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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은 그래도 대머리 보단 나아 한시, 계절의 노래(106) 탈모를 슬퍼하며(感髮落) 당 백거이 / 김영문 選譯評 지난날엔 머리 흴까근심했는데 희지 않고 쇠락할 줄뉘 알았으랴 이제 곧 남김없이다 빠질 테니 실낱처럼 변할 수도없게 되리라 昔日愁頭白, 誰知未白衰. 眼看應落盡, 無可變成絲. 이백은 「장진주(將進酒)」에서 자신의 백발을 거울에 비춰보며 “아침에는 푸른 실 같더니 저녁에는 흰 눈이 되었네(朝如靑絲暮成雪)”라고 슬퍼했다. 그래도 이런 경우는 괜찮은 편이다. 백발은 되었지만 머리카락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백발을 온갖 색깔로 염색할 수 있다. 머리카락만 남아 있다면 뭐가 문제랴? 백거이는 백발이 되기도 전에 머리카락이 자꾸 빠지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도 스물다섯 무렵부터 탈모가 시작되어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 2018. 7. 3.
청옥 쟁반에 쏟아지는 수은 한시, 계절의 노래(105) 여름비 내린 후 청하 절집에 쓰다(夏雨後題靑荷蘭若) 당 시견오(施肩吾) / 김영문 選譯評 절집은 청량하고대나무 산뜻해라 한 줄기 비 지난 후온갖 티끌 다 씻겼네 산들바람 문득 일어연잎을 스쳐가니 청옥 쟁반 속에서수은이 쏟아지네 僧舍淸涼竹樹新, 初經一雨洗諸塵. 微風忽起吹蓮葉, 靑玉盤中瀉水銀. 옛날 문인들은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하거나 인생의 주요 대목에 처할 때마다 시를 썼다. 특히 한자 문화권에서 오언시와 칠언시는 문인들의 교양필수 도구였다. 시를 좋아하는 선비들은 늘 지필묵과 시 주머니를 가지고 다녔다. 또 종종 산 좋고 물 좋은 정자에 모여 시회(詩會)를 열곤 했다. 요즘은 어떤가? 시인들 이외의 지식인 사이에서 시를 주고받는 전통은 거의 사라진 듯하다. 그럼 옛 사람들처럼.. 2018. 7. 3.
지축을 흔드는 태풍 한시, 계절의 노래(104) 영남 잡록 30수(嶺南雜錄三十首) 중 열두 번째 명 왕광양(汪廣洋) / 김영문 選譯評 그 누가 고래 타고무지개를 끊는가 파도 날아 곧추 서고하늘에는 독한 구름 자바 크메르 배들도항구 구석에 거둬들임은 내일 아침 태풍이몰아칠 걸 알기 때문 誰跨鯨鯢斬斷虹, 海波飛立瘴雲空. 闍婆眞蠟船收澳, 知是來朝起颶風. 제7호 태풍 쁘라삐룬(Prapiroon)이 북상 중이다. 쁘라삐룬은 태국어로 비를 관장하는 신의 이름이라고 한다. 태풍은 북태평양에서 발생하는 열대성저기압 타이푼(typhoon)을 가리킨다. 타이푼이란 말은 대체로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폭풍의 아버지 티폰(Typhon)에서 연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말이 아랍으로 전해져 투판(tufan)이 되었고, 다시 인도로 유입되어 인도양.. 2018. 7. 3.
우리 사랑 북극성 같이 한시, 계절의 노래(103) 자야가(子夜歌) 남조 민요 / 김영문 選譯評 나는 늘북극성 되어 천 년토록마음 옮기지 않을 텐데 내 님은태양 같은 마음으로 아침엔 동쪽저녁엔 서쪽으로 가네 儂作北辰星, 千年無轉移. 歡行白日心, 朝東暮還西. 2014년 6월 8일 프랑스 파리 세느강에 있는 퐁 데자르(Le Pont des Arts) 교량 난간이 무너져 내렸다. 난간에 매달아 놓은 ‘사랑의 맹세’ 자물쇠 무게를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에서 온 연인들은 서로 사랑의 맹세를 하고 그 상징으로 자물쇠를 다리 난간에 채운 후 열쇠를 세느강 속으로 던져 넣는다. 그렇게 채워놓은 자물쇠가 얼마나 많았는지 결국 퐁 데자르는 전 세계 연인들이 맹세한 사랑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다. 우리도 서울 남산타워를 비롯해 유명 관.. 2018. 7. 2.
말 채찍 되어 그대 팔뚝에 한시, 계절의 노래(102) 절양류가(折楊柳歌) 북조 민요 / 김영문 選譯評 뱃속 가득 수심으로우울하나니 우리 님 말채찍되고 싶어라 들고 날 때 팔뚝에매달려 있고 걷고 앉을 때 무릎 곁에있고 싶어라 腹中愁不樂, 願作郞馬鞭. 出入擐郞臂, 蹀坐郞膝邊. BTS의 노래 「봄날」을 들어보자. “보고 싶다 이렇게 말하니까 더 보고 싶다/ 너의 사진을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 드라마틱스(Dramatics)의 「고마워요」는 어떤가? “생이 끝나는 날도 늘 곁에 있을 나란걸” 예나 지금이나 세상 노래의 가장 중요하고 보편적 주제는 ‘사랑’이다. 옛날에는 떨어지기 싫은 사랑을 ‘연리지(連理枝)’에 비유하기도 하고, ‘비목어(比目魚)’에 빗대기도 하며 그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랐다. 위의 시에서는 북조(北朝) 민요의 가사답게.. 2018. 7. 2.
붉은 노을 마주하며 황혼을 생각한다 한시, 계절의 노래(101) 낙유원에 올라(登樂遊原) 당 이상은(李商隱) / 김영문 選譯評 저녁 무렵 마음이울적하여 수레 몰아 낙유원에올라가네 석양은 무한히아름다우나 다만 황혼이가까워오네 向晩意不適, 驅車登古原. 夕陽無限好, 只是近黃昏. 낙유원은 중국 당나라 장안성(長安城) 남쪽 8리 지점에 있던 유명 관광지다. 한나라 때 조성되었고 그 일대에서 가장 전망이 좋아 도성 남녀가 즐겨 찾는 산보 코스였다. 우리 서울로 치면 딱 남산에 해당한다. 만당(晩唐) 대표 시인 이상은은 저녁이 가까워올 무렵 마음이 울적하여 수레를 타고 이 유서 깊은 전망대에 올랐다. 지는 해는 마지막 햇살로 서편 하늘을 찬란하게 물들였다. 그는 울적한 마음을 풀고자 낙유원에 올랐지만 찬란한 노을을 바라보며 오히려 황혼의 비애에 젖는다.. 2018. 7. 2.
문화재는 개발 방탄막이가 아니다 시대가 변했다. 문화재도 변했다. 종래 문화재라고 하면 일방적인 타도 대상이라는 성격이 짙었다. 이런 문화재의 속성, 혹은 이미지는 지금 한국사회에서도 여전하며 강고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문화재는 그 존재기반으로 삼는 관련 법률이 문화재보호법이며, 근자에는 그것이 더욱 분화해 매장법과 수리기술자법, 고도보존법 등으로 분화하고, 나아가 얼마 뒤면 무형유산법과 세계유산법도 제정될 것이어니와, 이들은 그 속성이 규제법이라는 점이니 이들 법률이 규제성을 포기하면 그 존재 이유를 상실한다. 규제법이라는 무엇인가? 이에서 규제 대상은 무엇인가? 이르노니 개발로부터의 막음이다. 그런 점에서 문화재가 개발과의 대척점을 형성한다는 믿음 혹은 실감은 현실과 다르다 할 수 없다. 이런 규제가 종래에는 걸림돌 일방으로 간주됐.. 2018. 7. 2.
국립민속박물관이 국립중앙박물관 인사적체 해소처는 아니다 어제 문화체육관광부 인사 중 국장급 전보를 보면 박물관 학예직 인사 이동이 있었으니, 이에 따르면 고위공무원단인 국립전주박물관 김승희 관장이 같은 고공단인 국립광주박물관장으로 가고, 문체부 산하 다른 문화기관인 국립민속박물관 천진기 관장이 국립중앙박물관 산하 고공단 자리인 국립전주박물관장으로 이동했다. 이번 학예직 고공단 인사는 송의정 국립광주박물관장이 퇴임함에 따른 후속조치라는 성격과 더불어 다른 측면도 있으니, 다름 아닌 민속박물관 인사 적체 문제가 도사린다는 점이 그것이다. 직제로 보면 국립민속박물관은 비록 그 직급이 차관급인 국립중앙박물관에 견주어 낮기는 하지만, 엄연히 같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소속기관으로, 서로에 대해서는 엄격한 독립성을 지닌다. 문체부 산하에 이런 유사 기관으로 이명박 정부 .. 2018. 7. 1.
500년 느티나무에 죽을 자유를 주자 어제다. 경기 수원발 연합뉴스 기사로 〈"살려야만 한다"…수원 500년 느티나무 구하기 대작전〉 제하 김인유 기자 기사가 나왔으니, 이번 장맛비에 처참히 붕괴한 느티나무 노거수(老巨樹)가 쓰러진 모습을 담은 큼지막한 사진을 곁들여 이렇게 쓰러진 나무를 살리고자 당국이 안간힘을 쓴다는 내용이었다. 보도에 의하면 지난달 26일 오후 3시쯤 수원시 영통구 느티나무 사거리 부근 단오어린이공원에 있는 수령 500년 된 느티나무가 부러졌다고 한다. 다시 보도를 훑어가면, 이 느티나무는 1790년 조선 정조대왕이 '수원화성'을 축성할 때 그 나뭇가지는 그것을 축성하는데 쓴 서까래를 공급했는가 하면, 나라에 큰 어려움이 닥칠 때면 구렁이 울음소리를 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고 한다. 높이 33.4m, 둘레 4.8m에 달한.. 2018. 7. 1.
폐허 한시, 계절의 노래(100) 궁성(臺城) 당 위장(韋莊) / 김영문 選譯評 강에 보슬비 자욱이 덮여강가 풀 가지런한데 육조시대 꿈결 같아덧없이 새는 우네 궁궐 터 저 버들가장 무정하여라 여전히 십리 제방을안개로 둘러쌌네 江雨霏霏江草齊, 六朝如夢鳥空啼. 無情最是臺城柳, 依舊煙籠十里堤. 일제강점기 신파극단 여배우 이애리수는 너무나 애절한 목소리로 「황성(荒城)옛터」를 노래했다. “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스른 회포를 말하여 주노나/ 아, 가엾다 이 내 몸은 그 무엇 찾으려고/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어 있노라.” 우리나라 수많은 문인이 개성, 부여, 경주, 평양 등지를 여행하며 망국의 비애를 시로 남겼지만 이 노래를 능가하는 작품은 별로 없는 듯하다. 망국 시기였으므로 우리 민족의 비애.. 2018. 6. 28.
장마, 매실 익는 계절의 정기 게스트 한시, 계절의 노래(99) 장마[梅雨] [宋] 유반(劉攽, 1023~1089) / 김영문 選譯評 매실이 노랗게 익고저녁 비 깊어 보검엔 녹이 슬고거울은 침침하네 해마다 날씨 습해도몸에 병 없으니 백 번 단련한 쇠보다더 낫다고 여기네 梅實初黃暮雨深, 寶刀生鏽鏡昏沈. 年年卑濕身無病, 自覺能勝百鍊金. 장마는 매실이 노랗게 익을 때 시작하므로 한자로 매우(梅雨)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6월 말에서 시작해 거의 한 달가량 지속한다. 저온다습한 오오츠크해 고기압과 고온다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이 충돌하면서 빚어지는 자연현상이다. 매일 비가 오는 것은 아니지만 습하고 더운 날씨가 이어지는 탓에 집안 곳곳에 곰팡이가 피고 음식도 쉽게 상한다. 이 시에서는 보검에 녹이 슬고 거울이 침침해진다고 했다. 옛날에는 보검과.. 2018. 6. 28.
우리 혹시 같은 고향이던가요? 한시, 계절의 노래(98) 장간행(長干行) 당 최호(崔顥) / 김영문 選譯評 그대 집은어디셔요 저의 집은횡당이에요 배 멈춘 틈에잠시 묻습니다 우리 혹시동향인가요 君家何處住, 妾住在橫塘. 停船暫借問, 或恐是同鄕. 우리는 어떤 여행을 계획하든 여행 도중 겪게 될 낯설지만 새로운 경험을 기대하며 즐거운 상상에 젖는다. 이 시는 그런 기대 중에서도 ‘낯선 여행 길에서 만난 아름다운 사람(陌路麗人)’이란 주제에 충실한 작품이다. 흥미롭게도 여성이 먼저 남성에게 “집이 어디냐?”고 질문을 하며 “우리 혹시 동향이 아닐까요?”라고 확인을 한다. 둘째 수에서는 남성이 대답을 하며 자신은 어릴 적에 고향을 떠난 사람이라고 여성의 질문을 부인한다. 하지만 처음 말문을 트기가 어렵지 않은가? 이미 대화를 나눈 두 사람이 어.. 2018. 6. 27.
강가에서 혼자 마시는 술 한시, 계절의 노래(97) 회수 가에서 독작하다(淮上獨酌) 송(宋) 양시(楊時) / 김영문 選譯評 실낱 같은 저녁 비가먼지 씻으니 옅은 하늘 뜬 구름에밤빛 새롭네 맛있는 술 가져와혼자 즐김에 달 불러 셋이서마실 필요야 廉纖晚雨洗輕塵, 天淡雲浮夜色新. 賴有麯生風味好, 不須邀月作三人. 바야흐로 일인 가구가 늘어나는 추세다. 혼밥과 혼술이 흔한 세상이 되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은 어차피 고독한 존재로 태어나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살아야하기에 언제나 이 두 범주 사이를 오가기 마련이다. 하긴 한시에서도 독작(獨酌)이나 자작(自酌)을 읊은 작품이 많다.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로서 또는 대자연 앞에 선 절대적 고독자로서 인간이 혼자 놀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혼술이다. 이 경지의 지존은 이백이다. 「월하독작.. 2018. 6. 27.
같은 임호정에서 한시, 계절의 노래(96) 임호정(臨湖亭) 당 배적(裴迪) / 김영문 選譯評 정자 마루 가득물결 출렁이고 외로운 달그 속에 배회하네 계곡 입구원숭이 소리 바람에 실려문으로 들어오네(當軒彌滉漾, 孤月正裴回. 谷口猿聲發, 風傳入戶來.) 왕유는 「임호정」 시에서 “가벼운 배로 좋은 손님 맞으러/ 여유롭게 호수 위로 나왔네(輕舸迎上客, 悠悠湖上來)”라고 읊었다. 그가 맞은 좋은 손님이 누구일까? 바로 배적(裵迪)이다. 당시 배적도 종남산(終南山)에 기거하며 은자의 삶을 살고 있었다. 기실 왕유의 대표 시집 『망천집(輞川集)』에는 그의 시 20수뿐 아니라 배적이 화답한 20수도 함께 실려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망천집』은 왕유의 시집이 아니라 왕유와 배적의 합동 시집인 셈이다. 지금 남아 있는 배적의 시는 모.. 2018. 6. 27.
임호정에서 한시, 계절의 노래(95) 임호정(臨湖亭) 당 왕유 / 김영문 選譯評 가벼운 배로좋은 손님 맞으러 여유롭게호수 위로 나왔네 정자 마루에서술동이 마주하니 사방 호수에연꽃이 피네 輕舸迎上客, 悠悠湖上來. 當軒對尊酒, 四面芙蓉開. 왕유는 성당(盛唐) 산수전원파의 대표 시인이다. 그는 개원(開元) 말년 망천(輞川)에 은거하여 그곳 산수와 혼연일체가 된 삶을 살았다. 그곳의 삶을 읊은 시가 그의 대표작 『망천집(輞川集)』 20수다. 앞에서 읽어본 「죽리관(竹里館)」이나 「녹채(鹿柴)」도 『망천집』 20수에 들어 있다. 북송의 대문호 소식이 왕유의 시와 그림을 평하여 “마힐의 시를 음미하면 시 속에 그림이 있고, 마힐의 그림을 감상하면 그림 속에 시가 있다(味摩詰之詩, 詩中有畫, 觀摩詰之畫, 畫中有詩.)”라고 했는.. 2018. 6. 27.
아무도 미워하지 않은 자의 죽음 한시, 계절의 노래(94) 기유가(企喩歌) 북조(北朝) 민요 / 김영문 選譯評 사내란 가련한벌레들이라 문 나서면 죽음을걱정한다네 시신이 협곡 속에버려진대도 백골을 아무도거두지 않네 男兒可憐蟲, 出門懷死憂. 尸喪狹谷中, 白骨無人收. 중국 한시와 역대 민요의 관련성은 매우 밀접하다. 4언 한시의 전형을 보여주는 『시경』은 당시 민요 및 악곡 가사집이다. 굴원(屈原)에 의해 정형화한 초사는 초나라 민요인 초가(楚歌)를 확장·발전시킨 것이다. 한나라 때 발생한 5언시는 당시 민요인 악부시(樂府詩) 리듬이 변천하는 과정에서 생성되었고, 7언시는 초가의 리듬과 5언시의 리듬이 결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송나라 때 극성한 사(詞)와 원나라 때 새로 대두한 산곡(散曲)은 모두 민요의 리듬은 .. 2018. 6. 27.
말이 그렇지 맘까지 그러겠는가? 한시, 계절의 노래(93) 아이를 씻기고 끄적이다(洗兒戱作) 송 소식 / 김영문 選譯評 모두들 아이 기르며똑똑하기 바라지만 똑똑하게 살다 나는일생을 그르쳤네 내 아이는 어리석고둔하기만 바라노니 재앙도 난관도 없이공경대부에 이르리라 人皆養子望聰明, 我被聰明誤一生. 惟願孩兒愚且魯, 無災無難到公卿. 벌써 24년 전 일이다. 아내가 큰 아이 출산을 앞두고 애기 옷을 사왔다. 그 손바닥 만한 옷을 빨아서 빨랫줄에 널었다. 햇볕에 반짝이는 배냇저고리를 보고 태산처럼 밀려드는 책임감에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뜨거운 그 무엇이 치밀고 올라왔다. 한참 동안 하늘을 올려다보며 움직일 수 없었다. 병원에서 아이를 낳아 우리 작은 셋방에 데려와서 아내는 울었다. 그 가녀린 생명을 모두 서툰 엄마에게 의지하는 아이를 보고 눈물이 .. 2018. 6. 27.
수상 KTX 탄 이태백 한시, 계절의 노래(92) 아침에 백제성을 출발하다(早發白帝城) 당 이백 / 김영문 選譯評 아침에 백제성채색 구름 떠나서 천 리 길 강릉을하루 만에 돌아왔네 양쪽 강언덕 원숭이끊없이 우는 가운데 가벼운 배는 이미만 겹 산을 지나왔네 朝辭白帝彩雲間, 千里江陵一日還. 兩岸猿聲啼不住, 輕舟已過萬重山. 동서고금을 통틀어 나는 번지점프의 달인으로 이백을 첫손가락에 꼽는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그가 직접 번지점프를 했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의 대표작을 읽어보라. “휘날리는 물살이 삼천 척 내려 꽂히니(飛流直下三千尺)”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황하의 물이 하늘 위에서 쏟아져내려오는 것을(君不見黃河之水天上來)” 이 시에서도 아침 채색 구름 사이에서 떠난다고 했으므로 구름 속에서 번지점프하듯 배가 출발.. 2018. 6. 27.
남쪽 가는 하지장을 전송하는 이백 한시, 계절의 노래(91) 월 땅으로 돌아가는 하 빈객을 배웅하며(送賀賓客歸越) 당 이백 / 김영문 選譯評 경호 흐르는 물에맑은 물결 출렁이니 사명광객 귀향 배에흥취가 가득하리 산음 땅 도사와만나게 된다면 『황정경』을 써주고흰 거위와 바꾸시리 鏡湖流水漾淸波, 狂客歸舟逸興多. 山陰道士如相見, 應寫黃庭換白鵝. 하(賀) 빈객(賓客)은 하지장(賀知章)이다. 태자빈객(太子賓客)을 지낸 적이 있어서 흔히 하 빈객이라 부른다. 그의 고향은 산음(山陰)으로 지금의 중국 저장성(浙江省) 사오싱(紹興)이다. 경호(鏡湖)는 지금의 사오싱 젠후(鑑湖)다. 젠후는 저수지처럼 막힌 호수가 아니라 물이 자연스럽게 흘러들고 나가는 길다란 호수다. 사오싱은 춘추시대 월(越)나라 도성이었다. 하지장은 시와 서예에 뛰어난 명인이었다. 어.. 2018. 6. 27.
한 송이 꽃에 깃든 연화장세계 한시, 계절의 노래(90) 시로 지은 게송(詩偈) 열 번째(其十) 당 방온(龐蘊) / 김영문 選譯評 일념으로 마음청정해지니 곳곳마다 연꽃활짝 피누나 한송이 꽃 모두하나의 정토 하나의 정토에는한 분의 여래 一念心淸淨, 處處蓮花開. 一華一淨土, 一土一如來. 화엄(華嚴)의 세계는 찬란하다. 만발한 온갖 꽃이 광대무변한 이 세계를 장엄하게 수놓는다. 분별과 대립이 사라진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다. 부처님의 지혜가 가득 차 있어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존재가 찬란한 불성을 꽃피운다.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 모래 한 알, 잎새 하나에도 모두 신성한 불성이 깃들어 있다. 연꽃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물 속에서 뿌리를 연결하고 기맥을 잇듯이 이 모든 사물은 무한한 인과 관계에 의해 하나로 연결된다. “하나가 곧 .. 2018. 6. 27.
수양버들 오뉴월 소불알처럼 늘어진 하지에 한시, 계절의 노래(89) 하짓날 짓다(夏至日作) 당 권덕여(權德輿) / 김영문 選譯評 우주 질서끊임없이 운행하여 사계절번갈아 이어지네 말하노니뜨거운 햇볕 속에 오늘은음(陰) 하나 생긴다네 璿樞無停運, 四序相錯行. 寄言赫曦景, 今日一陰生. 하지는 24절기 중 낮이 가장 긴 날이다. 태양의 남중고도가 최고점에 달하므로 지표면이 가장 많은 열을 받는다. 이 열이 쌓이면서 본격적으로 더위가 시작되고 장마가 몰려온다. 감자를 캐고 모내기를 끝내는 시절이다. 땅 속에서 오래 견딘 매미들이 보리매미를 시작으로 땅 위로 기어 나와 계절 노래를 부른다. 양력으로 6월 21~22일 무렵이다. 『주역(周易)』에서는 천풍구(天風姤) 괘를 하지 상징으로 본다. 사물이 끝간 데까지 가면 반드시 돌아오는 법이다(物極必反). 이 .. 2018.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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