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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연구1957

응도당凝道堂과 연려실燃藜室 방에 원래 걸어둔 현판은 돈암서원의 응도당 편액 사진이다. 지인이 크게 사진을 찍어 뽑아 준 것을 출력하여 방 한 편에 걸어 두었는데, 일설에 의하면 송시열이 썼다고 하는데 자세한 내력은 모르겠다. 필자는 호나 자 같은 복고 취향은 없는 사람으로, 이름 석자 남기기도 빠듯한데 호나 자는 필요 없다고 본다. 위의 편액사진도 당호는 아니다. 다만 논문을 쓸 때 내용을 마지막에 결정화하는 작업이 응도당이라는 당호와 왠지 상통하는 듯 해서 걸어두었다. 연구실에 하나 더 오늘 걸어 두었는데 이번에는 이광사가 썼다고 알려진 연려실 편액이다. 국박에 있는 것으로 위키에 크게 뽑은 사진이 올라있길래 하나 출력해서 뽑아 방 한 켠에 두었다. 이긍익의 연려실 기술 서문에 보면초년에는 뭐 좀 큰 업적을 남길 줄 알았는데 늘.. 2026. 5. 7.
네안데르탈인의 뇌크기에 대해 일반적으로 여러 종의 지적 능력을 반영하는 것으로는, 뇌의 무게나 용량보다도, 뇌 무게와 몸무게의 비율을 가지고 이야기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써 둔다. 아래는 유명한 각 동물별로 뇌 무게와 몸무게의 비율을 표시한 유명한 연구 결과이다. 이 표를 어찌 보냐 하면, 아래 왼쪽에서 위 오른쪽으로 45도 사선을 그어서 그 사선에서 위쪽으로 많이 떨어져 있을수록 소위 말하는 머리가 좀 돌아가는 녀석에 해당한다. 당연히 사람이 가장 뇌무게와 몸무게 비율이 높고, 사람하고 비슷한 수준으로 돌고래와 코끼리가 있다. 새 중에서는 까마귀가 높다. 금붕어, 악어 뱀장어 등은 당연히 뭐 신통치 않고..네안데르탈인과 사람이 뇌 용량이 비슷하더라도 만약 어느 한 쪽의 몸무게가 더 많이 나간다면해석이 조금 달라질 수도 있겠다... 2026. 5. 2.
So far we are equal 제인 오스틴(Jane Austen)의 소설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 제56장에는 다음과 같은 명대사가 있다.엘리자베스 베넷이 자신과 다아시의 결혼을 반대하는 캐서린 드 버그 부인(Lady Catherine de Bourgh)에게 이렇게 이야기 한다.캐서린 부인이 엘리자베스의 집안 배경을 무시하며 다아시와 동등하지 않다고 무시하며 비난하자 엘리자베스는"그는 신사이고, 나는 신사의 딸이니, 지금까지는 우리가 평등하다(He is a gentleman; I am a gentleman's daughter; so far we are equal)"라고 응수한다. 바로 이 구절이 오만과 편견 소설 전체를 꿰뚫는 명대사라 할 수 있다. 소설에 의하면 다아시 집안의 계보는 이렇다. 한 눈에도 .. 2026. 5. 1.
민중은 없다 우리나라 조선후기사 기술에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20세기 한국사와 연결이 잘 안 된다는 것이다. 조선후기사를 마지막까지 사림의 눈으로 조망하여 기술하는 한 편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편에서 역사를 보는 쪽은 이번에는 이 시기의 주역을 "민중"이라 한다. 필자가 보기엔 19세기까지도 사림의 시각으로 조선사를 보는 것만큼이나 문제가 많은 것이19세기의 변혁의 주체를 설명하면서 민중, 내지는 농민이라고 뭉뚱그려 설명하는 것이다. 이 민중이라는 개념은 20세기 이후 성립한 시민사회에서나 적용가능한 개념으로18-19세기의 조선사회에는 적용할 수 없다. 민중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 도대체 조선시대 후기의 호적에 기록된 사람들 중 누구에게 민중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겠는가? 민중은 20세기에나 쓸 수 있는 개념이지이 .. 2026. 5. 1.
모칭유학은 21세기 선진국 한국사회의 아버지 18세기 이후 등장하기 시작한 모칭유학들이들을 사림의 눈으로 보아 무슨 족보와 호적 사기나 치고 다니는 파렴치범 내지는양반 흉내나 내는 동네 떨거지처럼 쓰는 것이 우리 역사의 기술인 바, 전혀 전혀 그렇지 않다. 18세기 중엽 이후 조선사회에 등장한 모칭 유학은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는다. 조선 전기에 양반 인구가 5-6프로였다는 것이 통설이고, 17세기만 해도 양반이 전체 인구의 10프로 내외였다는 것인데, 19세기에 모칭 유학이 70프로면 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모칭유학이라는 소리지 뭐 별 것 있겠는가. 다시 말해서 21세기에 어쩌다 보니 선진국까지 가버린 기적을 창출한 한국사회의 정신적 아버지는 사림들이나 양반들 떨거지가 아니라 바로 19세기 모칭유학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이를 한국사에서는 "민중".. 2026. 5. 1.
사림의 눈으로만 보는 조선사 우리나라 조선시대 역사의 기술을 보면, 사림의 눈으로 조선시대 전반을 조망한다. 첫째, 조선 전기의 사족들에 대한 평가를 사림의 눈으로 한다. 이들은 "훈구파"이고 "관학파"이며, 적당히 부패하고 제대로 된 유학자도 아니라고 보는 시각은명백히 사림파가 이전의 사족들을 보는 시각이다. 분명히 이야기 해 둘 것은 조선 전기는 이들 "훈구파"와 "관학파"가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이들에 대한 평가를 사림의 눈으로 하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 다음으로 이번에는 영-정조 이후, 16-17세기까지도 누리던 사림의 세계가 점차 사라지고, 위로는 서인 독재라 하지만, 사실 아래에서는 평민과 중인들이 대거 상층부로 진입하여 호적에는 "유학"으로 직역을 자칭하는 사람들이 전체 인구 70프로를 넘나들게 되었다. 이번에는 이들.. 2026.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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