다.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 언론인) 2016년 09월 12일 월요일 제469호 박근혜 정부가 과감히 파헤치고 있는 신라의 천년 왕궁 월성을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반달 모양의 지형이다. 그래서 ‘달 월(月)’자를 붙여 월성(月城)이라 부른 것이다. 이미 신라 시대부터 그렇게 불렀다. 다만 보름달이 아니라 반달에 가까우므로, 조선 시대 이래 일각에서는 반월성으로 부르기도 했다. 박정희 전 .. 2018. 4. 14.
천년의 비밀 찾기 ‘속도전’이 정답일까 출처 : 《시사IN》 2016년 09월 08일 목요일 제468호 천년의 비밀 찾기 ‘속도전’이 정답일까박근혜 정부의 대규모 경주 개발 프로젝트인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 정비사업’은 월성에서 시작되었다. 월성은 900년간 신라의 왕성으로 한국 고고학계의 성지다. 오랜 기간에 걸쳐 신중한 조사가 필요한 곳이다.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 언론인) 2016년 09월 08일 목요일제468호 지금 경주는 파헤쳐지고 있다. ‘천년 왕성(王城)’이라는 월성(月城)도 마찬가지다. 기록적이라는 무더위 와중에서도 삽질은 멈출 기미가 없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시행하는 월성 발굴 조사 현장에 동원되는 인부만 매일 100~150명을 헤아릴 정도니, 그 발굴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장에 따라 .. 2018. 4. 14.
유네스코 세계유산 경주를 망가뜨리는 박근혜 정부 출처 : 《시사IN》 2016년 09월 02일 금요일 제467호 유네스코 세계유산 경주를 망가뜨리는 박근혜 정부박근혜 정부는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 종합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경주를 역사문화유산 도시로 개발하려 한다. 이에 따라 황룡사를 ‘복원’하겠다고 나서자 문화재청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 언론인)2016년 09월 02일 금요일제467호 일제강점기 이후 경주를 지탱한 힘 중 하나가 학생들의 수학여행이었다. 박정희 시대에는 정부 차원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시작해 그 정권이 끝나는 시점까지 추진한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은 경주를 역사도시를 넘어 관광도시로 한 차원 높인 계기가 되었다. 이 개발계획을 통해 경주에.. 2018. 4. 14.
두 ‘박통’이 추진한 경주 국책사업 출처 : 《시사IN》 2016년 08월 24일 수요일 제466호 두 ‘박통’이 추진한 경주 국책사업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신라왕경 사업 마스터플랜’을 보면 2035년까지 1조5000억원을 경주에 투자할 예정이다. 그런데 사전 승인을 해야 하는 문화재위원회가 강하게 제동을 걸었다. 이유가 무엇일까?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 언론인) 2016년 08월 24일 수요일제466호 박정희 시대 대한민국 수도는 서울이었다. 그러나 박정희가 겨냥한 대한민국 ‘정신의 수도’는 경주였다. 그의 집권기에 남북한은 그야말로 사투에 가까운 정통성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역사 부문에서는, 북한이 고구려를 앞세운 데 비해 남한은 ‘신라 중심주의’로 부를 만한 사관을 시종일관 견지했다. 이런 사관에 따라, 신라.. 2018. 4. 14.
대통령이 경주 개발에 적극적인 이유 출처 : 《시사IN》 2016년 08월 19일 금요일 제465호 대통령이 경주 개발에 적극적인 이유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0년대 국책사업으로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을 추진했다. ‘경주 역사문화 창조도시 조성’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박근혜 대통령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경주 개발에 적극적이다.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 언론인) webmaster@sisain.co.kr 2016년 08월 19일 금요일 제465호 경주는 지금 온통 발굴 현장이다. 경주 시내 남쪽 월성(신라의 천년 수도 월성이 있었던 곳)처럼 훼손 위험 등으로 인해 예전에는 감히 발굴하지 못했던 곳까지 속속들이 파헤치고 있다. 신라 왕성(王城)의 구조를 확인한다며 굴삭기를 동원해 시루떡 떠내듯이 표토(表土)를 걷어내는 중.. 2018. 4. 14.
충무공을 사랑한 아버지와 딸 출처 : 《시사IN》 2016년 08월 17일 수요일 제464호 충무공을 사랑한 아버지와 딸박정희 전 대통령은 현충사 성역화 사업에 공을 기울였다. 본인이 직접 ‘최고 제관’으로 ‘탄신 다례식’을 집도했다. 이순신을 ‘국민의 이상형’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현충사를 찾았다.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 언론인) webmaster@sisain.co.kr 2016년 08월 17일 수요일 제464호 유교 윤리 측면에서 볼 때, 왕조 국가와 근대 국민국가는 그 중심 가치가 판이하다. 왕조 국가의 중심 가치가 효라면, 근대 국민국가의 그것은 충이었다. 물론 이전의 왕조 국가들이 ‘효’ 못지않게 ‘충’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두 가치는 표리를 이루면서 사이좋게 지.. 2018. 4. 14.
광화문 현판이 ‘박정희 글씨’였다고? 출처 : 《시사IN》 2016년 08월 10일 수요일 제463호 광화문 현판이 ‘박정희 글씨’였다고?광화문 한글 현판 교체를 두고 정국이 뜨거웠던 적이 있다. 그 현판 글씨의 주인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박정희는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문화재 현장 곳곳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문화재 전문 언론인) 2016년 08월 10일 수요일 제463호광화문은 조선왕조 법궁(法宮:임금이 사는 궁궐)인 경복궁의 정문이자 남문이다. 지금 시민들이 보는 광화문은 1395년(태조 4년)에 창건된 그 모습이 아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흥선대원군이 재건했으나,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에 의해 다시 해체·이전되는 수난을 겪었다. 1968년에 복원되긴 했으나 옛 모습과 상이한 철근.. 2018. 4. 14.
두 박 대통령이 사랑했던 곳, 경주 출처 : 《시사IN》 2016년 07월 29일 금요일 제462호 두 박 대통령이 사랑했던 곳, 경주박정희 대통령은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유별났다. ‘단군 이래 그랬던 적이 없었다’고 할 만큼 문화재가 각광을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자 문화재계는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숭례문 부실 복구로 물거품이 되었다.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 언론인) 2016년 07월 29일 금요일 제462호집권 4년차인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문화재 현장을 최소한 세 번 찾았다. 2013년 5월4일 숭례문 복구공사 완공 기념식, 지난해 9월7일 경주 월성 발굴 현장에 참석한 데 이어 올해 3월18일 아산 현충사를 방문했다. 물론 세 차례 방문을 근거로 박근혜 대통령이 우리 문화재에 유별나게 애착을 가졌.. 2018. 4. 14.
봄꽃 만발한 고창읍성에서 美란 무엇인가? 죽고 싶은 생각을 들게 하는 그 무엇이다. 사랑하는 이 누구인가?그 美를 보고는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다. 고창읍성이다. 벚꽃 만발하는 봄날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곳이다. 낮엔 황홀해서 아름답고, 밤엔 떠난 사람이 아려서 아픔을 더하는 곳이다. 무미건조한 설명으로 돌아간다. 발길로 차버려도 좋으나 그래도 한 번쯤 눈길 한 번 주고는 읽어놔도 손해볼 건 없으니깐 말이다. 고창읍성(高敞邑城)사적 제145호전북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고창읍성은 조선 단종 원년(1453)에 왜침(倭侵)에 대비하고자 당국에서 전라 도민을 동원해 만든 돌성이다. 일명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한다. 내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 만든 이 성은 1965년 4월 1일, 사적 제145호로 지정됐다. 둘레 1,684m, 성벽 .. 2018. 4. 14.
하서 감나무[河西枾] 지금의 전북 고창군 성송면 출신으로 영조~정조 연간에 할동한 이재(頥齋) 황윤석(黃胤錫·1729~1791)이 그의 방대한 일기 《이재난고(頤齋亂藁)》에 수록한 글 중 이런 것이 있다. 하서 감나무에 대한 설[河西枾說] 송찬욱(宋贊旭) 군 말에 따르면 "하서(河西) 선생께서 옥과 현감(玉果縣監)으로 계실 때, 두 밭 경계에 있는 감나무 한 그루 때문에 서로 다투다가 송사(訟事)를 벌인 자들이 있었다. 선생께서 갑(甲)쪽 가지에 열린 감은 갑이 주인이고, 을(乙)쪽 가지에 열린 감은 을이 주인이라고 명령[판결]하니, 두 사람이 그 명령대로 하되, 중간에 열린 감은 내버려두니 주인이 없었다. 선생께서 임기를 마치고 돌아가니 두 사람이 이 일을 떠올리고는 각기 가지 하나라도 주인이 될 수 없다고 하고는 이 감나.. 2018. 4. 14.
AS 로마 구단주가 뛰어든 포폴로광장 분수대 로마를 연고지로 하는 이탈리아 프로축구 1부리그 명문클럽 AS 로마가 2017-18 챔피언스리그 준준결승전에서 리오넬 메시가 이끄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거함 바르셀로나를 기적 같이 따돌리고 준결승에 진출하자, 그에 흥분한 AS 로마 미국인 구단주 제임스 팰로타(James Pallotta)가 로마 구심 북부 중심을 차지하는 광장인 피아차 델 포폴로(Piazza del Popolo) 분수대에 뛰어드는 쇼맨쉽을 연출했다. 단판 경기인 결승전을 제외하고는 홈앤드어웨이로 승자를 가리는 이번 대결에서 로마는 1차전 바르셀로나 원정에서 1-4로 대패를 당해 패색이 짙었다. 홈 경기에서 네 골차 이상으로 이기거나, 아니면 3-0으로 이기는 방법밖에 없었으니, 양팀간 소위 객관적 전력을 볼 적에 AS 로마가 바르셀로나의.. 2018. 4. 13.
Rape flowers in full blossom around Silla In late April and May of every year the center of Gyeongju, the millennium capital city of the Silla Kingdom (57 BCE ~ 935 CE) falls into rape blossoms. Cheomseongdae, the star-gazing tower or observatory and Buddhist flagpole supports in front of Bunhwansa Temple are surrounded by the flowers in full blossom. Along with rape flowers the monks are on their journey to seek enlightenment, and....... 2018. 4. 13.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