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삼(岑參) 연보
이하는 서성 선생 글을 옮긴 것이다. 잠삼(岑參, 715-769)은 형주(荊州) 강릉(江陵) 사람으로 군망(郡望)은 남양(南陽)이다. 증조 잠문본(岑文本), 백조(伯祖) 잠장천(岑長倩), 백부(伯父) 잠희(岑羲)가 모두 재상을 지냈고, 부친 잠식(岑植)은 진주자사(晉州刺史)를 지냈다. 744년(30세) 과거에 급제하여 우내솔부(右內率府) 병조참군(兵曹參軍)이 된 후, 749년 안서절도사 고선지 막부의 장서기(掌書記)가 되어 서역에 종군하였다. 751년 장안으로 돌아와 시인들과 친교를 맺으면서 다음해에 두보, 고적, 저광희, 설거 등과 자은사탑에 오르며 시를 주고받기도 하였다. 754년 대리평사(大理評事), 감찰어사(監察御使)를 역임한 후, 안서북정절도판관(安西北庭節度判官)이 되어 두 번째 종군(從軍)하였..
2018. 10. 2.
풍납토성, 무령왕릉, 그리고 권오영
여러 번 이곳저곳에서 말했듯이, 나한테 《직설 무령왕릉》은 해직이 준 선물이었다. 나는 2015년 11월28일, 연합뉴스에서 해직되었거니와, 졸저는 이듬해 4월 30일자로 찍혀 도서출판 메디치미디어에서 나왔다. 해직을 축복으로 여긴 나는 이때다 싶어, 기간 미룬 일이나 이참에 마침표를 찍자 해서, 나아가 뭐 이래저래 소일거리 삼아 옛날 원고를 뒤척이며, 이 참에 그 옛날에 사산死産한 무령왕릉 원고 정리에 들어가기로 했으니, 그리하여 마침내 저 졸저가 나왔다. 남들 생각보다 일이 훨씬 빨리 진행된 까닭은 실은 그 원고가 2001년에 이미 완성을 본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15년이 흘러버렸으니, 손볼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었거니와, 무엇보다 그 사이에 무령왕릉을 둘러싼 무수한 변동이 있었다. 지금..
2018. 9.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